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방’, 세상의 모든 방송들을 지상파가 끌어안으면

‘아무 생각 없이 봤다가 빵빵 터졌다.’ 새롭게 시작한 MBC <세모방(세상의 모든 방송)>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대부분 이렇다. <무한도전> 안에서도 큰 소리 빵빵 치며 제 맘대로 방송하는 걸 하나의 캐릭터로 갖고 있는 박명수를 쥐락펴락하는 PD의 등장이라니. 

'세모방(사진출처:MBC)'

세상에 넘쳐나는 무수한 방송들에 인기 연예인들이 직접 참여하는 이 새로운 형식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천하의 박명수를 꼼짝 못하게 만든 장본인은 리빙TV라는 국내의 작은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되고 있는 <형제꽝조사>라는 프로그램의 이른바 ‘꽝PD’. 스스로를 ‘낚시계의 홍상수’라 소개한 꽝PD는 대본도 없이 즉석에서 연출 촬영하고, 편집, 오디오 믹싱까지 모두 혼자 해내는 1인 시스템으로 방송을 제작했다. 

박명수를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약부터 건네며 힘든 방송이니 먼저 먹으라고 지시하고, 뭐라고 해도 자신의 방송 분량만 찍고는 ‘컷’해버리는 그 쿨한 연출력(?)을 보여주는 꽝PD에게 시청자들은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배를 타고 나가 낚시를 하는 과정을 찍는 결코 쉽지만은 않은 방송이지만, 배멀미로 토할 것 같은 상황에도 헨리에게 다가가 그 고통스러움을 표현하라고 지시하는 꽝PD의 투철한 직업정신(?)은 지상파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들을 만들어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방영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에 우리네 출연자들이 참여해 만드는 신 개념 방송을 주창한 <세모방>. 아마도 인터넷 동영상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이 프로그램 제목에서 먼저 떠오르는 게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짤방’, 이른바 ‘세모짤’로 불리는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가 그것이다.

하지만 <세모방>은 개인 동영상이 아닌 전 세계의 실제 방송 프로그램을 소재로 삼았고, 그걸 그대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출연자들이 함께 참여해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걸 새로운 콘셉트로 삼았다. 그래서 몽골에까지 날아간 박수홍과 남희석, 김수용은 C1TV의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도시아들>에 출연해 사막에서 우물을 길어 백여 마리의 낙타에게 물을 먹이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또 슬리피와 오상진은 실버아이TV <스타쇼 리듬댄스>에 참여해 어르신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는 리듬댄스의 그 ‘깔짝 깔짝’한 동작이 주는 마성의 매력을 소개해주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1인 미디어 시대의 개인방송을 지상파 버전으로 끌어안은 것이라면, <세모방>은 이제 SNS를 통해 전 세계의 짤방들이 소개되는 시대에 그 다양한 프로그램들과 지상파가 콜라보레이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세모방>의 묘미란 그 다양성을 체험하고 즐기는 것이지만, 또한 그 지상파 버전과의 협업에서 나오는 충돌이 주는 재미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그래서 박명수와 꽝PD의 부딪침이 만들어낸 상상 이상의 웃음은 바로 <세모방>이 가진 잠재력을 제대로 말해준다. 세상은 넓고 프로그램들은 넘쳐난다. 하지만 지상파의 예능 프로그램이 할 수 있는 기획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세모방>은 그 기획과 아이디어의 문호를 오히려 활짝 열어젖힘으로써 상상 초월의 신세계와 충돌하는 그 접점을 만들어냈다. 어디서 본 듯한 주말 예능의 식상함들 속에서 <세모방>의 이러한 신선한 시도는 주목할 만한 일이다.

‘무도’ 미래예능연구소, 어째서 미래가 잘 안보였을까

이건 현 예능에 대한 고도의 비판인가 아니면 그저 안이한 기획의 결과인가.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새로이 시작한 ‘미래예능연구소’ 특집은 한 공간에 11명의 피실험자들을 모아놓고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며 그들을 관찰하는 콘셉트로 시작했다. “미래의 웃음을 연구한다”는 기치를 내걸었지만 특별한 그 실험 상황 속에서 저마다 드러내는 본능과 속내를 관찰하는 쪽에 더 무게중심이 실렸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별것도 아닐 수 있는 이름 대신 사용될 1번부터 11번까지의 등번호를 선택하는 과정에서부터 출연자들은 신경전을 벌였다. 그것이 향후 서열이 될 수도 있다는 예상 때문이었다. 서열을 정하기 위해 한바탕 벌인 닭싸움에서는 연합과 배신이 계속 이어졌다. 이른바 땅꼬마 유니언으로 연합한 하하, 양세형, 딘딘, 유병재가 그 연합과 배신의 주역들이었으나 그들이 급기야는 서로 싸우기 시작하면서 가만히 멍하게 서 있기만 했던 크러쉬가 1번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어진 건 피, 땀, 눈물을 모으는 미션. 이 미션에는 100만원의 참가비가 걸려 있었다. 저마다 땀을 흘리기 위해 운동을 하고 감정을 짜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역시 이어진 건 난투극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저녁 시간대에 땀과 눈물을 모으는 미션은 자칫 시청자들이 보기에 불편한 장면들일 수 있었다. 웃음을 위해 시도하는 미션들이었지만 그래서 억지로 짜내는 땀과 눈물은 웃음마저도 너무 억지로 짜낸 듯한 인상을 주었다. 

