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ame is 가브리엘’로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간 박보검

My name is 가브리엘

누구나 낯선 세계에 첫 발을 딛던 순간들을 기억할 게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 느껴지는 두 가지 감정.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던 순간들을 말이다. 특히 처음 보는 타인들과 마주할 때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어 긴장하게 된다. 하지만 그 긴장의 경계를 넘어서 대화를 통해 조금씩 그 사람을 알아가게 될 때, 그 두려움은 설렘으로 바뀌기도 한다. 아마도 JTBC ‘My name is 가브리엘’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박보검이 마음이 그렇지 않았을까. 

 

‘My name is 가브리엘’은 한 마디로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보는 콘셉트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박보검이 살아볼 타인의 삶은 아일랜드 더블린에 사는 루리라는 인물의 삶이다. 나라도 도시도 낯선 그 곳에 뚝 떨어진 박보검은 루리가 사는 집을 주소 하나 달랑 들고 찾아가고, 루리의 방에 있는 물건들이나 해야할 일을 적어놓은 체크리스트 같은 걸 통해 그가 누구인가를 유추한다. 그리고 체크리스트에 있던 약속된 친구들과의 만남을 통해 루리가 더블린에서 꽤 큰 규모의 합창단 단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또한 그가 이끄는 합창단으로 며칠 후 길거리에서 벌이는 합창 버스킹을 해야 한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합창단 지휘라는 걸, 말도 낯선 더블린이라는 곳에서 해야 하는 상황, 만일 그런 일을 내가 해야만 한다면 나는 어땠을까. 머리가 하얘지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 불가능해보이는 미션 앞에 선 박보검을 안심시키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루리의 친구들이다. 20대에서 40대까지 있는 그 친구들은 하나 같이 프로그램 콘셉트에 맞춰 박보검을 오랜 친구인 루리처럼 대한다. 친구들 이름조차 몰라, “기억을 잃었다”는 핑계를 유머로 꺼내놓으며 애써 이름을 묻고 기억하려하는 박보검에게 친절하게 자기소개를 하나씩 하고 또 루리가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친구였는가를 알려준다. 낯선 상황의 당혹감에 머리를 쥐어뜯던 박보검은 차츰 편안해지며 그 상황에 적응해간다. 

 

하지만 이들 친구들과 함께 수십 명의 합창단원을 만나러가고 거기서 바로 이뤄진 연습 과정은 박보검으로서는 또다른 멘붕의 연속이다. 하지만 자신이 과거 군 시절에서 군악대를 하며 익혔던 경험들을 꺼내와 단원들의 합창에 대해 나름의 코멘트와 아이디어를 주고, 거기에 단원들이 “너무나 좋은 코멘트”라는 리액션을 해주면서 그 긴장은 풀려나간다. 그리고 박보검이 솔로파트를 부르고 단원들이 백코러스로 화음을 넣어주는 ‘Falling Slowly’를 부르다 결국 울컥해 눈물을 보인다. 박보검은 그 감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잘하고 있고 잘 해낼 수 있다고 저를 다독이는 것만 같았어요.”

 

‘My name is 가브리엘’에서 박보검이 보여준 이 감동적인 장면들은, 먼저 이 배우가 가진 특별한 몇 가지를 끄집어낸다. 그 첫 번째는 낯선 상황에서 낯선 이들과 만남에도 불구하고 늘 열린 자세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프로그램 콘셉트가 그래서 그런 점도 있었겠지만, 사실 보통 사람이라면 도망치고 싶었을 그 상황에서도 그는 루리의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 합창단을 지휘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처음에는 망설이고 어려워했지만 금세 마음을 다잡고 해내야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설혹 틀린다 하더라도 자신이 아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건 어쩌면 박보검이라는 배우가 지금껏 다양한 역할들 속으로 들어가며 가졌던 자세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2011년부터 영화, 드라마에 다양한 조역, 단역을 거친 박보검이 드디어 대중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건 2015년 방영됐던 ‘응답하라 1988’로 바둑기사 최택 역할을 연기하면서다.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다, 어남택(어차피 남편은 택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화제가 됐던 박보검은 그 후 ‘구르미 그린 달빛’, ‘남자친구’를 거쳐 ‘청춘기록’으로 확실한 ‘청춘의 초상’으로 떠올랐다. 웃는 얼굴에도 우수가 가득한 눈빛을 가진 이 배우는 밝은 청춘들에 깃든 현실적인 어려움을 표상하는 듯한 연기로 호평받았다. 또한 영화 ‘서복’과 ‘원더랜드’를 통해서는 심지어 로봇이나 AI 역할에서도 특유의 감수성이 빛나는 눈빛으로 한층 깊어진 연기의 세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데 박보검을 여러 작품에서 볼 때마다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건 바로 ‘감수성’이다. 이 인물은 아주 작고 소박한 일에도 금방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감수성의 폭발을 보여준다. 최근 상영된 ‘원더랜드’에서 오랜 시간을 깨어나지 못했다 깨어난 태주의 혼란스런 정체성을 박보검은 특유의 감수성으로 가능했을 희비극이 교차하는 눈빛을 통해 연기해내기도 했다. 물론 다른 역할에 몰입해야 하는 배우들이라면 감수성은 누구에게나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박보검이 보여주는 감수성은 특유의 세상에 대한 열린 자세와 적극성까지 더해져 더 깊이있게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는 힘이 있다. 

