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에도 꽃이 핀다’, 인생캐 만난 장동윤 앞으로도 지금처럼

모래에도 꽃이 핀다

“20년 뒤의 내 꿈은 그 때도 지금처럼 두식이랑... 아니, 친구들이랑 맨날맨날 즐겁고 신나게 놀았으면 좋겠다. 영원히!” ENA 수목드라마 <모래에도 꽃이 핀다>는 20년 전 어린 백두가 꾸었던 꿈을 밝히며 끝을 맺었다. 그 꿈은 실로 소박해 보인다. 20년 후에도 변함없이 그저 그 때처럼 두식이랑 친구들이랑 매일 즐겁고 신나게 놀기를 바란다는 것.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이런 꿈이 사실은 검사가 되고 씨름 장사가 되고 손에 꼽히는 부자가 되는 일보다 더 어렵다는 걸. 

 

그 어려운 일을 <모래에도 꽃이 핀다>라는 드라마는 해낸다. 어려서 벌어졌던 승부조작 사건. 그로 인해 미란(김보라)의 아버지는 죽고 두식(이주명)의 아버지는 그를 죽게만들었다는 누명을 쓴 채 거산에서 도망치듯 떠나게 됐던 그 사건과, 마치 그 사건이 재연되듯 벌어진 연코치(허동원)의 자살과 사체로 발견된 최칠성(원현준) 사건의 주범을 찾아내고 검거했다. 그 주범은 바로 떡집을 운영하는 이경문(안창환)이었다. 

 

그리고 백두(장동윤)는 씨름대회에서 결승까지 올라 임동석(김태정)을 이기고 드디서 장사 타이틀을 땄고, 두식에게서도 고백을 듣게 된다. “아, 좋다고! 좋아한다고! 나도 니 좋아한다고!”라며 어색함을 화내듯 포장해 고백했지만, 두식은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김백두, 내 니 많이 좋아한다”고 진지하게 말한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래서 백두가 20년 전 꾸었던 꿈은 모두 이뤄진다. 씨름 장사가 되고 두식이와 사랑을 확인한데다, 친구들이 다시 다 모여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는 것. 

 

<모래에도 꽃이 핀다>가 매 회 어린 시절 백두와 두식 그리고 진수(이재준)와 미란, 석희(이주승)가 함께 놀던 광경들로 시작했던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모습들을 먼저 보여줌으로써, 20년 후 어른이 된 그들이 마주한 현실이 얼마나 다른가를 병치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승부조작 사건에 심지어 살인사건까지 벌어진 현실 속에서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한다. 

 

그래서 드라마는 승부조작에 살인까지 벌이는 돈에 경도된 비정한 어른들과, 여전히 동심을 잊지 않은 채 그들과 맞서려는 김백두와 그 친구들의 대결구도로 그려졌다. 기성세대들이 남긴 상처들을 변치않는 우정과 사랑으로 똘똘 뭉친 친구들이 함께 싸우고 서로를 위로해주며 끝내 해결해내는 과정을 그린 것. <모래에도 꽃이 핀다>는 동화 같은 제목은 그래서 그 비현실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동심의 순수함이 담겼다. 모래에서 꽃이 필리 없지만, 그걸 보여주는 드라마가 주는 판타지가 그만큼 강력했던 이유다. 

 

그 ‘꽃’은 백두가 장사가 된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두식과의 사랑이 이뤄진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20년 전부터 이어져 도무지 해결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사건이 해결된 것을 의미하면서 승부조작으로 더럽혀졌던 씨름판에서 이제 정정당당한 승부가 펼쳐지는 상황을 의미하기도 한다. 백두가 끝내 장사 타이틀을 거머쥔 임동석과의 치열하지만 멋진 경기는 모래판에 피어난 꽃 같은 아름다운 승부의 세계를 재연한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거의 김백두 그 자체가 된 것처럼 순수하고 우직하며 때론 어리숙한 모습을 보여줬던 장동윤의 연기다. 사극부터 시대극, 장르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시도해왔던 장동윤은 실로 이 작품으로 ‘인생캐’를 만난 느낌이다. 찰떡 같이 잘 붙은 사투리는 물론이고 씨름선수 역할에 맞게 만들어낸 몸에 보기만 해도 무장해제 될 것 같은 순수한 눈빛이 투박하지만 묵직한 진심으로 가득 채워진 작품과 어우러져 막강한 시너지를 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작품의 제목은 또 다른 의미로도 읽힐 수 있을 법하다. 수많은 작품들을 해왔고, 다양한 역할들을 연기했지만 이 작품을 통해 장동윤의 연기도 꽃이 피었다는 의미로. 좋은 작품은 인물이 메시지 그 자체인 경우가 많다. 김백두라는 인물이 우직하게 보여주는 그 순수함 자체가 메시지인 <모래에도 꽃이 핀다>도 그런 작품이다. 좋은 작품의 좋은 캐릭터는 또한 배우가 가진 진짜 매력을 끄집어내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그래서 훗날 돌아보면 장동윤에게 남다른 의미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꿈을 이뤄낸 백두가 20년 전 꿈을 이야기하던 어린 백두를 떠올리듯이.(사진:ENA)

