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뭐라 하든 생각대로 밀고 나가고 행동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재희(김고은)와 성소수자라는 비밀을 숨긴 채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흥수(노상현). 이언희 감독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등장하는 남녀의 캐릭터만으로도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엮어져갈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만든다. 어느 날 우연히 흥수의 비밀을 재희가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된다. 흥수가 “약점이라도 잡은 것 같냐?”고 자기보호 본능에 가까운 화를 내자, 재희는 흥수에게 말한다. “너가 너인게 왜 약점이야?”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 청춘들은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방법을 찾아낸다. 그건 두 사람이 사귀는 사이인 척 하는 것. 이로써 흥수는 성소수자가 아니냐는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고, 재희 역시 이 남자 저 남자 밝히고 다닌다는 소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들은 동거하지만, 각자의 취향대로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아파한다. 남녀 간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일종의 동지애 같은 게 적어도 두 사람 사이에서는 피어난다. 세상의 편견을 벗어난 두 사람만의 자유지대랄까. 물론 그들 역시 사회 초년생이 되면서 취업과 결혼 같은 세상이 요구하는 틀 속으로 들어가며 평범해지지만 그 때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말한다. 진짜 네가 되어 살라고.
부커상과 국제 더블린 문학상 후보에 오른 박상영 작가의 동명 소설집에 실린 ‘재희’를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보다시피 퀴어 영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된 건, 세상이 요구하는 무수한 ‘다움’이 주는 상처가 성소수자들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에 치여 나다움을 잊고 살게 된 이들에게 잠시나마 나답던 청춘의 한 때를 떠올리게 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는 작품이다.(글:동아일보, 사진: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너는 정말 강한 사람인 것 같아.”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에서 젊은 선자 역할을 연기하는 김민하는 무려 4개월 동안 8차례에 걸쳐 이뤄진 오디션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정작 본인은 내성적인 성격이고 어려서는 누가 말을 걸어도 땀이 날 정도로 소심한 아이였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자신에게도 그런 면이 있구나 하고 새삼 생각했다고 한다. 이건 무얼 말해주는 걸까. 자신이 가진 진가는 어느 순간 누군가 혹은 어떤 계기에 의해 드디어 꺼내져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김민하는 그런 점에서 보면 ‘파친코’의 선자라는 인물을 통해 그 숨겨져 왔던 매력이 드디어 꺼내진 배우가 아닐까 싶다.
일제강점기의 부산 영도 어시장에서 어린 선자(유나)는 일본 경찰 앞에서 모두가 고개를 숙일 때조차 고개를 숙이지 않는 당찬 아이다. 그 아이는 성장해 사업가인 한수(이민호)를 만나 사랑하고 아이까지 갖게 되지만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그에게는 이미 일본에 아내가 있다는 것. 결국 홀로 아이를 낳은 선자(김민하)는 마침 다 죽어가는 몸으로 선자네 하숙집을 찾아왔다가 겨우 살아난 이삭(노상현)과 함께 일본 오사카로 건너와 부부가 된다. 갖은 일본인들의 핍박과 차별 속에서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는 오사카에서의 삶. 노동자들을 돕다가 이삭은 감옥에 끌려가고 결국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선자는 길거리로 나가 김치를 팔아 생계를 이어간다. 선자는 끝없이 무너지고 내팽개쳐지는 삶의 바닥에서도 끝내 다시 일어나 그 삶을 버텨내는 인물이다.
