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딩 인생’, 이건 교육인가 학대인가 혹은 육아인가 전쟁인가

라이딩 인생

“자 엄마표 롤러코스터 출발한다! 꽉 잡아 홍서윤.” 운동화로 갈아신은 정은(전혜진)은 딸 서윤이(김사랑)를 안고 달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라이딩을 해주던 시터가 일이 있어 아이를 학원까지 보내주지 못하게 됐다고 하자 점심도 못먹고 달려온 정은이다. 반 승급이 달린 스피치대회를 앞두고 있어 딸을 영어 수업 시간에 늦지 않게 하기 위해 그녀는 달린다. 평상시라면 혼자서도 못달렸을 거리를 그것도 경사진 계단까지 쉬지 않고 달려 겨우 학원에 도착한다. 그렇게 딸을 데려다주고 차로 돌아가는 정은은 그 경사진 계단 위에서 말한다. “아깐 여길 어떻게 뛴거야?”

 

ENA 월화드라마 <라이딩 인생>은 이른바 ‘대치맘’들의 치열한 자식교육 경쟁, 아니 전쟁을 다룬다. 물론 정은은 대치맘처럼 보이지 않는다. 대치맘이 되고 싶은 워킹맘일 뿐. 아이를 키워본 엄마들이라면 안다. 일하면서 육아를 하는 것으로 대치맘, 아니 그같이 자식교육에 열성인 엄마들이 되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래서 워킹맘들은 사실 학부모 모임에 가서도 자식교육에만 전담하는 엄마들 사이에서 겉돌기 마련이다. 정은은 현실적으로 돈을 벌어야 서윤이 학원도 보내고 시터도 고용할 수 있어 일을 해야만 하는 워킹맘이지만 마음은 육아에서도 대치맘처럼 완벽하고 싶어한다. 

 

일도 육아도 다 해야하는 워킹맘이니, 남편이 육아에 동참안하는 건 아닌가 싶지만 정은의 남편 재만(전석호)은 그런 인물이 아니다. 돈을 잘 못벌어도 서윤을 위해 뛰고 또 뛰는 정은을 어떻게든 도와주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다. 하다못해 제사 상차림도 자신이 먼저 나서서 다 챙기고 뒤늦게 온 아내를 두둔하는 그런 인물. 또 서윤도 이런 엄마의 교육열에 그다지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 착한 아이다. 학원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어하는데 그건 엄마가 기뻐할 것 같아서라고 말하는 아이. 하지만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아 고민한다. 

 

진짜 대치맘은 송호경(박보경)과 그 주변에 모여드는 엄마들이다. 토미로 불리는 아들이 늘 학원성적 1등이라 예비초 맘들은 모두 그녀 주변에 모여든다. 하지만 이들 대치맘의 아이들은 이제 겨우 7세로 초등학교도 가지 않은 나이에 이런 생활이 너무 가혹하다. 그래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불안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정은의 엄마 지아(조민수)에게 그림 수업을 받는 수찬이는 그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과호흡으로 쓰러지기도 하고, 호경의 아들 토미도 불안증세로 손톱을 물어뜯는다. 

 

라이딩을 대신 해줄 시터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 전전긍긍하는 정은 같은 워킹맘도 불안과 스트레스에 쩔어 살아간다. 갑자기 시터가 사라지자 어쩔 수 없이 엄마 지아에게 부탁을 하는데, 학원이 늦을까 걱정되어(그러면 엄마가 실망할 걸 알기에) 혼자 택시를 타고 학원에 가다가 길을 잃은 지아는 다행히 경찰의 도움으로 정은의 품에 안긴다. 아이를 잃어버릴 수도 있었을 사건 속에서 정은의 절실함은 이 학원 경쟁이 경쟁의 차원을 넘은 전쟁이라는 걸 보여준다. 드라마가 순식간에 스릴러 같은 긴박감을 줄 정도니 말이다. 

 

이 정도면 이 요지경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건 상식적인 일이다. 그래서 이 모두가 앞뒤 보지 않고 아이들을 학원 경쟁에 몰아넣고 이 학원 저 학원 ‘라이딩’을 하는 인생이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라이딩 인생>의 지아는 이 상식적인 시선으로 대치맘들의 요지경에 일침을 가하는 인물이다. 수찬이가 과호흡으로 쓰러진 이후에도 “학원가자”고 아이의 등을 떠미는 엄마에게 그녀는 말한다. “자꾸 이러시면 아동학대로 신고할 수밖에 없어요.” 