요즘 드라마들 사투리에 푹 빠진 이유

소년시대

“아오, 환장하겄네. 진짜..”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소년시대>에는 찰진 충청도 사투리가 드라마 전체의 정서를 만들어낸다. 온양에서 늘 맞고만 지내던 장병태(임시완)가 부여농고로 전학오면서, 전설의 싸움꾼 ‘아산 백호’로 오인받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는데, 마치 호랑이 없는 굴에 토끼가 왕이라도 된 듯 어색하게 허세를 부리는 이 인물이 페이소스 가득한 웃음을 준다. 그런데 여기서 도드라지는 건 특유의 해학 가득한 충청도 사투리다. 학원 액션물로서 학교폭력이 일상이었던 1989년 어두운 시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드라마를 밝게 만들어주고 나아가 코미디의 웃음이 피어나게 하는 건 다름 아닌 충청도 사투리다. 두드려 맞으면서도 어딘가 여유가 느껴지고, 센 척 하면서도 허술함이 느껴지는 충청도 사투리의 맛이 드라마의 독특한 정서를 만들어낸 것이다. 

 

한 때 정확한 언어 전달이 최우선이었던 시절에 사투리는 방송에서는 피해야할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정확한 발음을 요구하는 아나운서 같은 직업에 사투리는 진입장벽이 되기도 했다. 물론 간간히 전원드라마에서 사투리가 등장하곤 했지만 그것도 너무 심해 알아듣기 어려운 수준의 사투리는 피하는 게 다반사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정이 달라졌다. 사투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드라마들이 늘고 있는 것. 최근 방영된 드라마만 해도 <소년시대>를 비롯해 <웰컴투 삼달리>, <모래에도 꽃이 핀다>, <무인도의 디바>가 모두 유창한 지역 사투리들로 채워졌다. 지역도 다채로워서 <소년시대>가 충청도 사투리를 썼다면, <웰컴투 삼달리>는 제주 사투리를, <모래에도 꽃이 핀다>는 경상도 사투리를 또 <무인도의 디바>는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 최근 드라마들만 해도 강원도 빼고 거의 전 지역의 사투리가 TV를 통해 흘러나온 셈이다. 

 

그런데 지역 사투리는 그냥 쓰인 게 아니고 그 작품의 색깔과 어우러져 특유의 색깔을 만들어내는 힘을 발휘한다. <소년시대>의 충청도 사투리는 특유의 해학적 어감으로 최양락이나 김학래 같은 개그맨들이 개그 소재로 자주 사용했을 정도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만큼 코미디에 착착 붙는다는 뜻이다. <웰컴투 삼달리>의 제주 사투리는 해녀들의 풍진 삶을 대변하듯 지역 특유의 정감과 더불어 억센 삶과 비감이 뒤섞인 정서를 만들어낸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조삼달(신혜선)의 엄마가 해녀로 등장하고 그 세대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억센 제주 사투리와 잘 어우러진 이유다. <모래에도 꽃이 핀다>에 등장하는 경상도 사투리는 이미 <응답하라 1997>에서부터 쿨한 멜로의 정서를 잘 드러내는 사투리로 자리잡았다. 경상도 특유의 퉁명스러운 사투리의 어조는 이른바 ‘츤데레’라고 불리는 무심한 듯 다정한 사랑표현에 적합하게 활용되곤 했다. 또 <무인도의 디바>에 쓰인 전라도 사투리 역시 투박하지만 시골 정서를 가득 품은 서목하(박은빈)라는 캐릭터의 도시와는 다른 정감을 표현하는데 효과적이었다. 

