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닌 여성, 김남주와 김선아가 그리는 진짜 중년여성상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 중에서 주목되는 두 캐릭터가 있다.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의 고혜란(김남주) 앵커와 SBS 월화드라마 <키스먼저 할까요?>의 안순진(김선아)이 그들이다. 언뜻 보면 두 캐릭터는 완전히 다른 상반된 면면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이 두 캐릭터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건 중년 여성들이라는 점이고, 중년이면 으레 등장하는 엄마 캐릭터가 아니라 한 독립적인 주체로서의 여성 캐릭터라는 점이며, 현직이든 전직이든 커리어우먼이라는 사실이다.

이 두 캐릭터가 주목되는 건 이들이 공통으로 처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미스티>의 고혜란은 커리어우먼으로서 앵커 자리에 오르고 청와대 대변인 물망에까지 오른 인물이지만 사방이 지뢰투성이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서슴지 않았지만 그런 선택들이 그에게 위험요소로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다행스러운 건 그나마 영향력을 가진 변호사 남편이 그의 편이라는 것이지만, 그의 타협 없는 보도는 정치권과 법조계, 언론까지 이어진 권력의 카르텔의 조직적인 공격을 받게 된다.

물론 고혜란이라는 인물 역시 완전히 선한 인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유리천장을 넘기 위해 또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젊은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싸워가면서도 진실보도를 위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특히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어 그들끼리 공고히 하고 있는 권력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려는 커리어우먼으로서의 면면은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고혜란이 치열한 사회생활 속에서 당당히 싸워나가는 커리어우먼에 대한 동경을 담고 있다면, <키스 먼저 할까요?>의 안순진은 베테랑 스튜어디스로서 커리어우먼의 경력을 갖고 있지만 이혼 당하고 소송으로 사채 빚까지 진 여성 캐릭터의 동정을 담고 있다. 특히 퍼스트 클래스의 갑질하는 손님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인 후, 일자리에서도 쫓겨난 그는 사실상 아무런 삶의 의욕조차 갖지 못한 채 살아간다.

고혜란이 사랑마저도 성공을 위해 이용하는 인물이라면, 안순진은 벼랑 끝에 몰린 현실 속에서 돈 많은 남자라도 잡아 인생역전을 꿈꾸기도 하는 인물이다. 물론 그런 이용의 목적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남자에게 서서히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되지만.

고혜란도 안순진도 중년의 커리어우먼으로서 엄마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랑에 목매는 여성도 아닌 현실적인 인물이라는 점은 시청자들이 이 두 캐릭터에 공감하는 가장 큰 이유다. 물론 그 현실을 대하는 서로 다른 방식 때문에 시청자들은 이 캐릭터들에게 ‘동경’과 ‘동정’으로 나뉘는 반응을 보이지만, 그들이 처한 녹록치 않은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각자 중년 커리어우먼이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 대목에 대한 공감대가 크다는 것.

이것은 아마도 이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김남주와 김선아에게 이 작품이 주는 남다른 의미일 것이다. 그들 역시 중견배우로서 작품들이 많이 요구하는 엄마상이나 여자가 아닌 진짜 중년여성상을 그려내고 싶었을 테니 말이다. 물론 그 파국이 보이지만 중년여성이라면 동경할 수밖에 없는 커리어우먼 고혜란과, 모든 걸 잃었지만 진짜 사랑을 얻을 것으로 보이는 안순진을 연기하는 이 중견배우들의 아우라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그건 어쩌면 중견배우로서 그들이 버텨내는 그 치열함을 그대로 담고 있으니 말이다.(사진:JTBC)


‘미스티’, 치정극보다 김남주의 폭주를 더 기대하는 까닭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가 극 초반부터 시청자들의 시선을 확 잡아끈 건 다름 아닌 고혜란(김남주) 앵커라는 캐릭터가 가진 매력 때문이었다. 갖은 노력을 다해 올라선 뉴스 프로그램 앵커라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못할 게 없는 인물. 젊은 한지원 기자(진기주)가 치고 올라오자 그의 부적절한 관계를 몰래 찍어 앵커 자리에서 낙마시킬 줄도 아는 결코 선하지만은 않은 그런 인물이 바로 고혜란이다. 