 

‘My name is 가브리엘’에서 박보검이 루리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보여준 힘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루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친구와 동료들을 통해 보다 깊이 이해하려 했고, 어느 순간 루리가 합창단을 이끌며 느꼈을 그 감정들을 자신도 공유하게 됐던 거였다. 박보검의 이 사례는 우리가 낯선 상황에 들어갔을 때 그 두려움을 설렘으로 바꿔줄 수 있는 하나의 단서를 제시한다. 그건 타인은 어떻게 느낄 것인가를 미루어 알아차리는 특유의 감수성이 전제되어야 하고, 동시에 타인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My name is 가브리엘’에서 박보검이 애쓰는 모습에 합창단 단원들이 하나같이 보여주는 ‘환대’하는 모습은 그것이 열린 마음으로 다가오는 사람에 대한 인지상정이라는 걸 드러낸다. 그러니 낯선 상황을 만났을 때, 미리 두려워하고 그 상황을 모면하려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타인도 느끼고 있을 똑같은 낯섦을 공감하고 자신의 마음을 열어보일 때 그 두려움은 설렘으로 바뀔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글:국방일보, 사진:JTBC)

‘남자친구’의 따뜻한 해피엔딩, 모두가 제 자리로

“나만 모르는 내 마음을 봤어요. 진혁씨랑 같이 있던 시간들.. 다 웃고 있어. 내가 그렇게 행복하게 웃는 줄 몰랐어.” 눈 내리는 날 오래된 놀이터에서 진혁(박보검)을 다시 만난 수현(송혜교)은 그렇게 말했다. 진혁이 필름카메라로 찍었던 수현의 일상들. 까르르 웃던 순간들. 수현은 그 사진을 보고 드디어 알았다. 그것이 자신의 진짜 모습이라는 걸. 


늘 무표정하게 속마음을 숨긴 채 아무렇지 않은 듯 버텼고, 타인이 아프기보다는 자신이 참는 쪽을 선택해 살아왔지만 그건 진짜 자신이 아니었다. 수현은 어쩌면 진혁을 통해 진짜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진혁에게 이별을 통보했지만, 그는 사랑을 선택했다. “당신은 이별을 해요. 난 사랑을 할게요.” 그 사랑은 결국 수현이 진짜 자신을 찾을 수 있게 해줬다. 

tvN 수목드라마 <남자친구>가 전한 해피엔딩은 모두가 본인이 진짜 원하던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수현이 원한 건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었다. 태경그룹 김화진 회장(차화연)은 수현의 눈빛이 늘 불편했다고 털어놨다. “말도 행동도 순종적이었지. 하지만 말야. 그 눈빛이 늘 마음에 걸렸어. 뭐랄까. 차수현 눈엔 태경의 힘, 가치, 위엄. 이런 것에 대한 선망이 없었어.” 수현은 진짜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자신으로 살아왔던 거였다. 

그런 수현에게 진짜 모습을 찾아준 진혁은 “그렇게 웃고 살라”고 말했다. 수현과의 사랑을 반대했던 엄마에게, “그것 또한 사랑”이라며 자신은 두 개의 사랑을 모두 지킬 거라고 했던 진혁은 결국 말대로 사랑을 지켰다. 엄마는 수현을 찾아와 사과했고, 수현은 자신이 진혁과 헤어지려 한 것이 그와 똑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걸 얘기함으로써, 그것이 모두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거라는 걸 확인시켰다. 

수현의 어머니 진미옥(남기애)은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음으로써 김화진 회장과의 악연을 정리했고, 차종현(문성근)은 죄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 하지만 모든 게 홀가분해진 얼굴들이었다. 교도소 면회실에서 차종현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수현이 비로소 자신의 삶을 찾았다는 사실이 그를 행복하게 했다. 

