‘손 더 게스트’가 그리는 분노가 지배한 사회의 혼돈

갈수록 충격적이다. 한 사람씩 빙의되어 벌어지는 사건들을 하나씩 다루던 OCN 수목드라마 <손 더 게스트>는 이제 한 마을을 뒤덮어버린 빙의자들이 마치 좀비 떼처럼 창궐하는 이야기로 그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그 최종 목적지는 박일도 큰 귀신이 처음 빙의자를 낳았던 바닷가 마을 계양진. 구마의식을 하며 점점 몸도 영혼도 어둠에 피폐되어가는 신부 최윤(김재욱)과 정직 징계를 받게 된 형사 강길영(정은채) 그리고 부상을 입은 채 할아버지를 찾아 나선 윤화평(김동욱)은 함께 그 계양진을 찾았지만 이미 마을을 뒤덮어버린 양신부(안내상)의 어둠이 사람들을 부마자로 만들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하고 있었다. 

슬쩍 최종회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깔린 복선에는 최윤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구마의식을 하려할 거라는 것과, 그를 구하기 위해 영매인 윤화평이 스스로 자신의 몸에 박일도를 봉인한 채 죽음을 택함으로써 영원히 그를 제거하려 할 거라는 암시가 담겼다. 결국 좀비 떼처럼 변한 부마자들 하나하나를 상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양신부를 해결하는 것만이 마을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됐다는 것. 

거의 공포에 가까운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 전개 때문에 시청자들 역시 계속 벌어지는 사건에 빙의된 채 볼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한 걸음 물러나 <손 더 게스트>가 무얼 이야기하려 했는지를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도대체 <손 더 게스트>는 이 한국형 리얼 엑소시즘을 표방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어떤 문제들을 건드린 걸까.

그 단서가 되는 건 여기 빙의된 자들이 벌인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들 속에서 찾아질 수 있다. 한 집안의 가장이 “돈” 얘기만 하는 아내와 딸들 앞에서 갑자기 변해 골프채를 들고 폭력을 휘두른 사건이나, 약자들을 지켜야할 경찰이 오히려 창문을 깨고 들어와 폭력을 저지르는 장면, 주유소에서 툭하면 구박하고 손찌검을 하는 사장을 죽인 아르바이트생이나, 고장 난 버스를 고치는데 짜증을 내며 비하하기까지 하는 손님들을 모조리 죽인 관광버스 운전기사 같은 이들을 촉발시킨 ‘어둠’은 무엇일까. 

그건 우리가 가끔씩 신문 사회면에서 “어떻게 저런 짓을 저질렀지”하고 다시 보게 되는 사건들 속에서 발견되곤 하는 것들이다. 갑자기 툭 터져 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건의 이면 속에는 우리네 사회 속에서 보이지 않게 조금씩 누적되며 쌓여온 ‘분노’의 감정들이 어느 비등점을 넘어 폭발하며 생겨난 일들이다. 너무 끔찍한 일들이라 인간이 한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그 사건들을 <손 더 게스트>는 그래서 ‘빙의’라는 상징적인 소재로 풀어내려 했던 것이다. 

최종회가 펼쳐질 계양진 마을의 좀비 떼처럼 들고 일어난 빙의된 부마자들의 모습은 그래서 꽤 상징적인 장면들이다. 분노가 지배한 우리네 사회가 맞닥뜨릴 수 있는 혼돈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마지막 회에 담겨지게 되겠지만 분노는 제압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누군가의 사랑이 전제된 숭고한 희생 같은 것들이 오히려 해결책이 된다. 분노와 악의 화신이 된 양신부를 막기 위해 제 한 몸 기꺼이 던지려는 윤화평과 최윤 그리고 강길영의 희생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주제의식에 해당하지 않을까. 충격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손 더 게스트>가 담은 메시지가 만만찮게 다가온다.(사진:OCN)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문제 지적만큼 중요한 솔루션 제시

밤 7시 딸의 취침준비시간. 남편 고창환은 딸 고하나의 방학생활 숙제를 도와준다. 그런데 갑자기 걸려온 시누이로부터의 전화. 고창환은 활짝 웃으며 통화하다 딸 고하나를 바꿔준다. 반갑게 고모를 부르는 하나의 목소리. “집에 오면 저랑 같이 자요.” 갑자기 전화를 해서는 시누이가 집에 온다는 그 말에 아내 시즈카는 화들짝 놀란다. 

