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관2’, 대중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주진화학 사건은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협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사건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 책임을 묻겠습니다. 현재를 보전해 미래세대에게 넘겨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도 정비해 나가겠습니다. 국민여러분의 힘이 필요합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일들이 생기지 않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어주시고 응원해주시고 저희를 지지해주시기 바랍니다.”

 

JTBC 월화드라마 <보좌관2>에서 강선영 의원(신민아)은 TV 뉴스 인터뷰에 나와 이렇게 호소한다. 주진화학 사건은 그 화학물질로 인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고통 받았지만 덮여지고 가려졌던 사건이다. 거기에는 법무부장관이 된 송희섭(김갑수)과 주진화학 이창진 대표(유성주)의 결탁이 숨겨져 있다. 강선영 의원은 이 문제를 국정조사위에 상정해 국회가 나서 진상규명을 하려 한다. 코너에 몰린 이창진과 송희섭은 이를 막기 위해 강선영 의원의 보좌관 이지은(박효주)을 테러하고, 국정조사위 자체를 무산시키기 위해 협박과 회유를 일삼는다.

 

사실 주진화학 사건 같은 소재는 드라마라고는 해도 우리네 현실에서 벌어졌던 실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근무하던 노동자들의 백혈병 발병 사건이 그렇다. 심각하고 중대한 사건들이지만 진상 규명이 되는 그 과정들은 꽤 오래 걸렸다. 이유는 그 사건들을 수사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정치적 외압들이 끼어들어서다. 심지어 관련 사안을 고발하는 영화까지 만들어지고 결국 대중들이 관심을 갖게 됐고 국회 차원에서의 노력이 더해지면서 삼성전자는 공식 사과와 보상에 대한 입장을 밝히게 됐다.

 

<보좌관2>를 보다 보면 우리가 언론을 통해 정치의 세계를 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역학구조로 정치 현실이 움직인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언론이 보여주는 정치만으로 그 이면에 놓인 진짜 현안들을 들여다보는 건 어려운 일이라 생각된다. 주진화학 사건과 이를 야기시키고 무마시킨 이창진 대표와 그 위의 성영기 회장(고인범) 그리고 송희섭 법무부장관의 결탁이 이 정치 현안의 본질이지만, 코너에 몰린 이들은 이를 막기 위해 갖가지 방해공작을 일삼는다.

 

강선영 의원의 인터뷰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송희섭의 계략으로 조갑영 의원(김홍파)이 공천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일이 언론에 등장하면, 정치인들은 못 믿을 존재라며 정치 자체에 대한 관심을 지워버린다. 송희섭이라는 비리의 거목을 무너뜨리기 위해 자신도 피를 흘릴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하는 장태준(이정재)은 언론에 드러난 것으로만 보면 비리정치인이 아닐 수 없다. 송희섭이 거짓으로 그렇게 꾸며냈기 때문이다.

 

강선영 의원실에서 일하는 한도경 비서(김동준)는 언제 잘려도 할 말 없는 별정직이지만 주진화학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피해자들을 일일이 만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윤혜원 보좌관(이엘리야)이 그런 한도경에게 직접 만난다는 게 힘들었을 거라 말하자, 한도경은 “저보다 이 분들이 더 힘드시잖아요”라고 답한다. 한도경은 이 복마전에 가까운 정치판에서 거의 유일하게 순수한 정치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한도경 같은 인물이나 그 의지는 결코 보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심지어 한도경의 어머니도 그 정치 세계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선입견만을 드러낸다. “강선영이라고 그랬지? 뉴스 보니까 그 사람은 밑엣 사람들한테 갑질 하고 못살게 군다며? 얼마 전에는 그 보좌관이 자살까지 했다며?” 그러면서 당장 그 일을 때려 치라 말한다. 아들이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심지어 어머니도 관심이 없다. 겉으로 드러난 것들만 보면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만 생겨난다.

 

그런 어머니에게 한도경은 차분하게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한다. “못 그만둔다고. 나 지금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어 칭찬도 많이 받고 내가 지금 하는 일 엄마가 생각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일 아냐. 아버지 사고 났을 때 병원 찾아와서 우리 가족 도와주셨던 분 그 분도 보좌관님이셨어. 그 때 이후로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내가 처음으로 진지하게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거야. 지금도 마찬가지고.”

