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스>의 따뜻함과 <뷰티플 마인드>의 차가움

 

월화 동시간대 새로 시작하는 두 개의 의학드라마라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한 몸에 받은 SBS <닥터스>KBS <뷰티풀 마인드>. 그 첫 방송의 결과는 <닥터스>의 압승이다. <닥터스>는 첫 회에 12.9%(닐슨 코리아) 시청률로 4.1%에 머문 <뷰티풀 마인드>를 압도했고 나아가 월화드라마 동시간대 전체 1위 시청률을 기록했다.

 

'닥터스(사진출처:SBS)'

사실 방영 전 소개된 이야기만으로 보면 <닥터스>의 이런 압승이 의외의 결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닥터스>는 어딘지 전형적인 의학드라마의 틀을 보여주고 있는데 반해, <뷰티풀 마인드>는 공감 능력 제로의 신경외과의라는 독특한 캐릭터에 의학과 수사물을 엮은 의학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퓨전스토리로 보였기 때문이다. <뷰티풀 마인드>가 여러모로 <닥터스>보다는 새로운 스토리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 <닥터스>의 강점이 훨씬 더 두드러졌다. 그것은 캐릭터의 힘이다. <닥터스>는 유혜정(박신혜)과 홍지홍(김래원)이라는 두 캐릭터가 가진 매력이 첫 회부터 도드라졌다. 반항기 가득한 불량학생이면서 걸 크러쉬의 매력이 풀풀 넘치는 유혜정과, “폭력이 가장 싫다며 그녀의 발차기 한 번에 당황해 하다가도 너 매력 쩐다며 그녀에게 호감을 표하는 홍지홍이 만들어내는 케미는 첫 회지만 벌써부터 훈훈하다.

 

무엇보다 유혜정과 홍지홍 모두 상처 입은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지지하는 마음이 만들어지고,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그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욕쟁이 할머니 말순(김영애)의 존재감 역시 어떤 위로의 느낌을 준다. 그들의 만남과 부딪침 그리고 거기서 생겨나는 어떤 변화들이 상처 입은 두 사람의 성장을 만들어갈 거라는 기대감은 이 드라마가 가진 가장 큰 힘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어떤 경우에는 그 사람의 고통을 치유해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통해 <닥터스>는 병원 바깥까지 연결된 치유의 이야기로 나아간다.

 

반면 <뷰티풀 마인드><닥터스>와는 달리 조금은 쿨한 장르물의 외피를 입혔다. 무슨 일인지 공감 능력이 없는 신경외과의 이영오(장혁)는 이 의학드라마가 던지고 있는 화두를 가진 캐릭터다. ‘낭만적 신념보다는 확률을 더 믿는 그는 의사이면서도 생명 그 자체에 그다지 관심을 가진 인물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 사내의 뺑소니를 가장한 의도적인 살인 기도를 목격한 경찰 계진성(박소담)은 그 사내를 수술한 이영오를 의심한다. 이영오가 그런 계진성에게 다가가 메스로 찔러버리는 마지막 장면은 의학드라마라기보다는 스릴러의 느낌을 주었다. 사람 살리는 의사가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의 느낌으로 다가올 때 갖게 되는 섬뜩함.

 

물론 <뷰티풀 마인드>는 저 <닥터스>가 그러하듯이 이런 이영오라는 인물이 결국은 변화해가는 모습을 담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전개 과정이 <닥터스>와는 달리 스릴러물처럼 흘러간다. 섬뜩함과 반전이 주는 놀라움 같은 것들은 분명하지만 차가운 느낌을 준다는 것.

 

결국 두 드라마의 지향점은 인물의 변화와 성장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스토리의 전개방식의 차이에 의해 그 느낌이 따뜻함과 차가움으로 극단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드라마의 힘은 내적인 요인보다 외적인 요인에 의해 더욱 좌우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시청자들은 어떤 걸 더욱 보고 싶어하는가.

 

물론 시청률로 드라마의 성취를 비교 판단할 수는 없다. <닥터스><뷰티풀 마인드>도 그 성격이 다를 뿐 각각의 재미요소들과 성취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시청자들이 차가움보다는 따뜻함을 선택하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박신혜와 김래원의 훈훈한 케미가 담겨진 연기가 장혁과 박소담의 차가운 캐릭터보다 더 시청자들의 마음을 끄는 이유는 그 따뜻함에 있다