아마도 ‘파친코’의 원작 소설을 쓴 이민진 작가는 바로 이런 끈질긴 생명력이 한인들의 정체성이라고 본 것 같다. ‘역사는 우리를 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failed us, but no matter)’라는 다소 도발적이고 인상적인 이 소설의 첫 문장은 바로 선자라는 캐릭터에 그대로 녹아있다. 낯선 타지에서 아이들을 홀로 키우며 무너질 것 같은 그 삶 속에서도 끝까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선자의 모습이 그것이다. 그래서 ‘선자’라는 이름은 당대의 조선인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김민하는 오디션에서 들었던 이야기처럼, 마치 제 안에 숨겨져 있던 선자를 찾아낸 양 강렬한 눈빛과 앙다문 입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이 위대한 인물을 표현해낸다. ‘파친코2’에서도 밤이면 굶주린 아이들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를 듣는 엄마들이 못할 게 뭐가 있냐며 위험한 밀거래에도 나서는 강인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남편이 되어 함께 부부의 연을 맺고 한수의 아이까지 자신의 아들로 보듬는 이삭에 대한 무한 신뢰와 애정 그리고 의리를 잊지 않는다. 늘 선자와 아들에 대한 동태를 살피고 있던 한수가 감옥에 들어갈 처지에 놓인 선자를 꺼내주고, 이제 곧 대규모 공습이 있을 거라며 떠나라고 하자 선자가 단호히 선을 긋는 모습에서는 서릿발이 느껴진다. “옥살이 중인 남편 두고 내 어디 못갑니더. 그 사람 두고 내 어디 안갑니더. 못가예.” 여기서 선자는 똑바로 한수를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데 그것이 마치 돌맹이 같은 단단한 의지를 느끼게 만든다. 이 장면은 김민하라는 배우가 얼마나 깊이 선자라는 인물 속에 들어가 그 자체가 되어 있는가가 실감나는 대목이다.
끝까지 남편 없이는 떠나지 않는다는 선자의 단호함에 결국 한수는 힘을 써 오래도록 감옥살이를 해온 이삭을 빼내준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온 이삭이 그 마지막 죽어가는 순간에 선자와 마주하는 장면은 ‘파친코’의 두고두고 남을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점점 힘이 빠져가지만 살고 싶어하고 또 그 와중에도 아이들 걱정을 하는 남편을 선자는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본다. 늘 헌신적으로 아내와 아이 그리고 남들을 위해 살았던 남편이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말하자 또 그 선자 특유의 단호한 표정과 말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쿡쿡 찌른다. “뭘 용서합니까. 안 계신 몇 년 동안 내한테 와가 당신이 자기들한테 잘해줬다고 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으예.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입니더. 14년 전에 처음 봤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예. 시상은 변했어도 당신은 안변한 거라예.” 그러면서 이삭에 대한 사랑 또한 드러낸다. “내는 내 남편한테 사랑받고 존중받았으예. 전부 다 받은 거라예.”
사실 선자 역할에서 드러나는 김민하의 이런 강렬한 인상은 ‘파친코’ 이전에는 발견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물론 영화 ‘킬러스웰:아워 스페이스’의 유진이나 ‘봄이 가도’의 현정 같은 인물 모두 이처럼 단단한 내면을 가진 캐릭터들이지만, ‘파친코’의 선자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김민하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났다고나 할까. 이건 배우들이 어떤 캐릭터를 만나느냐에 따라 본인도 잘 몰랐던 가능성의 영역이 열린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파친코2’에서는 이제 이삭을 떠나보낸 선자와 그의 앞에 나타난 한수가 보여주는 애증의 관계가 이어질 전망이다. 즉 선자와 한수는 두 사람의 아들인 노아(김강훈)가 그 중간 매개가 되는 셈이다. 무기 사업으로 성공한 비즈니스맨인 한수는 노아에게는 일종의 ‘출생의 비밀(?)’