 

<보좌관2>가 보여주는 복마전에 가까운 정치 현실의 이전투구는 거꾸로 우리가 그저 흘러나오는 뉴스만이 아니라 좀 더 정치에 대한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정치가 하는 일이 뭐냐?”는 게 어찌 보면 보통 사람들의 너무나 공감 가는 불만이지만, 그래서 외면하고 혐오만 한다면 결코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 <보좌관2>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사진:JTBC)

‘썰전’이 다시 정치에 대한 관심을 만들어낸다는 건

“늘 <썰전>을 보면서 대한민국이 <썰전>처럼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전 선생님의 주장과 유시민 작가의 대비된 견해는 한 자리에 서지 않았습니다. 저는 두 분이 대화와 소통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끌 대한민국은 바로 이 <썰전>처럼 서로간의 견해가 좀 다르더라도, 충분히 격렬하게 논쟁할 땐 논쟁하더라도 서로 인격에 대한 신뢰는 갖고 있는 그러한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전 그런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어서 도전합니다.”

'썰전(사진출처:JTBC)'

JTBC <썰전>에서 “마지막으로 왜 본인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를 묻는 질문에 심층토크를 위해 출연한 대선후보 안희정 충남지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칭찬을 해주는 것에 대해 유시민 작가와 김구라는 몸 둘 바를 모르는 표정을 보였다. 유시민 작가는 “낯 뜨겁네요”라며 웃었고 김구라가 어색한 표정을 짓는 장면에 ‘부끄러 부끄러’라는 자막이 붙었다. 

사실 안희정 지사의 이 마지막 이야기는 자신이 차기 대선후보로서 어떤 대한민국을 꿈꾸고 있는가를 짧게 정리한 것이지만, 그 이야기는 거꾸로 지금 <썰전>이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주고 있는가를 말해준 대목이기도 하다. 안희정 지사의 말대로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이렇게 때론 어떤 정치적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두 사람이 한 자리에서 격렬하게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논쟁하면서도 또 지나고 나면 서로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는 장면을 우리가 본 적이 있었던가. 

특히 대중들이 정치를 혐오하게 된 가장 대표적인 장면은 바로 국회에서 때때로 벌어지는 드잡이가 아니었던가. 국민을 대표해 서로 다른 여러 견해들을 피력하고 설득하고 때로는 협력하라고 뽑은 일꾼들이 볼썽사납게 물리력을 동원하고 패거리의 행태를 보일 때, 대중들이 혀를 차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심지어 그런 정치에 대한 혐오와 그로 인해 생기는 무관심조차 오히려 조장해왔던 것이 정치권이었다. 그런 무관심이야말로 저들끼리의 세상을 공고히 해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썰전>이 얼마나 시사나 정치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내는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안희정 지사가 말한 부분이다. 그렇게 혐오스럽고 보기 싫어 정치의 정자만 나와도 채널을 돌려버리던 그 정치를 다시금 보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 전원책 변호사와 유시민 작가가 보여주듯이 서로 다른 견해로 논쟁이 오가지만 그래도 그 좁은 삼각 테이블을 박차고 떠나지 않는 모습을 끝까지 보여주는 일. 그러면서 다른 사안들에 있어서는 또한 공감하는 모습도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일. 그런 것들이 <썰전>이 해온 그 어떤 날카로운 분석보다 중요한 일들이다. 

<썰전>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프로그램 1위’에 올랐다. 현재 ‘정상화’의 시간을 갖고 있는 <무한도전>이 잠시 쉬고 있는 상황에서 1위 자리를 차지한 것. <썰전>은 이 좋은 소식을 알리며 <무한도전>을 경쟁자가 아닌 친구로 표현했다. 유시민 작가는 “친구가 쉬고 있을 때 열심히 공부해야죠.”라고 말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살고 있다는 미나엄마가 보낸 팬레터에는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해주셔서 고맙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경쟁하더라도, 때론 의견 대립을 하더라도 그 안에서 서로에 대한 인격적 신뢰를 잃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일. 유시민 작가와 전원책 변호사가 만들어내고 있는 <썰전>의 광경들은 그래서 안희정 지사의 말처럼 바람직한 민주주의의 한 장면을 드러내주고 있다. 그리고 그 광경만으로도 우리는 그간 혐오에서 무관심으로 이어졌던 정치를 다시금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고 있다. 미나엄마의 말처럼.

