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 PD까지 CJ행을 선택한 이유

 

이명한 PD, 신원호 PD에 이어 이우정 작가(그녀는 물론 KBS 소속은 아니었지만)도 합류하더니 결국 나영석 PD도 CJ E&M 행을 택했다. 이로써 한때 <해피선데이>를 최고의 주말 예능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던 주역들이 모두 KBS를 떠난 셈이다.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나영석 PD 본인은 부인했지만 그의 이적설은 끊임없이 나왔으니까. 아마도 KBS라는 조직의 생리를 아는 방송 관계자들이라면 누구나 나영석 PD 같이 재기발랄한 인재가 이 조직에 눌러 앉아 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1박2일'(사진출처:KBS)

이것은 KBS가 가진 제작 여건이 열악하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가질 수 있는 제작상의 많은 이점들을 갖고 있다. 전국망의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고, 폭넓고 보편적인 시청층을 갖고 있다는 장점도 있다. 게다가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그 공영성에 부합한다면 시청률에 있어서도 그다지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조직이다. 이런 면은 오히려 CJ E&M과 상반되는 것들이다. CJ라는 조직은 케이블로서의 한계를 분명히 갖고 있고 좋은 제작의도를 갖고 있다고 해도 시청률이 낮다면 KBS처럼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것은 이적한 PD들이 겪는 가장 큰 고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제작 환경에 있어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이런 선택을 왜 모두 하는 걸까. 혹자들은 그것이 결국 돈 때문이 아니겠냐고 말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모든 직장인(PD도 한 사람의 직장인이다)들에게 있어 급여 문제만큼 첨예한 것이 있을까. 그러니 더 대우를 해주는 직장이 눈에 들어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건 회사가 능력에 맞는 대우를 제대로 해주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KBS는 그런 점에서 몇몇 실력 있고 도전적인 PD들에게는 매력 없는 직장이다. KBS가 원하는 것은 그 전체 시스템의 한 부분으로서의 PD이지 저 스스로의 확고한 영역을 만들어 이른바 스타가 되는 그런 PD가 아니다. KBS는 스타PD를 키우지도 또 용인하지도 않는 그런 조직이다.

 

또한 KBS는 제작환경은 좋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마인드는 떨어지는 편이다. 지금 현재 방영되고 있는 KBS의 예능 프로그램들을 보면 그다지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시즌 프로그램들이 그토록 많고, 이른바 장수 프로그램도 넘쳐나는 건 보수적인 시청층에게는 나쁘지 않은 일이지만 무언가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젊은 PD들에게는 어딘지 정체된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남자의 자격>을 연출했던 신원호 PD가 CJ E&M에 가서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을 연출해 큰 화제를 일으킨 것은 나영석 PD에게는 꽤 큰 자극제가 되었을 것이다. 제작여건은 어려워도 새로운 도전정신이나 상상력의 기회는 늘 열려 있는 그런 조직. 자신의 이름을 걸고 승부를 볼 수 있는 그런 조직. KBS는 물론 안정적이지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PD들에게는 아마도 그 안정적인 것 자체가 힘겨웠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거기에는 예전부터 손발을 맞춰왔던 그들(이명한 PD, 신원호 PD, 이우정 작가)이 있다.

 

한때를 풍미했던 <해피선데이>팀이 모두 KBS라는 둥지를 떠나 CJ E&M에 새 둥지를 세우게 된 것은 물론 대우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PD들이 갖기 마련인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작하고픈 그 도전정신을 KBS라는 조직이 그다지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새 둥지에서 이른바 히트작을 터트릴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젊은 날에 무언가를 시도하고 도전했다는 것은 분명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게다. 새 도전 앞에 서 있는 나영석 PD의 건투를 빈다.


발견의 예능, 예능의 발견 '1박'의 나영석 PD

나영석 PD는 역설의 연출자다. 무려 5년 간이나 여행 버라이어티를 이끌어오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바로 이 점이 자신의 장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만일 제가 여행 마니아라면 프로그램도 마니아적인 게 됐을 겁니다. 보통 가정에서 여행을 그렇게 자주 가지는 않잖아요. 제가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오버하지 않고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죠."

이 '보통 사람들'의 시각은 다름 아닌 '1박2일'이 가진 최대의 장점이다. 나영석 PD의 성향처럼 '1박2일'은 늘 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연세가 드신 어르신들은 나이에 걸맞는 혜안이 있기 마련인가 봐요. 촬영을 가서 동네 어르신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그 툭툭 던지는 얘기 속에 정말 깜짝 놀랄만한 인생의 진리가 들어있는 경우가 있죠. 강호동씨가 시골에 가면 어르신들 붙잡고 얘기하는 이유가 있어요. 그 분들에게는 정말 뭔가 건질 게 분명히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거죠."