 

이처럼 사투리를 써야만 하는 지역 기반의 드라마들이 많아지면서 이를 구사해야 하는 배우들의 자세도 달라졌다. 그저 흉내내는 정도가 아니라 드라마의 정서를 대변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배우들은 사투리를 익히는데 공을 들인다. 박은빈은 그래서 캐스팅 이후 사투리 선생님과 함께 하며 말을 익혔다고 했고, 임시완은 부산 출신이지만 정서까지 담아내는 사투리를 준비해와 감독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모래에도 꽃이 핀다>의 주연배우인 장동윤은 대구 출신이고 상대역인 이주명 역시 부산 출신이라 아예 드라마와 맞춤인 경우도 적지 않다. 아예 해당 지역 출신 배우를 캐스팅하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 사투리가 이렇게 드라마에 많아지는 건, 역으로 보면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들이 많아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 청춘들이 주인공인 드라마들이고, 이들 드라마에는 도시의 경쟁적인 삶에서 밀려나 지역으로 내려온 청춘들이 적지 않다. 소외되고 상처받은 청춘들에게 지역은 이제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때론 소진된 기력을 회복시켜주는 곳으로 그려지곤 한다. 물론 실제 현실에도 도시를 떠나 지역으로 향하는 청년들이 생겨나곤 있지만 그게 하나의 흐름이라고 보긴 어렵다. 따라서 드라마가 그리는 건 현실 그 자체라기보다는 일종의 판타지로서의 지역이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어간 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다양한 지역들이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하고, 거기에 서울 중심의 표준어를 벗어나 지역 정감을 살리는 사투리가 전면에 배치되는 건 문화 다양성 차원에서만 봐도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들이 그만큼 많이 쏟아져 나왔다는 이야기고, 그것이 도시적인 삶의 이야기들을 반복하면서 드라마 자체의 다양성도 사라지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역으로 가는 드라마들의 등장은 더 다채로운 이야기와 소재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한 국가 안에서는 도시와 지역 간의 문제지만, 글로벌 콘텐츠 시장 안에서는 미국 할리우드 중심의 콘텐츠들과 변방으로 여겨진 아시아권이나 유럽, 남미의 콘텐츠들 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글로벌 OTT가 콘텐츠 소비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떠오르면서, 콘텐츠 시장 역시 영어권 중심만으로는 그 다양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K콘텐츠를 포함한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담은 콘텐츠들이 생산되어 시장 안에 들어서게 됐다. 애플이 1천억원을 들여 제작한 <파친코> 같은 작품은 단적인 사례다. 재일한인들의 삶을 다룬 이 작품은 애플이 투자한 드라마지만, 한국인의 문화와 더불어 경상도, 제주도 사투리는 물론이고 당대의 재일한인 특유의 어투까지 고증을 통해 재현해내는 노력을 선보였다. 이런 노력이 결국 한국 고유의 진한 정서를 가능하게 했고, 그것이 세계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 됐던 것이다. 사투리는 이제 더 이상 변방의 언어가 아니다. 콘텐츠를 통해 그 다양한 목소리들이 되살아나고 있으니 말이다. (글:이데일리, 사진:쿠팡플레이)

‘모래에도 꽃이 핀다’, 드디어 꺼내놓은 이 드라마의 찐한 매력

모래에도 꽃이 핀다

“그래 내 니한테 물어볼 거 있다. 내가 그 날 경기 끝나고 나서 바로 니한테 물어볼라 캤거든?”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모래에도 꽃이 핀다>에서 김백두(장동윤)는 오유경(이주명)과 함께 임동석(김태정)을 찾아온다. 거산군청에서 형 동생 하며 김백두와 지냈던 임동석은 씨름 유망주로 다른 팀에 스카웃됐다. 그런데 거산군청에 있을 때 마지막으로 했던 김백두와의 시합으로 갖가지 의혹에 휩싸이게 됐다. 

 

그 때 임동석을 지도했던 코치가 사망한 채 발견되고, 그 코치가 죽은 것이 불법 도박에 손을 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다. 즉 김백두와 한 그 경기에서 코치는 임동석에게 일부러 져 달라는 승부조작 요구를 했고 그것으로 도박을 했는데, 결국 임동석이 이기면서 다 날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게 됐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던 거였다. 그래서 이 사건을 비밀수사하는 오유경과 함께 임동석에게 따지러 온 줄 알았는데, 김백두는 엉뚱한 소리를 꺼내놓는다. 

 

“니 어금니 괘안나? 와! 아니 단오전 시합 때 니 진짜로 이 갈면서 하데? 니 이 가는 소리가 내한테 들렸다, 임마! 와, 니 평소에는 뭐 내한테 형, 형 거리면서 따르는 척 하더만은 야, 니 어금니 나가는 소리에 내가 억수로 배신감을 느꼈어, 임마! 뭐 그리 진지하게 하냐, 마!” 모두가 승부조작이라 생각하는 걸 당시 경기를 같이 했던 김백두는 아니라고 그런 식으로 강변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해준다. “내는 니 믿는다. 샅바를 잡아 본 놈이 제일 잘 알지 않겠나, 어? 니 헛짓거리 안 한 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는 잘 알지.”