시즈카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자 남편이 일종의 해명을 한다. “친구 만나러 왔다가 늦을 거 같아서, 운전하기 좀 위험해서, 자고 가도 되냐고 해서. 상관없지 않나?” 딸 하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척 넘어가려는 그 말에 하나가 “괜찮아. 그래서 내가 괜찮다고 말했어”라고 답을 해준다. 하지만 시즈카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몇 시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묻는 시즈카에게 “늦으면 자고 있다가” 일어나면 되지 않냐고 고창환은 속편한 말을 한다.

시즈카가 불편해 하자 고창환은 마치 그게 정답이나 되는 듯, “가족이잖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시즈카는 “가족이라도 달라”라며 단호한 자신의 입장을 말한다. “여기 누구 집인데? 오빠만 살아?” 시즈카의 그 말에 남편 고창환은 “다음에는 내가 물어볼게”라며 아내의 불편한 마음을 다독이려 한다. 분위기가 싸해지자 딸 하나가 그걸 풀기 위해 하는 말이 흥미롭다. “아빠는 고모가 와도 되니까 그런거지? 그런데 엄마한테 왜 안 물어봤어?” 그러자 아빠가 답한다. “그래서 이제부터 아빠가 물어본다고 했어. 그럼 됐지?” 그런 하나가 예쁘게 느껴졌던 지 시즈카는 하나를 꼭 안아주며 웃는다.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보여준 이 장면은 굉장히 짧지만, 거기에 어쩌면 지금 이 프로그램이 처한 문제의 해법이 담겨 있다고 보인다. 방송이 나올 때마다 시청자들이 공분을 일으킬 만큼 ‘이상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사안들은 짜증을 유발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살았던 일상인지도 모르지만, 관찰카메라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문제투성이였다는 걸 드러내면서 나타난 반응들이다.

그 파장이 워낙 커서인지 여기 출연했던 김재욱-박세미 부부는 프로그램을 하차하며 그 불편한 심경을 SNS에 올렸다. 일정한 ‘콘셉트’가 있었고, 그래서 설정과 ‘연기’가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 있었다는 것인데, 이런 ‘폭로’가 있었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그것이 제작진의 잘못도 존재하지만 또한 온전히 편집 때문인가를 지적했다. 이런 문제들은 왜 발생한 것일까.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그 이상한 시댁의 풍경을 보여준다는 점에 의미가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그것이 자극적인 반응들을 만들어 내다보니 문제의 장면들만 집중해서 보여주는 편집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새롭게 등장한 최현준-신소이 부부 이야기에서도 며느리에게 “야”라고 부르고 자기 아들인 현준을 우선적으로 챙기라는 ‘돌직구’ 시어머니가 등장했다. 그 시어머니가 “해달라고 하기 이전에 남편을 위주로 하고!”라고 말할 때는 자막에 붉은 색으로 ‘남편을 위주’를 강조하고 불꽃까지 더해 붙였다. 일종의 강조점을 찍은 것이다. 

물론 프로그램 기획의도가 그런 이상한 나라를 조명해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니 그런 문제들을 끄집어내는 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문제만이 아니라 해법 또한 필요하다는 점이다. 과연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지적과 분노 이상의 어떤 대안이 될 수 있는 해법을 시도해 보여준 적이 있을까. 

이러한 가족 내의 갈등을 풀어내기 위해 만들어지는 관찰카메라를 활용한 솔루션 프로그램에는 적어도 그 상황을 직접 당사자들이 보게 하고, 거기 비춰진 자신들의 모습과 상대방의 입장을 확인함으로써 어떤 해결방식을 제안하곤 한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는 그런 해결 방식이나 과정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시즈카의 가족이 보여준 짤막한 장면이 의미 있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시즈카는 남편이 ‘가족’이라면 뭐든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그 대목에 단호하게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 곳이 자신들만의 공간이고 그래서 남편 혼자 사는 공간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했다. 시댁 식구들까지 포함해 그 누구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공간으로서 그 곳은 경계가 있다는 걸 시즈카는 확인시켜준 것이다. 

최근 들어 성 평등 문화에서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는 이른바 ‘경계 존중 교육’이 절실하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내 몸이 있고, 내 공간이 있고, 나만의 삶의 경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넘어올 때는 그래서 사전에 양해를 통한 허락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 경계는 누구에게나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우리네 문화에서 경계는 ‘가족주의’라는 틀 속에서 상당 부분 희석되어 버렸다. 심지어 “우리가 남이냐”라는 말은 가족의 틀을 벗어나 사회에서조차 친분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고, 그것은 경계를 훌쩍 넘어 마구 침범하는 문화를 당연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댁이 이상한 나라가 되는 건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결혼을 했으니 ‘우리 가족’이라는 명분하에 마구 선을 넘는 행동과 말이 그렇다. 