다소 소소한 이야기처럼 보였지만 <남자친구>가 다루려 했던 멜로는 우리가 봐왔던 멜로들과는 정반대의 흐름을 담았다. <남자친구>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남녀 구도를 바꿔놓았고, 멜로를 통한 신데렐라식의 신분상승 구도를 뒤집어 평범한 일상으로 내려오는 과정을 담았다. 성장 판타지보다는 일상의 소중함이 새로운 가치가 되어가는 지금의 트렌드를 담은 멜로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과거의 멜로 구도 이야기에서 등장하던 클리셰들(이를테면 반대하는 엄마들 같은)이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마음이 느껴지는 드라마였다. 특히 극적인 이야기보다는 깊이 있게 담겨지는 감정선이 중요했던 이 드라마에 생동감을 불어넣은 건 다름 아닌 송혜교와 박보검이었다. 두 사람의 깊은 감정 연기가 있어 같은 장면도 남다른 공기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동화 같고 오래된 필름 같은 따뜻한 장면들로 연출해낸 박신우 PD의 공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그래서인지 드라마들은 갈수록 독해져간다. <남자친구>는 그런 현재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보면 정반대로 걸어감으로써 오히려 기억에 남는 드라마가 되었다. 천천히 감정들을 하나하나 만나는 과정들이 주는 ‘느림’과 ‘아날로그’의 따뜻한 정서랄까 그런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정신없이 경쟁적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잊고 있던 진짜 우리가 아닐까.(사진:tvN)


‘남자친구’ 송혜교·박보검 연애담 속 긴장감이 유지된다는 건

서점에서 저 멀리 자신의 남자친구 김진혁(박보검)을 바라보는 차수현(송혜교)은 그가 보내는 미소에 미소로 화답한다. 하지만 한참을 쳐다보는 그의 눈에는 마치 샘물이 솟아나듯 조금씩 눈물이 차오른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눈물. 차수현은 헤어지려 마음먹는다. 

tvN 수목드라마 <남자친구>의 이 한 장면은 그리 대단한 극적 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차수현의 눈에 조금씩 차오르는 눈물이 먹먹하게 느껴진다. 거기에는 말로는 다 담아내기 어려운 이 비극적인 여인의 아픈 삶의 정체가 담겨져 있어서다. 

차수현에게 김진혁의 어머니가 찾아와 눈물로 “미안하다”며 “헤어져 주세요”라고 간곡히 요청할 때 차수현의 눈에 차오르던 눈물은 그 말에 대한 서운함보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슬픔이 더 컸을 게다. 평범한 일상의 행복이 깨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그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차수현에게는 도저히 그 평범한 일상의 행복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말처럼 다가온다.

차수현은 그런 삶을 그저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정치인 아버지 차종현(문성근)의 딸로 살았고, 태경그룹 정우석(장승조) 대표와 정략적인 이유로 결혼했으며, 이혼 후에도 태경그룹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그에게 남자친구 같은 소소한 일상은 허락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차수현이 포장마차에서 그를 너무나 잘 아는 친구이자 비서인 장미진(곽선영)에게 “진혁씨는 모든 게 처음”이지만 자신은 결혼도 했었고 세상 사람들이 다 안다고 말했을 때, 장미진이 그에게 “너도 처음이잖아. 너도 첫사랑이잖아.”라고 말하며 함께 눈물 흘리는 장면은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그는 결혼도 했었지만 누굴 사랑한 적은 없었다.

차수현은 “정말 헤어지기 싫다”고 장미진에게 말하지만, 혼란스럽다. 자신에게 한 번도 허락된 적 없던 일상의 행복. 그런 그에게 다가온 김진혁이라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 하지만 자신과 가까워지면 자신이 겪었던 그 일상이 없는 삶으로 김진혁과 그 가족들까지 끌어들일 거라는 걸 알고 있는 차수현으로서는 고민스럽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남자친구>는 그래서 마치 차수현과 김진혁이라는 두 사람이 만나 어느 쪽 삶을 향해 걸어갈 것인가를 들여다보는 드라마 같다. 차수현이 살아왔던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지워진 삶인가 아니면 김진혁이 살아왔던 그 소소한 일상의 행복으로 채워진 삶인가. 차수현의 삶이 김진혁의 삶을 덮어버릴 것인가 아니면 김진혁의 삶이 차수현으로 하여금 그 일상 없는 삶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것인가.