여기서 고혜란이란 인물의 매력 중 가장 중요한 건 ‘결코 선하지만은 않은’이라는 바로 그 지점이다. 성공하기 위해 좋은 집안에 배경을 가진 강태욱(지진희)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고, 사랑보다는 ‘필요’에 의해 결혼한 그였다. 둘 사이에 갖게 된 아이도 앵커직을 더 붙들기 위해 상의도 없이 지워버렸다. 그래서 소원해진 부부지만, 대외적으로는 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꾸미는 ‘쇼윈도 부부’의 삶을 그들은 살아간다. 

고혜란이 결코 선한 인물이 아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인 건, 그의 이런 지나칠 정도의 절실함과 성공에 대한 폭주가 그만큼 커리어우먼으로서 어떤 성공을 거두고 그 자리를 지켜내는 일이 엄청나게 어려운 우리네 현실을 에둘러 보여주고 있어서다. 지금껏 <하얀거탑>의 장준혁(김명민)처럼 성공을 향해 무한질주하는(결국은 낙마하더라도) 남성 캐릭터들은 많았지만, 고혜란 같은 여성 캐릭터는 드물었다. 그러니 마지막에 파멸에 이르더라도 한번쯤 끝까지 욕망을 밀고 나가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갈증을 고혜란이라는 캐릭터는 확실히 채워주는 면이 있었다. 

그런데 케빈 리(고준)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고 그의 성추행을 의도적으로 찍은 매니저에 의해 협박을 당하며, 케빈 리와 고혜란의 관계가 직업적 관계 그 이상을 알아버린 케빈 리의 아내 서은주(전혜진)의 복수 선언이 이어지면서 <미스티>의 고혜란이 갖고 있던 이런 매력들이 초반만큼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특히 복수를 위해 서은주가 의도적으로 고혜란의 남편인 강태욱에게 접근하는 치정극에 가까운 이야기와, 감옥에서 출소해 곤경에 빠진 고혜란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미스터리한 남자 하명우(임태경)의 ‘순애보(?)’ 같은 이야기는 조금은 맥이 빠지게 만드는 면이 있다. 

즉 서은주와 고혜란의 대결구도는 커리어우먼의 현실과의 대결을 그리는 듯 했던 <미스티>의 이야기에서 옆길로 샌 듯한 느낌을 주고, 하명우라는 일종의 숨은 ‘가디언’의 존재는 고혜란의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캐릭터를 상당부분 수동적으로 만들어버린다.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나가던 고혜란이 갑자기 그를 돕기 시작한 강태욱과 하명우 같은 남자들에 의해 마치 드라마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듯한 느낌이다. 

사실 <미스티>의 시청자들은 치정극이나 보디가드식의 순애보를 보고 싶은 게 아닐 게다. 그것보다는 이 처절할 수밖에 없는 고혜란이라는 문제적 인물이 끝까지 욕망을 펼쳐 나가고 그 끝이 파국이라고 할지라도 뛰어드는 그런 강렬한 커리어우먼상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물론 단 한 회만의 머뭇댐이고 옆길로 빠져든 것이라 여기고 싶다. 욕망의 질주와 그로 인한 파멸하는 인물을 통해 ‘선하게 지킬 건 지키고 산다’는 그런 식의 틀에 박힌 교훈이 아니라, 왜 그렇게 파멸할 정도로 뜨거운 욕망을 추구했어야 했는가를 보여주는 공감 가는 여성상을 보고 싶은 것이니.(사진:JTBC)

‘미스티’, 시청자도 빠져드는 김남주의 진심 혹은 거짓

제목처럼 ‘안개가 자욱한’ 상황의 연속이다. 과연 그녀의 진심은 무엇이고 또 거짓은 무엇이며 만일 거짓이라면 왜 그런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에서 차량사고로 죽은 케빈 리(고준) 때문에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온 고혜란(김남주)은 참고인이 피의자처럼 취급되는 여론을 마주하게 된다. 청와대 대변인 제의까지 받고 있던 상황에서 고혜란은 대변인 자리는커녕 그가 하고 있던 ‘뉴스9’ 앵커 자리까지 위협받는다. 

