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투게더> 서태지보다 <12> 조인성인 이유

 

서태지가 KBS <해피투게더>에 단독으로 출연한다는 사실에 대해 반가움보다는 불편함을 거론하는 이들이 더 많다는 사실은 작금의 달라진 예능의 생태계를 가늠하게 한다. ‘신비주의의 대명사이자 마지막 남은 신비주의라고까지 불리던 서태지가 아닌가. 하지만 지금은 신비주의가 심지어 마치 연예인병처럼 거드름으로 느껴지는 시대다.

 

사진출처:서태지 컴퍼니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서태지는 그간 좀체 내밀지 않았던 얼굴을 예능에서 보이겠다고 마음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신비주의를 벗어나 좀 더 친근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탈신비주의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해피투게더>의 제목에 걸맞지 않게 다른 게스트 없이 단독 출연해, 그것도 유재석과 11 토크를 한다는 건 그래서 여전히 서태지의 이미지가 과거 90년대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것이 서태지의 의도인지 아니면 <해피투게더> 제작진의 과잉 배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차피 너무 과도하게 만들어진 신비주의 이미지가 버겁고, 그래서 보다 편안한 음악인 서태지로서 대중들에게 다가오려 마음먹었다면 일단 그 등장하는 방식부터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

 

이른바 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할 게스트가 애매하지 않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이른바 이라는 것을 깨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게 서태지다. 물론 음악인으로서의 급은 당연히 지켜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서태지는 좀 더 자신을 일상인에 가깝게 내려놓아야 지금 시대의 대중들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조인성이 <12>에 차태현 쩔친(쩔은 친구)’으로 깜짝 등장한 것은 여러 모로 서태지의 행보에 시사 하는 바가 많다. SBS <괜찮아 사랑이야>로 그 어느 때보다 이미지가 신비화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점에 자신을 찾아와 무작정 함께 여행을 떠나자는 차태현에게 그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조인성에게 예능감이라는 것이 있을 리 없고, 그러니 이런 갑작스러운 방송 출연이 부담되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선배 형을 위해서 열심히 방송에 임하는 조인성에게서는 신비주의의 그림자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드라마에서 뭘 해도 CF 같은 그림을 만드는 그가 아닌가. 그런 그가 깨는 이미지를 만드는데 선수인 독하디 독한 <12>의 복불복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차태현과 함께 실미도로 들어오는 조인성을 보며 다른 게스트들과 출연자들 그리고 심지어 작가들마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것은 조인성 같은 인물이 다른 게스트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것 자체가 이질적으로 여겨졌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면이 조인성의 <12> 출연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라. 지금 시대에 대중들이 스타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거기서 발견할 수 있다.

 

서태지는 좀 더 타인들과 함께 섞일 필요가 있다. 그것만이 이미 지나가버린 신비주의 시대에 여전히 마지막 신비주의라는 불편한 수식어를 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요즘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하는 것이다. 조인성의 <12> 출연에 쏟아지는 박수와 서태지의 <해피투게더> 단독 출연에 쏟아지는 불편함은 바로 이 차이에서 비롯된다.

 


 

'UV신드롬비긴즈'(사진출처:Mnet)

한국전 당시 전쟁에 지친 병사들의 영혼을 어루만져주었던 목소리의 주인공이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군중들이 불렀던 노래 '지펜투텐탁(훗날 '집행유애'라는 곡으로 불린)'을 부른 장본인, 또 1985년 아프리카를 돕기 위해 마이클 잭슨을 위시한  50명의 가수들이 'We are the world'를 부를 때 코러스를 했던 인물, 또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파이널을 장식했던 세계 모든 가수들의 우상이자 엘비스 프레슬리와 합동공연을 했던 신화적인 존재. 바로 UV라는 인물에 붙는 스토리들이다.

이 스토리를 천연덕스럽게 보여주는 'UV 신드롬 비긴즈'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위에 나열된 모든 사건들의 연대가 UV라는 두 인물에 의해 행해졌을 가능성은 없다. 즉 이 다큐는 페이크다. 그래서 'UV 신드롬 비긴즈'는 첫 회에 스스로 한국전에 참전해 UV를 목격했다는 제임스 베이커라는 인물을 인터뷰를 담으면서 '이 프로그램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오'라는 자막을 '아주 짧게' 삽입해 넣는다. 진지한 내레이션이 잠깐 끊기고 다시 이어질 때 제임스 베이커가 조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어딘지 이 사람이 제 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채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가짜임을 스스로 밝히면서도 이 프로그램은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해댄다. 여기에 UV 당사자들인 유세윤과 뮤지의 기상천외하고 뻔뻔한 행각(?)들이 계속 공개된다. 빅뱅을 앞에 놓고 "그걸 노래라고 하느냐"고 버럭 대고, 박진영이 사실은 외국인이며 UV 밑에서 청소를 하다가 발탁됐다고 하는 식이다. UV 당사자들은 모든 행동과 진술이 진지하지만, 누가 봐도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보는 이들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일종의 가상의 놀이지만, 그렇다고 그 결과가 가상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즉 UV는 이 페이크 다큐를 하면서 만든 노래, '집행유애'나 '쿨하지 못해 미안해', 또 이번에 들고 나온 '이태원 프리덤'을 모두 음원차트에 올렸다. 유세윤은 정식가수도 아니고 또 트레이닝을 받지도 않았지만 이 페이크 다큐에서 전설적인 가수라고 주장된다. 즉 누구나 거짓말을 알고 있지만 진짜 결과가 나온 이유는 뭘까.

