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바이, 마마’, 귀신과의 삼각관계? 황당하지만 보게 만드는 힘은

 

죽었던 아내가 살아 돌아왔다? tvN 새 토일드라마 <하이바이 마마>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교통사고로 아이만을 살린 채 죽었던 차유리(김태희). 하지만 그는 한번 안아보지도 못했던 딸 서우(서우진) 곁을 떠나지 못한다. 그 충격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방황하던 남편 조강화(이규형)가 오민정(고보결)과 재혼을 했지만 차유리는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서우와 남편 강화 주변을 맴돈다.

 

사실 산 자를 사랑해 떠나지 못하는 귀신의 이야기는 너무 흔하다. 아주 옛날 <전설의 고향>의 그 많은 원혼들이 그랬고, 영화 <사랑과 영혼(1990)>이 큰 성공을 거둔 후 영혼 소재의 콘텐츠들이 많이도 쏟아져 나왔다. <귀신이 산다(2004)>나 <헬로우 고스트(2010)> 같은 공포가 아닌 코미디 휴먼드라마에 가까운 귀신 이야기들도 적지 않다.

 

<하이바이 마마> 역시 큰 범주에서 보면 이러한 귀신 이야기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 드라마에는 사람만큼 귀신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고, 그들은 공포를 주는 존재라기보다는 다만 죽었을 뿐 똑같은 인간적 감정을 가진 존재들로 그려진다. 그러니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가족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일 테니.

 

<하이바이 마마>의 첫 회는 그래서 다소 흔히 많이 봐왔던 귀신 이야기로 흐른 면이 있다. 죽어서도 딸을 걱정하는 엄마 차유리의 애절한 모성이 그것이다. 딸 주변을 맴돌았던 것 때문에 서우가 다른 귀신들을 보기 시작한다는 설정은 차유리를 더 절망적으로 만들고, 결국 신을 저주하기에 이른다. 조강화는 상처를 이겨내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게 아니라는 게 차츰 드러난다. 그는 트라우마 때문에 수술방에 들어가지 못하는 의사가 됐다.

 

다소 뻔했던 이야기는 그러나 2회에서 차유리의 신을 향한 저주가 엉뚱하게 49일 동안 육신을 가진 존재로 돌아오게 되면서 색다른 이야기를 변주하기 시작한다. 49일 간 자신이 본래 있던 자리(조강화의 아내이자 서우의 엄마)로 돌아가게 되면 다시 살아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게 된 것. 하지만 문제는 그 자리를 오민정이 이미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귀신(차유리)과 인간(오민정)이 조강화와 서우를 두고 벌이는 삼각관계가 그려진다.

 

다시 살아 돌아온 차유리를 본 조강화는 감정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죽었다 돌아왔다는 사실이 그저 기쁜 일일 수만은 없다. 차유리의 절친 고현정(신동미)이 말하듯 그건 무조건 기쁜 일이긴 하지만, 고현정의 남편 계근상(오의식)이 말하듯 새 가정을 꾸린 조강화에게 그 일은 대혼란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어서다.

 

우연히 서우의 어린이집에서 귀가 도우미로 오인되어 서우와 함께 귀가하는 차유리의 모습은 엄마의 딸에 대한 절절한 애정이 묻어나지만, 이미 죽었던 그가 나타나 아이의 손을 잡고 놀이터에서 노는 장면은 오민정의 관점에서 보면 거의 납치에 가까운 불안감을 줄 수밖에 없다. 그 중간에 놓인 조강화는 돌아온 아내를 본 듯한 기쁨과 그 복잡해진 감정 사이에서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하이바이 마마>는 왜 굳이 이런 귀신과의 삼각관계라는 다소 황당한 설정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사별이라는 우리가 언젠가는 겪게 되는 그 충격적인 경험을 통해 헤어지지 못하는 그 인간적인 아픔을 이해하면서도 결국은 헤어져야 살아갈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이바이 마마>라는 제목은 그래서 과연 차유리라는 귀신에서 사람으로 살아갈 49일을 얻은 존재가 아이에게 “하이”하고 만났지만 결국 “바이”하고 헤어질 수밖에 없는 그 순리를 말해주는 것만 같다. 물론 결과를 벌써부터 예측하는 건 섣부른 일이지만.(사진:tvN)

