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 없었으면 어쩔 뻔, 아이템 하나로 MBC 꿈틀

 

<무한도전> 없으면 어쩔 뻔 했나. MBC가 어떤 위기를 겪을 때마다 나오는 얘기다. 물론 프로그램마다 편차가 있지만 MBC에 대한 대중들의 정서는 과거만큼 좋지 않다. 방송국의 본분이라고 할 수 있는 뉴스는 외면 받은 지 오래고, 한때는 드라마왕국이라고도 불렸지만 드라마도 막장으로 점철되어 비난 받기 일쑤다. 교양국이 아예 사라져버림으로써 한때 눈물시리즈 같은 명 다큐멘터리로 대변되던 MBC가 더 이상 아니라고 대중들은 판단한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그나마 살아있는 게 예능이다. MBC 예능국이 지금껏 해왔던 전통 덕분인지 지금도 새로운 아이템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것이 예능의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같은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는 프로그램에서부터 <복면가왕>처럼 독특한 아이디어들이 실현되는 곳이 그나마 MBC 예능이다. 여타의 지상파 예능보다 MBC 예능은 확실히 독보적인 면이 있다.

 

그 중심에 <무한도전>이 있다고들 말한다. 거기서부터 뻗어 나온 유전자가 다른 프로그램들의 도화선이 되어주고 있다고 말하고, 그 선도적인 입장에 대한 자부심이 MBC 예능 PD들이 거침없이 밀고 나가는 힘이 되고 있다고도 말한다. 사실 <무한도전>MBC만의 예능이 아니다. 전 방송에서 크던 작던 이 프로그램에 영향을 받지 않은 예능이 있을까.

 

<무한도전>이 이른바 자선경매쇼로 자신들의 시간을 기부하겠다고 나서자 MBC가 들썩들썩하고 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지난 번 박명수의 웃음 사망꾼사건(?)으로 <무한도전> 멤버들에게는 웃음 상조(?)’ 프로그램이 되어 있는 상황. 기습적으로 500만원에 정준하를 낙찰해버리고 퇴장해버리는 장면은 <무한도전>에도 재미를 만들었지만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과연 정준하 역시 웃음 사망꾼의 처지가 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린 실버 고향이 좋다>는 사실 어르신들이 챙겨보는 프로그램이지만 일반적으로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프로그램. 하지만 광희가 230만원에 낙찰되어 방어잡이에 나선다는 이야기에 급 관심을 갖게 된 프로그램이 됐다. 이미 자선경매쇼에서도 모두가 기피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던 것처럼 그것이 극한알바와 다를 바 없는 고생문을 예고하기 있어서다.

 

하지만 무엇보다 관심이 집중된 건 유재석이 무려 2천만 원에 <내 딸 금사월> 팀에 낙찰됐다나는 점이다. 유재석이 13역에 도전한다는 소식에 벌써부터 이 드라마에 그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 지에 대해 시청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간 막장드라마라는 이미지 때문에 부정적인 시선이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유재석은 바로 이 점을 유쾌하게 뒤집을 수 있는 신의 한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막장의 틀을 잘 활용해 오히려 웃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무한도전>의 자선경매쇼는 그 자체로 보면 MBC 전체 프로그램에 엄청난 홍보효과를 안긴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낙찰되지는 않았지만 경매에 참여했던 라디오 프로그램들이나 교양 프로그램들이 이 경매쇼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그 존재를 알리는 데는 이미 충분한 효과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프로그램 하나의 존재감이 방송국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 정도다. 이번 경매쇼는 MBC<무한도전>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확인시켜 주었다.



<무도>의 정체성은 늘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것에 있었다

 

<무한도전>이 위기란다. 하긴 위기란 수식어를 하도 달고 다녔던 <무한도전>이라 그런지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물론 위기론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된 건 최근 몇 가지 악재들이 겹치게 되면서다. 불안장애로 인해 방송중단을 선언한 정형돈은 위기론에 방아쇠 역할을 했다. 다시 5인 체제가 된데다 새로 들어온 광희는 아직 100% 적응이 완료된 상황이 아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게다가 최근 박명수의 웃음사냥꾼웃음사망꾼이라는 노잼이 된 데에 대한 불안감도 위기론 속에는 뒤섞여 있다. 10% 초반대로 다시 떨어진 시청률. 여기에 방송 복귀한 노홍철이 <무한도전>에 합류할 것인가에 대한 추측에 대해 찬반이 나뉘어있다는 점도 <무한도전>으로서는 부담을 갖게 되는 요인 중 하나다.

 

하지만 이 모든 위기의 징후들에도 불구하고 <무한도전>이 위기라고 여겨지지 않는 건 왜일까. 가장 큰 건 김태호 PD라는 존재다. 출연자들이 계속 바뀌거나 이탈하는 상황이 위기론을 들고 나오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목되지만 사실 최근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출연자들이 아닌 그걸 만드는 PD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말할 수 있다.

