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심장'의 리액션, 그 분산과 집중

'강심장'(사진출처:SBS)

예능 프로그램에서 리액션은 중요하다. MC나 게스트가 뭔가 말했을 때, 그걸 듣는 입장에서 아무런 리액션이 없다면 얼마나 밋밋해질까.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은 방청객을 초대해 그 즉각적인 반응을 포착하기도 하고, 때로는 웃음소리를 인위적으로 집어넣기도 한다. 물론 요즘은 이런 식의 인위적인 리액션은 잘 쓰지 않는다. 그만큼 리얼리티와 진정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뭔가 억지로 만들어진 느낌이 들면 그 리액션은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강심장'처럼 게스트가 많은 집단 토크쇼의 경우에, 자연스러운 리액션을 잡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토크란 기본적으로 주고받는 것인데, 한쪽에서 이야기를 했을 때 그것을 듣는 청자의 즉각적인 반응을 잡아내는 데 있어서 이 집단 게스트는 여러모로 장애가 된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 바로 옆자리의 리액션을 투샷으로 잡아넣는 것이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도 많다.

스무 명 정도의 게스트가 앉아 있기 때문에 옆자리에 있는 이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그러면 진짜 얘기를 듣는 사람을 함께 카메라에 담아야 하는데 이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화자와 청자 사이에 거리가 있는 경우라면 거의 전체를 잡아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집중도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게다가 실제 녹화 때는 변수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박상혁 PD에 의하면 "심지어 자는 분도 있고 화장실 가는 분도 있고 또 중간에 녹화가 있으면 녹화하고 돌아오는 분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실제 녹화에서는 빈 자리가 있어도 녹화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전체를 보여주거나 투샷으로 리액션을 보여주기가 어렵게 된다.

'강심장'이 리액션을 잡아내는 방식은 그래서 병렬적인 편집일 때가 많다. 즉 화자를 잡다가 잠깐씩 청자의 반응을 인서트로 넣는 식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부자연스럽게 보일 때가 많다. 그래서 화면을 분할하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같은 화면에서 화자와 청자가 즉각적으로 보이는 반응들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 방식이 훨씬 자연스러운 편이다.

여러모로 집단 게스트를 초대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지만 '강심장'만의 장점 또한 적지 않다. 정통적인 토크쇼의 리액션은 마치 탁구 게임 하듯 치고받는 단조로움이 있는 반면, '강심장'의 리액션은 훨씬 많은 게스트들로 인해 종잡을 수 없는 다이내믹함을 선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한 화자의 이야기에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이고 거기에 다른 사람이 참견하는 식으로 발전하면서 '강심장'의 이야기는 다채로워진다.

'강심장'은 분명 투샷이 어려운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것은 거꾸로 보면 '강심장'이 게스트와 호스트가 대면하며 얘기를 나누는 정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훨씬 새로운 방식의 소통체계를 실험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실제로 '강심장'의 조금은 정신없어 보이는 이야기의 폭풍을 경험하다 보면 이것이 다매체 시대에 다양한 매체로 접속되어 있는 우리네 소통체계의 일면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래도 한 게스트가 얘기할 때만큼은 집중력을 발휘하는 '강심장'은 어쩌면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소통체계로 자리한 이 분산과 집중을 토크쇼화한 프로그램이 아닐까.

리얼한 웃음을 제공하는 그들, 은지원과 김태원

흔히들 예능은 리액션이라고 말한다. 누군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거기에 맞춰 박장대소를 하거나 추임새를 넣어주는 등의 리액션은 예능을 예능답게 만들어준다. 현재 최고의 예능 MC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강호동과 유재석에게서 두드러지는 건 바로 이 리액션이다. 강호동은 리액션이 크기로 유명하다. 상대방의 작은 행동에도 큰 리액션을 보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에 웃음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의 리액션은 웃음을 증폭시킨다.

반면 유재석의 리액션은 날카롭다. 그저 흘려 한 얘기들에서조차 그는 웃음의 코드를 리액션을 통해 콕콕 집어낸다. 본인이 크게 웃어 웃음을 증폭시키기보다는, 웃음의 포인트를 집어내면서 "이거 웃기지 않냐?"고 권유하는 식이다. 강압적인 느낌이 없기 때문에 그런 유재석의 리액션은 부드럽고 자연스러움을 갖게 된다. 리액션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상대방을 높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출연자를 배려해야하는 작금의 예능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강호동과 유재석이 최고의 자리에 서 있는 건 이 리액션의 고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리액션의 법칙, 즉 상대방이 말하면 무조건 거기에 맞춰 호응을 해주는 방식에서 빗겨나 있는 인물들도 있다. '1박2일'의 은지원과 '남자의 자격'의 김태원이다. '1박2일'에서 은지원은 종종 다른 멤버들이 모두 웃음을 짓고 있을 때 혼자만 딴 짓을 하거나 무표정한 경우가 있다. 나영석 PD는 "은지원은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자신이 느끼는 대로 행동한다"고 말한다. 욕망에 대한 솔직함도 두드러지는 편이다. '서울 나들이' 편, 서울 곳곳에서 공수해온 음식을 놓고 하는 복불복에서 은지원은 돈까스에 대한 집착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해야만 해서 하는 리액션이 아닌, 진짜 원할 때 나오는 리액션은 은지원의 은초딩 캐릭터가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 지속되면서도 왜 식상하지 않은지를 잘 말해준다. 초창기 강호동 잡는 캐릭터로서 은초딩은 '1박2일'의 자칫 수직적으로 흐를 분위기를 깨버린 1등 공신이다. 그것이 가능했고 지금도 가능한 것은 그가 하는 리액션이 '리얼 리액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가 이수근이 하는 어떤 행동을 보고 포복절도를 할 때면 그것은 다른 멤버가 하는 리액션보다 몇 배는 더 강하게 다가온다. 리얼이기 때문이다.

'남자의 자격'의 김태원 역시 은지원 못지않은 '리얼 리액션'의 대가(?)다. 그는 배가 고프면 배가 고프다고 칭얼대고, 힘이 들면 힘들다고 말한다. 웃음도 남발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최고의 화제를 몰고 왔던 '하모니편'에서 김태원은 끝까지 실수를 연발했다. 그것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다. 어찌 보면 민폐라고도 여겨질 수 있는 캐릭터지만, 김태원은 이 리얼함 자체를 가감 없이 다 드러냄으로써 이것을 호감으로 바꾸어 놓았다. 남들이 다 웃을 때 웃지 않고 자주 봉창을 두드리는 그의 모습은 짜이지 않은 리얼 리액션의 느낌으로 시청자들의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1박2일'과 '남자의 자격', 이 두 프로그램의 메인작가인 이우정 작가는 이 두 프로그램에서 가장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두 인물로 각각 은지원과 김태원을 꼽았다. 리얼 예능에서 리액션이 그저 웃어주는 것만으로 효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리액션이 모두 효과적인 건 아니다. 어떤 리액션은 자칫 억지 웃음으로 흘러갈 수 있다. 시청자는 웃기지 않은데 저들끼리 웃으며 웃음을 강요하는 리액션은 오히려 프로그램에 독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웃길 때 웃고, 웃기지 않을 때는 냉담한(물론 그들만의 4차원에 가까운 웃음의 기준에 따른 것이지만) 그들이 이 리얼 예능이 제공하는 진짜 웃음의 숨은 공로자인 이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