양다리 사이에서 <질투>는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은 삼각관계의 관점이 독특한 드라마였다. 즉 보통의 삼각관계라고 하면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주인공이고 제3의 인물이 그 사이를 방해하는 연적으로 등장하기 마련이지만, 이 드라마는 거꾸로 사랑하는 남녀를 옆에서 바라보며 아파하고 질투하는 제3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화신(조정석)이다.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3년 간 자신을 따라 다닐 때만 해도 그다지 관심이 없던 이화신이 표나리(공효진)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친구인 고정원(고경표)가 그녀와 좋아하는 사이가 되면서다. 자꾸만 그들이 눈에 밟히고 왠지 모르지만 가슴이 두근대고 아파오는 걸 느끼게 되면서 이화신은 홀로 먼발치서 친구와 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보며 가슴앓이를 한다. 흥미로운 건 이렇게 되자 시청자들의 마음이 이화신쪽으로 기울게 되었다는 점이다. 너무 가슴이 아파 아이처럼 투덜대고 지질하게 구는 그에게 연민과 동시에 귀여운 매력 같은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

 

하지만 이화신이 자신의 속내를 표나리와 고정원에게 들킨 후 본격적으로 구애를 하기 시작하고 결국은 친구와 주먹다짐까지 하다가 셋이 함께 사는 기묘한 동거까지 하게 되면서 표나리의 마음이 흔들린다. 무엇보다 고정원에게 다른 여자가 찾아오는 것에 대해서는 무감하던 그녀가 이화신이 혜원(서지혜)과 키스를 하고 가깝게 지내는 것에 대해서는 질투를 느낀다는 걸 알게 되고는 그녀 역시 자신의 사랑이 이화신을 향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렇게 되자 상황은 뒤집어진다. 이제 이화신을 향해 표나리가 애정을 갈구하게 되고, 표나리는 고정원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으며 그를 떠난다. 이화신과 표나리가 밀고 당기며 서로의 애정전선을 확인하고 있는 달달한 순간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서 시청자들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고정원에게 다시 기울어진다. 친구에게도 연인에게도 혼자 버림받은 그가 못내 눈에 밟히는 것이다.

 

패자의 입장에서 어떤 연민의 대상이 되면서 시청자들의 몰입을 만들었던 이화신이지만 이제 그 입장은 고정원이 갖게 됐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 쪽이 아쉬워지는 관계가 형성되면서 이 삼각관계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은 복잡하게 됐다. 물론 <질투의 화신>이라는 제목에 이미 적시되어 있듯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이화신일 수밖에 없지만, 그의 입장이 바뀌게 되면서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독특한 사랑(질투하며 사랑하는)의 주인공은 고정원쪽으로 옮겨가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드라마의 전개가 마지막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건 예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 이제 고정원과 이화신 모두가 꽤 괜찮은 인물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일이 다른 한쪽을 배제하는 불편함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는 결코 쉽게 해피엔딩에 도달할 수 없게 되었다. 어느 한쪽이 해피엔딩이면 다른 한쪽은 새드엔딩이 되니까.

 

이건 <질투의 화신>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딜레마지만 동시에 그건 이 독특한 드라마의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관점을 담아낸 사랑이 아니라 여러 관점들이 동시에 투영된 사랑. 그래서 균형 잡기가 어렵지만 그것은 어쩌면 진짜 사랑의 면면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얽힌 관계에서 완벽한 해피엔딩이 어디 있겠나. 우리가 봐왔던 무수한 해피엔딩 뒤에도 숨겨진 새드엔딩이 있었다는 걸 상기시켜주는 드라마라니

<질투의 화신> 조정석, 짠하고 찌질한데 웃기기까지

 