그저 차수현과 김진혁의 연애담만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남자친구>가 어떤 긴장감을 유지하는 건 바로 그 이면에 담긴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갈등이 있어서다. 하지만 이미 차수현의 아버지 차종현이 “내려 놓는 삶”을 살겠다 결심하고 행동에 옮기고 있는 것처럼,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차수현은 과연 모든 걸 내려놓고 잃었던 자신의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결혼을 하거나 연애가 이뤄지는 것만큼 중요한 이 드라마가 엔딩에 담아야할 내용이 아닐 수 없다.(사진:tvN)

‘남자친구’, 정통 멜로 이끄는 송혜교·박보검의 섬세한 감정 연기

사실 tvN 수목드라마 <남자친구>에는 극적인 사건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동화호텔 대표 차수현(송혜교)과 호텔 홍보팀 신입사원 김진혁(박보검)이 연인사이라는 게 사건이라면 가장 큰 사건이다. 두 사람의 만남이 구설수에 오르고 김진혁의 그 ‘평범한 삶’이 깨지게 되는 것. 그래서 그걸 보다 못한 차수현이 잠시 동안 거리를 두자고 말하고, 그렇게 먼 거리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다 속초의 어느 바닷가 앞에서 만나 서로를 끌어안는 장면이 한 회의 분량이다. 

그 다음 회도 헤어지고 만나는 그 과정이 거의 한 회 분량으로 되어 있다. 물론 차수현을 곤란하게 만들기 위해 직원을 시켜 잘못된 메일을 쿠바로 보내게 만드는 최진철(박성근)의 계략이 있고, 그로 인해 쿠바에 동화호텔을 세우려는 계획이 엇나가게 되며,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쿠바로 가는 김진혁과 차수현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쿠바까지 날아가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보다 더 설레는 건 만나기만 해도 구설에 오르는 이 곳을 벗어나 이역만리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키스다. 

이건 <남자친구>라는 드라마가 갖고 있는 정통 멜로의 색깔이다. 사건들로 흘러가기보다는 김진혁과 차수현이라는 두 인물의 감정에 집중한다. 회사 내에서 정치적인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그 사건들보다 드라마가 더 집중하는 건 그 일을 겪는 차수현의 심경이고, 김진혁을 속초로 발령 내는 사건이 벌어지지만 그것보다 드라마가 초점을 맞추는 건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 더 애틋해지는 두 사람의 관계다. 

그래서 속초의 동화호텔에서 일하는 김진혁이 유명 잡지의 기자인 줄 모르고 그 아이가 잃어버렸다는 인형을 찾기 위해 몇 시간을 노력한 일이 미담이 되어 기사화되는 어찌 보면 드라마의 이야기로서는 소소한 사건이 이 드라마에서는 꽤 크게 느껴진다. 큰 사건은 없지만 차수현과 김진혁이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점점 커지고, 그래서 그렇게 인정받는 모습에 내 일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것. 

복잡하고 많은 사건을 채워 넣지 않는 대신, 그 여백을 채우는 건 시 같은 글귀가 만들어내는 감정 선이다. 속초의 바닷가 앞에서 김연수의 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읽는 장면이 그렇다. 파도가 몰려오는 그 바닷가에서 차수현을 만나 끌어안은 김진혁은 그 소설의 글귀를 속삭인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널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이런 장면은 내부순환로 교각에 전시된 김환기 화백의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보며 그 시구가 들어있는 김광섭의 <저녁에>라는 시를 읽는 대목에서도 등장한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이 시구는 쿠바에서 정원의 주인을 기다리다 문득 하늘의 별들을 본 김진혁이 다시 읊조리는 대사가 된다. 그건 떨어져 있어도 연결되어 있는 차수현과 김진혁을 에둘러 표현하는 글귀다. 

사실 큰 사건이 벌어지지 않기 때문에 밋밋해질 수 있지만, <남자친구>는 그 빈 공간을 차수현과 김진혁 두 사람이 갖는 설렘과 아픔과 기쁨 같은 감정들로 채워 넣는다. 시구들은 그 감정선을 깊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아마도 작가는 이런 감수성이 지금의 사회에서는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고도 생각하는 것 같다. 결국 쿠바에서 정원 주인을 만나 오해를 풀고 다시 호텔 사업을 할 수 있게 만든 건, 비행기에서 내내 안 되는 스페인어로 꾹꾹 눌러 쓴 편지에 담긴 진심이었다. 

차수현과 김진혁 두 사람의 감정선이 드라마의 전체를 이끌어가는 동력의 전부처럼 느껴지는 이 작품에서 이를 연기하는 송혜교와 박보검의 진가가 보인다. 사실 이 두 사람의 섬세한 감정 연기가 아니라면 이만한 설렘이 가능했을까. 과장되게 말해 두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드라마를 찾아보게 된다는 말이 그저 허튼 소리로만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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