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다양한 차원을 보여준 '별을 따다줘'

멜로드라마가 사랑을 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별을 따다줘'처럼 사랑의 다양한 차원을 담는 것은 이색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별을 따다줘'의 기본적인 뼈대는 진빨강(최정원)과 원강하(김지훈)의 사랑이지만, 이 뼈대만 본다면 이 드라마의 많은 살점들을 놓치게 된다.

먼저 진빨강의 동생들이 보여주는 동심어린 사랑이 그 첫 번째다. 사실 이 동심은 '있으나 마나 미스 진'을 정신 차리게 만든 사랑의 실체이자, '마음이라는 것 자체가 없이 살아온' 원강하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한 장본인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그녀에게 옹알이를 해준 막내 남이는 그녀에게 가족이 짐이 아니라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아무도 침입(?)을 허락하지 않고 요새처럼 벽을 쌓으며 살아온 원강하는 어느 날 갑자기 침대로 무단 침입한 파랑(진보근)이에 의해 무장해제된다.

이 누군가를 사랑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상황 속에 놓여있던 문제의 남녀는 바로 이 동심으로 인해 깨어나 비로소 사랑이란 것을 하게 된다. 진빨강은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자르며 난 이제 여자가 아니라고(아이들의 보호자라고) 선언하는 순간, 그녀는 비로소 사랑의 진짜 실체를 알게 되고, 이 도무지 눈치라고는 보지 않는 아이들의 무차별적인 들이댐을 귀찮지 않게 여길 즈음, 원강하는 마음을 열게 된다. 즉 이 둘의 사랑은 단지 남녀 간의 사랑의 귀결만으로 애초부터 귀결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밑바탕에는 좀 더 다른 차원의 사랑, 동심의 사랑 같은 것들이 깔려 있었다.

멜로가 깊어질 즈음, 등장하는 것이 형제애와 우정이다. 즉 원강하를 차지하려는 정재영(채영인)과 진빨강에게 자꾸만 마음이 가는 원준하(신동욱)로 인해 관계가 복잡하게 치달을 때, 원강하와 원준하의 형제애가 등장한다. 동생 없이는 살 수 없는 원강하와 늘 형의 것을 빼앗지 않고 살아가려는 착한 동생 원준하는, 진빨강을 사이에 두고 결국 두 사람의 형제애를 확인한다. 또한 원강하를 포기한 정재영은 늘 자신 옆에 있어준 원준하와의 우정을 확인한다. 실연을 당한 두 사람이 "우리 오랫동안 함께 술 마셔야겠지?"하고 나누는 대화 속에는 우정을 넘어서는 어떤 발전의 계기까지 감지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원강하와 원준하가 피가 섞이지 않은 배다른 형제라는 사실이다. 이 부분에서 다시 '별을 따다줘'의 사랑은 인간애로 확장된다. 늘 진빨강과 동생들의 할아버지로 주변에 서 있는 JK생명의 회장 (정국)이순재, 어딘지 덜 자란 듯 하지만 여전히 동심을 가진 채 진빨강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우태규(이켠), 그리고 마치 자기 일인 양 아낌없이 진빨강을 도와주는 한진주(박현숙)와 최은말(김지영). 이들은 피가 섞이지는 않았지만 혈연관계 이상의 유사가족을 형성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따뜻한 정은 이 드라마를 단지 멜로드라마의 사랑타령 그 이상으로 보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별을 따다줘'가 우리에게 따다준 것은 바로 이 다양한 차원의 사랑이다. 조금은 투박하고 조금은 트렌디한 느낌을 주면서도 우리가 기꺼이 이 드라마에 '착한 드라마'라는 수식어를 아끼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 다양한 사랑들이 드라마 곳곳에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가족드라마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금 우리네 가족드라마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가족드라마는 우리 드라마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오랜 세월 대중과 함께 해온 드라마 장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가족드라마는 본래 이 장르가 추구하는 가족애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다. '소문난 칠공주'와 '조강지처 클럽'을 통해 파괴되어 가는 가족의 틀을 극단으로까지 끌고 가 보여주면서 자극적인 가족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준 문영남 작가는 '수상한 삼형제'로 확고한 위치를 확보했다. 지금 이 드라마는 35.4%(AGB닐슨 자료)의 시청률로 전체 주간시청률 1위에 올라있다.