시즈카의 단호한 대처가 의미 있게 다가온 건 딸 하나가 보이는 반응에서도 드러난다. 이런 가족이라는 이유로 경계를 훅 들어오는 행위들은 그걸 보고 자라는 아이들이 성장해서도 같은 행동을 하게 만든다. 시즈카의 단호한 대처는 그래서 딸 하나에 대한 살아있는 훈육처럼 보인다. 딸이 아빠에게 “엄마에게 왜 안 물어봤어?”하고 묻는 대목은 그 역시 가족의 경계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니 말이다.

시즈카가 스스로 보여준 것처럼,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잘못된 풍경을 끄집어내고 지적하는 차원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나아가 거기서 어떤 해법들을 찾을 것인가를 같이 고민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불편하고 자극적인 상황의 나열로 인해 ‘분노’만을 일으키고, 결국은 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꺼려지는 현실만을 그려낼 위험성이 있다.(사진: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우리들이 들여다봐야 하는 까닭

늘 봐오던 풍경이라고? 그래서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이냐고? MBC 새 교양 파일럿 프로그램인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그 늘 봐오던 풍경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던 시댁의 풍경이 어째서 그리도 이상한가를 보여준다. 

우리에게 <사랑과 전쟁>의 ‘불륜녀’ 역할로 많이 알려진 배우 민지영은 결혼 후 처음으로 시댁에 가는 길에 잠시 들른 친정집에서 결국 눈물을 흘리는 엄마를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첫 시댁을 간다는 그 부담감에 전날부터 뭘 입고 갈지 고민하고, 새벽부터 메이크업을 했던 민지영. 엄마가 바리바리 싸준 이바지 음식을 보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도대체 이렇게 많이 음식을 준비하며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시댁으로 가는 딸을 보며 엄마는 왜 눈물을 흘렸을까. 

왜 눈물을 흘렸는가는 시댁에 도착한 후 민지영이 금세 체감하는 그 공기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마치 남자들이 있는 공간과 여자들이 있는 공간이 보이지 않는 유리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시댁은 이상한 풍경이었다. 남자들이 두런두런 모여 술판을 벌이기 시작할 때, 며느리들(시어머니도 며느리다)은 음식 준비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시어머니는 첫 날은 그렇게 일하는 거 아니라며 며느리를 밀어내지만, 며느리 입장에서 어찌 시어머니가 동분서주하는 걸 보고만 있을까. 

이런 상황은 개그맨 김재욱의 아내 박세미의 명절 풍경에서는 더더욱 충격적으로 보여졌다. 남편이 일을 나가 임신 8개월의 무거운 몸에 어린 아들을 안고 무거운 짐까지 들고 홀로 나서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시댁으로 가는 길 보채는 아들을 달래가며 운전을 하는 모습이라니. 임신 8개월의 몸으로 이런 일을 혼자 감당한다는 건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명절이니 제사니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하지만 시댁에 어렵게 도착했을 때 시아버지는 손주만 덜렁 안고 들어가 버렸고, 앉아 쉴 틈도 없이 바로 부엌에서 전을 부치는 박세미의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많이 줄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명절 음식들. 먹는 사람들은 좋을지 모르지만, 그걸 차리는 사람들은 얼마나 고역이었겠나. 그러면서 “세상 좋아졌다”고 말하며 과거와 비교하는 시어머니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주는 며느리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과연 진심으로 좋아졌다 생각할 수 있을까.

시댁 식구들이 다 모여 함께 저녁을 먹고 TV를 보며 단란한 시간을 보냈지만 며느리는 이방인이었다. 시누이는 그토록 챙기면서 어째서 며느리는 그렇게 부릴까. 보채는 아이 챙기며 음식 준비하고 시댁 식구들 심부름 하느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이 며느리는 임신 8개월이었다. 12시가 넘어서야 도착한 남편은 생각도 없이 자신이 사왔다는 술을 꺼내 자랑을 늘어놓고, 어렵게 잠을 청하자마자 새벽부터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깨운다. 제사상을 준비하자는 것이다. 

