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회담>, 이런 기적 같은 토크쇼가 있나

 

점점 이 외국인들의 매력에 빠져든다. JTBC <비정상회담>에 가나 대표 샘 오취리처럼 이미 예능 프로그램으로 익숙해진 웃기는(?) 외국인만 있는 줄 알았는데, 차츰 그 옆에 앉아 있는 자못 진중하고 신뢰가 가는 중국 대표 장위안이 눈에 들어오고, 우리나라 사람보다도 더 보수적인 터키 대표 에네스 카야의 까칠함도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지적인 미국 대표 타일러 라쉬나, 여성을 예술작품처럼 대한다는 이태리 대표 알베르토 몬디, 또 멋진 영국 신사 제임스 후퍼도 빼놓을 수 없다.

 

'비정상회담(사진출처:JTBC)'

세계 남자 실체 보고서라는 주제로 나누는 대화는 마치 <마녀사냥>의 글로벌판 같은 흥미로움을 안겨준다. 거기에는 나라는 달라도 남자라는 똑같은 지점이 주는 국가를 초월한 공감대가 있기도 하고, 때로는 국가 간 문화의 차이에 따라 너무나 다른 의견의 충돌이 생겨나기도 한다. 마치 워밍업을 하는 듯 각 국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늘어놓고 각국 비정상 대표들이 그 편견에 대한 반박을 하는 과정에서는 솔직한 그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또 여자의 핸드백을 들어주는 것에 대해서 여자처럼 행동하는 남자는 여자들이 싫어한다며 진심으로 발끈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터키 대표 에네스 카야와 그래도 여자가 원한다면 들어줘야 한다고 말하는 샘 오취리의 설전은 물론이고, 갑자기 벌어진 샘 오취리와 기욤 패트리의 자존심을 건 팔씨름도 흥미롭다. <비정상회담>이 이토록 별거 아닌 이야기와 상황에도 흥미로움을 주는 건 여기 출연하는 외국인들이 예능을 한다기보다는 진짜 진지한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한 번 입을 열 때마다 큰 반향을 몰고 오는 장위안의 경우, 중국에 대한 편견을 하나하나 들어보며 어이없어 하다가도 스스로 중국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냐는 질문에는 겸허하게 도덕의식의 부족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는다. 자칫 보수적인 이미지가 될 수도 있는 에네스 카야가 괜찮게 다가오는 것도 그가 말하는 대목이 진짜 자신들의 문화이며 생각이라는 걸 솔직하게 전해주기 때문이다.

 

사실 이태리 남자들이 여자를 밝힌다는 말은 발끈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 대해서도 이태리 대표 알베르토는 어느 정도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하고는, 그렇게 남자들이 여자를 좋아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준다. 우리나라에 노인 공경이 있듯이 이태리에는 여성 공경(?)’이 있다는 것. 여성을 먼저 배려하고 챙기는 것이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밴 결과라는 것이다.

 

사랑 표현에 대해 이야기 하다 갑작스레 제안된 일본 대표 타쿠야의 중국 대표 장위안을 상대로 한 사랑고백 상황극은 이전에 이 토크쇼에서 만들어졌던 일본과 중국의 심상찮은 기류를 떠올려 보면 더욱 흥미로워진다. 타쿠야의 사랑고백에 장위안이 역사를 들고 나오자 타쿠야가 상황극일 뿐인데 그걸 그렇게 진지하게 받으면 어떡하냐고 장위안을 질책하고, 그 말에 장위안이 미안해하는 모습은 이 토크쇼가 가진 특별한 점을 잘 드러낸다. 국가 간의 다소 껄끄러운 문제들도 <비정상회담>이 추구하는 지극히 비공식적인 토크쇼에서는 충분히 풀어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 두 사람이 토크쇼가 끝난 후 소주를 기울이는 장면이 살짝 들어간 것은 이 토크쇼의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놀라운 건 이들이 이렇게 때론 의견충돌을 일으키고 때론 공통분모를 찾아내고는 즐거워하는 모습들이 반복되면서 시청자들이 느끼는 외국인들에 대한 생각의 변화다. 물론 요즘은 해외여행이 그만큼 자유로워져서인지 외국인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외국인하면 어딘지 나와는 다른 존재로 다가가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비정상회담>을 통해 보여지는 외국인들의 모습은 더 이상 그런 존재가 아니다. 문화적 차이는 조금 있어도 우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그들은 언제든 우리와 소통할 수 있다는 신뢰감을 준다.

 

이것은 <비정상회담>이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백 번 외국인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며 함께 공존할 것을 외치는 것보다 이렇게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특정한 화제를 갖고 벌이는 토크의 용광로가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생각해보라. 지금 여기 출연하고 있는 외국인들에게서 왠지 정감이 느껴진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변화인가.

