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호 울린 <개콘> 개그맨들의 수상소감

 

<2014 KBS 연예대상>의 대상은 유재석에게 돌아갔다. 올 한 해의 성적만을 두고 보자면 의외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상은 올 한 해만의 성과를 담은 건 아닐 것이다. <해피투게더>를 오랫동안 묵묵히 해온 그에 대한 공로의 성격이 더 짙을 것이고, 내년에 더 큰 활약을 기대하는 방송사의 기원의 의미가 더 많을 것이다. 유재석의 대상은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받을 만했다.

 

'2014 KBS연예대상(사진출처:KBS)'

하지만 한 해의 성과만을 두고 말한다면 김준호의 활약을 작년에 이어 올해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올해 KBS 예능의 근간을 김준호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KBS 예능은 이제 <개그콘서트>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 자체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이를 바탕으로 여기서 배출된 개그맨들이 KBS 예능 곳곳에 스며 큰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말 예능을 되살려놓은 <12>의 부활은 김준호에 의해 가능했다. 그의 탁월한 예능감과 개그감은 <12>만의 정감 넘치는 훈훈함 속에서 확실히 빛났고, 그에 의해 다른 출연자들의 캐릭터들도 살아나는 효과를 가져왔다. <개그콘서트>는 그 자신과 그가 공동대표로 있는 코코엔터테인먼트 개그맨들을 주축으로 굳건한 입지를 다져왔고, <인간의 조건>이나 각종 쇼 오락 프로그램으로도 활동영역을 넓혀왔다.

 

하지만 연말에 갑자기 터진 공동대표 김모씨의 횡령도주로 김준호는 어려운 입장에 처한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이번 사태 때문에 김준호와 소속 개그맨들 사이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추측성 기사들까지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아마도 회사의 어려움보다 더 그들을 힘겹게 하는 건 바로 이런 관계에 대한 추측과 루머였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이번 <2014 KBS 연예대상> 무대에 오른 개그맨들에게서는 유독 김준호에 대한 아낌없는 격려와 변함없는 신뢰가 눈에 띄었다. 대상 후보로 오른 김준호에 대한 지지 발언을 하기 위해 무대에 나온 김준현은 최근 어려움 속에서도 늘 대중들을 웃기기 위해 노력하는 김준호를 언급하면서, “상을 못 받더라도 형은 우리에게 대상이니 힘들어 말았으면 한다. 형은 영원히 내 인생의 롤 모델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준현은 이번 사태를 걱정하는 분들에게 준호 형과 식구들이 똘똘 뭉쳐 이겨내고 있으니 지켜봐 달라고 그에 대한 무한신뢰를 보이기도 했다.

 

코미디 부문 남자 우수상을 받은 조윤호는 김준호 선배가 강물은 바람에 물결을 쳐도 바다로 가는 방향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한 적 있다김준호 형님 가는 방향에 우리가 함께하니 힘내고 걱정하지 말라고 굳건한 애정을 드러냈고, 코미디 부문 남자 최우수상을 받은 김대희는 한 사람밖에 생각 안 난다고 에둘러 김준호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후, 작년에 대상 탈 때 자기 이름 언급 안했다며 자신도 안하겠다고 내려가 웃음을 주기도 했다.

 

또 코미디 부문 여자 최우수상을 받은 김지민 역시 김준호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드러냈다. 김지민은 수상소감에서 김준호 선배님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준호 선배님께서 항상 말씀하셨다. ‘돈을 남기는 것보다 사람을 남겨라.’ 사람을 너무 많이 남기셨다주변에서 어느 한 사람 때문에 네가 많이 힘들지?’라는 말을 많이 들으실 텐데 저희는 선배님 한 사람 때문에 흩어지지 않고 함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녀는 최우수상의 영광을 김준호에게 돌렸다.

 

이번 연예대상에서 보여준 김준호와 개그맨들의 상황은 한 마디로 비온 뒤 땅이 굳는다는 표현 그대로일 것이다. 무관의 김준호는 그저 묵묵히 앉아 동료 후배 개그맨들의 수상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고, 개그맨들은 김준호에 대한 자신들의 신뢰와 애정을 한없이 드러냈다. 비록 상은 받지 못했지만 유재석의 대상만큼 빛났던 김준호와 개그맨들 사이의 훈훈함이었.

