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 가뭄에 조정석표 코미디는 어떻게 단비가 됐나

좀비딸

942만, 471만 그리고 450만 관객... 조정석의 영화 흥행 기록이다. 2019년 <엑시트>로 코로나19의 여파에도 무려 942만 관객을 동원했고, 작년 극장가에 불어닥친 불황에도 <파일럿>으로 471만 관객을 기록했다. 올해 그가 출연한 <좀비딸>은 현재 450만 관객(8월18일 현재)을 넘겼고 올해 최고 관객 기록을 세웠던 <야당(330만 관객)>을 곧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 흐름대로라면 500만 관객은 충분히 넘어설 거라 예상되는 가운데, 그 중심에 서 있는 조정석 배우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필요해진 상황이다. 

 

먼저 <좀비딸>은 웹툰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좀비물에 코미디와 가족드라마가 하이브리드된 작품이다. 일단 좀비로 변하게 되면 사람이 아닌 괴물로 치부되어 제거의 대상이 되는 것이 좀비물의 공식이지만, 이 작품은 좀비가 된 사랑하는 딸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회복시키려는 부성애로 그 공식을 뒤집는다. 모든 좀비가 제거되고 유일하게 남은 좀비딸 수아(최유리)를 어머니 밤순(이정은)이 사는 바닷가 마을 은봉리로 데려가 ‘사회화 훈련’을 시키려는 정환(조정석)의 눈물겨운 노력이 빵빵 터지는 코미디로 그려지는 작품이다. 

 

좀비라는 공포의 대상을 호랑이도 춤추게 만드는 맹수 전문 사육사가 훈련시킨다는 콘셉트는 다소 황당하지만, 그래서 웃음을 주면서도 동시에 그 밑에 깔린 부성애의 눈물을 자극한다. 은봉리에서 딸을 숨기려 하지만 친구 동배(윤경호)와 첫사랑 연화(조여정)이 차례로 그 존재를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긴장감 사이에서 정환이 보여주는 기막힌 웃음과 감동의 줄타기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묘미다. 

 

배우 조정석이 도드라져 보이는 건, 그의 대체불가능성 때문이다. <좀비딸>이라는 독특한 설정의 코미디는 결코 쉽지 않다. 자칫 잘못하면 그저 황당한 이야기처럼 보여 실소를 터트리게 만들 수도 있다. 또 황당한 설정을 지나치게 감정에 호소하다가는 억지 신파의 덫에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조정석은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기막히게 해낸다. 황당해도 믿게 만들고(아니 믿고 싶게 만들고), 웃음 뒤에 슬쩍 페이소스를 꺼내놓는 적절한 감정의 조절을 보여준다. 조정석 말고 다른 배우를 이 작품에서 떠올리기 어려운 이유다. 

 

작년 방영됐던 <파일럿> 또한 조정석의 이 대체불가한 코미디를 제대로 보여줬던 작품이다. 성차별 영상에 대한 오해로 직장에서 쫓겨나 재취업도 어려운 상황에 여장을 한 후 다시 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다. 역시 황당한 설정처럼 보일 수 있고 자칫 잘못하면 성별 갈등의 불편함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조정석은 거기서도 기막힌 균형감각을 보여줬다. 아슬아슬한 상황을 웃음을 뒤집는 코미디의 장인다운 면모였다. 

 

<엑시트>도 마찬가지였다. 도시에서 벌어진 재난 상황이 그 배경인 영화가 아닌가. 그 상황 위에서 펼쳐지는 코미디 역시 자칫 잘못하면 불편한 감정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조정석이 보여주는 코미디는 그 안에 절절한 마음을 담고 있어 이런 불편함을 넘어서 보는 이들을 웃게 만들 수 있었고 나아가 ‘인간애’에 대한 뭉클한 감동까지 선사했다. 애초 큰 기대가 없었지만 1천만 관객에 육박하는 대흥행을 기록한 저력이 바로 거기 있었다.  

