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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모르모트PD가 살리고 있는 <마리텔>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조연출 권해봄 PD는 이제 그 이름보다 모르모트 PD’라는 이름이 더 익숙해졌다. 처음에 트레이너인 예정화와 함께 커플 요가를 선보였을 때 잠깐 보였던 몸 개그의 가능성은 이제 그가 나오는 곳이면 어디서든 빵빵 터지는 웃음의 보증수표가 되었다. 알고 보면 그와 함께 했던 출연자들이 꽤 괜찮은 웃음을 줬고 또 좋은 성적을 냈던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사진출처:MBC)'

김동현 선수가 출연해 이종격투기 특훈을 받는 과정에서도 모르모트 PD의 활약은 눈부셨다. 양동이를 얼굴에 쓰고 피하는 기술을 선보이는 김동현에게 잔머리를 굴리며 장난을 치는 장면부터 서서히 시동을 건 모르모트 PD는 뒤로 돌아서 주먹을 날리는 백스핀 블로우를 통해 특유의 어색함이 이를 데 없는 몸 개그를 시전하기 시작했다.

 

밑을 차는 척 하다가 방향을 바꿔 얼굴을 노리는 브라질리안 킥은 모르모트 PD가 하자 모르모트 킥이 되었다. 마치 관절이 따로는 노는 것처럼 너무나 눈에 띠는 어색한 동작이 되었던 것. 일본에서 김동현이 배워왔다는 삼계탕을 연상케 하는 신기술 역시 모르모트 PD가 시전하자 이상야릇한 동작이 되어버렸다. 손을 잡으라고 하니 머리를 잡고 심지어 손을 깍지 끼고 더듬는 모습이 큰 웃음을 주었고 억지로 힘을 주다 방귀를 뀌어 기술을 생화학 무기로 만들었다. 모르모트 PD는 이 장면으로 방귀대장 모르모트라는 캐릭터가 부가됐다.

 

하지만 함서희 선수와의 일전은 모르모트 PD가 정작 자신은 얼마나 이 방송을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가를 잘 드러내 보여주었다. 김동현이 적당히 해. 죽이면 안 된다고.”라고 말할 정도로 강하게 대쉬하는 함서희 선수를 맞아 잇몸에서 피가 나면서도 괜찮다고 말하는 그에게 네티즌들은 연말에 상 줘야 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마우스피스가 빠지고 녹초가 되어 쓰러진 그를 김동현이 슬쩍슬쩍 도와주자 네티즌들은 착한 조작이라며 모르모트 PD를 응원했다.

 

그는 함서희 선수의 브라질리언킥을 맞고는 오히려 그 기술을 감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앵클락을 시도하는 적극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가르쳐주셨는데 이겨야 되는데,,,”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결코 장난이 아니라 열심히 경기에 임하는 그의 자세를 읽어낼 수 있었다. 결국 모르모트 PD는 함서희 선수에게 졌지만 그의 이런 고군분투는 김동현에게 <마리텔> 우승 챔피언 벨트를 안겨줬다.

 

그런데 모르모트 PD의 무엇이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걸까. 그저 웃기기 때문에? 실제로 그의 몸 개그는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는 예능에 최적화된 몸에서 나온다. 그는 박지우와 댄스스포츠를 하면서 그 안 되는 몸이 주는 몸 개그의 진수를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모르모트 PD의 몸을 사리지 않는 남다른 노력과 열정이 깔려 있다. 그에게 따라붙는 극한직업이라는 수식어는 그것을 잘 말해준다.

 

아마도 일터에 있는 분들이나, 혹은 취업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에게 노동이 주는 의미는 각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르모트 PD의 어딘지 어설프고 그래서 웃기지만 그래도 진지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피를 보이면서까지 끝까지 해나가는 모습은 그래서 짠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웃픈 감정은 아마도 모르모트 PD의 노력에 대해 기꺼이 박수를 쳐주고 지지해주고픈 마음을 들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그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걸 모르모트PD가 보여줄 것이라 시청자들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치 <무한도전>의 초창기, 어설펐던 멤버들의 치열한 노력에 기꺼이 박수를 쳐주었던 것처럼.