한편 일일 가족드라마로 시청률 장기집권(?)을 해온 KBS 일일드라마 역시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너는 내 운명'이 막장드라마라는 오명을 얻은데 이어, 종영한 '다함께 차차차' 역시 배배 꼬인 관계와 지나치게 질질 끄는 드라마 진행으로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의 대열에 들어갔다. 이 드라마의 이런 자극에만 치중하는 경향 때문일까. 그럼에도 종영하는 시점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33.5%로 전체 주간시청률 2위를 기록했다.

'천만번 사랑해'는 대리모라는 설정에, 자신이 준 자식이 배우자의 형의 자식이라는 거의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우연적 상황을 통해 신파적으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 드라마는 자식을 얻기 위해 첫째 며느리에게는 대리모를 강요하고, 둘째 며느리가 그 대리모를 한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된 시어머니가 그녀를 내쫓는 패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며느리 수난사라는 설정은 작금에는 현실성이 거의 없는 이야기로, 가족드라마의 퇴행 현상을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가족드라마의 시청률은 전체 4위인 25.9%에 올라 있다.

어째서 가족드라마들이 과거의 훈훈한 가족 이야기의 범주를 지키지 못하고 파국적인 이야기로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결국은 시청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비교적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훈훈한 가족애를 다루면서도 시청률 최고를 차지하던 시대가 있었으니까. 중요한 것은 드라마를 보는 시청층의 눈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한류의 위상을 통해 미드와 일드 같은 선진적인 드라마와 접촉하면서, 우리 드라마들은 그간 실험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진화의 길을 모색해왔다. 하지만 유독 가족드라마는 그 자리에 멈춰서 있었다. 왜? 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정적인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가족드라마가 변화하지 않고 머문다는 것은 그 자체로 퇴행적인 양상을 예고하는 길이다. 흐르지 않는 물이 썩듯이 확장의 길이 아닌 과거의 틀에 만족하던 가족드라마는 결국 가족애라는 끈끈한 힘을 자극을 위해 이용하기 시작했다. 막장의 탄생이다. 가족 복수극의 유행이다. 이처럼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 가족드라마가 막장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이 장르가 가진 독특한 특성에서 비롯한다.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갈등을 근간으로 하는데, 가족드라마의 갈등은 가족 간에 벌어지기 때문에 분명, 윤리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싸우다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달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막장드라마는 이 윤리의 선을 넘어섬으로서 자극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족드라마가 갈 길은 결국 이것밖에 없을까. 그렇지 않다. 최근 몇몇 드라마들이 가족드라마의 또 다른 길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작년에 등장해 호평은 물론 시청률까지 최고를 기록한 '찬란한 유산'이 대표적이다. 이 가족드라마는 전형적인 가족의 틀을 갖고 있으면서도 가족애를 넘어서는 인간애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유산을 자식이 아닌 타인에게 준다는 설정은 혈연과 가족의 고리를 넘어선다. 이것은 최근 '그대 웃어요'나 '별을 따다줘(물론 멜로드라마 성격이 강하지만 그 안에 가족의 형태에 있어서)' 같은 작품으로 그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타인이지만 가족처럼 살아가는 그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가족드라마의 확장으로 보인다. 가족에서 유사가족으로의 확장.

가족드라마는 지금, 막장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유사가족이라는 인간애로 확장될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 있다. 물론 이도 저도 아닌 전통적인 가족드라마의 형태도 지속적으로 등장할 것이지만, 그것이 현재적인 관점에서 과거만큼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진화를 꿈꾸지 않는 한, 가족드라마가 갈 길은 상투적인 보수적 코드의 반복이거나, 파국적인 가족드라마의 윤리적 탈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확장으로의 길을 모색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대 웃어요'나 '별을 따다줘' 같은 드라마가 주목되는 이유는 그 가족의 범주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세상에 대한 일침, '별을 따다줘'

거침없이 상승하는 '별을 따다줘'의 그 힘은 어디서 나올까. 부모가 죽고 남겨진 다섯 동생들과 함께 거리로 나앉게 된 진빨강(최정원)의 그 눈물겨운 이야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가 보여주는 성장스토리 때문일까. 동생들과 함께 냉혈한 변호사 원강하(김지훈)의 집의 식모로 들어와 벌어지는 현대판 신데렐라 이야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기묘한 동거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이 주는 유쾌한 웃음 때문일까.