그런데 이 고혜란이라는 인물이 가진 심경이 복잡 미묘하다. 그는 앵커 자리를 지키기 위해 또 그 이상의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심지어 그가 강태욱(지진희)과 결혼하게 된 것도 그가 가진 집안과 배경이 우선이었다. 결혼까지 이런 이유로 선택할만한 인물이라면 더한 일도 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인물이 바로 고혜란이다. 

그러니 죽기 전 고혜란을 성추행하고는 그 장면을 사진으로 몰래 찍어 협박했던 케빈 리의 죽음에 그를 의심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는 경찰서에서도 또 남편 앞에서도 결백을 항변한다. 그래서 경찰서 바깥에 운집한 기자들 앞에 당당히 나서고, ‘뉴스9’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자신은 참고인일 뿐이라며 추측성 기사들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하는 방송을 한다. 

그 정도라면 그의 결백이 확실해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방송에서 자신의 결백을 항변하는 고혜란의 모습을 보고는 남편 강태욱은 아내에게 이제 믿기로 했다고 말하고 자신에게 기대라고 한다. 그래서 남편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는 고혜란의 모습은 진짜 그의 결백과 억울함이 묻어나는 듯하다. 하지만 또한 데스크인 장규석(이경영)이 한 뉴스란 ‘팩트에 기반한 쇼’이고 고혜란은 역시 그걸 잘 안다는 말이 걸린다. 방송에서의 멘트는 자못 진지한 것이었지만 그건 과연 진심이었을까.

고혜란이 사망 전 차 안에서 케빈 리와 나누는 대화 역시 그의 진심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는 케빈 리에게 강태욱과 결혼한 건 사랑이 아니라 ‘필요’였다고 분명히 밝히고, 대신 케빈 리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걸 드러낸다. 차 안에서 케빈 리와 키스를 나누는 고혜란의 모습은 그래서 또 다시 그에 대한 의심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케빈 리에게 안겨 어딘가 무표정한 얼굴에서는 그것 역시 연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무엇이 진심이고 무엇이 거짓일까. 고혜란이라는 인물은 ‘미스티’한 느낌 그 자체를 보여준다. 진심으로 얘기하는 것 같지만 필요하면 누구에게도 거짓을 말할 것만 같은 성공에 대한 강박을 가진 인물이 그이기 때문이다. 아주 격이 있어 보이지만 자신의 앵커 자리를 노리는 한지원 기자(진기주)가 케빈 리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갖는 걸 몰래 사진으로 찍어 몰아내는 술수에도 능한 인물이다. 

<미스티>라는 드라마는 그래서 이 미스터리한 속내를 좀체 드러내지 않는 고혜란이라는 인물이 온전히 이끌어가는 원 탑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고혜란을 연기하는 김남주라는 배우의 속을 알 수 없으면서도 때론 속물적이고 때론 우아하기까지 하며 때론 걸크러시가 느껴질 정도의 통쾌한 면모까지 보여주는 다채롭고 섬세한 감정 연기가 놀랍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아마도 <미스티>의 고혜란이라는 인물은 이 작품의 동력이면서도 또한 김남주에게 역대급 연기를 끄집어낸 작품으로 기억되지 않을까.(사진:JTBC)