Posted by 더키앙

'천하무적 야구단'의 김C, '1박2일'의 김C

대기만성이라는 말에 김C만큼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어눌한 목소리, 늘 고통을 참고 있는 듯한 찡그린 얼굴.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정이 가는 사람. 그런 그가 처음 '1박2일'에 출연했을 때, 이 즉각적인 웃음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가 어떤 캐릭터로 자리할 것인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늘 진지한 태도는 예능 프로그램의 캐릭터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게다가 그는 굳이 억지로 캐릭터를 만들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김C의 캐릭터가 되어갔다.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모든 멤버들이 버라이어티쇼를 하려고 할 때, 그는 묵묵히 '리얼'에 머물고 있었고 그것은 프로그램의 바탕을 만들어주었다. 이것은 다큐적인 접근을 지향하는 '1박2일'만의 독특한 색깔이라는 점에서 중요했다. 김C는 예능적인 상황 속에서도 진지함을 고수하는 것으로 그만의 특별한 웃음을 만들어냈다. 그 웃음은 자극적인 것은 아니지만, 어떤 흐뭇함을 주는 여운이 긴 웃음이었다.

억지로 캐릭터를 만들려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구축된 캐릭터는, 갑자기 만들어진 캐릭터보다 더 오래도록 질리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구석이 있다. 김C가 가진 캐릭터만의 장점이다. 음식으로 치자면 밥 같은 존재다. 그는 가장 은근한 맛으로 캐릭터를 세웠기 때문에, 온갖 풍미로 유혹하는 캐릭터보다 입맛을 확 잡아당기지는 않지만 대신 늘 소비해도 넉넉한 포만감을 준다.

그리고 이 베이스가 튼튼한 캐릭터는 그 위에 무언가를 세우는 것 또한 용이하다. 무리함이 없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김C가 최근 들어 몸 개그는 물론이고 말 개그에 있어서도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1박2일'에서 그가 보여주는 몸 개그가 다른 어떤 팀원들이 보여주는 것보다 더 큰 웃음이 터지는 이유는 그 튼튼한 리얼의 바탕 때문이다. 그는 과장됨이 없어야 하는 몸 개그의 기본을 늘 지킨다.

한 겨울에 알몸으로 박스 하나에 의지해 서 있고, 한 여름에는 거꾸로 두꺼운 털 잠바를 입고 땀을 흘리는 모습은 그의 늘 진지한 얼굴과 만나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웃음이 터지게 만든다. 폭우가 쏟아지는 운동장에서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예정된 몸 개그를 선보일 때도, 그는 굳이 웃기려 하지 않는다. 웃기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웃기는 것. 이것이 리얼 버라이어티가 추구하는 진정한 웃음이라는 점에서 김C는 거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김C가 부각되지 못했던 것은 말 개그. 하지만 김C가 방송출연을 시작했을 때 라디오 방송을 통해 보여주었던 것처럼, 그는 말 개그에도 확고한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인물이다. 그런 그가 제 물을 만난 것은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해설자로 나오면서부터이다. '천하무적 야구단'의 김C는 어쩌면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캐릭터다. 그는 진지하게 게임의 해설자 역할을 하다가도, 순간적인 촌철살인의 말 한 마디로 포복절도의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는 야구의 묘미를 알려주는 해설자인 동시에, 예능의 묘미를 알려주는 막말 해설의 달인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는 해설을 통해 멤버들의 캐릭터를 심어주기도 하고, 그를 감독으로 위촉하려는 멤버들로 인해 해설자와 감독의 중간지대에 섬으로써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는 해설자가 '천하무적 야구단'의 감독이라는 편향을 보여줄 때, 웃음은 촉발된다.

현재 김C가 몸 개그는 물론이고 말 개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본래부터 김C 속에 숨겨져 있던 것이었고 다만 그 발현이 느렸을 뿐이다. 이로써 김C는 예능 프로그램이 좀체 맞지 않을 것만 같은 초보 예능 출연자들에게는 어떤 전범을 보여주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오히려 중요한 것은 웃기려고 없는 것을 만들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프로그램을 대하는 자세라는 것. 그것이 바로 몸은 물론 말 개그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김C가 시사하는 점이다.