 

<비정상회담>의 논란, 정상회담의 화기애애보다 낫다

 

“KBS 아나운서 합격을 못했어도 YTN의 손석희가 되면 되는 거였다.” <비정상회담>에서 전현무는 굳이 손석희의 이름 석 자를 꺼냈다. 손석희와의 비교점을 만든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다분했던 발언이었다. 하지만 전현무가 그런 얘기까지 꺼낸 목적은 단 하나였다. 웃기겠다는 것. 벨기에 전현무 줄리안의 평가처럼 그는 늘 웃기려고 노력한다.

 

본래 비호감의 이미지를 캐릭터로 갖고 있는 전현무지만 최근 <히든싱어> 등을 진행하면서 훨씬 이미지가 나아졌던 전현무였다. 그것은 아나운서에서 프리로 선언해 이제는 예능인으로 인식되는 지점에 이르렀기 때문에 생겨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뭔가 반듯해야할 아나운서로서의 전현무는 호감과 비호감의 극과 극으로 나뉘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예능인으로서는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는(즐거움을 주는 일) 입장으로 그 요구되는 이미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비정상회담>을 하면서 전현무에 대한 논란은 또 불거져 나왔다. 제작발표회에서 했던 첫 방송 시청률 3%가 넘으면 샘 오취리 분장을 하겠다는 발언은 흑인 희화화라는 비난을 받았다. 또 지난 회 방송 중에 나왔던 미국 출신 타일러 라쉬에게 한 미국 사람이 키가 제일 작다거나 그래서 머리가 얼마 없나등의 발언은 인신공격성 비하 발언으로 지탄받았다.

 

<비정상회담>은 여러 나라를 대표(?)하는 출연자들이 나오기 때문에 사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건 맞다. 따라서 전현무의 거침없는 발언은 때론 생각 없는 발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나하나의 발언들을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비정상회담>이라는 토크쇼는 너무나 밋밋하고 재미없는데다 별 의미도 없는 예능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즉 전현무가 아니라도 이 프로그램에서 외국인 출연자들이나 유세윤 같은 MC가 던지는 말이나 행동에서는 아슬아슬한 면이 많다. 이를테면 군인이 꿈이었다는 중국 출신 장위안에게 유세윤이 전쟁하려고?”하고 묻는 장면이 그렇다. 그것은 달리 들으면 중국에 대한 비하이고 군인에 대한 비하로 들릴 수 있다. 심지어 일본과 중국 사이에 놓여진 국가적인 감정을 끌어내는 대목에서는 심지어 보기 불편한 느낌마저 준다.

 

또 터키 출신의 에네스 카야는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더 보수적인 입장을 드러내는 인물로 지난 방송에 나왔던 혼전 동거에서 그렇게 하면 자기 나라에서는 죽는다는 표현까지 썼다. 그 보수적인 입장은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 그냥 듣다보면 여성 비하 발언처럼 들릴 수 있다. <비정상회담>의 발언들은 그것이 마치 출연자들의 출신국을 대표하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때문에 삐딱하게 들으면 모두 논란의 소지를 안을 수 있다.

 

즉 전현무에게 줄리안이 슬랩스틱같이 표정으로 웃기려고 한다고 말했을 때 전현무가 이게 코리안 유머다라고 응수하는 대목에 대해서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한국의 유머를 대표하는가하고 말이다.

 

물론 전현무는 프로그램을 이끌고 나가는 MC기 때문에 특히 발언에 있어서 조심해야 될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으로 보면 좀 더 자유분방하게 아무런 얘기든 툭툭 내놓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다소 논란이 될 수 있는 것도 서슴없이 먼저 꺼내놓는 것도 MC의 역할일 수 있다. 많이 떨궈냈다고는 해도 여전히 그가 갖고 있는 비호감 캐릭터의 이미지가 논란을 가중시키는 면이 있지만 전현무의 발언은 어떤 면에서는 <비정상회담> 같은 토크쇼에 꼭 필요한 부분일 수 있다.

 

정상회담같은 공식적인 자리라면 말 그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의례적으로 연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비정상회담>은 제목처럼 정상회담화기애애한 겉치레를 추구하지 않는다. 중국과 일본의 불편한 관계는 정상회담에서라면 웃는 얼굴로 포장되기 마련이지만 <비정상회담>에서는 솔직하게 그 속내를 드러내고 인간적으로는 친한 감정을 보여줌으로써 어떤 소통의 물꼬를 가능하게 만든다.

 

<비정상회담>이 만들어내는 논란은 그런 점에서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통과제의가 아닐 수 없다. 비하처럼 보이기 때문에 논란의 소지를 만들지만, 동시에 그것이 자연스럽게 반복되고 당사자들이 비하로 전혀 느끼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어쩌면 <비정상회담>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일치할 것이다. 너무나 친해져서 피부색이든 나라든 언어든 구별의 시선을 염두에 두지 않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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