다음으로 이어진 미션은 ‘먹방의 효과’에 대한 실험이었다. 즉 짜장면을 먹는 먹방을 보고는 짜장면 앞에서 30분을 먹지 않고 버티면 전원이 음식을 제공받는 미션이었지만, 모두가 예상했을 것처럼 이기주의가 미션을 망치고 순식간에 짜장면이 사라져버리는 아수라장이 연출됐다. 그 이기주의의 주인공은 역시 누구나 쉽게 예상했을 박명수였다. 

그리고 반복된 김치찜, 라면을 두고 벌어지는 먹방 실험. 하지만 실험이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한 번 무너져버린 신뢰는 더 쉽게 무너졌다. 나중에는 그 뜨거운 라면을 냄비째 들고 뛰고 맨 손으로 집는 등의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장면도 이어졌다. 배정남의 반전 배신이 웃음을 주었지만 미션 자체는 그리 신선한 느낌이 없었다. 그건 결국 ‘미래예능연구’라는 포장을 했을 뿐, 또 다른 먹방처럼 느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미래예능연구소 특집의 첫 번째 방영분만을 두고 보면 ‘서열게임’, ‘땀, 눈물 짜내기’, ‘먹방 게임’이 그 내용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소재는 ‘미래예능’이라고 붙이기에는 너무나 과거 예능들의 반복이 아닐까. 늘 게임을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놓는 미션들이 바로 이 서열게임이고 억지상황에 땀과 눈물 짜내기이며 먹방이 아닌가. 

물론 후반부에 어떤 반전이 있을 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이러한 ‘과거 예능’들의 식상함을 오히려 비판하고 풍자하기 위한 밑그림이 전반부의 내용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몇 회에 나뉘어 방영되는 예능 프로그램은 그 회차분 자체만으로도 시청자들이 충분히 즐길 수 있을만한 내용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적어도 이번 미래예능연구소 특집의 전반부는 제목이 만들어내는 기대에 못 미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미래예능연구소’라고 했지만 미래보다 과거의 반복이 더 많이 보였으니.

‘무도-어느 멋진 날’, 재미와 감동에 배려까지 모두 잡은 콩트 콘셉트

초등학생이 단 한 명인 초등학교. 주민 대부분이 어르신들인 섬, 녹도.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이 섬을 배경으로 한 특집을 한다는 사실은 섣부르게도 그 감동적인 풍경을 예고할 수밖에 없었다. 평생 <1박2일>이나 <무한도전>이 찾아와주면 소원이 없겠다던 한 할머니는 이제 죽어도 원이 없다고까지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등학생이 달랑 한 명이고 주민 대부분이 어르신들인 그 섬은 많은 이들이 떠나는 섬이고 외지인의 방문도 별로 없는 곳이 아닌가. 그 곳에서 <무한도전>이 ‘어느 멋진 날’을 보내겠다는 그 선언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일 수밖에.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실제로 녹도의 유일한 초등학생 찬희와 껌딱지처럼 그와 붙어 다니는 여동생 채희는 보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을 웃게 만들었고 한 편으로는 가슴 찡하게 했다. 오빠가 하는 걸 똑같이 따라하는 동생. 또래 친구가 오빠밖에 없어 어디든 따라다니는 동생의 모습은 한없이 귀여우면서도 알 수 없는 슬픔 같은 게 느껴지게 했다. 

특히 우편배달부가 되어 편지를 전하는 양세형이 육지에서 섬으로 전해진 딸의 편지를 어르신에게 읽어주는 대목은 먹먹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한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오셨고 또 자식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홀로 섬에서 지내시는 어르신. 물론 자신은 그 곳에서 이웃들과 언니 동생 하며 살아가는 그 삶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하시지만, 그런 말에서조차 자식들을 위한 배려가 묻어난다. 

그런데 이 녹도를 배경으로 한 특집을 <무한도전>이 ‘어느 멋진 날’이라는 콩트 콘셉트로 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사실 감동을 전하기 위해서였다면 ‘방문자’의 입장에서 녹도 주민들을 하나하나 만나고 그들의 사연을 들려주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무한도전>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대신 콩트 콘셉트로 애초부터 녹도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로 <무한도전> 멤버들과 게스트로 찾은 서현진이 일종의 역할극을 했던 것. 바로 이 지점은 이 특집이 녹도 주민들을 진정으로 배려하는 장치가 되어 주었다. 그들의 삶을 그저 바라보며 눈물을 뽑아내기보다는 그 삶 속에 살아가는 일원으로 좀 더 담담하게 그 따뜻한 녹도에서의 하루를 전할 수 있었던 것. 