아마도 이 모든 요소들이 이 착한 드라마의 원동력일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주는 진짜 묘미는 다른 곳에 있다. 냉혈한 원강하로 대변되는 어른들의 세상에 맞서는 '어린 아이 눈빛 공격(?)'이 그것이다. 자신의 영역에 그 누구도 들여놓지 않았던 원강하가 진빨강과 그 동생들을 조금씩 허락하게 된 것은, 그 아무런 사심 없는 아이의 눈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저씨가 제일 좋아요"하고 말하는 진파랑(천보근)의 그 순수한 눈은 원강하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낸다.

이 드라마가 현실적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동화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거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비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즉 이 드라마에는 어른과 아이(아이 같은 마음을 가진 인물들)가 서로 대립하고 있다. 진빨강에게 늘 카드를 내주고 돈을 꾸어주면서도 오히려 그녀를 더 걱정하는 한진주(박현숙)나, 그녀와 함께 빨강을 도와주는 최은말(김지영)은 어른이지만 아이의 마음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다. 또 어딘지 부족한 듯 보이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우태규(이켠) 역시 덜 자란 아이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늘 냉정한 원강하를 비롯하여, 자신의 욕망에만 사로잡혀 있는 JK생명의 사장 정인구(김규철)와 그 아내 이민경(정애리), 그리고 그 딸인 정재영(채영인) 같은 인물들은 어른들의 표상이다. 그들은 물질적인 욕망에 빠져 사람을 보지 못하게 된 인물들로, 순수한 아이 같은 마음들을 견딜 수 없어 한다. 그것이 이미 어른이 되어 잃어버린 자신들의 순수했던 마음을 자꾸 반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원강하는 어느 날 불쑥 자신에게 찾아온 그 순수한 아이 같은 마음 때문에 흔들린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어딘지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괜스레 런닝머신 위에 올라 자신을 학대하는 그는, 조금씩 아이들에게 마음을 열어간다. 진빨강은 어른흉내를 내던 철없던 캐릭터. 그런 그녀는 동생들을 통해 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을 되찾고, 그것을 힘으로 다시 냉혹한 사회에 설 수 있게 된다. 진빨강과 원강하가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는 그 과정 역시 어른들의 세상에서 아이들의 순수함을 찾아가는 그 과정으로 보인다.

흔히들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것이 자식들의 눈이라고 한다. 이 드라마는 그것의 확장판으로서 아이들의 무섭고도(?)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본다. 이것은 동화의 힘이다. 그 순수한 세계를 읽을 때마다 나이든 우리가 현실 속에서도 자꾸만 잃어버렸던 어떤 것을 찾게 되는 것은 그 힘이 우리 마음을 흔들어놓기 때문이다. 참으로 지긋지긋한 어른들의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동화를 꿈꾸는지도 모르겠다. '별을 따다줘', 이 아이 같은 제목을 가진 드라마가 힘을 발하는 것은 거꾸로 이 각박한 세상의 어른스러움을 말해주는 건 아닐까.

약자에 대한 편견을 깨는 착한 드라마, '별을 따다줘'

“별을 따다준다”는 말은 언뜻 듣기엔 유치하고 상투적으로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이 말을 늘 상투적으로만 사용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별을 따다줘’라는 드라마가 이 말을 다시 시청자들에게 건네는 방식은 자못 도전적이다. 우리가 상투로 생각하던 그 말에 대한 작가의 동심 같은 순수한 진정성이 절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별을 따다줘”라는 말을 유치하게 여기는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린 시청자들에게, 그 말이 본래는 감동적인 것이라는 걸 알게 해주는 드라마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부모가 모두 하늘의 별이 되어버리고 갑자기 혹처럼 달리게 된 다섯 명의 동생들을 데리고 살아내야 하는 진빨강(최정원)은 절망적이다. 자기 하나도 건사하지 못할 정도로 철없이 살아온 그녀에게, 가장의 책무가 내려진 것. 집도 절도 없는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길거리를 떠돌다, 원강하(김지훈)의 집의 가정부로 아이들을 숨긴 채 들어온다. 회사에서는 꼴찌 보험설계사, 가정부로서도 빵점인 그녀는 아이들과의 생존을 위해 할 짓 안할 짓 다하지만 나아지는 건 없어 보인다.