<쇼미더>, 논란과 무관심 사이에서 논란을 택하다

 

<쇼미더머니4>의 블랙넛은 방송에 있어서 골칫덩이가 분명하다. 제 아무리 랩 가사라고는 해도 동창을 강간하고 남자친구를 살해하겠다는 이야기를 담아낸 곡을 버젓이 내놓고 특정가수를 지칭해 성적으로 비하하는 가사를 쓴 것으로 이미 물의를 빚은 바가 있는 인물. 사실 이런 인물을 방송 무대에 올려놓는다는 건 그 자체로 대단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쇼미더머니(사진출처:Mnet)'

과거 SBS <송포유>에서 일진 논란이 터져 나오면서 생겨난 논란과 파장을 떠올려 보라. 출연자는 단지 실력으로만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철없던 시절의 빗나간 일탈이라고 해도 이러한 인성이나 과거력의 문제는 자칫 프로그램 하나를 날려버릴 수 있는 엄청난 후폭풍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쇼미더머니4>는 이런 블랙넛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 힙합 오디션에 끼워 넣었다. 첫 회에 그가 바지를 내리는 장면 역시 모자이크 처리는 됐지만 편집 없이 내보냈다. 그 장면은 마치 과거 MBC 생방송 <인기가요>에서 바지를 내리고 성기를 노출해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던 카우치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어차피 우승은 송민호를 반복해서 외치며 관심 받는 아이돌과 언더로서 적극적으로 대립각을 세운 것도 블랙넛이었다. 이 대결구도는 <쇼미더머니4>의 주된 스토리텔링이 되었다. 아이돌과 언더의 대결. 이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은 아이돌도 언더도 저마다의 목적을 갖는 프로그램으로 자리했다. 즉 아이돌은 힙합 실력을 인정받으려 하고, 언더는 아이돌 같은 인지도를 얻기를 원한다. 그러니 이 두 이질적인 존재들의 대결구도는 양자를 모두 주목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송민호와 블랙넛의 대결은 역시 논란을 만들었다. 송민호가 랩을 할 때 죽부인을 갖고 무대에 누워 보여준 블랙넛의 낯 뜨거운 퍼포먼스는 보는 이들을 모두 찌푸리게 만들었다. 심지어 심사위원들도 비신사적인 행동에 대해 질타했다. 논란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고 이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커졌으며 그것은 당연히 기사화되어 일파만파 확대되었다.

 

그럴수록 블랙넛에 대한 관심은 커졌고, 그에 따라 <쇼미더머니4>에 대한 관심도 커져갔다. 그러자 커진 관심만큼 과거 블랙넛이 썼던 문제의 랩 가사들이 기사화되면서 그의 인성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여기에 그가 일베에서 활동한 경력들이 알려지면서 그에 대한 불편한 감정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어찌 보면 <쇼미더머니4>는 블랙넛이라는 도발하는 골칫덩이의 힘으로 굴러가는 힘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블랙넛 인성 논란과 하차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 <쇼미더머니4>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 불편함에 대한 사과 따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블랙넛을 무대에 세우고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는 비난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었다. 그는 무대에서 이렇게 외쳤다. “내 인성의 어쩌고 저 째? 다 갖다 붙여 내 이름 앞에 내가 사과하고 하차하길 원해? 전부 다 챙기고 갈 거야. 우리 집에 난 더 크게 외칠 거야 쇼미더머니. 내게도 엄마의 건강이 첫째. 세상에 욕 만했던 나의 어제가 부끄럽긴 해도 내가 뱉은 말에 난 떳떳해.”

 

만일 블랙넛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시청자라면 이건 불에 기름을 붓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쇼미더머니4>가 이것을 가감 없이 그대로 내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다음 회에는 이러한 불편한 감정들이 극점으로 치솟을 송민호와 블랙넛의 대결을 준비시켜 놓았다.

 

송민호와 블랙넛.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관심을 받는 자와 관심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자. 자신감이 넘치는 화려함과 어딘지 어눌하지만 그 억눌리고 비뚤어진 감정이 폭발하는데서 나오는 그 광기. 이것은 송민호라는 화려함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힘이다. 거기에 마치 주머니 속 송곳처럼 불편함을 만들어내는 블랙넛이라는 인물이 있기에 가능한 힘.

 

이처럼 무관심보다는 불편한 논란을 감수하겠다는 자세는 어쩌면 힙합이라는 장르나, 그 장르를 오디션화한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의 입장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착함이란 우리 시대에는 아무런 의미도 전해주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 현실 위에서 <쇼미더머니>는 무관심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인(?) 논란을 선택했다. 결코 윤리적으로 잘했다고 표현할 수는 없어도 이 논란이 여기서 나오는 힙합 음악에 대한 관심을 만든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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