유재석과 서현진이 찬희와 채희의 선생님으로 ‘산중호걸’을 안무와 함께 부르고, 정준하가 <윤식당>을 그대로 패러디해 ‘전식당’을 차려 마을 어르신들에게 파전과 김치전을 내놓으며 수다를 떨고, 박명수가 간호사로 어르신들의 집을 방문해 일종의 ‘웃음치료’를 선보이며, 양세형이 우편배달부로 어르신들에게 뭍에서 온 편지를 전하는 그 장면들이 훨씬 명랑해질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콩트 콘셉트 덕분이었다. 

<무한도전> 김태호 PD는 예능이 감동을 전할 때 일정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집을 지어 주거나 선물을 주면서 그 반응을 들여다보는 일종의 공익적인 느낌을 주는 예능을 할 때 너무 관찰자의 시점으로 접근하면 자칫 대상들이 소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멋진 날’의 콩트 설정은 그런 점에서 보면 배려가 돋보인 선택이었다. 외부자의 시선이 아닌 동문의 시선으로 녹도의 삶을 전할 수 있었다는 그 지점이 이 특집의 웃음과 감동을 더 깊게 해주었다.

'무도', 예능 춘궁기를 넘기 위해서는

역시 시청률 춘궁기는 피해가기 어려운 것일까.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시청률이 불안불안하다. ‘국민의원’ 특집이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두 번째 이야기에서 8.9% 시청률을 내며 뚝 떨어진 바 있고, 박보검이 출연한 ‘평창 동계올림픽 특집’으로 10.2%로 반등했지만 이어진 다음 회에서는 김연아까지 출연했지만 9.8%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반면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인 KBS <불후의 명곡>은 <무한도전>의 시청률과는 정반대의 흐름을 보였다. <무한도전>이 8.9% 시청률을 냈던 회차에 <불후의 명곡>은 10.3%를 냈고, 10.2%를 냈던 그 다음 회에는 8.2% 그리고 이번 회에는 10% 성적을 냈던 것. 늘 동시간대 1위 시청률을 기록해온 <무한도전>으로서는 2위 기록이 제아무리 춘궁기라고 해도 아쉽게 다가올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매해 봄이면 찾아오는 시청률 춘궁기의 성적을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벚꽃이 휘날리고 꽃들이 만발하는 시기, 야외활동이 많아지다 보니 TV앞에 앉는 시청자들의 수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특히 야외활동이 더 많은 젊은 세대와 중년 팬층을 주로 갖고 있는 <무한도전>으로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불후의 명곡>은 KBS라는 보편적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는 채널인데다, 프로그램 역시 누구나 편하게 볼 수 있는 음악 예능이라는 점에서 이런 시기에 오히려 더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한도전>이 이런 시청률 추락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걸 말하는 건 아니다. 최근 들어 ‘국민의원’ 특집에서도 그랬듯이 새로운 아이템의 첫 회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지만 이어진 회차들은 그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특집 역시 박보검이 출연해 “박보 검나 웃겨!”를 연발하며 봅슬레이를 타고 대결을 벌일 때만 해도 관심이 쏠렸지만 다음 회차에서 다양한 동계 스포츠 대결을 벌이는 모습은 상대적으로 힘이 빠지는 느낌을 주었다. 

김연아가 출연한다는 예고편 소식은 그만큼 기대를 한층 높였지만 실제로 출연한 분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뒷부분에 살짝 토크쇼 정도로 진행됐을 뿐이고 그 내용들 역시 유재석 스스로 표현한 것처럼 ‘아침방송’이나 ‘스포츠채널’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김연아의 출연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시청자들은 반색했을 수 있다. 하지만 <무한도전> 특유의 웃음의 포인트들이 그리 많았다고 볼 수는 없다. 

여기에 근본적으로 이번 아이템은 ‘평창 동계 올림픽’ 홍보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물론 그건 <무한도전>이 지금껏 쭉 해왔던 일들이지만 어쨌든 시청자들로서는 평창 홍보라는 뉘앙스가 주는 ‘평이한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무언가 독특하거나 새로운 도전이라는 느낌을 갖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 <무한도전>은 이 예능 춘궁기 때마다 대놓고 이를 뛰어넘기 위한 ‘독한 미션’들을 수행하곤 했다. 그 위기의식이 어려울수록 오히려 더 빛을 발하는 <무한도전>의 존재감을 만들어주었다. 지금 <무한도전>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 위기의식이 아닐까. 무엇보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의미 자체보다는 웃음의 밀도를 더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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