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은 어째서 ‘보이스’에 눈을 뗄 수 없었나

“모든 사이코패스들이 살인마가 되는 건 아닙니다.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가정과 환경 사회에 영향을 받는 후천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한 인물의 예를 들어보죠. 선천적으로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유년시절 자신의 아버지가 살해를 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한 이후에 그 증상이 더욱 악화되어서 아주 걷잡을 수 없는 끔찍한 살인마가 된 경우가 있습니다. 이 사회에 가장 감추고 싶었던 비밀들이 이 시대의 범죄자들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죠.”

'보이스(사진출처:OCN)'

OCN 주말드라마 <보이스>에서 강권주(이하나)는 도주한 모태구(김재욱)를 격동시키기 위해 방송을 통해 그를 자극하는 말을 남긴다. 그런데 이 대사 속에는 살인마의 탄생이 사이코패스로 태어난 선천적인 것보다 후천적인 요소에 더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즉 선천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어떤 후천적인 악영향이 촉발되지 않는다면 반드시 살인마가 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결국 태생 그 자체보다 그 부모나 사회 같은 주변적 상황들이 중요하다는 것. 

모태구라는 희대의 살인마가 탄생하게 된 건 결국 어린 시절 아버지 모태범(이도경)이 살인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되면서다. 모태범과 모태구의 잔학한 살인의 연대기는 그 이후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살인마가 되어버린 모태구가 저지르는 살인들이 자신 탓이라고 여기는 모태범은 아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른다. 그러면서 그는 끝까지 아들 모태구에게 그가 ‘살인마’가 아니라 ‘특별한 존재’라고 교육시킨다. 누군가를 죽여도 되는 특별한 존재로 교육받는 모태구는 이제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살인을 저지른다. 

결국 모태구라는 희대의 살인마는 강권주의 이 격동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고 무진혁(장혁)에 의해 검거된다. 하지만 모태구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 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어쩌면 자신은 피해자라고 여길 지도 모른다. 결국 자신이 그렇게 된 것이 부모와 사회 탓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타인의 고통을 공감 못하는 인물이 심지어 재계인물이나 고위 공무원 그리고 검찰이나 경찰총장까지 좌지우지하는 권력을 갖게 되는 일은 실로 끔찍한 결과를 만든다. 

심각한 연쇄 살인도 살인이지만, 이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성운 통운 버스 사건 같은 비인권적 고용문제와 더불어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형사고로도 이어진다. 사고가 나면 그 보험금을 사측이 가져가는 계약을 해놓고 사고 위험이 있는 버스를 방치한 채 버스기사로부터 운행하게 만드는 그 충격적인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안전불감증과 그 이면에 깔려 있는 사이코패스적 권력자들의 문제를 드러낸다. 칼 들고 사람을 찔러 죽이는 이들만이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누군가 사고를 당할 위험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아무런 경각심 없이 방치하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것. 

<보이스>는 어쩌다 사이코패스적인 사회가 되어버린 현실에 ‘골든타임팀’을 투입해 희생자들에게는 절박한 그 골든타임을 지켜내기 위한 안간힘을 보여준다. 강권주와 무진혁의 절절함에 시청자들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건, 물론 그 끔찍한 사건들이 주는 충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기저에 깔려 있는 우리 사회가 주는 불안감을 빼놓을 수 없다. 꽃다운 나이에 몇 백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인재로 인해 세상을 떠났지만 그 골든타임에 권력을 가진 자들은 무엇을 했던가. 그렇게 안타깝게 세상을 버려도 지켜주지 못하고 잘못을 시인하지 못하는 사회란 불안감을 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사이코패스는 끝까지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알지 못한다. 다만 희생자들의 목소리는 그 사이코패스의 귓가에서 울려 퍼지며 그를 죽을 때까지 괴롭힌다. <보이스>가 마지막에 보여준 최후장면은 그래서 정신병동에서 무수한 정신병자들의 손에 의해 난자되는 모습보다 어둠 속에서 끝없이 흘러나오는 희생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끔찍하게 다가온다. <보이스>는 잔혹한 장면들의 폭력성이 비판의 도마에 오르긴 했지만, 그래도 드라마가 하려던 메시지는 분명하게 전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에 굳이 자막으로 일일이 그간 드라마 속에서 희생됐던 이들을 적어 넣은 건 그래서다. 