'1박2일'의 보통 사람들의 시각에 대한 존중은 루머나 오해로 논란이 생길 때마다 일단 PD가 사과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부산 사직구장 논란이 그랬고, MC몽의 흡연 장면 논란이 그랬다. 물론 이건 초창기 일찌감치 '예방주사(?)'를 맞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즉 밀양 여행 편에서 시골집에 간 이수근이 빨래판으로 아궁이에 불을 때는 장면이 나갔었는데 그것 때문에 '민폐 논란'이 생겼던 것. 하지만 이건 오해였다. 그 집은 본래 나PD의 외할머니집이었고, 빨래판은 오래돼서 본래부터 태우려고 내놓은 것이었다는 것. 그 후로 나PD는 대중들이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1박2일'이 어딘지 투박하고 서민적이며, 꾸며진 화려함이 아니라 그냥 내버려둔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것도 이러한 나영석 PD가 가진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나영석 PD는 애초에 '1박2일'이 '여행'이라는 어딘지 거창한(?) 소재를 겨냥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저 야외에 한번 나가보자.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나 한번 들여다보자던 것이었죠. 그런데 정말 의외의 재밌는 상황들이 벌어지더라구요. 라면 하나 가지고 누가 먹었냐 안먹었냐를 놓고 재미난 에피소드가 나올 수 있었죠. 물론 그런 상황을 초기에 만든 건 전적으로 강호동씨의 공이 큽니다."

나영석 PD의 '내버려둬도 무언가 나온다'는 이 자신감은 '1박2일'만의 느긋함과 자연스러움을 만들었다. 무언가 인위적인 상황을 부여하기보다는 그저 내버려두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발견'해내는 심지어 '다큐스러움'은 그래서 '1박2일'의 가장 큰 특징이 되었다. 이 자연스러움이 가장 잘 드러나는 건 출연자들의 캐릭터다. '1박2일'은 출연자들에게 억지로 캐릭터를 부여하진 않는다. 차라리 내버려두고 스스로 캐릭터를 발견하고 찾아낼 시간을 준다. 이수근이 그랬고, 엄태웅이 그랬으며, 후에 다시 복귀했던 김종민이 그랬다.

이 자연스러움과 기다림의 태도는 마치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마음에 비견된다. 무언가 해줘야 하는 마음은 있지만 급하게 다그치면 본래 가야할 길을 가지 못하고 엄한 방향으로 틀어질 수 있다는 것. 따라서 부모 마음으로 기다려주는 것이 출연자들이 더 자연스러운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또 갈 길을 제대로 가게 해준다는 것이다. "연출자로서 당장 역할을 못하는 출연자들을 보면 어찌 답답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한 집에서도 잘 나가는 자식이 있으면 묻어가는 자식도 있는 법이죠. 그러다 어느 날은 그게 뒤바뀌기도 하고요."

하지만 모든 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만 굴러갔다면 '1박2일'은 어딘지 밋밋한 느낌의 예능이 됐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나영석 PD는 다큐처럼 진지한 모습 뒤에 어린 아이 같은 개구진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늘 야전에 머물면서 시커멓게 타버린 얼굴이 슬쩍 미소를 보일 때 드러나는 게 바로 그 장난기 가득함이다. 이것은 '1박2일'이라는 진국에 톡톡 쏘는 맛을 내는 양념, '복불복'을 그대로 빼닮았다. 복불복이라는 코드는 '1박2일'의 예능적인 부분들을 뾰족하게 담아내는 중요한 요소였다.

물론 '1박2일'이 복불복으로 한 게임들을 보면 지나칠 정도로 단순하고 반복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가위바위보, 묵찌빠 같은 이미 누구나 익숙한 기본적인 게임들 아니면, 아예 족구나 탁구 같은 스포츠들의 반복이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반복적으로 게임을 하면서도 어째서 '1박2일'의 복불복은 매번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었을까. 이것은 게임은 단순했지만, 그 게임에 거는 것들이 다양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스텝들 전원 야외취침을 복불복으로 내세우는 상황이니 어찌 간단한 족구 게임이라도 몰입도가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

때론 다큐 같고 때론 완전한 예능 같은 이 어찌 보면 이질적인 두 분야가 자연스럽게 하나로 엮어지는 과정은 나영석 PD의 진지하면서도 장난기 가득한 모습을 그대로 닮아있다. 그것은 '1박2일'이 나영석 PD를 닮은 것일 수도 있고(그 성향이 묻어난 것), 또 정반대로 5년  간이나 함께 해오면서 나영석 PD가 '1박2일'을 닮은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이제 우리가 '1박2일'과 나영석 PD를 비슷한 어떤 존재로 보게 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이제 나영석 PD의 '1박2일'은 그 긴 여행을 끝냈다. 이제 대신 최재형 PD의 '1박2일'이 그 새로운 여행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시점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네 예능에서 한 획을 그은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을 떠올리면서 나영석 PD를 추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영석 PD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1박2일'이라는 '발견의 예능'은 그래서 새로운 '예능의 발견'이 될 수 있었다.