아직 아기인 막내를 짐처럼 등에 업고, 벤치에 앉아 절망에 빠져있는 그녀. 그 때 마치 하늘의 별이 된 부모가 건네는 말에 대한 대답처럼 막내의 옹알이가 들려온다. “별을 따다줘.” 그것은 어쩌면 그녀의 마음이 만들어낸 환청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하지 않은 그 옹알이를 듣는 순간, 진빨강은 절망을 뚫고 올라오는 희망의 빛을 보게 된다. 어찌 현실에서 별을 따다 줄 수 있겠냐마는 그 말은 진빨강의 마음 속에 있던 짐을 희망으로 바꿔버린다. 부양해야할 짐으로만 생각해왔던 아이들은 이제 그녀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그래 저 별 다 따다 줄께!”하고 진빨강은 소리친다.

‘별을 따다줘’는 짐처럼 거치적거리게 생각되던 가족이라는 존재가 바로 자신이 살아가는 힘의 원천임을 말해주는 드라마다. 남겨진 다섯 명의 아이들은 그렇게 먼저 진빨강의 마음 속으로 들어와 그녀를 바꾸어놓는다. 남자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면서 친구의 등이나 쳐먹던(?) 그녀는 달라진다. 살아가야할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타인(혹은 타인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을 가족처럼 대하기 시작하면서 자신만을 생각하며 물기 없이 살아가던 그녀의 삶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아이들이 바꿔놓는 존재가 진빨강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들은 그 스스로 주변에 벽을 치고 살아가는 원강하의 영역으로 자꾸만 침범해 들어온다. 원강하의 집은 피도 눈물도 없는 그의 마음을 똑같이 그려낸다. 그는 가정부로 들어온 진빨강에게 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어야 하고, 음식도 입맛에 정확히 맞춰야 하며, 자신이 있는 이층방에는 절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투명인간처럼 일하라”고 말한다. 그러니 그 집의 말끔함은 원강하의 무미건조한 삶을 그대로 담아 보여준다.

그의 집으로 숨어들어온 아이들은 그러니까 그의 마음 속으로 숨어들어온 존재들이나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어느 날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몽유병 증세가 있는 아이 진파랑(천보근)이 자신의 침대에 들어와 자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 속으로 조금씩 스며든다. 그러면서 그 마음은 조금씩 열린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 속으로 불쑥 들어온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원강하는 그 침범이 싫지만은 않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게 된다.

이 드라마는 힘겨운 상황에 처한 이들을 보면 누구나 갖게 마련인 ‘측은지심’을 말한다. 소파에서 떨어지려 하는 아이를 보며 어떻게 지나칠 수 있으랴. 쓰러지려는 막내를 껴안아 올리고 우는 아이를 본능적으로 달래기 시작하는 원강하처럼, 드라마는 이 힘겨운 삶에 처한 진빨강을 향해 손을 내밀기 시작한다. 같은 집에 살아가는 원강하의 동생 원준하(신동욱)와 조카 우태규(이켠)는 그녀와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형을 설득하려 한다. 회사의 팀장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에게 기회를 주려한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그녀가 짐이라 생각했던 아이들이 거꾸로 그녀에게 제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아이들을 위해 “별을 따다주겠다”는 그 마음이 그녀를 변화시킨 것. 이것은 사회가 흔히 보여주는 약자에 대한 편견을 뒤집는다. 약자라 하면 늘 돌봐 주어야 할 존재로서만 여기지만, 사실 그들이 있어 우리가 살아간다는 생각을 우리는 하지 않는다. ‘별을 따다줘’는 이 이야기를 웃음의 코드로 유쾌하게 우리에게 전하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과 ‘가문의 영광’을 쓴 정지우 작가의 작품들과 궤를 같이 한다. 정지우 작가의 작품들은 주로 유쾌한 멜로를 다루지만 그건 사랑이라기보다는 정, 어쩌면 인간애에 더 가깝게 그려진다. 그 안에는 부족한 듯 보이는 인간 군상들이 등장하지만 작가는 그들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 변화 가능성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정지우 작가의 작품을 훈훈하게 만드는 이유다. ‘별을 따다줘’는 그 훈훈함이 무미건조해져버린 우리네 마음까지 녹여주는 착한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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