이 되는 것이지만, 선자는 여기에도 단호하게 선을 그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선자는 일제로 대변되는 차별과 총칼의 위협 앞에서도, 또 한수로 대변되는 자본의 힘 앞에서도 굳건한 존재로 그려진다. 이 지점은 ‘파친코’라는 작품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즉 권력과 자본의 힘이 마치 시대의 가치인 양 이야기되는 현재에, 이를 거부하는 선자라는 인물의 강렬한 생명력이야말로 진정 위대한 가치라는 걸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민하가 배우로서 보여준 가치 역시 겉모습의 화려함이 아니라 그 내면에 깃든 단단함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었다. 주근깨가 매력적인 이 배우는 선자라는 기회를 통해 자기 안에 숨겨져 있던 진짜 매력을 꺼내놨다. 그리고 누구나 갖고 있지만 아직 발현되지 않았을 뿐인 내면의 단단함은 그 어떤 외적 잣대로도 깨질 수 없는 거라는 걸 김민하는 그 연기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글:국방일보, 사진:애플TV+)
“근데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은 아빤 그 큰 집은 그립지 않아. 거기서 살았던 사람들이 그립지. 진짜 부자는, 모자수야.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이란다.”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2’에서 오랜 감옥 생활 끝에 망가진 몸으로 돌아온 선자의 남편 이삭(노상현)은 아들 모자수가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에 그렇게 답한다. 이삭 역시 그렇게 큰 집에서 살았던 사람이지만 그 곳을 떠나 가난하고 힘겨운 이들을 위해 한 평생을 헌신한 인물이었다. 삶의 불이 점점 꺼져가는 순간에도 그는 남은 사람들을 걱정하고 용서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는 심지어 자신을 밀고해 감옥에 보낸 것이 바로 목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를 불러 용서하려 한다. 목사는 이삭을 질투한 거였다. 부모마저도 자신을 버리고 유일하게 유목사가 자신을 거둬주셨는데 이삭이 나타나면서 그 사랑이 희미해졌고 그래서 밀고했다는 것. 하지만 밀고한 후 그는 후회했다고 했다. “이게 변명이 안되는 거 압니다. 절대 용서 못하시겠지만...” 목사는 그렇게 용서를 구하기조차 어렵다는 걸 안다고 말하지만, 그 순간 이삭은 곧바로 말한다. “용서합니다. 용서합니다.”
옆에서 그 말을 듣던 이삭의 아들 노아(김강훈)은 자신이 믿고 따랐던 목사가 아버지를 밀고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이 충격을 받고 어떻게 용서하냐고 절규하지만, 이삭은 말한다. “너희에게 물려줄 거라곤 이 망가진 몸뚱이밖에 없지만 그래도 이건 꼭 기억했으면 한다. 후 목사와 우리들의 운명이 다 같은 처지에 놓인 거야. 노아야. 자비는 선물도 권력도 아니야. 자비는 인정하는 거야. 살려면 항상 대가가 따른다는 거.” 그는 후 목사의 잘못조차 끌어안는 사람이었다.
이민진 작가가 쓴 ‘파친코’ 원작의 첫 문장이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로 시작하는 건 아마도 이 작품이 이삭 같은 당시 한인들의 의연함을 그리려 하고 있다는 걸 말함이었을 게다. 다 같은 비극적인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던져져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그래서 후목사 같은 이에게도 용서와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것. 그는 사람에게 중요한 건 버텨내고 살아내는 것이고, 거기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며 그걸 인정하는 것이 바로 자비라고 말한다.
이삭이 자신을 밀고한 후목사를 용서하는 장면은, 땅 주인 한금자(박혜진)를 찾아가 그 땅에 군사시설이 있었고 거기 무수히 많은 이들이 죽어 묻혔다는 사실을 듣고는 그것조차 이용해 아베를 곤경에 빠뜨리려 하는 선자의 손자 솔로몬(진하)의 이야기와 교차 편집된다. 솔로몬은 아베에게 그 땅을 판 후 이 소문을 내면 콜튼 호텔 측에서 개발을 포기할 거라며 당하기만 하지는 않겠다는 복수의 마음을 드러낸다. 그런 비극적인 이야기조차 이용하려는 솔로몬에 한금자가 혀를 차자 솔로몬은 자책하는 말을 한다. 한금자도 또 선자도 자신을 경멸의 시선으로 보는 게 당연하다고 한다.