 

이건 교육인가 학대인가. 아니 육아라고 이름 붙여져 있지만 이건 사실상 전쟁이 아닐까. <라이딩 인생>은 정은의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저 아이들의 교육에 전쟁하듯 뛰고 있는 엄마들의 삶을 통해 이런 교육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걸 꼬집는다. 이른바 대치맘이라 불리는 특정 엄마들의 치맛바람을 비판한다기보다는 왜 이들이 이렇게 극한까지 ‘라이딩’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우리 사회의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상식을 뛰어넘는 절벽 끝으로 몰아세우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학대에 가까운 일들을 교육이라며 당하고 있는 걸까. 

 

최근 대치맘이 화제다. 개그우먼 이수지의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에서 ‘휴먼페이크다큐 자식이 좋다’라는 코너에 이수지가 제이미맘으로 나와 보여주는 패러디는 예상 외로 뜨거운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엉뚱하게 ‘한가인 저격’으로 불똥이 튀기도 했고, 대치맘들의 교복이라 불리는 패딩을 입고 나와 풍자의 대상이 되면서 중고거래 플랫폼에 매물이 쏟아지는 기현상이 생겨나기도 했다. 대치맘들이 이 화제로 인해 패딩 대신 밍크코트를 입게 됐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제이미맘은 바로 그 다음편에 밍크코트를 입고 나와 빵터지는 웃음을 주기도 했다. 

 

아이를 수학학원에 보내고 온다는 제이미맘에게 피디가 이제 겨우 네 살 아니냐고 묻자 그녀는 아이에게 까까를 줬더니 그 수를 세고 왜 이렇게 적게 주냐고 했다며 그건 “영재적인 모먼트”라고 말한다. 또 <오징어 게임>이 인기라 제기차기 선생님을 구하러 간다는 이야기도 한다. 이건 빵 터지는 패러디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실에서 엇나간 이야기는 아니다. 실제로 엄마들은 아이가 뭘 해도 ‘영재 아닐까’ 하는 착각 속에 스스로를 몰아넣고 모두가 인기있는 놀이에도 아이가 겉돌지 않기 위해 학원을 보내는 게 일상적인 현실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치맘을 넘어 이제는 ‘대치파파’까지 등장할 정도로 이 이슈는 우리 안의 어떤 버튼을 누른다. 그건 비상식적인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위해서라면 더한 일도 하게 되는 대치맘에 대해 그저 비판적 관점만이 아닌 선망의 시선을 같이 갖는 양가감정 속에 우리가 빠져 있어서다. 우스우면서도 눈물나고 미친 것 아니냐고 말하면서도 그런 게 있냐고 관심이 쏠리는 이 감정은, 저 아이들이 손톱을 물어 뜯을 정도로 겪고 있는 혼란과 정서적 불안만큼 부모들도 똑같은 불안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다. 

 

요는 대치맘이 누굴 저격했는가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거야 말로 이 복잡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사태를 직시하기보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내세움으로써 간단히 외면하려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웃음 뒤에 존재하는 기괴함을 애써 봐야하고, 저 엄마들을 전전긍긍하게 하는 이면의 너무나 폭력적이면서도 방치되어 있는 교육 정책들을 봐야한다. 그게 아니면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 ‘라이딩 인생’이라는 지옥 속에서 살아가게 될 테니 말이다. (사진:ENA)

‘공부가 머니?’, 사교육을 다루는 이 프로그램의 양면성

 

MBC 예능 <공부가 머니?>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첫 방송에 나온 임호네 가족의 이야기는 충격과 안타까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대치동에 사는 임호네 아이들 삼남매가 다니는 학원 수만 34개.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수치지만, 아이들 엄마는 그것이 그 곳에서는 일상사라고 말한다. 대치동에서는 어느 집에서나 다 그렇게 한다는 것이고, 자신은 그걸 겉핥기식으로 하는 정도라는 것.

 

이게 사실이라면 대치동이라는 곳이 얼마나 비정상적인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아이들은 방과 후 학원을 전전하고, 집에서도 계속 찾아오는 방문교사들과 학습지를 풀고 밤늦게까지 숙제를 해야 했다. 숙제가 많은 날에는 12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잠을 잘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나이는 이제 고작 9살, 7살, 6살이었다.