 

개그우먼들의 다양한 변신, 오나미와 박지선에게 필요한 건

 

<개그콘서트>의 개그우먼들들이 자신의 외모를 무기로 개그를 선보일 때마다 외모 비하논란이 생기기도 했지만 이제 그런 정도는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그만큼 외모 개그가 일반화되었고 무수히 반복되면서 둔감해진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외모로 웃기는 것 또한 개그의 한 부분이라고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김준현이 뚱뚱한 몸 하나로 무대에서 빵빵 터트리더니 CF계의 떠오르는 별이 된 것처럼 외모개그는 폄하될 것이 아니라 제대로만 살려낸다면 오히려 편견을 깨고 긍정적인 이미지까지 얻을 수 있다. 김준현이 하고 있는 큰 세계같은 코너는 단적인 예다. <신세계>를 패러디한 큰 세계는 뚱뚱해야 보스로 인정받는다는 역발상으로 웃음을 주는 코너다. 이 코너를 보다보면 지나친 다이어트 열풍에 대한 일종의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있다.

 

이 코너는 외모 비하의 차원을 넘어서서 오히려 당당하게 뚱뚱한 몸을 자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가 뚱뚱한 사람을 돼지라고 부르며 갖는 부정적 이미지를 상당부분 없애주기도 한다. 김준현이나 유민상 같은 뚱뚱한 몸을 내세우는 개그맨들은 그것을 긍정적으로 전화시키는 개그를 통해 이른바 돼지 캐릭터도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김준현을 똑똑한 돼지라 부르고 유민상을 여유로운 돼지라 부르는 건 그런 이유다.

 

외모 개그에 있어서 특히 비판의 대상이 유독 많이 됐던 건 개그우먼들이다. 여성이라는 입장이 우선 외모 지적이나 비하에 대해 반감을 갖게 만드는 부분도 있지만 개그우먼들이 툭하면 외모로 웃기려는 경향이 비판의 이유가 됐다. 하지만 최근 서수민 PD에 이어 김상미 PD로 여성 PD들이 <개그콘서트>의 메가폰을 잡으면서 개그우먼들의 캐릭터도 다양해졌다.

 

사건의 전말쉰 밀회로 독특한 개그영역을 만들어내는 김지민이 그렇고, ‘두근두근같은 코너로 멜로 개그를 선보인 장효인이 그렇다. ‘선배, 선배!’의 이수지나 끝사랑의 김영희는 물론 외모 개그가 바탕에 깔려 있지만 그것만이라고 볼 수 없는 캐릭터의 재미가 묻어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수지는 황해에서 보이스피싱 연기로 주목을 받은 바 있고 김영희는 두분토론으로 여성의 입장을 대변한 바 있는 개그우먼이다.

 

그런데 이렇게 달라지고 다양해지고 있는 개그우먼들 속에서 너무 한 가지 모습으로만 갇혀 있는 두 개그우먼들이 있다. 바로 박지선과 오나미다. ‘우리동네 청문회에 출연하는 박지선은 스스로를 진상 박지선이라고 소개하며 외모 비하 개그를 보여준다. “속였잖아요. 저 그 말만 믿고 진짜 베란다에서 비키니 입고 선탠 하다가 주민신고 당했잖아요. 비키니 입고 경찰서에서 조서 썼잖아요.” “속였잖아요. 그 앞집총각 나랑 눈 마주치자마자 바로 이사 갔잖아요. 남자 없잖아요. 남자.” 이런 개그 속에는 못 생긴 얼굴이라는 닳고 닳은 박지선의 단골 개그 소재가 무한 반복된다.

 

이런 사정은 오나미도 마찬가지다. ‘억수르에 나미다라는 캐릭터로 등장한 그녀는 과장된 포즈를 취하고 애써 눈을 찡긋 대는 모습으로 웃음을 만들려한다. 그 외모개그에는 스스로 못생긴 얼굴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바닷가에 갔는데 안전요원이 비키니를 못 입게 하는 거야. 이제는 집에서만 비키니 입을게.”하고 오나미가 말하자 억수르가 바다 사줄게.”라고 한다거나, 김기열에게 인사하는 척 하면서 자기 다리를 봤다며 너도 남자구나. 오케이 콜. . 대놓고 봐. 안구정화해. 힐링시켜. 봐 봐 봐.”하는 대사 역시 이제는 좀 식상하게 다가온다.