 

그 말을 들은 임동석의 눈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출렁인다. 왜 그렇지 않을까.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고, 섣불리 자신이 승부조작에 가담했을 거라 떠들어대는 상황이 아닌가. 그는 코치가 자신에게 승부조작 제안을 한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건 도저히 아니라고 생각해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코치가 그렇게 진짜 죽게 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괴로워했다. 그 때 차라리 그 제안을 수락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자책한다. 그러자 김백두의 일침이 또 날아든다. 

 

“야, 임동석이! 내 딱 한 번만 말한다이? 니 잘 들어. 니는! 아무! 잘못이! 없다! 잘못이 있다커면은 아끼는 제자 끌어안고 불구덩이 뛰어든 그 코치 잘못이지, 안 그러나!” 잘못 한 게 없지만 그 결과로 누군가 죽음을 맞이한 사실에 어찌 자책감이 들지 않을까. 하지만 김백두는 그런 임동석에게 분명한 어조로 넌 잘못이 없다는 말로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어준다. 

 

김백두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임동석은 돌아서는 길에 굳이 김백두에게 그 날 막판 애매했던 경기결과에 대해 털어놓는다. “형! 형도 알지? 형이 사실 그 날 이겼다는 거. 막판에 내가 먼저 닿었잖아. 형 알고 있었지?” 하지만 정작 김백두는 판정까지가 경기라며 그가 이긴 게 맞다고 선을 긋는다. “아 이 됐다 마. 야, 그날 니랑 내랑 온 힘을 다해서 경기 치렀고, 심판 판정이 그래 난 거는 니가 이긴 거 맞지. 원래 판정까지가 경기다, 인마.”

 

<모래에도 꽃이 핀다>의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와 이 드라마가 가진 매력이 무엇인가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이 드라마는 제목처럼 모래 같은 척박한 상황에서도 꽃을 피우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리려한다. 불법 도박에 승부조작까지 벌어지기도 하는 씨름판은, 그 위에서 승패를 떠나 공정한 승부를 통해 꿈을 향해 나가기를 원하는 청춘들 앞에 놓이기도 하는 불공정하고 부패한 현실의 축소판이나 마찬가지다. 

 

승자는 기회를 잡고 패자는 쓸쓸하게 모래판을 떠나기도 해야 하는 이 현실의 축소판에서 김백두와 임동석이 보여주는 모습은 심지어 비현실적으로까지 보여지는 순수함이다. 경기에서 진 김백두가 오히려 승자인 임동석을 위로해주는 이 역전된 상황은 그래서 거꾸로 저 비정하고 부정한 현실을 에둘러 꼬집는다. 김백두의 진면목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어딘가 밍밍한 듯 보였던 드라마 역시 진가를 드러낸다. 

 

“니 맹탕이지. 남 생각한다고 자기 실속 못챙기고 허허실실 니가 좋으면 내도 좋다 주의에 만사가 천하 태평인 덜덜이 아이가.” 어려서부터 절친이자 김백두의 첫사랑이었던 오유경(실은 오두식)은 김백두에 대해 그렇게 말한다. 그건 핀잔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에둘러 하는 칭찬에 가깝다. 비정한 현실의 관점으로 보면 ‘맹탕’으로 여겨질지 모르는 김백두의 이런 말과 행동들은 따뜻한 휴머니티의 관점으로 보면 ‘진국’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점점 맹탕으로 보였던 김백두의 변함없는 따뜻함에 빠져드는 오유경이다. 마치 밍밍해보였던 드라마에 점점 빠져드는 시청자들처럼.(사진:지니TV)

‘모래에도 꽃이 핀다’, 드디어 꺼내놓은 이 드라마의 찐한 매력

모래에도 꽃이 핀다

“그래 내 니한테 물어볼 거 있다. 내가 그 날 경기 끝나고 나서 바로 니한테 물어볼라 캤거든?”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모래에도 꽃이 핀다>에서 김백두(장동윤)는 오유경(이주명)과 함께 임동석(김태정)을 찾아온다. 거산군청에서 형 동생 하며 김백두와 지냈던 임동석은 씨름 유망주로 다른 팀에 스카웃됐다. 그런데 거산군청에 있을 때 마지막으로 했던 김백두와의 시합으로 갖가지 의혹에 휩싸이게 됐다. 