 

심지어 유재석이라고 해도 어떤 제작자와 프로그램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의 성공 지분은 이서진이나 옥택연보다 나영석 PD가 더 많다. <삼시세끼>를 나영석 PD가 아닌 다른 PD가 만든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무한도전>에서 우리는 항상 전면에 나와 있는 출연자들을 보고 있지만 사실 그 뒤에 서 있는 김태호 PD의 지분을 무시할 수 없다.

 

출연자들의 무한도전은 이미 김태호 PD무한도전으로 바뀐 지 오래다. 김태호 PD가 새로운 형식 도전을 쉬지 않고 해왔기 때문에 이미 최고의 위치에 선 출연자들도 계속 <무한도전>에서 거듭날 수 있었다. 만일 <무한도전>에 진짜 위기가 생긴다면 그건 김태호 PD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일 것이다. 몇몇 출연자들의 문제가 아니고.

 

5인 체제는 이미 식스맨 프로젝트를 통해서 봤듯이 오히려 위기가 아니라 기회다. 당시 5인 체제라는 불안감이 식스맨 프로젝트라는 대어를 낚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식스맨 프로젝트는 이미 광희가 식스맨이 됐다고 해서 시효가 끝난 건 아니다. 당시에 후보자들로 올랐던 식스맨들은 사실상 <무한도전>의 객원 MC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요할 때면 언제든 출격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5인 체제의 나머지 빈 자리는 오히려 <무한도전> 시스템을 자극해줄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너무 익숙해져 변수가 사라져버린 6인 체제보다는 한 자리의 변수를 남겨놓음으로써 새로운 관계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고정으로 6인을 채우려하기보다는 그 한 자리를 매회 프로젝트별로 필요할 때마다 새로운 인물로 채워 넣어준다면 그건 신선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박명수의 이른바 웃음사망꾼이나 웃음장례식<무한도전>식의 위기 대처 능력을 여실히 보여준 아이템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 <무한도전> 망작의 상징처럼 거론됐던 좀비 특집을 생각해보라. 너무 짧은 시간에 실패로 끝나버린 그 도전을 김태호 PD는 앞뒤에 상황극적 요소들을 덧붙여 실패 과정 자체를 하나의 웃음의 요소로 바꿔주었다. 박명수의 웃음사냥꾼도 그 노잼 아이템을 앞뒤 웃음장례식이라는 상황극을 더함으로써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낸 것이다.

 

시청률은 <무한도전>의 위기론이 나왔던 가장 많은 요인 중 하나지만 사실 <무한도전>은 아이템에 따라 시청률 등락이 가장 다이내믹하게 나오는 프로그램이다. 일정한 시청률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늘 새로운 도전을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무한도전>의 정체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시청률보다 중요한 건 <무한도전>이 계속 도전을 하고 있느냐 하는 점일 게다.

 

<무한도전>이 위기라고? 글쎄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위기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바꿔온 과정이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김태호 PD는 성공과 실패에 대해 성공하면 그걸로 좋은 것이고 실패하면 또 한 번의 도전할 기회를 얻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고, 사실상 될 때까지 도전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한도전인 것이다.



방송중단 정형돈, 오히려 격려가 쏟아지는 까닭

 

예전부터 불안장애를 앓아왔던 정형돈이 최근 증세가 심각해져 모든 방송활동을 중단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사실 정형돈 정도의 자기 존재감이 확실한 인물이 이렇게 방송을 갑자기 중단한다는 건 방송 제작진은 물론이고 동료들 그리고 무엇보다 시청자들에게 누가 되는 일이다.

 


'힐링캠프(사진출처:SBS)'

생각해보라. 그가 없는 <냉장고를 부탁해>는 허전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또 그가 없는 <무한도전>? 어딘지 빈 구석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더욱 그런 것은 그가 최근 들어 예능의 4대천왕이라고 불릴 만큼 여러 프로그램에서 맹활약을 해줬기 때문이다.

 

<무한도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에서 그는 밴드 혁오와 짝을 이뤄 늘 그래왔듯 최고의 케미를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혁오를 하나의 캐릭터로 세우고 그들이 가진 음악의 세계를 보다 많은 대중들이 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밴드 혁오는 지금 가장 뜨거운 밴드 중 하나가 되어 있다.

 

<우리 동네 예체능>이 주춤할 때도 정형돈이 들어와 활기를 얻은 바 있다. 강호동 중심의 이야기를 정형돈이라는 인물이 조금씩 파고들면서 변화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근 그의 존재감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프로그램은 <냉장고를 부탁해>.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김성주와 짝을 이뤄 호들갑 MC’의 진수를 보여줬다.

 

그러니 정형돈의 방송중단은 어찌 보면 많은 프로그램들에 민폐일 수밖에 없는 결정이다. 하지만 이 결정에 대해 대중들은 오히려 쉬고 돌아오라며 격려를 하고 있다. 하차가 아니라 쉬어가기여야 한다는 것. 정형돈의 무엇이 대중들의 이런 격려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일까.