 

사실 조정석은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고 역할도 다양하게 소화해 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도드라지는 건 저 <건축학개론>의 납득이가 신드롬을 일으켰던 것처럼 코미디 연기에서의 빛나는 면모다. 그런 면모가 잘 드러났던 작품 중 <질투의 화신> 같은 드라마를 빼놓을 수 없다. 그 작품을 보면 그가 만들어내는 웃음이 그저 표피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은 인간의 내면을 담아낸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코미디의 본질이 어쩌면 비극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걸 잘 드러내는 배우다. 

 

늘 평가절하되어 있지만, 사실 코미디 연기는 그 어떤 정극 연기보다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금기의 지대에 발을 딛는 아슬아슬함을 전제로 하지만 그 위에서 적절한 균형을 맞춰야 불편함이 아닌 웃음으로 바뀔 수 있는 게 바로 코미디 연기다. 그런 점에서 이제 조정석은 코미디 장인이라고 불러도 될 법하다. ‘조정석표 코미디’라고 하면 이제 관객들도 신뢰를 갖고 극장을 찾게 될 것이니 말이다. (사진:영화'좀비딸')

<푸른바다> 주인공 캐릭터의 문제, 카메오가 신선해진 이유

 

역시 조정석은 잠깐 등장해도 확실한 존재감을 만드는 배우임에 틀림없다. <건축학개론>에서 납득이라는 캐릭터로 그가 나온 분량은 많지 않지만 지금껏 그 캐릭터가 회자되고 있는 건 결국 조정석이라는 배우가 보여주는 매력이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SBS <푸른바다의 전설>에서도 조정석은 역시 빛났다.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남자 인어로 등장해 아직 인간세계에서 살아가는 게 낯선 청이(전지현)에게 갖가지 조언을 해주는 모습은 저 <건축학개론>에서 납득이가 승민(이제훈)에게 연애하는 법을 가르치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인간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며 광고 문구들이 사실은 물건 팔기 위한 상술이라는 걸 설명해주는 장면이 그렇다.

 

하지만 조정석이 이번 카메오에서 중요한 역할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건 그가 <푸른바다의 전설>이 갖고 있는 비극적 설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에 빠진 인어가 인간에게 사람을 받지 못하면 심장이 서서히 굳어 죽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자신 역시 다른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나버린 여인을 그리워하다 죽음을 맞이한다.

 

사실 이런 인어라는 존재가 가진 비극성은 조정석 같은 카메오가 아니라 주인공인 청이가 보여줘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푸른바다의 전설>은 이 청이라는 캐릭터에 순수함만을 강조하고 있을 뿐, 그 비극성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약간은 백지 상태의 모습으로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 적응해가는 과정에서 웃음을 주는 것은 좋지만 그 웃음이 존재 자체의 비극과 잘 맞닿아 있는 느낌이 없다는 것이다.

 

인어 캐릭터가 어딘지 박제된 인형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그래서다. 웃음은 그저 웃음으로 끝나면 조금은 허망하게 휘발되기 마련이다. 그 웃음이 어떤 비극과 연결되어 있을 때 캐릭터가 가진 페이소스 같은 것들이 느껴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청이 캐릭터보다는 조정석이 잠깐 등장해 보여준 인어 캐릭터가 훨씬 더 그런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그는 유쾌한 웃음을 주지만 어딘지 쓸쓸함 같은 것이 그 이면에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푸른바다의 전설>의 이야기 구조가 <별에서 온 그대>와 유사하다는 이야기는 여러모로 합당한 지적이다. 외계인이나 인어 같은 이질적인 존재가 사람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우리네 삶의 현실들이 우화처럼 드러난다는 이야기 구조는 거의 같다. 하지만 <푸른바다의 전설>이 어딘지 부족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 단지 유사해서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캐릭터다. 이상하게도 이 작품은 남녀주인공인 허준재(이민호)와 심청 캐릭터가 살아있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코미디적 상황들이 자주 등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또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코미디가 그저 코미디로 끝날 때는 자칫 깊이를 상실할 수 있다. 특히 판타지물의 경우, 코미디를 너무 가볍게 사용하면 이야기 자체가 허황된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다. 조정석의 경우, 이미 <질투의 화신> 같은 작품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비극적 상황과 희극적 상황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연기자다. 시청자들은 빵빵 터지지만 동시에 그 인물은 굉장한 비극 속에서 실제로 펑펑 우는 장면이 가능한 그런 연기자.