“이런 꼴을 볼려고 그렇게 살았나? 네? 다 쓸데 없었다 하시겠죠.” 솔로몬이 그렇게 말할 때 한금자는 저 이삭이 보여준 그 의연한 모습을 드러내며 단호하게 말한다. “후회없어 그렇게 산 거. 충분히 값진 인생이었어.” 한금자도 선자도 또 이삭도 그 모진 세월을 살아내며 그 속에서도 자식들을 키워낸 것만으로도 그 인생은 충분히 값진 것이라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이삭이 죽기 직전 선자와 나누는 대사는 인간의 위대함과 고귀함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절감하게 한다. 이삭은 그 상황에서도 이 모든 비극이 자신 때문인 양 용서해달라고 말하고, 이에 대해 선자는 이삭의 삶이 얼마나 숭고했는가를 말해준다. “뭘 용서합니까. 안 계신 몇 년 동안 내한테 와가 당신이 자기들한테 잘해줬다고 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으예.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입니더. 14년 전에 처음 봤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예. 시상은 변했어도 당신은 안변한 거라예.” 그러면서 이삭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다. “내는 내 남편한테 사랑받고 존중받았으예. 전부 다 받은 거라예.”
죽으면서도 아이들 걱정하는 이삭에게 걱정말라며 남편의 죽음을 직시하는 선자의 눈빛은 강인하다. 그 죽음을 피하지도 또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저 받아들이며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릴 뿐이다. ‘파친코’가 우리의 마음을 매혹시키는 건 바로 이 인간의 숭고함이 주는 뭉클함 때문이다. 비극적인 역사의 소용돌이 깊숙이 들어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의연한 그 모습 앞에 누구나 감복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애플TV+)
오사카에서 전도사로 일하는 이삭(노상현)은 아들이 위험한 일에 빠져 있다며 이를 막아달라는 한 어머니의 부탁을 받고 그 아들을 찾아가 만난다. 얼굴에 잔뜩 흙이 묻은 채 이삭과 함께 거리를 걷는 사내는 설득하러온 이삭에게 오히려 “눈을 뜨라”고 일갈한다.
“눈을 뜨실 때가 됐어요. 전도사님. 여기 인부들이나 나나 땅굴 들어가서 철로를 깔아요. 인부들 더 빨리 더 많이 먼 곳으로 실어 나르려고. 그래서 우리처럼 뼈 빠지게 부려 먹으려고요. 그렇다고 우리가 대단한 대우를 해달래요? 최소한 길바닥에 똥 싸지르는 짐승이랑은 다른 꼴로 살게 해줘야 할 거 아니에요.”
애플+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에 등장하는 이 사내는 단역이다. 이삭이 우연찮게 만나고 지나치는 인물 중 하나일 뿐. 하지만 이 사내가 던지는 대사는 <파친코> 6회 전체를 관통하는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건 살기 위해 조선 고향 땅을 떠나 낯선 오사카로 와 갖가지 차별 속에서 살아나가던 조선인들이 가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다. 저들처럼 살라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총칼을 앞세워 요구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본질을 부정하거나 부인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고민이다.
그런 이야기만으로도 위험해질 수 있고, 그 위험이 그 자신과 가족만이 아닌 모든 조선인들에게 화살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이삭은 말하지만, 그런 이삭에게 던지는 사내의 일갈은 얼얼하기만 하다. “제가 그걸 모를 거 같으세요? 저라고 꿈속에서 어머니 얼굴 보고 울다 깨는 일 없겠냐고요. 형제들, 누이들 만나 본 적 없는 생판 남들까지 다 걱정되고 신경 쓰인다고요. 하지만 두려움이 내 몸을 멋대로 주무르게 놔두면요, 나중엔 내 몸의 윤곽조차 낯설어질 거예요. 그걸 내 몸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자기 몸도 없는 게 사람이에요?”