Posted by 더키앙

몸 개그가 저질? 몸 개그도 진화한다

슬로우 모션으로 잡힌 뱃살이 흔들리는 모습과 함께 소개되는 타이틀. ‘김병만은 살아있다’. 무단횡단을 하는 김병만에게 갑자기 차가 다가오자 깜짝 놀란 그는 펄쩍 뛰어 넘어진다. 어쩌면 흔히 길거리에서 보았을 수 있는 이 장면이 뭐가 우스울까. 하지만 희한하게도 이 장면은 말 그대로 뻥 터진다. 잠시 후 이어진 느린 화면의 다시 보기 때문이다. 천천히 잡혀진 그 장면에서는 우리가 순간적으로 지나쳤을, 김병만의 놀라는 얼굴이 리얼하게 잡힌다.

농구공을 밟고 순간 미끄러져 공 위에서 뱅그르르 도는 모습도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는 흔하디 흔한 몸 개그지만, 느린 동작으로 다시 보여지고 그 위에 영화 ‘불의 전차’의 주제가인 반젤리스의 ‘Chariots Of Fire’가 장중히 흐르면 말이 달라진다. 마술 무대 위에서 의자와 의자 사이에 머리와 발을 대고 누워 있는 김병만이 한쪽 의자를 빼는 순간 그냥 뚝 떨어질 때 커진 눈이 클로즈업된 느린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코미디쇼 희희낙락’의 ‘김병만은 살아있다’라는 코너가 보여주는 이 같은 몸 개그와 영상기술(?)의 만남은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져버린 코미디 프로그램  ‘웃음충전소’에서 김병만은 ‘정의의 따귀맨’이란 코너를 시도했다. 이 코너의 백미는 따귀맨이 나타나 악당들을 따귀로 물리치며 마치 매트릭스처럼 정지된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장중한 내레이션 장면이다. 보통의 시야로는 잡아낼 수 없는 느린 화면이 포착해내는 살의 떨림 같은 것들이 몸 개그의 소재로 떠오른 것이다.

김병만의 몸 개그가 특별한 것은 이런 영상의 특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데서 비롯된다. 김병만은 작금의 웃음이 얼마나 순간적인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개그콘서트’가 갖는 무대개그의 형식은 기승전결 없이 즉각적인 웃음을 요구한다. 개그들은 점점 짧아졌고 그 짧은 순간 몇 마디 말과 몇 개의 동작으로 웃음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니 이제 중요해진 것은 정황설명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순간포착이다.

“저거 개그야 무술이야?”할 정도의 몸 개그를 통해 단순하고 과장된 몸이 보여주는 순간적인 웃음을 포착해온 김병만이 ‘달인’이라는 짧은 개그에서 폭발력을 보여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찌 보면 ‘김병만은 살아있다’같은 코너는 바로 이 짧은 순간에 집착하는 개그가 이제 그 극점을 실험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면으로는 개그의 진화된 형태라고도 부를 수 있는 김병만의 몸 개그는 그간 저질이라 불려왔던 몸 개그에 대한 인식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말해주기도 한다. 사실 배삼룡의 개다리춤, 이주일의 수지큐처럼 우리네 코미디계의 거목들은 모두 몸 개그의 달인들이었다. 80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방송가에 일어난 이른바 ‘저질코미디 시비’로 인해 이들이 물러나면서 사실상 몸 개그는 저질이라는 딱지를 달게 되었다.