 

한창 뛰어 놀 나이지만 주말에도 거의 집에서 숙제를 하며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에게 스트레스가 없을 수 없었다. 놀라운 건 둘째 아이가 수학에 재능을 보여 선행학습을 하고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 수학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아이는 아는 문제를 일부러 틀리기도 했다. 빨리 숙제를 끝내면 연달아 또 다른 숙제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잘 하지만 아이가 수학을 제일 싫어하게 된 건, 재능이 있다는 걸 알고 수학공부를 더 집중해서 시킨 탓이 컸다.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 노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 대신 아이들은 항상 책상 앞에 앉아 숙제를 하고 있었다. 첫째 아이는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싫어하는 수학을 할 때는 몹시도 지겨워했고, 쉴 틈 없이 찾아오는 방문교사 때문에 저녁밥도 제대로 먹을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첫째로서 동생들을 챙겨야 한다는 마음이 강해, 힘든 상황을 속으로만 삭이며 감내하고 있었다. 아동심리전문가는 이 아이가 거의 엄마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관찰카메라를 통해 아이들의 이런 충격적인 모습을 보고, 전문가들은 저마다의 솔루션을 내놨다. 아동심리전문가 양소영 원장은 아이들의 성향을 자세히 파악해 알려줬고, 그들이 겪고 있는 스트레스를 얘기해줬다. 자녀를 명문대 5곳 동시 수시합격 시켰다는 교육 컨설턴트 최성현은 34개의 학원을 11개로 줄이며 교육비를 65%나 줄이는 시간표가 제공됐다.

 

하지만 솔루션 과정에서 선행학습에 대해서 전 서울대 입학사정관 진동섭과 최성현은 의견 대립이 있었다. 진동섭은 선행학습이 결국은 아무 소용도 없다고 주장했고, 최성현은 그래도 결국은 상대적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선행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런 의견충돌은 <공부가 머니?>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양면성을 잘 드러내는 부분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마치 사교육이 문제라는 것처럼 관찰카메라를 통해 아이들이 처한 어려움을 고발하는 듯 보였지만, 또한 한 편으로는 그 사교육이 필요하다는 걸 드러내고 있었다.

 

대치동에서는 다 저렇게 한다는 것을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또한 그런 남다른 교육열을 오히려 드러내는 것처럼도 보인다는 것. 자녀를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다루면서 그 목표가 오로지 대학으로만 다루는 한계도 보였다. 공부는 성적을 위한 어떤 것이고, 그것이 오로지 대학을 가기 위한 것이라는 걸 전제한 듯한 프로그램의 방향성은 결국은 사교육을 부추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임호의 아내는 대치동 상황에서 너무나 불안해하고 있었다. 모두가 어린 아이 때부터 학원을 다니고 거의 노는 시간 없이 숙제를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 모습은 너무나 가혹해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그렇게 몰아세우게 된 건 엄마의 불안감 때문이었다. <공부가 머니?>라는 프로그램은 과연 이런 불안감을 제거해주고 있을까. 혹여나 이 엄마가 대치동의 상황 속에 빠져 불안감을 느끼게 된 것처럼, 시청자들도 이 프로그램을 보며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건 아닐까. <공부가 머니?>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사진:MBC)

'SKY 캐슬', 김정난이 실감나게 보여준 사교육 지옥의 비극

이게 과연 2회가 맞나 싶다. 거의 엔딩에 가까운 몰입감이다. 새로 시작한 JTBC 금토드라마 <SKY 캐슬> 첫 회에 아들이 서울대 의대에 합격했다며 행복에 겨워했던 이명주(김정난)는 2회 만에 결국 자살을 하는 충격적인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이유는 “당신 아들로 사는 게 지옥”이라며 집을 나가버린 그의 아들 박영재(송건희) 때문이었다. 모든 걸 다 가진 듯 보였던 박영재였지만 그는 사실 지옥에서 살고 있었다. 입시지옥. 사교육 지옥.