병원 다큐 프로그램들이 보여주는 것

강직성 척추염을 앓아 허리가 90도로 꺾어진 20대 청년이 말한다. “포기했습니다. 포기하게 되더라구요. 나이는 20댄데 몸은 70대니.” 몸이 뒤틀려 삶의 희망을 저버린 청년에게 PD가 꿈을 묻는다. “꿈요? 그저 보통이 되는 거요. 허리를 일자로 쫙 펴고 자는 거요.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동네를 걸어보는 거요. 그럼 정말 좋을 거 같아요.” 병원 다큐 프로그램, ‘닥터스’에서 소개된 새우등 청년 진백씨의 이야기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해 5회에 걸쳐 방영되어 호평을 얻었던 ‘휴먼다큐 사랑’. 특히 2회에 방영되었던 ‘안녕 아빠’편은 죽음을 앞둔 아빠의 가족과 함께 보낸 마지막 날들을 담담하게 담아내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런데 5편 중 단 1편(벌랏마을 선우네)을 빼곤 나머지 4편 모두 병원이 등장한다.

뉴스다운 뉴스 보기 어려운 세상에 진짜 살아가는 사람들의 훈훈한 뉴스를 전해주는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이 프로그램에도 여지없이 등장하는 것은 병원의 이야기다. 강화도에서 한 순간의 사고로 입은 화상으로 55년 동안 바깥세상 구경을 못한 화문석 할머니의 이야기, 20여 년 동안 한결같이 아픈 남편을 지켜온 명랑 아줌마, 김옥선씨의 이야기에도 병원은 여지없이 등장한다.

이런 병원 다큐 혹은 병원 다큐 성격을 가진 영상들에 우리가 흔히 붙이는 용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휴먼다큐’. KBS가 지난 98년 6월부터 2005년 10월까지 7년에 걸쳐 방송한바 있는 ‘영상기록 병원24시’의 후속으로 방영되고 있는 ‘현장기록 병원’ 역시 ‘메디컬 휴먼다큐’를 지향한다. MBC의 ‘닥터스’는 두 가지 포맷을 담고 있는데 ‘응급실 24’는 리얼다큐를, 그리고 ‘미라클’은 역시 휴먼 다큐를 지향한다. 가정의 달 특집으로 방영된 5부작 다큐는 아예 ‘휴먼다큐 사랑’이란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다큐멘터리에 굳이 휴먼이란 단어를 붙인 것은 병원이란 공간이 갖는 특별함 때문이다. 만일 병원이란 공간에 대해 그저 아픈 사람 치료하는 곳 정도의 기능적 해석을 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까지 아파서 병원을 찾아보지 않았던 사람이거나, 자신의 몸을 기계의 부속품처럼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나 가족이 아파 병원을 찾았던 사람이라면 병원이란 공간이 가진 특별함을 이해할 것이다. 그 곳에는 죽어 가는 사람이 있고 살리려는 사람이 있다. 그 접점은 물리적인 수술이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거기엔 그들의 사연이 교차한다.

‘휴먼’이란 단어는 이 부분에서 빛을 발한다. 제 아무리 기계처럼 감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그래서 자신도 결국 아프고 병에 걸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사람일 지라도 병원 문을 들어서는 순간, 그 스스로 사람이라는 걸 자인하게 된다. 어차피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앞에 두는 순간부터, 병원 밖에서 꿈틀대던 거대한 욕망은 허망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카메라는 그저 물리적인 수술실의 메스의 놀림을 잡아내는 것이 아니라 메스를 든 사람의 이야기와 그 메스 앞에 누워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리고 때론 기적 같은 소생과 어찌할 수 없는 죽음을 담는다. 그 순간, 환자와 의사의 눈물은 그걸 보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아 나도 사람이로구나’하는 감동으로 전달된다.

병원으로 들어서는 순간 벗어버린 욕망이란 외피 탓일까. 그저 사람이란 알맹이들이 꿈꾸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보통이 되는 것’, 혹은 ‘평범한 삶’이 그들의 꿈이다. 그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환자는 물론이고 의사들까지 사투에 가까운 노력을 한다. 병원 다큐가 시사하는 점은 바로 이 점이다.

우리는 사람이라는 것이고, 그 앞에서 거대한 욕망이란 신기루 같은 것이며, 평범하다는 것은 불행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감동 없는 세상에 병원 다큐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잊고 있던 자신의 실체와 다시 만남을 주선한다는 점이다. 만일 당신이 감동을 받거나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바로 그 순간이 당신과 당신의 실체가 만나는 지점이다.

'옛글들 > 명랑TV'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니아 드라마는 없다  (0) 2007.07.06
‘쩐의 전쟁’, 참 잘했어요  (0) 2007.07.06
멜로, 만화를 캐스팅하다  (1) 2007.07.04
돈과 사람의 대결, ‘쩐의 전쟁’  (0) 2007.06.29
당신! 울다가 웃었어!  (0) 2007.06.2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