 

물론 외모개그도 개그의 한 소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외모만을 캐릭터화해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개그는 이제 과거만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지 않다. 이것은 박지선이나 오나미처럼 개그에 더 많은 장점을 가진 개그우먼들에게 마치 족쇄 같은 느낌마저 준다. 이제는 그것을 과감히 뛰어넘어야 할 때다. 물론 그것이 그녀들의 캐릭터이기 때문에 완전히 벗어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바탕 위에서 무언가 새롭게 외모에 대한 편견 자체를 깨버릴 수 있는 그런 캐릭터를 기대할 수는 없는 걸까. 훌륭한 개그우먼들이 단지 외모만이 아니라 다양한 끼와 재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코너가 절실하다.

 

여풍 <개콘>, 달달해졌지만 현실풍자 사라져

 

<개그콘서트>남자가 필요 없는 이유가 폐지됐다. 8개월 동안 지속되면서 요물-”이라는 유행어까지 낳은 코너지만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식상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코너는 최근 <개그콘서트>에 불고 있는 여풍(女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코너였다. 서수민 PD 체제에서 김상미 PD 체제로 넘어오면서 <개그콘서트>가 전면에 내세운 것은 개그우먼들이었다. 지난 1년 동안 <개그콘서트>는 그간 개그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왔던(?) 여심을 잡으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먼저 폐지된 남자가 필요 없는 이유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코너들 중 상당 부분이 남녀관계의 연애심리를 담고 있거나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었다. ‘댄수다는 이것을 커플 댄스를 통한 춤으로 풀어냈고, ‘두근두근은 마치 친구처럼 지내왔지만 사실은 연애감정을 가진 남녀의 속내를 끄집어냄으로써 웃음으로 만들었다. ‘끝사랑은 이 남녀 관계의 중년판이고, ‘후궁뎐은 사극판, ‘놈놈놈은 여성 판타지 드라마의 개그판이라고 볼 수 있다.

 

개그우먼들은 거의 모든 코너에서 중심적인 위치로 들어왔다. 힘겹게 살다가 성공했지만 여전히 버려지지 않는 과거의 습관들이라는 섬세한 심리가 돋보이는 누려같은 코너는 과거라면 개그맨들이 나왔을 가능성이 높은 코너다. 하지만 이희경과 박지선이 그 중심을 잡았다. 엔딩 코너로 자리한 뿜엔터테인먼트의 주축 역시 개그우먼이다. “잠시만요! 보라언니-”로 신보라보다 주목받는 박은영이나, 먹방 콘셉트로 빵빵 터트리는 김민경, ‘느낌 아는개그우먼 김지민이 그 주역들이다. 물론 여장한 대상 개그맨 김준호도 빼놓을 수 없다.

 

폭탄 콘셉트로 유민상과 송영길을 내세운 안생겨요나 박성광 특유의 날카로움이 돋보이는 시청률의 제왕역시 여성 관객과 시청자를 겨냥한 코너다. ‘안생겨요가 뭐니뭐니 해도 외모가 먼저 들어올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심리를 꺼내놓는다면, ‘시청률의 제왕은 여성들의 주 관심사인 드라마들의 시청률 만들기 문법을 꼬집는다. 약간의 세태 풍자가 들어가 있지만 본격적인 현실풍자나 시사풍자에서는 약간 벗어나 있는 게 사실이다.

 

그나마 현실을 좀 더 드러내고 있는 코너는 백수들의 잉여적 삶을 풍자하는 놀고있네나 직장생활의 애환을 에둘러 표현한 편하게 있어정도지만 이 코너들 역시 과거의 최효종이나 동혁이형이 답답한 서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던 쓴 소리와는 너무나 다르다. <개그콘서트>는 확실히 달달해졌다.

 

<개그콘서트>가 달달해진 이유로 개그우먼들이 전면에 포진한 것을 든다는 것은 자칫 성적 편견이 될 수 있다. 마치 여성들은 현실문제나 시사문제와는 거리가 먼 존재들처럼 치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현재 <개그콘서트>의 개그우먼들이 현실문제와는 점점 거리를 둔 연애담이나 가십거리에서 더 많은 공감 포인트를 얻어가려는 모습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자칫 지금껏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소외되어 왜곡된 이미지로 자리했던 것만큼 개그우먼들을 왜곡시킬 위험성이 있다.

 

<개그콘서트>에 그간 남성 개그맨들의 대상으로 혹은 남성들의 시선에 좌우되는(그래서 주로 외모로 웃기는) 모습으로 소외되어 왔던 개그우먼들이 이제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은 반갑고도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무대의 중앙으로 들어온 개그우먼들의 역할이 연애담 같은 소소함에만 머물고 있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달달해졌지만 현실풍자의 쓴 맛이 사라진 <개그콘서트>가 아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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