1920년대 일본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조선인들의 삶은 1980년대 일본에서의 그 삶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파친코>는 이런 현실을, 이삭과 사내의 에피소드에 이어 솔로몬(진하)과 하나의 에피소드로 교차 편집함으로써 드러낸다. 에이즈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하나는 솔로몬이 미국으로 떠난 후 ‘예쁜 집’에 사는 애들은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걸린 이 병이 바로 그런 집에서 자란 남자한테서 옮은 거라며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한다. “솔로몬 날 봐. 넌 절대 그들이 될 수 없어. 그렇게 비싼 옷을 입고 좋은 학위를 따도 그들은 네가 기회가 있다고 착각할 딱 그만큼만 문을 열어 놓을 거야. 넘어가지 마.”
끝까지 조선말을 쓰고 조선의 이름을 버리지 않고 김치를 담가 먹으며 살아온 재일 한인들의 삶을 그래서 수십 년이 지났지만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솔로몬은 회사로부터 땅을 팔지 않는 한 재일한인 할머니를 설득해야 자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처지에 몰렸지만, 그래서 저들을 위해 나섰지만 끝내 할머니가 그간 겪어온 아픈 차별의 이야기들을 마주하고는 땅을 팔라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걸 실패한 솔로몬을 가차 없이 버린다. 하나의 말대로 저들은 솔로몬에게 ‘기회가 있다고 착각할 만큼만’ 문을 열어 놓은 것.
“사람이 아니에요. 우린 저놈들 눈에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 굴욕감에 술 처먹고 싸움질 하고 집구석에 들어가서 마누라나 패고... 적어도 나 바닥은 아니다. 내 밑에 누가 더 있다. 저 놈들의 법을 따라 줬어요. 그런데 아직도 춥고 아직도 배고프잖아요. 이젠 그 법을 때려 부숴야 합니다.” 이삭이 만난 사내가 쏟아내는 그 말은 1980년대의 솔로몬이라는 후대에까지 그 울림이 이어진다.
사내의 그 말에 무언가 깨달은 이삭은 사사건건 그의 아내 선자(김민하)를 깎아내리는 형에게 꾹꾹 눌렀던 감정을 폭발한다. 형의 모습은 저 사내가 말한 “굴욕감에 술 처먹고 싸움질 하고 집구석에 들어가서 마누라나 패는” 그런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삭은 그 사내가 했던 말을 빌려 형에게 말한다. “우리 아이는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게 하고 싶지 않아. 난 내 자식이 자기 몸의 윤곽을 똑바로 알고 당당하게 재량껏 살았으면 좋겠어. 우리 자식들도 그럴 자격 있는 거 아냐 형? 형도 나도.”
그리고 이삭의 이 이야기는 나이든 선자(윤여정)가 과거 대놓고 두 집 살림을 하려던 한수(이민호)가 집도 사주고 뭐든 해주겠다고 한 제안을 거절한 이유를 솔로몬에게 털어놓는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내를 반으로 쪼개놓고 살수는 없다 아이가. 뭐는 당당히 내놓고 뭐는 숨키가 살고. 니 그 아나? 잘 사는 거보다 어떻게 잘 살게 됐는가, 그게 더 중한 기다.” 그 이야기는 선자가 아이 아버지인 한수가 아닌 이삭을 선택해 결혼해 살아가게 된 이유를 말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일본 땅에 이주해 살아가는 재일 한인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놀라운 건 이처럼 묵직한 메시지를 담은 대사를 단역이라고 할 수 있는 한 사내의 목소리를 통해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분히 의도적인 이런 선택은 <파친코>라는 작품이 주인공에서부터 저 단역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면서, 작가가 가진 이름 모를 민초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슬쩍 지나가는 어부나 어시장 한 편에서 쌀을 파는 쌀집 할아버지, 이역 땅에 와서 땅굴에 들어가 철도를 놓는 일을 했던 인부까지 중하게 바라보는 시선. 그것은 어쩌면 이주민이라는 위치에서 살아오며 내재된 관점이 아닐까 싶다. <파친코>라는 작품이 특히 감동적인 이유이기도 하고.(사진:애플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