 

가장 큰 것은 우리가 그간 정형돈이 해왔던 그 각고의 노력들을 모두 봐왔기 때문이다. 물론 <무한도전>의 모든 멤버들이 그렇지만 그는 특히 노력을 통해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무한도전> 초창기에 그는 무존재감으로 고통스런 시간을 보낸 바 있다. 오죽했으면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이라는 별칭이 붙었을까.

 

하지만 이것조차 캐릭터로 승화하고 차츰 그는 조용히 강한 미친 존재감으로 자신을 세웠다. 존재감 없던 인물이 어느 순간 과하다 싶을 정도의 자신감을 드러내자 시청자들은 반색했다. 힙합 비둘기 데프콘을 살려내고, 지드래곤의 패션 스타일을 지적하며 그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게 하며 그는 마이더스의 손이 되었다. 그와 함께 하면 뜬다는 공식도 만들어졌다.

 

무존재감에서 미친 존재감으로 변화해온 그 과정들을 모두 알고 있기에 대중들은 잠시 쉬어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가장 일반인에 가까운 위치에서 최고의 위치까지 달려온 그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의 동일시가 가장 잘 되는 인물 중 하나다. 그러니 그 과정에서 그의 힘겨움이 누구보다 더 이해되는 것일 게다.

 

호사다마라고 최고의 주가를 올릴수록 어쩌면 그것은 정형돈에게는 커다란 부담과 불안을 주었을 지도 모른다. 그는 늘 지금의 성공이 끝나게 되는 것을 불안해 해왔다. <무한도전>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을 토로하기도 했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존재도 사라질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은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할 때다. 그토록 힘들어했었던 무존재감의 시절이 오히려 행복했던 시절이었음을 되새겨보면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올 그를 기대한다. 그간 열심히 뛰어왔다. 이젠 좀 쉬어도 된다. 그래야 또 뛸 수 있으니.



<무도>가 노잼과 실패를 대하는 방식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낸 읏음사냥꾼기획은 한 마디로 폭망이었다. 전국에 숨겨진 웃음의 주인공들을 찾아 나선다는 기획은 그럴 듯 했지만 실상 나서보니 준비 없이 웃음을 즉석에서 만들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하게 했다. 평상시에는 꽤나 웃겼다는 이들도 막상 멍석을 깔아주자 전혀 끼를 보여주지 못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물론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해 웃음사망꾼이 된 박명수의 웃음장례식이라는 도입부의 상황극은 기발한 웃음을 유발했다. 웃기지 못했다는 사실 앞에 오열하는 유재석과 멤버들 그리고 조문객들(?)이 던지는 멘트 하나하나에 심지어 그들조차 웃음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조문을 온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박진경, 이재석 PD가 박명수에게 발길질을 당하는 모습은 그가 웃음을 되찾겠다며 나선 이 기획의 감정적(?) 근거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바야바 분장까지 하고 나선 정준하가 이렇게까지 하고 나와 보람 없는 적 처음이라고 말한 것처럼 애초의 의욕과는 너무 다른 결과였다. 유재석은 평소와는 달리 끊임없이 실패를 걱정했고 어떻게든 리액션을 주려고 해도 그럴 기회가 없었다. 결국 이 아이템이 확인한 건 웃음을 준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이었다.

 

그나마 백전의 노장들인 <무한도전> 멤버들이 있어 이 노잼 상황 자체를 하나의 재미요소로 만들어내기는 했다. 즉 베테랑 웃음사냥꾼이 웃기지 못한다는 것을 오히려 웃음의 포인트로 만들려 했던 것. 마치 과거 정형돈이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이라는 콘셉트로 웃음을 주었던 것과 마찬가지의 방식이었다.

 

앞부분에 웃음장례식이라는 상황극을 붙이고 다시 그 공간으로 돌아와 상황극으로 마무리하는 구성은 그나마 이 웃음을 찾는데 실패한 박명수의 도전을 연출적으로 잘 끌어안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체를 하나의 상황극(웃음을 주지 못하는 이의 희비극)으로 포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장에서 일반인들을 세워 웃음을 시도하려 했던 건 결코 상황극이 아니지만.

 

과거 좀비 특집에서 단 몇 분만에 그 블록버스터 기획이 박명수의 어이없는 선택으로 실패하게 됐을 때도 김태호 PD가 선택한 건 재촬영이 아니라 그 실패를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그 과정조차 하나의 이야기로 담아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도 김태호 PD는 앞 부분에 장황한 상황극을 덧붙여 실패에 대한 대국민 사과로 마무리하는 재기발랄함을 보여준 바 있다.

 

자막에 슬쩍 집어넣은 것처럼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의미하는 건 결코 웃음에의 도전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이 바보 분장을 하고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때리고 물을 끼얹고 심지어는 백주대낮에 창피하기 그지없는 복장을 한 채 거리를 활보했던 일들이 그래서 새삼 이 아이템을 통해 새록새록 피어난다. 웃음 만들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무한도전>이면 땅콩 한 알 놔두고도 웃음을 줄 수 있다고 믿고 기대하지만 그들 역시 결코 이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이번 아이템의 폭망은 오히려 증거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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