서울대 의대 합격 소식에 SKY 캐슬에 사는 자식 둔 부모들은 모두가 그 영재의 포트폴리오를 궁금해 했다. 그것만 따르면 서울대를 가는 건 떼놓은 당상처럼 여기는 그들은, 축하파티를 빙자해 그 포트폴리오를 알아내기 위해 이명주에게 잘 보이려 했다. 하지만 그걸 알려주지 않고 대신 더 확실한 방법이 있다고 말하는 이명주는 김주영(김서형)이라는 입시 코디네이터를 소개해줬고, 치열한 경쟁 속에 한서진(염정아)은 그 코디네이터의 낙점을 받았다.

하지만 이처럼 화려해 보이는 저들의 삶은 첫 회 마지막에 이명주의 자살로 그 실체가 드러났다. 2회가 보여준 자살의 이유는 그 화려함 이면에 숨겨진 입시지옥의 실상이었다. ‘그 놈의 백점. 내가 죽어버려야 속이 시원할까. 커터칼로 그어버리고 싶다. 이 집에서 반드시 나갈 거다. 그래야 복수할 수 있으니까. 나를 사랑한다고? 솔직히 자랑거리가 필요하다고 말해라. 저런 것들이 내 부모라는 게 끔찍하다.’ 영재가 배낭여행을 간다며 남겨놓은 태블릿PC 안에는 부모마저 ‘저런 것들’이라 부를 정도로 지옥의 삶을 견뎌온 영재의 속내가 담겨있었다.

갑작스런 이명주의 자살의 이유가 궁금해진 한서진은 영재의 코디네이터였고 자신의 딸 강예서(김혜윤)의 코디네이터가 된 김주영이 의심스러웠다. 김주영의 치밀한 면모는 강예서의 방의 책상 위치, 조명, 습도까지 공부에 최적화된 걸 알려주는 대목에서 드러난 바 있다. 하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걸 한서진은 알게 되고 결국 그를 찾아가 뺨을 올려 부쳤다. 도대체 아이를 서울대 의대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어떤 짓까지 김주영이 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SKY 캐슬>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SKY로 불리는 명문대에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해 ‘저들만의 세계’에서 갖가지 일들을 벌이는 이른바 부유층의 이면을 소재로 삼고 있다. 그래서 첫 회가 보여준 캐슬로 상정되는 ‘저들만의 세계’는 보기에 불편할 정도였다. 명문대를 가기 위해서는 실력만이 아니라 그만한 재력과 정보력이 따라줘야 가능하다는 걸 부지불식간에 드라마가 보여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과 동시에 시청자들로서는 ‘저들만의 세계’가 궁금해진다. 아마도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저들이 자식들을 명문대에 들여보내기 위해 무슨 일들까지 하는지 궁금한 건 당연한 일일 게다. 불쾌하면서도 들여다보게 되는 ‘SKY 캐슬’이라는 세계. 하지만 그 불쾌함이 의외의 방향으로 틀어지며 판타지가 산산조각 나는 상황은 동시에 시원함도 안긴다. 하지 말아야 할 짓까지 벌이는 과도한 집착의 파국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SKY 캐슬>은 시작 전부터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들이 있었다. 2007년 방영됐던 SBS <강남엄마 따라잡기>나 최근 방영됐던 SBS <시크릿 마더> 같은 사교육 열풍을 소재로 다룬 드라마들이나, JTBC <품위 있는 그녀>처럼 부유층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드라마가 그것이다. 하지만 막상 시작한 <SKY 캐슬>은 우리가 어느 정도 떠올렸던 드라마의 전개와는 확연히 다른 빠른 반전을 보여주고 있다.

입시 지옥이라는 우리네 교육 현실이 가진 비극은 일찌감치 이명주의 파국으로 드러났고, 이후 그 지옥이 가진 실체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이명주를 연기한 김정난은 그런 점에서 보면 이 드라마가 가진 이야기의 색채를 단 2회 만에 집중시키게 만든 탁월한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된다. 화려한 욕망과 절망적인 파국. 김정난이 놀라운 연기력으로 보여준 그 두 세계가 이 드라마가 가진 불편해도 보게 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사진:JTBC)

학교의 재발견, '학교란 무엇인가'

선생님이 울었다. 아니 참회했다.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했는데 그 열정이 지나쳤던 지 선생님의 입에서는 자신도 좀 심하다 생각되는 그런 말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좋은 선생이 되고자 용기 있게 자신의 수업을 공개하겠다고 나섰지만, '학교란 무엇인가'라는 다큐가 제안한 이 코칭 프로그램이 자신을 이토록 아프게 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선생님은 녹화된 자신의 수업을 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상처되는 말을 했는가를 깨닫고는 하염없이 울었다.