제사가 끝났으면 일찍 친정으로 보내주면 좋으련만 시댁 식구들은 어떻게든 더 붙잡아두려 혈안이다. 억지로 윷놀이 하는 걸 지켜보며 웃는 척 하고 있지만 며느리의 마음이 어디 편할 수 있을까. 어째서 며느리의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사람이 이토록 없을까. 시어머니도 한 때는 며느리가 아니었던가.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일상처럼 치부되어 왔던 시댁의 풍경을 관찰자 시점에서 다시금 들여다본다. 그랬더니 드러나는 건 이 풍경에 담긴 놀라울 정도로 ‘이상한’ 일들이다. 남자들이라면 이 프로그램을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어떤 일들이 자신들의 집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들여다봐야 그 문제가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러려니 했지만 그걸 확인해보니 더더욱 아프게 다가오는 며느리의 일상. 그 일상에 깊이 공감하며 같이 아파하는 시간은 그래서 굉장히 가치 있는 일로 다가온다.(사진:MBC)

악역이 뭐길래...이준호·김재욱·엄기준, 주인공만큼 빛나는 존재감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에서 펄펄 나는 건 주인공 남궁민만이 아니다. 악역으로 등장해 이제는 남궁민과 짝패가 된 이준호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연기자라는 타이틀을 제대로 얻었다. 그는 서율 이사라는 캐릭터를 통해 나이 많은 부하직원들에게 안하무인격으로 반말을 하고 필요하면 폭력까지 일삼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윤하경(남상미) 대리 앞에서는 부드러운 면면을 드러낸다. 김과장과 대립하다가도 그가 죽을 위기에 몰리자 그를 구해주는 의외의 인간적인 면을 갖고 있어, 악역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다. 

'김과장(사진출처:KBS)'

물론 이준호는 드라마 <기억>이나 영화 <스물> 등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연기력을 갖춘 아이돌로 평가받은 바 있다. 하지만 <김과장>의 서율이라는 캐릭터는 확실하게 그에게 연기자로서의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것은 악역이 주는 힘일 것이다. 드라마에 긴장감과 갈등을 부여하는 역할로서 악역은 제대로만 연기해내면 주인공만큼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 지금껏 풋풋한 청년의 이미지가 강했던 이준호가 서율이라는 안하무인 악역 캐릭터로 만든 반전 이미지는 그에게는 연기자로 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처럼 악역은 그간 발견하지 못했던 연기자의 새로운 결을 드러내게 해준다. 종영한 OCN <보이스>에서 중반 이후부터 등장해 마지막회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해준 김재욱 역시 악역을 통해 새로운 면을 보여줬다. 등장만 해도 살벌한 느낌을 주는 모태구라는 악역은 조각 미남 김재욱의 이미지를 뒤집어 놓았다. 심지어 여성적인 느낌마저 주는 그 미남의 이미지가 거꾸로 살벌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김재욱은 꽤 많은 작품들을 해왔다. 하지만 잘 생긴 외모는 오히려 연기자로서는 어떤 장애요소로 작용한 면이 더 크다. 다양한 연기를 해내기에는 그 외모가 주는 선입견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김재욱 역시 모태구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에게 부여된 이러한 선입견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고 볼 수 있다. 

역시 종영한 드라마 <피고인>에서의 엄기준 역시 차민호라는 악역을 통해 새삼 주목받았다. 사실상 <피고인>은 주인공인 지성과 악역인 엄기준이 서로 치고 받는 그 힘에 의해 끝까지 탄력을 잃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다소 과한 설정들과 개연성이 부족한 면들이 있었지만 그나마 끝까지 힘을 유지한 것도 지성과 엄기준이라는 배우의 열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도면밀하고 뻔뻔하기까지 한 살인자 재벌2세라는 캐릭터는 지금의 대중정서가 공분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갖고 있었다. 그 요소들을 통해 엄기준은 냉철하고 냉혹한 악역을 만들어냈다. 어딘지 선해 보이는 엄기준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는 그래서 더 잔혹해지는 행동들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더 강렬해질 수 있었다. 

악역은 그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연기자에게 덧씌워진 이미지를 깨는 힘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연기자로서의 존재감을 만든 배우들을 보면 저마다 확실한 악역의 필모그라피가 있다. 남궁민이 주목을 받았던 것도 <리멤버-아들의 전쟁>에서 보여준 악역의 힘이 있었고, 유아인 역시 영화 <베테랑>에서의 악역이 있었다. 이준호, 김재욱, 엄기준 역시 이제 그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악역이 부여한 연기자로서의 면면을 드러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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