‘미스티’, 김남주 주변인물 모두가 용의자라는 건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는 방송국 앵커 고혜란(김남주)이 경찰서에서 차량 사고로 죽은 케빈 리(고준)에 대한 조사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죽은 케빈 리의 차 안에서 그의 브로치가 발견됐기 때문. 그래서 이야기는 고혜란이 지금 현재 방송국에서 ‘뉴스9’ 앵커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한지원(진기주) 기자와의 경쟁과, 이를 이용해 시청률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방송사가 방송 섭외 1순위가 된 케빈 리를 인터뷰하려 하면서 고혜란이 그와 다시 엮이게 된 사연, 그리고 그가 과거 고혜란이 버린 남자라는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그 과정에서 고혜란과 남편 강태욱(지진희)이 사실상 쇼윈도 부부로 살아가는 모습과, 케빈 리가 결혼한 서은주(전혜진)가 과거 고혜란과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결국 케빈 리의 죽음은 성공을 위해서라면 남편까지 이용하는 고혜란의 욕망의 질주와, 과거 버려졌던 상처로 복수의 일념으로 최고의 프로골퍼가 되어 돌아온 케빈 리가 그 욕망의 질주에 걸림돌이 되는 상황 사이에서 벌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만일 그 죽음이 단순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의 살인이라면 그 살인자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고혜란은 스스로 자신의 무고를 남편에게 호소하고 있지만, 성공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그의 그 말을 믿기는 쉽지 않다. 그의 남편 강태욱은 고혜란과 이혼까지 결심한 인물이지만 어딘지 여전히 그에 대한 애증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은근히 고혜란의 성공을 뒤에서 밀어주면서, 동시에 케빈 리가 은연중에 암시하는 고혜란과의 관계에 분노한다. 이런 점이 어쩌면 케빈 리의 죽음에 그가 관여되었을 수도 있다는 심증을 갖게 만든다. 

그렇지만 용의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사실상 고혜란과 케빈 리 사이에 얽혀 있는 모든 인물들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케빈 리의 아내인 서은주는 성공한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감지하고 있다. 그래서 케빈 리에게 아이를 갖자고 하지만 남편은 아이에는 별 관심이 없다. 실제로 아이를 갖게 된 서은주는 고혜란 앞에서 묘한 열등감을 느끼고 한지원과 또 고혜란과도 남편이 관계를 맺고 있고 맺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쩌면 그가 케빈 리의 살해 용의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드는 이유다. 

한지원은 고혜란과의 앵커직을 두고 벌어진 대결에서 무참히 무너져버린 인물이다. 그래서 케빈 리와 불륜관계를 맺는 것 또한 어떤 면에서는 고혜란과의 또 다른 대결로서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물론 한지원은 직접적인 케빈 리 살해 용의자라기보다는 이런 일들을 조장해내 고혜란을 곤경에 빠뜨리는 걸 더 목적으로 했을 수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심이 가는 또 한 명의 인물은 감옥에서 출소일이 임박하면 사고를 쳐서 형량을 늘려가는 미스터리한 수감자 하명우(임태경)다. 그는 아직까지 고혜란과 어떤 식으로 얽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과거 고혜란에게 자신은 감옥에 있을 테니 너는 앞만 보고 나아가라고 말했던 인물이다. 만일 고혜란의 앞길에 어떤 장애물이 생겼다면 그걸 제거해줄 수 있는 인물일 수도 있다는 것. 그 역시 케빈 리의 죽음과 연관된 뉘앙스를 주는 이유다. 

결국 <미스티>는 케빈 리라는 한 프로골퍼의 죽음과 고혜란이 살해용의자로 지목되는 가운데, 그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저마다 가진 욕망들이 드러나는 드라마다. 겉으로는 ‘격정멜로’라는 장르적 틀로 위장하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살인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욕망들의 충돌을 다루고 있는 것. 

어쩌면 우리가 흔히 신문 사회면에서 발견하는 살인사건들은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욕망과 좌절, 분노 같은 것들이 숨겨져 있을 게다. <미스티>는 고혜란이라는 인물의 폭주와 그의 걸림돌로 등장한 케빈 리라는 인물의 죽음으로 현대인들이 갖는 욕망을 해부한다. 살인사건의 진실을 따라가다 보면 그 안에서 많은 이들의 욕망들이 어떻게 부딪치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욕망들의 부딪침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단면을 말해주는 것일 지도 모른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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