 

'1박2일'(사진출처:kbs)

"100% 이상을 기획하지만, 50% 정도만 기획을 충족시킬 때 '1박2일'만의 재미가 만들어진다." 나영석 PD의 이 말은 '1박2일'만이 가진 재미의 핵심을 말해준다. 즉 이 말은 '1박2일'이 아무 준비 없이 우연히 만들어지는 재미를 기대하는 '날방'이 아니며, 그렇다고 100% 기획한대로 방송이 흘러가는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야생과 날것의 느낌, 즉 의외성이란 '1박2일'만의 맛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획한 것의 반 정도가 기대대로 움직이고, 나머지 반이 의외의 상황으로 흘러갈 때 '1박2일'은 완전한 재미를 줄 수 있다.

하지만 나영석 PD의 이 말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박2일'의 전체 흐름 속에서 PD는 사실상 모든 걸 쥐고 흔들 수 있는 존재다. 연기자들을 속여 제주도 한 음식점에 내버려두고 모두 도망치거나, 각각의 단계마다 특정한 미션을 부여해 그들의 동선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즉 아무리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라고 해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PD는 이 모든 흐름을 통제하는 '신적인(스토리를 움직인다는 의미에서)' 존재다.

이것은 나영석 PD 스스로도 잘 인식하고 있는 일이다. 그는 한 인터뷰를 통해서 "리얼 버라이어티는 계속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하고 그 동력이 꺼지지 않게 해주는 게 포인트"라며 그래서 "과거에는 프로그램 포맷에 그러한 것들을 집어넣었다면 요즘은 PD가 전면에 나서 그 일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과거에 이러한 외부적 개입을 프로그램 포맷 속에 넣은 이유는 당연하다. 그 개입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너무 인위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흔히 우리가 극작에서 최악의 방식으로 지목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신의 강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늘 신적인 존재로서의 작가는 작품 뒤쪽으로 물러나 있어야 한다. 그가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 보는 이들은 맥이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었다. 이제 대중들은 아무리 작가가 뒤쪽으로 빠져 있어도 그 숨겨진 개입을 눈으로 읽는다. 그래서 오히려 이것이 너무 짜여진 연출이라는 것을 발견해낸다. 그러니 리얼리티를 부르짖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의 전략도 달라질 수밖에. 이제 PD들이 카메라 속으로 들어와 즉석에서 연기자들에게 미션을 부여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심지어는 연기자들과 대결구도를 갖기도 한다. 이것은 외부의 개입을 대중들에게 인정하는 대신, 모든 상황이 미리 준비된 것이 아니라 즉석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전략이다.

MBC처럼 PD 개개인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분위기의 방송사라면 모를까, KBS처럼 시스템 중심으로 움직이는 방송사에서 PD가 카메라에 얼굴을 내미는 건 심지어 금기시되어 있다. 그래서 초창기 이명한 PD는 자신이 전면에 나선 것은 어쩔 수 없는 형식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 바톤을 이어받은 나영석 PD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나영석 PD는 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온전히 '1박2일'의 한 재미요소로까지 격상시켰다.

이렇게 된 것은 나영석 PD가 일종의 반전을 주었기 때문이다. 즉 어딘지 엄하고 모든 걸 통제하려는 완고함을 가질 것만 같은 PD가 사실은 이보다 더 수더분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이것은 서글서글한 외모에서부터 드러난다), 늘 "안됩니다!"를 외치면서도 연기자들을 걱정하는 선한 이미지에, 여기서 한 차원 더 나아가 귀엽기까지 한 장난기(그래서 그는 귀요미로 불린다), 인간적인 성정을 드러내는 욱하는 성미까지 보여주니 대중들로서는 이 완전한 반전 캐릭터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재간이 없다.

카메라 바깥에서 프로그램이라는 세계를 움직이는 신적인 존재로 자리하던 PD는 나영석 PD로 와서 카메라 속으로 들어온 한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인간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자신이 연기자들에게 부여할 독한 미션 앞에 고민하고 흔들리기까지 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러니 이제 나영석 PD 없는 '1박2일'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 되었다. 심지어 나영석 PD 보는 맛에 '1박2일' 본다는 얘기도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영석 PD가 했던 말을 뒤집어서 해보면, 이제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100% 완고한 PD'가 아니다. 어쩌면 50%의 PD 역할에 나머지 50%의 빈 자리를 남겨놓는 PD. 그래서 그 빈 자리를 여유와 온기로 채워주는 그런 PD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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