이 복합적인 감정을 뭐라 이야기해야 할까. 어찌 보면 짠하고 어찌 보면 찌질한데 또 객관적으로 그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웃음을 참을 수 없다. SBS <질투의 화신>이라는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감정 선은 이토록 복합적이다. 도대체 어떻게 희극과 비극이 이렇게 한데 어우러지는 게 가능할까.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표나리(공효진)를 사이에 두고 이화신(조정석)과 고정원(고경표)이 서로 다투는 장면은 우리가 흔히 멜로드라마의 삼각관계에서 봤던 그런 느낌이 아니다. 보통의 멜로드라마라면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할 수 없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이 진지하고 분위기 있는 모습들을 보여줬을 것이다. 하지만 <질투의 화신>에서 그런 분위기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이 다투는 장면은 찌질하고 좀스럽기 그지없다. 서로 자기가 더 사랑했다고 주장하고, 상대방에게 포기하라고 말한다. 심지어 빈정 상한 이화신은 길거리에서 고정원이 협찬해준 옷을 모두 벗어버리기까지 한다. 그건 마치 초등학생들 같다. 제대로 성숙한 성인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하지만 <질투의 화신>이 그리고 있는 이 삼각관계는 그렇게 찌질하고 좀스럽기 때문에 오히려 더 리얼하게 다가온다. 사실 삼각관계 속에서 누군가 멋진 말로 포기하고 그 꼬여버린 관계가 마치 운명처럼 포장되는 건 말 그대로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 일이 아닐까. 실제로 사랑이란 그렇게 질투하고 질시하고 심지어 다 큰 성인을 아이처럼 만들어버리는 것일 게다.

 

이화신과 고정원이 표나리를 두고 죽기 살기로 부딪치는 상황은 그래서 그걸 보는 입장에서는 웃음이 나지만 그들 당사자들에게는 실로 진지하다. 그 둘 사이에 나타나 무릎을 꿇고 둘 다 사랑하지 않겠다며 할머니가 될 때까지 혼자 살겠다고 말하는 표나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두 사람만큼 진지하지만 그 행동은 시청자들에게는 웃음이 터질 만큼 유치해 보인다.

 

서숙향 작가는 바로 이 지점,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될 때 심지어 유치한 아이처럼 되어버리는 그 순간을 포착해냈다. <질투의 화신>이라는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그래서 사랑을 멋진 말로 포장하기보다는 그건 질투의 다른 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그래서 이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는 그들의 과장된 행동들이 대책 없이 웃기고 짠해지면서도 리얼한 느낌을 준다. 사랑에 빠지게 되면 그런 말도 안 되는 행동들을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걸 드라마가 대놓고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의 변화와 소용돌이를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킨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조정석이라는 배우가 <질투의 화신>을 통해 새롭게 보이는 건 그래서다. 물론 그는 전작들에서도 섬세한 연기를 보여준 바 있지만, 이 작품은 그의 그런 연기 가능성들을 거의 남김없이 뽑아내 보여주고 있다. 그 딱 맞는 와이셔츠가 잘 어울리고 기자로서의 카리스마까지 느껴졌던 이화신이 한 여자에게 푹 빠져 친한 친구와 유치하게 다투고 길바닥에서 옷까지 훌훌 벗어버리다니. 그 엄청난 변화의 과정을 납득시킨 조정석의 진가가 새삼 놀랍게 다가온다

<굿와이프>의 쿨한 도발, 충분히 의미 있는 까닭

 

tvN <굿와이프>는 여러모로 도발적이다.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하나는 법정극을 다루지만 우리네 법정드라마들이 하듯 법 정의를 내놓고 기치로 내걸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혜경(전도연)은 새로 로펌에 들어와 변호사 일을 하면서 의뢰인과의 거리를 두지 않고 마치 자신의 일처럼 감정이입하는 모습을 보이다 로펌 대표인 서명희(김서형)로부터 한 소리를 듣는다. 변호사의 일은 의뢰인을 변호하는 것이지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굿와이프(사진출처:tvN)'