 

<푸른바다의 전설>이 가진 한 가지 문제는 바로 이 가볍게 상상력의 나래를 펴고 날아가는 판타지를 땅으로 끌어내려 어떤 무게감을 줄 수 있는 캐릭터의 희비극적 요소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것을 연기를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연기자의 공력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런 현실의 무게감을 더해주는 페이소스를 주는 인물들은 그래서 초반에 강남거지로 등장해 확실한 존재감을 남긴 홍진경이나 인어로 등장해 드라마에 어떤 쓸쓸한 정조를 남기고 가버린 조정석 같은 카메오다. 이 드라마가 살기 위해서는 카메오들이 갖고 있는 이런 희비극적 요소들을 남녀 주인공이 오히려 가져야 되지 않을까

<질투의 화신>, 안쓰럽고 매력적인 질투하는 조정석

 

정원이는 나 보다 더 자상하고, 나보다 더 돈도 많고, 무엇보다 건강한 놈이다. 정원의 마음을 의심하지 마라.” 이화신(조정석)은 과연 사랑보다 우정을 택한 걸까? 그는 그가 사랑하게 된 여자 표나리(공효진)에게 친구인 고정원(고경표)를 의심하지 말라고 조언하며 심지어 그에게 바래다준다. 고정원의 모친이 그가 금수정(박환희) 아나운서와 사귄다는 소문을 공공연히 내버리자 실망한 표나리를 위해 고정원의 사랑은 거짓이 아니라는 걸 대신 얘기해준 것.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로맨틱 코미디에서 남자주인공은 주로 질투를 하기 보다는 받는 인물이 대부분이다. 남자주인공들은 재력은 물론이고 외모, 스펙까지 빠지지 않는 인물이거나, 그런 것들이 빠져도 또다른 매력을 갖고 있어 적어도 여자들에게 사랑받는 인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이든 남자주인공은 그래서 다른 남자의 질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질투의 화신>은 제목이 아예 내세우고 있는 것처럼 질투하는 인물화신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표나리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가지도 못하고 또 친구인 고정원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지도 못한다. 그가 표나리에게 애정 표현을 하는 거라야 고작 주변을 빙빙 돌며 툴툴대면서 걱정을 해주거나 남모르게 질투의 감정을 드러낼 때다.

 

잘못된 만남이라는 노래 가사 구절처럼 사랑과 우정 사이에 놓인 이화신은 그래서 갈등하지만 그는 고정원의 사랑이 거짓일 거라고 오해해 힘겨워하는 표나리에게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걸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그의 마음을 전한다. 거기에는 질투의 감정을 뛰어넘어 표나리를 위하는 사랑이 담겨있고 동시에 친구인 고정원에 대한 우정 또한 담겨져 있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고정원과 표나리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키스를 할 때 먼발치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는 이화신의 마음은 복잡해진다. 질투와 상처의 아픔이 느껴지지만 그것이 다름 아닌 이화신이라는 인물이 그녀를 사랑하는 방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질투의 화신>이 흥미로운 건 바로 이 특별한 캐릭터 덕분이다. 질투하면서도 어떤 상황에서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그 사랑을 드러내는 캐릭터.

 

무엇보다 이 질투하는 인물, 이화신이라는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건 조정석이라는 배우의 아우라가 적지 않다. 사실 유방암 수술을 하고 보정 브래지어를 하는 것으로 보는 이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면서도 본인은 굉장히 진지하고 나아가 절실하게까지 느껴지는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해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과거 <건축학 개론>에서 납득이라는 코믹하면서도 인간적인 캐릭터를 통해 미친 존재감으로 등극했고, <더 킹 투 하츠>에서는 그와는 상반되는 진지한 캐릭터를 연기한 그는 마치 이 두 캐릭터를 조합해 진지하면서도 인간미 있고 그러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새로운 캐릭터를 완성한 듯하다. <오 나의 귀신님>을 통해 슬쩍 내보인 그 캐릭터는 이제 <질투의 화신>에서 제대로 매력을 뽑아내고 있다.