 

그 때 임동석을 지도했던 코치가 사망한 채 발견되고, 그 코치가 죽은 것이 불법 도박에 손을 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다. 즉 김백두와 한 그 경기에서 코치는 임동석에게 일부러 져 달라는 승부조작 요구를 했고 그것으로 도박을 했는데, 결국 임동석이 이기면서 다 날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게 됐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던 거였다. 그래서 이 사건을 비밀수사하는 오유경과 함께 임동석에게 따지러 온 줄 알았는데, 김백두는 엉뚱한 소리를 꺼내놓는다. 

 

“니 어금니 괘안나? 와! 아니 단오전 시합 때 니 진짜로 이 갈면서 하데? 니 이 가는 소리가 내한테 들렸다, 임마! 와, 니 평소에는 뭐 내한테 형, 형 거리면서 따르는 척 하더만은 야, 니 어금니 나가는 소리에 내가 억수로 배신감을 느꼈어, 임마! 뭐 그리 진지하게 하냐, 마!” 모두가 승부조작이라 생각하는 걸 당시 경기를 같이 했던 김백두는 아니라고 그런 식으로 강변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해준다. “내는 니 믿는다. 샅바를 잡아 본 놈이 제일 잘 알지 않겠나, 어? 니 헛짓거리 안 한 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는 잘 알지.”

 

그 말을 들은 임동석의 눈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출렁인다. 왜 그렇지 않을까.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고, 섣불리 자신이 승부조작에 가담했을 거라 떠들어대는 상황이 아닌가. 그는 코치가 자신에게 승부조작 제안을 한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건 도저히 아니라고 생각해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코치가 그렇게 진짜 죽게 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괴로워했다. 그 때 차라리 그 제안을 수락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자책한다. 그러자 김백두의 일침이 또 날아든다. 

 

“야, 임동석이! 내 딱 한 번만 말한다이? 니 잘 들어. 니는! 아무! 잘못이! 없다! 잘못이 있다커면은 아끼는 제자 끌어안고 불구덩이 뛰어든 그 코치 잘못이지, 안 그러나!” 잘못 한 게 없지만 그 결과로 누군가 죽음을 맞이한 사실에 어찌 자책감이 들지 않을까. 하지만 김백두는 그런 임동석에게 분명한 어조로 넌 잘못이 없다는 말로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어준다. 

 

김백두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임동석은 돌아서는 길에 굳이 김백두에게 그 날 막판 애매했던 경기결과에 대해 털어놓는다. “형! 형도 알지? 형이 사실 그 날 이겼다는 거. 막판에 내가 먼저 닿었잖아. 형 알고 있었지?” 하지만 정작 김백두는 판정까지가 경기라며 그가 이긴 게 맞다고 선을 긋는다. “아 이 됐다 마. 야, 그날 니랑 내랑 온 힘을 다해서 경기 치렀고, 심판 판정이 그래 난 거는 니가 이긴 거 맞지. 원래 판정까지가 경기다, 인마.”

 

<모래에도 꽃이 핀다>의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와 이 드라마가 가진 매력이 무엇인가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이 드라마는 제목처럼 모래 같은 척박한 상황에서도 꽃을 피우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리려한다. 불법 도박에 승부조작까지 벌어지기도 하는 씨름판은, 그 위에서 승패를 떠나 공정한 승부를 통해 꿈을 향해 나가기를 원하는 청춘들 앞에 놓이기도 하는 불공정하고 부패한 현실의 축소판이나 마찬가지다. 

 

승자는 기회를 잡고 패자는 쓸쓸하게 모래판을 떠나기도 해야 하는 이 현실의 축소판에서 김백두와 임동석이 보여주는 모습은 심지어 비현실적으로까지 보여지는 순수함이다. 경기에서 진 김백두가 오히려 승자인 임동석을 위로해주는 이 역전된 상황은 그래서 거꾸로 저 비정하고 부정한 현실을 에둘러 꼬집는다. 김백두의 진면목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어딘가 밍밍한 듯 보였던 드라마 역시 진가를 드러낸다. 

 

“니 맹탕이지. 남 생각한다고 자기 실속 못챙기고 허허실실 니가 좋으면 내도 좋다 주의에 만사가 천하 태평인 덜덜이 아이가.” 어려서부터 절친이자 김백두의 첫사랑이었던 오유경(실은 오두식)은 김백두에 대해 그렇게 말한다. 그건 핀잔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에둘러 하는 칭찬에 가깝다. 비정한 현실의 관점으로 보면 ‘맹탕’으로 여겨질지 모르는 김백두의 이런 말과 행동들은 따뜻한 휴머니티의 관점으로 보면 ‘진국’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점점 맹탕으로 보였던 김백두의 변함없는 따뜻함에 빠져드는 오유경이다. 마치 밍밍해보였던 드라마에 점점 빠져드는 시청자들처럼.(사진:지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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