이 대단히 쿨하다 못해 비정하게까지 여겨지는 법에 대한 태도는 <굿와이프>라는 법정드라마의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낸다. 우리네 드라마에서 변호인들이 대부분 약자들의 편에 서서 법 정의를 실현해내는 소시민들의 영웅처럼 그려지고 있다면, <굿와이프>에서 변호사들은 프로들이다. 김혜경과 계속 맞닥뜨리는 상대편 변호사 손동욱(유재명)은 이기기 위해서는 별의 별 꼼수까지 다 쓰지만 결과가 나오고 나서는 마치 스포츠라도 한 판 한 듯 쿨하게 그녀와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이것은 우리네 법정드라마에서 법 정의를 둘러싸고 선과 악이 극명히 대립하는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다. 선도 없고 악도 없다. 다만 의뢰인에 따라 결정되는 직업적인 역할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기거나 지거나 하는 것에 굉장한 도취감이나 좌절은 없다. 다만 성취나 낙담 정도가 있을 뿐이다. 이런 쿨한 태도는 아마도 좀 더 실제에 가까운 변호사들의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이 프로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저 선과 악을 운운하고 서민들의 영웅으로 그려지곤 하는 우리네 변호사들이 순진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게 순진해보여도 바로 우리네 정서인 것만은 분명하다. 드라마가 결국 현실을 그대로 그린다기보다는 현실에 부재한 판타지를 건드린다고 볼 때, 우리에게 드라마가 그리는 변호사에 소시민의 문제를 해결해주었으면 하는 판타지가 들어가는 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실제 현실에서는 도무지 일어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드라마에서 희구되는.

 

그래도 법 정의의 문제일 때는 <굿와이프>의 이런 직업적이고 프로적인 쿨한 태도는 그런대로 흥미롭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또 한 축, 즉 남편과 남자친구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삼각관계의 이야기로 들어가면 정서는 좀 더 복잡해진다. 김혜경의 남편 이태준(유지태) 검사는 한 마디로 나쁜 남편이다. 그는 이미 불륜을 저질러 김혜경을 배신한 바 있고, 그래서 잘못했다 말하면서도 아내의 그 좋은 이미지를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이용하려고 한다.

 

김혜경은 그 남편과 살아왔던 세월을 뒤늦게 후회한다. 그래서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다시 변호사 일을 시작하지만 거기서 상사이자 오랜 친구인 서중원(윤계상)과 점점 가까워진다. 그리고 결국 선을 넘어버린다. 이 부분은 미국적 정서라면 당연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간 김혜경이 살아온 세월과 당해온 일들을 생각해보라. 그녀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당연히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네 정서에서 마음이 걸리는 건 아직 아이들이 있고 남편과 이혼을 명쾌하게 하지 않은 사이에서 김혜경과 서중원이 선을 넘는 모습이다. 그건 마치 옳지 않은 일을 저지른 남편과 똑같이 옳지 않은 행동으로 대항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이러한 행동도 선과 악의 윤리적 잣대로 바라보는 우리네 시선과는 상당히 다른 미국적 정서가 들어가 있는 대목이다.

 

그러고 보면 <굿와이프>는 우리네 드라마 정서에는 태생적으로 문제작일 수밖에 없다. 제목이 <굿와이프>지만 그것은 좋은 아내로서의 김혜경을 그리려는 게 아니라, 이른바 좋은 아내로 상정되는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암묵적인 사회적 압력 같은 것들을 보기 좋게 깨버리는 김혜경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혜경의 성장은 그래서 일에 있어서는 쉽게 선악으로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 프로페셔널로 서는 것이고, 사랑에 있어서는 좋은 아내같은 때로는 폭력적인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굿와이프>가 하려는 이야기는 도발적이지만 충분히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서적으로 우리네 대중들에게 100% 공감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가진 가치는 지금껏 선악구도와 윤리적 잣대에만 매몰되어 아무도 질문을 건네지 않았던 일과 사랑에 대한 파격적인 질문들을 이 드라마가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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