 

우습지만 짠하고, 안쓰럽지만 매력적인 인물. <질투의 화신>은 바로 이런 비범한 캐릭터의 매력에 기반해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의 한 장을 열어가고 있다. 물론 이런 캐릭터가 이토록 공감 받을 수 있게 된 건 주인공보다는 주변인이 될 가능성이 훨씬 많아진 현실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캐릭터를 조정석이라는 배우가 제대로 흡수해 200%의 매력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질투의 화신>, 이제 가슴하면 조정석이 떠오르는 까닭

 

왜 저렇게 여주인공이 가슴에 집착할까. 처음에는 조금 낯설고 불편한 느낌마저 들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게 반복되면서 의외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가슴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이제 남주인공인 조정석이 떠오를 정도다.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이 뻔한 공효진표 로맨틱 코미디라고 여겼다면 오산이다. 조정석표 병맛 로맨틱 코미디를 숨기고 있었으니.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물론 이런 병맛 로맨틱 코미디를 제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연기도 공효진 정도니 가능한 이야기다. 이상하게도 그녀가 하기 때문에 용서되는 상황들이 <질투의 화신>에는 꽤 많다. 첫 회부터 불거져 나왔던 기상캐스터 비하 논란도 공효진이 연기하는 표나리라는 캐릭터를 통해 훨씬 누그러질 수 있었다. 그것은 기상캐스터 전체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표나리라는 아나운서가 되고픈 특정 캐릭터의 욕망이라는 것이 공효진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통해 잘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한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화신(조정석)의 가슴을 자꾸 만지고 집착하는 장면 역시 공효진이 아니라면 더 이상하게 보였을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유방암에 걸린 엄마의 가슴과 비슷하다며 검사를 해보라는 그 장면은 말 그대로 병맛이지만 그녀는 그걸 꽤 진지하게 소화함으로써 오히려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코미디로 만들어냈다.

 

물론 이 병맛 로맨틱 코미디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조정석이 연기하는 화신이다. 굉장히 남자다운 모습을 보이려 하고 자신감에 넘치며 무엇보다 남자 셔츠의 핏은 가슴이라고 말하는 그가 부인과에서 유방암 검사를 하는 장면은 왠만한 코미디보다 더 웃음을 주는 상황이다. 표나리가 말했듯 가족력이 있는 유방의 문제를 그녀 역시 갖고 있고, 유방암 진단을 받은 화신은 그렇게 표나리와 가슴으로 연결된다.

 

처음에는 아무 의미 없이 심지어 불편할 정도로 마구 들이대는 듯한 가슴에 대한 집착은 이렇게 화신과 표나리가 한 병실에서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장면으로까지 이어지자 코미디로서의 재미는 물론이고 의미까지 갖게 되었다. 여성의 병으로만 여겨온 유방암을 실제로 경험하는 화신은 표나리와 말 그대로의 동병상련의 공감대를 갖게 되는 것. 이는 여성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되는 계기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쓰러진 빨강이(문가영)의 아버지 이중신(윤다훈)이 보는 환각으로 처리되어 있지만, 드라마가 갑자기 등장인물들을 한 명씩 등장시켜 그에게 꽃다발을 안기고 보니엠의 ‘Daddy cool’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은 마치 인도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어색할 수 있는 장면이지만 이중신의 환각이라는 설정으로 되어 있어 이해가 되면서 동시에 병맛 코미디의 재미를 부가시키는 장면이기도 하다.

 

조정석은 본래 이런 병맛 코미디를 그 누구보다 천연덕스럽게 잘 소화해내는 연기자다. 우리에게 처음 그의 존재를 알렸던 게 바로 <건축학개론>의 납득이가 아니었던가. 코믹하지만 또한 인간 냄새가 물씬 풍기며 스스로는 굉장히 진지한 캐릭터. 조정석표 병맛 로맨틱 코미디의 탄생. <질투의 화신>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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