하지만 배삼룡이 한 시사토크쇼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중 느닷없이 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 전두환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라고 술회한 것처럼 당시 저질코미디 시비는 당대 정치가 행한 진짜 저질코미디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코미디의 황제였던 이주일씨는 전두환과 닮았다는 이유로 방송금지를 당했지만 명분은 그럴싸한 저질 슬랩스틱 코미디 척결을 내세웠다. 슬랩스틱이 저질이라면 찰리 채플린이 저질인가. 이 합당하지 않은 이유로 만들어진 몸 개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그러나 후에 심형래 같은 개그맨들이 슬랩스틱으로 다시 인기를 끌면서도 여전히 남아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말 홍수의 시대에 몸 개그가 가진 가능성은 어쩌면 더 중요해진다. 글로벌화된 지구촌 문화가 만들어지는 시대에 언어를 뺀 몸 동작으로 세계와 소통하고 있는 우리네 ‘논버벌 퍼포먼스’는 몸의 언어가 갖는 가능성을 잘 말해준다. 몸 개그는 저질이 아니며 이 시대가 요구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언어일 것이다. 김병만은 그 언어의 중심에 서 있다.

Posted by 더키앙
말을 버리자 말장난이 된 ‘상상플러스’

‘상상플러스’라는 토크쇼의 미덕은 말이 가진 표현에 천착했던 점이다. 스타에 관한 재치가 넘치는 댓글들을 방 한 가득 붙여놓고 거기서 몇 개를 골라 스타의 이면을 얘기하는 포맷 속에는 기본적으로 네티즌의 참여와 그 참여한 네티즌의 재치 넘치는 댓글이 힘을 발휘한다. 이 토크쇼에서의 대화는 따라서 저들끼리의 이야기가 아닌 네티즌이 참여된 이야기가 된다.

이 미덕이 발전적으로 이어지면서 큰 인기를 끌었던 코너는 ‘세대공감 올드 앤 뉴’이다. 여기서 말은 코너의 중심주제로 부각되었다. 젊은이들의 언어와 기성세대의 언어를 끄집어내면서 세대간의 공감대를 형성하겠다는 취지가 있었기에 토크쇼라면 응당 있기 마련인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는 인정되었다. 게다가 그러한 취지를 살리듯 프로그램의 중심에는 노현정이라는 아나운서가 앉아 있었다.

아나운서가 자리한다는 점은 그 자체로 언어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잘못된 표현은 거침없이 수정하고, “공부하세요”라고 말하는 노현정 아나운서는 오락프로그램의 말장난 속에서 오히려 더 빛나게 되었다. 문제는 점차 노현정 아나운서가 인기를 얻으면서 연예인화 되어갔다는 점이다. 이 도무지 어느 국적의 사람들인지 의심케 만드는 출연자들의 말장난을 수정하고 교정해주는 역할에서 함께 웃고 즐기는 상황으로 바뀌었던 것.

이것은 만일 이 코너의 취지가 말 그대로의 잘못된 언어사용이나 세대차이가 나는 언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제대로 된 언어사용을 하는 아나운서마저 무너지게 만드는 잘못된 언어들의 공격을 통한 재미였다면 당연한 귀결이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나, 결과적으로는 그런 과정을 따라간 것은 분명하다.

노현정 아나운서가 빠지고 백승주 아나운서나 최송현 아나운서가 그 자리에 앉자 이런 상황은 더 가속되었다. 아나운서가 해야 할 역할을 잃어버린 것이다. 노현정 아나운서는 적어도 아나운서로서의 위치를 지키는 과정에서 어떤 웃음을 주었지만, 나머지 두 아나운서는 그런 역할이 강조되지 않았다. 함께 출연진들과 웃고 떠들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자 아나운서들은 말 그대로 말발 센 개그맨들 앞에서 꿔다 논 보릿자루 신세가 되었다.

새로운 포맷으로 시작하는 ‘놀이의 탄생’은 이제 ‘상상플러스’가 댓글과 같은 언어의 세계를 버리고 전혀 다른 세계로 진입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놀이의 탄생’이 시청자들의 참여를 요구하는 부분은 재치 있는 말이 아니라 아이디어다. 따라서 이 포맷의 재미는 아이디어 자체라기보다는 그 아이디어를 실현해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몸 개그다.