또 다른 선생님은 부정했다. 코칭을 해주는 교육전문가는 선생님에게 충격적인 말을 했다. 선생님의 수업에는 학생이 없다는 것이었다. 녹화된 영상에서 선생님은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팔짱을 낀 채 거리를 두고 있었다. 결국 코칭 프로그램을 그만 두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선생님은 그러나 며칠 후 교육전문가에게 SOS를 청했다. 다시 만난 교육전문가 앞에서 선생님은 말없이 울었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표현이 되지 않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자각은 변화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 동안의 고투 끝에 선생님들은 더 활기차게 아이들과 수업을 하고 있었다. 늘 조심조심 아이들을 배려하며 얘기하고 있었고, 아이들과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눈을 맞추기 위해 심지어 아이들 앞에 무릎을 꿇고 얘기를 하고 있었다. 비로소 아이들과 한 반에서 선생님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코칭 프로그램이 끝나는 날, 교육전문가는 이런 말을 했다. "모두에게 공통점이 있네요. 선생님들께서 조금 변하셨어요. 근데 그 결과로 우리 학생들의 모습이 많이 변했네요. 학생들 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변해야 된다는 것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 된 것 같습니다."

흔히들 학교는 위기라고 말한다. 그 위기의 원인을 혹자는 아이들에게서 찾고 혹자는 권위가 사라진 선생님에게서 찾고 또 혹자는 입시교육으로 인해 학원으로만 몰리는 현 교육 정책에서 찾는다. 모두가 누구누구의 탓을 할 때, 자신의 문제를 되돌아보는 이는 드물다. EBS가 교육대기획 10부작으로 제작한 '학교란 무엇인가'는 그런 점에서 의미 있는 교육 다큐멘터리다. 5부 '우리 선생님이 달라졌어요'는 이 다큐가 가진 접근방식을 잘 보여준다. 내부의 문제를 부정하지 않고 먼저 자각하고, 그런 후에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은 그 발견과 성장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어떤 드라마보다 더 감동적이다.

1,2부를 통해 보여주었던 학생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교육의 길로 인도하려 노력하고, 엇나가는 아이들조차 학교가 품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서는 선생님들의 노력과 헌신은 우리의 학교에 여전히 희망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3,4부에서 이우학교의 실험과 민족사관학교를 포함한 미국, 인도의 최고 고등학교를 소개하면서 어떤 교육의 대안을 보여준 다큐멘터리는, 5부에서 선생님의 변화를 촉구하고는, 6,7부를 통해 좀 더 구체적인 방법론으로서 칭찬의 역효과와 책읽기의 중요성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8,9부를 통해 이른바 상위 0.1%의 공부 방법을 소개하면서 우리네 사교육의 문제와 자기주도형 학습의 필요성을 강변한 후, 10부에서 서머힐 학교를 예로 들어 배움의 미래를 살펴보았다.

마치 우리 교육이 갖고 있는 문제들의 토탈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는 듯한 이 다큐는 바로 그 해법의 중심에 '학교'가 있다는 것을 재발견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아이들이 즐겁게 뛰놀고 공부하며 성장하는 곳이 학교라는 사실. 입시교육이 가져오는 그 잘못된 욕망들로 인해 공부가 왜곡되면서 차츰 학교라는 존재 또한 왜곡되어버렸고 그 속에서 지내는 선생님도 학생들도 그리고 학부모들도 왜곡된 교육의 틀 속에서 고통스러워했던 것이 아닌가. 이 다큐멘터리는 '학교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짐으로써 본연의 학교를 되찾아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다양한 실험과 설문조사 그리고 무엇보다 그 속에 실제로 담겨진 수많은 사례들이 깔끔한 연출로 정돈된 이 교육 다큐멘터리는 그래서 그저 하나의 TV 프로그램 그 이상을 담아낸다. 잘못된 길로 접어든 교육을 본래의 자리로 되돌리려는 노력과 변화의 흔적들이 그 속에는 그대로 녹아있다. 학교라는 공간 안에 숨 쉬며 살아가는 학생들과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들이 그동안 억눌리고 막혀있던 교육에 대해 소통하면서 실제로 변화해가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 다큐가 드라마보다 더 감동적인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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