‘허지혜씨도 강국환 경사도 복님이도 아람이도 은별이도 박복순(심춘옥) 할머니도 낙원 복지원 희생자 분들도 그리고 성운 통운 버스에서 희생되신 분들 모두 우리의 이웃이고 누군가의 사랑하는 가족들입니다. 우리 사회가 골든타임 안에 그분들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과 억울하고 안타깝게 희생되는 분들이 더는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이 드라마를 만들었습니다.’

'매리는 외박중', 어른 없는 세계를 꿈꾸는 드라마

"우리 아빠 때문에 미안해." "우리 엄마 때문에 미안해." 무결(장근석)의 엄마 감소영(이아현)과 매리(문근영)의 아빠 위대한(박상면)이 다투고 나자, 무결과 매리는 서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마치 부모가 자식 다툼에 대해 얘기하듯.

'매리는 외박중'이라는 작고 귀여운 세계에 어른들은 외박중(?)이다. 위대한과 감소영은 둘다 그럴 듯한 직업이 없다. 어찌 보면 이 두 어른들을 돌보는 건 거꾸로 매리와 무결이다. 매리는 빚 독촉에 시달리는 아빠를 위해 100일 결혼 계약을 하고(그래서 떡볶이집 사장이 되기도 했다), 무결은 여전히 현실감이 없는 엄마가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정인(김재욱)의 회사와 계약을 한다. 물론 정석(박준규)도 마찬가지. 여전히 매리의 엄마를 잊지 못해 매리를 며느리로 들이려는 그는 좋게 말해 로맨티스트다.

어른 없는 세계에 오롯이 서 있는 네 인물, 매리, 무결, 정인(김재욱), 서준(김효진)은 저들끼리 어른들의 세상과 맞서보려 한다. 어른들의 세상에서 정인의 아버지는 사랑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황혼을 완성하기 위해 아들을 메리와 결혼시키려 하고, 위대한은 딸을 사랑하지만 딸의 사랑은 아랑곳없이 결혼을 시키려 한다. 무결의 엄마 감소영은 아들이 겪는 사랑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어른들을 뒤로 밀어낸 이 드라마는 그래서 그 위에 청춘들의 드라마를 세우려 한다. '우리 결혼했어요' 같은 가상 결혼 설정이 그것이다. 매리는 오전에는 정인과 오후에는 무결과 함께 지내면서 쿨하지만 풋풋한 일과 사랑을 꿈꿔나간다. 그래서 매리가 해보는 가상 결혼이라는 설정은, 흔히 막장드라마로 도드라지게 그려지는 어른들의 세계, 즉 결혼하면 늘 등장하는 정략결혼 같은 것과 대결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른들은 이 장난 같고 심지어 대책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아이들의 사랑을 용납하려 들지 않는다. 매리의 아버지는 무결을 그저 그런 한량쯤으로 여기고, 정석은 자신의 아들 정인을 마치 자신의 욕망을 위한 소유물처럼 다루면서 사랑 또한 강요한다. 하지만 이런 막장스런 어른들의 강권 속에서도 아이들은 저들끼리 귀엽고 예쁜 사랑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드라마 속의 네 청춘들이 만들고 있는 음악드라마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다. 시청률 때문에 편성이 되지 않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기성세대의 입맛에 맞게 고쳐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정인과 매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매리가 아이디어를 내고 정인이 채택한 사전제작 방식은 그래서 이 '매리는 외박중'이라는 드라마가 꿈꾸는 것이기도 하다. 시청률과 상관없이 오롯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

이 작품에서 네 명의 청춘을 연기하는 연기자들은 기성 드라마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심지어 만화적이고 동화적인 캐릭터를 보여준다. 문근영은 귀여움의 극치를, 장근석은 귀차니스트와 자유로움의 극치를, 김재욱은 신사다움의 극치를, 그리고 김효진은 스타답고 여성스러운 매력의 극치를 보여준다.

'매리는 외박중'이 시청률이 안 나온다고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건, 스스로 기성 드라마의 자극적인 공식에 익숙해졌다는 얘기도 된다. 이 드라마는 바로 그 점을 뒤집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 없는 세계, 막장 없는 드라마, 동화 같은 판타지 같고 심지어 만화 같지만, 그래도 청춘들의 고민을 담아내는 드라마. 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드라마가 꿈꾸는 세계는 시청률이라는 잣대로는 드러나지 않는(혹은 드러날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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