‘상상플러스’는 ‘야심만만’처럼 점점 사라져가고 자리를 잃어가는 토크쇼들 속에서 몸 개그로의 전환을 하려 하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토크쇼가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은 저들만의 이야기, 신변잡기식 토크쇼에 물린 탓이라는 점이다. 말을 버리자 말장난이 되어버린 ‘상상플러스’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애초부터 시청자 참여를 이끌며 나가려 했던 ‘상상플러스’만이 가진 말에 대한 감수성이 아쉽기 때문이다.
Posted by 더키앙

세계가 한국인의 몸에 열광하는 이유

그의 개그에는 말이 필요 없다. ‘뭔가 보여달라’는 신호에 무대를 내려가려 할 때, 관객들의 박수가 터지면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뒤뚱뒤뚱 걷기 시작하고, 객석은 순식간에 뒤집어진다. 정말 뭔가 보여주고 떠난 고 이주일 선생의 퍼포먼스다. 비실이 배삼룡 선생은 오뉴월 개가 다리 떠는 모양으로 추는 개다리 춤 한 방으로 세상을 뒤집어 놓았고, 비슷한 시기 남철, 남성남 콤비는 일명 왔다리 갔다리 춤으로 전국 짝꿍들의 18번 춤을 만들어놓았다.

숭구리당당 김정렬은 부실한 하체를 문어처럼 흐느적대는 것만으로 시청자들을 배꼽 빠지게 했고, ‘영구 없다’의 심형래는 언발란스한 얼굴로 눈을 끔뻑대는 모습이면 충분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맹구와 달룡이라는 엄청난 캐릭터를 만들고 사라진, 이창훈은 최근까지도 봉숭아 학당의 그림자가 되었다. 이처럼 우리네 몸 개그는 사실상 우리가 가진 웃음의 핵심이 분명하다. 몸 개그와 대척점에 있던 스탠딩 개그, 토크쇼의 본좌격인 전유성이 아이디어를 냈던 ‘개그콘서트’ 역시 초기에는 말 중심의 개그에서 시작했지만 점차적으로 몸 개그로 변화해왔다.

몸 개그가 저질인가
이제 ‘우격다짐’이나 ‘수다맨’ 같은 1인 스탠딩 개그는 찾아보기 어렵게 된 반면, 그저 몸을 보는 것만으로도(주로 비교대상이 필요하기에 여럿이 출연한다) 우스운 몸 개그는 이제 모든 개그 프로그램에서는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시커먼스 노래에 맞춰 숏다리라는 몸의 콤플렉스를 드러내면서 웃기는 ‘키컸으면’, 아예 언어를 옹알이로 지워버리고 서커스적인 동작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옹알스’, 국내 최초 실시간 몸짱 프로젝트를 주창하며 찐 살을 빼는 모습 자체로 웃기는 ‘헬스보이’ 같은 것들은 모두 몸을 희화화하는 몸 개그다.

그런데 한때 저질 개그라 손가락질 받기까지 했던 이 몸 개그를 보는 시선이 이율배반적이다. 재미있다고 깔깔대며 웃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유치하고 작위적이며 너무 원색적이라는 비판적인 시선을 갖게 되는 것. 그 기저심리에는 아무래도 ‘말이 아닌 몸으로 웃긴다’는 점이 가장 많이 작용했을 터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몸이 갖는 문화를 하위로 생각하는 태도가 남아있다.

몸 개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무한도전’을 보는 시각은 정확히 이 지점에 위치한다. 노홍철이 하체를 벌떡벌떡 튕기며 춤을 추는 순간, 모두 자지러지며 웃음을 터뜨리지만, 바로 자막을 통해 ‘저질 댄스 작렬!’하며 스스로를 저질이라 칭하는 것.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목숨걸듯이 ‘몸을 고생시키는’ 개그맨들을 보면서 웃다가 ‘도대체 저게 뭐 하는 짓거리야’하고 생각하게 되는 그 지점 말이다. 물론 어떤 건 정말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만, 단지 몸으로 웃겼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몸은 그렇게 저질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

몸은 우리의 경쟁력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우리에게 있어 ‘몸은 경쟁력’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난타’, ‘점프’ 같은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공연이 말이 아닌 몸과 소리를 극대화시킨 ‘논버벌 퍼포먼스(아무런 대사 없이 리듬과 비트로만 구성된 장르)’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지금처럼 다문화 지구 공동체 사회에서 몸이 어떠한 말보다 더 훌륭한 커뮤니케이션의 도구가 된다는 걸 말해준다. 모든 퍼포먼스가 인간 공통이 가진 감정을 표현해내는 것으로 봤을 때, 몸은 말보다 더 앞서있다.