이것이 재미있는 놀이이기 때문이다. 그 놀이 속에서는 어떤 스토리도 허용된다. 그리고 그 놀이가 정말 재미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가짜라도 대중들은 주머니를 연다. 'UV 신드롬 비긴즈'는 스토리 시대에 접어든 작금의 상황을 너무나 잘 간파한 프로그램이다. 스토리가 재미있으면 진위는 중요하지 않다(물론 누군가에게 해를 준다면 다른 문제겠지만). 심지어 그것은 돈을 벌어주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시대가 가진 이러한 스토리 경향이 실제 상황에서 벌어진다면 어떨까. 우리는 일찍이 타블로 사태에서 그 결과를 목도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사소한 것으로 여겨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았던 타블로는 나중에는 그 가상의 스토리가 엄청나게 커져 도무지 대응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사실(팩트)들을 뒤늦게 내놓았지만 이 스토리는 이 사실들마저 소재로 삼아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괴물이 되었다.

그 타블로 사태에서 목도한 것들이 다시 꿈틀대고 있다. 서태지-이지아 얘기다. '서태지와 이지아 사이에 두 딸이 있다'는 얘기에서 '심은경이 서태지의 딸'이라는 스토리로 이어졌고, '서태지의 여자관계 때문에 이지아와 헤어졌다'는 스토리가 나오자 '그 여자가 구혜선'이라는 스토리가 나왔다. 그러자 또 '구혜선이 아니라 한예슬이다'로 이어졌다. 항간에는 '이지아가 서태지와의 관계를 소설로 써서 연재해 왔다'는 스토리까지 나왔다. 이 정도 되면 'UV 신드롬 비긴즈'를 뺨치는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스토리는 'UV 신드롬 비긴즈' 같은 놀이가 아니다. 그걸 만들고 유포하는 이들에게는 놀이처럼 여겨지겠지만 당사자들(괜스레 이름이 올려진 이들에겐 더더욱)에게는 곤혹스러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타블로 사태에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이렇게 끊임없이 스토리가 커져서 나중에는 통제할 수 없을 만큼의 괴물이 되게 되는 것은 그 자체를 별거 아니라고 방치하는 순간부터다. 상황은 터졌지만, 당사자인 서태지는 묵묵부답이다. 물론 이처럼 사생활을 밝히지 않는 것은 자신의 선택일 뿐 잘못된 것은 아니다. 여기에 대해 공인의 잣대를 섣불리 들이대는 것은 난센스다. 그 누구도 자신이 밝히길 원치 않는 사생활을 드러내야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이 없다고 하더라도 일말의 도의적인 책임은 남을 수 있다. 자신의 문제가 일파만파 커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UV 신드롬 비긴즈'와 서태지 루머를 나란히 놓고 보면 흥미로운 점들이 발견된다. 거기에는 한없이 감추어지던 신비주의 시대에서, 끊임없이 신비가 파헤쳐지고 그것이 스토리로 양산되는 시대로의 변화가 있다. UV는 계속해서 자신들이 신비적인 존재라고 떠들고 다니지만, 바로 그럼으로써 그들이 보통의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UV 신드롬 비긴즈'는 키치적인 방식으로 끊임없이 사실을 왜곡함으로써 오히려 진위와 상관없는 세계를 만들어낸다. 바로 이 아이러니한 지점에서 우리는 이 페이크 다큐의 재미를 즐길 수 있다. 즉 'UV 신드롬 비긴즈'는 지금 이 스토리의 시대를 한껏 즐기고 있는 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서태지-이지아 스캔들과 함께 당사자들이 침묵함으로써 오히려 양산되는 거짓 스토리들을 우리는 즐길 수 없다. 무언가가 있어서가 아니라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것이 스토리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과잉 정보 시대에 맥락이 잡히지 않아 부재한 것처럼 보이는 것에 질서를 잡아주는 힘으로 스토리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때론 아예 부재한 것을 진짜처럼 왜곡시키는 것도 스토리의 파괴력이다. 즉 모든 것이(심지어는 없는 것까지) 스토리로 덧씌워지는 것은 어쩌면 서태지나 이지아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피할 수 없다면 정면돌파 하거나 즐기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물론 UV처럼 누군가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는 방식(피해는커녕 유쾌함을 주지 않는가)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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