하지만 단지 커뮤니케이션의 이점 때문일까. 여기에는 우리가 가진 몸을 통한 표현의 잠재력이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난타’의 성공은 그저 타악을 부엌의 요리도구를 통해 한다는 아이디어의 성공이 아니라, 사물놀이 등으로 이미 입증된 우리네 타악이 가진 잠재력을 세계인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몸짓과 소리로 표현해냈던 데 있다. ‘점프’의 성공은 우리가 가진 전통무술의 역동성을 희극적인 장치와 잘 엮어낸 데 있다.

‘흥한민국’의 저자인 심광현 영상원 교수는 프랙탈 이론을 바탕으로 우리의 문화를 흥과 한의 배접으로 풀어내면서 “한류의 성공요인에는 한국인들의 몸놀림과 육성에 내재된 다른 민족에는 없는 프랙탈한 역동성과 변주능력, 즉 ‘끼’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마치 초상집을 축제 같은 분위기로 풀어내는, 울면서 웃거나 웃으면서 우는 한과 흥의 문화가 몸이 가진 다채로운 표현을 가능하게 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본산지도 아닌 브레이크 댄스를 가지고 전 세계를 매료시키는 우리네 비보이들의 몸짓은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는 말이다.

몸 개그가 가진 가능성
혹자는 논버벌 퍼포먼스 같은 예술적인 장르와 저질 개그라 칭하는 몸 개그가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없다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 성공적인 논버벌 퍼포먼스에서 보여지는 몸의 행위는 기본적으로 묘기에 가까운 동작이 주는 긴장감에 더해지는 희극성에 있다는 점에서 몸 개그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다만 거기에는 우리 전통적인 문화가 가진 예술적 가치가 덧붙여진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를 뿐이다.

우리가 몸 개그를 보는 시선은 우리 사회가 비보이를 보는 시선을 통해서도 재확인할 수 있다.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젊은이들에 대한 시선은, 세계가 주목하기 전까지 경박한 춤꾼에머물러 있었다. 춤을 춘다는 몸의 행위에 대한 비하적인 관점을 뒤집은 것은, 그런 편견에도(어쩌면 그 편견 때문에 더더욱) 열심히 춤을 춘 우리네 비보이들의 노력과, 그것을 사심 없이 인정한 외국의 시선들 때문이었다. 우리가 가진 편견들은 종종 이렇게 우리가 찾아내야 할 가치를 외국이 먼저 찾는 아이러니 속에서 깨지곤 한다.

지난 26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제2회 한류 코미디잔치는 우리의 몸 개그가 가진 가능성을 재확인한 자리였다. 관객들에게 가장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것은 다름 아닌 몸 개그. 박준형의 ‘무 갈기’와 정종철의 비트박스, 특히 거의 서커스 수준의 몸 개그인 ‘옹알스’는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이것은 모 방송에 출연해 “개그 중에서도 몸 개그가 먹히더라”고 말한 조혜련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녀는 최근 일본 방송에 출연해 뜨거운 물을 마시고 “아뜨~”하는 포즈와, “스미마셍”을 외치며 무릎을 뒤로 튕겨내는 몸 개그를 선보여 좌중을 쓰러지게 했다.

최근 들어 몸을 활용한 몸 개그는 꾸준히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몸 개그에 우리가 저질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어쩌면 천편일률적인 식상한 몸 개그에 대한 비판이 아닐는지. 이제 몸 개그도 무조건 저질이라 치부하지말고 그 질적 수준을 따져봐야 할 때다. 혹시 누가 알까. 우리의 몸 개그에 세계가 배꼽을 잡는 그 날이 올지. 어쩌면 이미 그런지도 모른다.
<사진출처 : 뮤지컬 점프 http://www.hijump.co.kr>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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