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셰프’, 이채민이라는 참신한 배우가 내는 이 퓨전사극의 맛

폭군의 셰프

또 한 명의 ‘문짝남’ 신드롬의 주인공이 등장한 걸까. <선재 업고 튀어>로 변우석이 문짝남 신드롬을 일으킨 것처럼, tvN 토일드라마 <폭군의 셰프>의 이채민에 대한 반응도 예사롭지 않다. 무려 190cm인 ‘문짝’ 그 자체인 훤칠한 키에 작품 속 이헌(이채민)이라는 폭군 캐릭터에 걸맞게 때론 포악한 면을 드러내지만 그러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아려한 연민 또한 느끼게 만드는 모습을 이 배우는 제대로 입었다. 

 

장태유 감독 특유의 연출력이 돋보여서일까. 이헌이라는 미워할 수 없는 폭군 캐릭터를 입은 이채민의 얼굴에서는 여러 다양한 면모들이 포착된다. 눈에 힘을 주고 특유의 지엄한 목소리로 화를 낼 때는 폭군다운 열기가 느껴지지만, 때때로 드러내는 장난기가 가득한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서는 어딘가 연민을 갖게 만드는 처연함 또한 전해진다. 극에 긴장감을 부여하는 역할이지만, 동시에 그 긴장이 풀어질 때의 코믹함 또한 중요한 역할이다. 그런 점에서 이채민이라는 배우가 가진 이런 여러 얼굴들은 이 작품 속 이헌이라는 폭군에 제격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중요한 건 음식이고, 그 음식의 맛을 시청자들에게도 전해줄 수 있는 풍부한 표현이 담긴 리액션이다. 연지영(윤아)이 만든 요리를 맛보고 미식가다운 맛의 진심을 드러내는 리액션은 적당한 진지함과 더불어 다소 과장된 표현도 나와야 한다. 중요한 건 너무 과하지도 또 모자라지도 않는 적당한 선이어야 시청자들도 그 리액션이 진심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이채민의 연기는 참으로 적절하다. 

 

2025년 한국에서 조선시대로 타임리프한 연지영(윤아)이 매번 목숨을 걸어야 하는 요리 미션을 보여주는 <폭군의 셰프>는 그 시공간이 결합된 퓨전의 맛도 살려야 한다. 즉 연지영이 파스타 요리를 내놓고 설명할 때나 그 시대에는 듣도 보도 못했던 음식을 맛볼 때, 이헌의 리액션은 우스우면서도 그럴듯해야 한다. 당대의 왕 역할을 하면서 판타지로서의 허구적 상황들을 표현하는 연기의 퓨전을 해내야 한다. 사극에서 늘 봐오던 폭군의 모습과 더불어 이를 살짝 비틀어내는 연기를 선보여야 하는데, 이채민은 사극 연기 자체가 처음이어서인지 차라리 이 퓨전에 더 어울리는 면모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채민이 이 작품으로 인기가 급상승하는 가장 큰 이유는 ‘폭군’이라는 최근 웹소설 등에서 혐관 로맨스로 가장 잘 팔리는 역할을 제대로 연기해내고 있어서다. 만인지상의 군왕이지만 폭력적인 이런 폭군의 캐릭터는 최근 중년 이상의 여성들에게 특히 어필하는 판타지 속 인물이 됐다. 그건 폭군 자체의 캐릭터가 좋은 게 아니라, 그런 캐릭터를 요리해가는 과정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으로 폭군의 면모를 보이는 이헌은 연지영이라는 주인공에 의해 변화되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요리가 이헌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 다음에는 연지영이라는 인물 자체가 이 폭군의 마음 속으로 들어온다.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폭군의 마음을 움직여 쥐락펴락하는 연지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시청자들은 그 관계에 빠져든다. 그러면서 그 누구도 폭력적인 겉면 때문에 들여다 보지 못한 이 폭군의 가녀린 내면을 보게 되고 그 상처를 연민하게 만든다. 

 

<폭군의 셰프>는 이처럼 ‘폭군’과 ‘셰프’의 관계 진전을 통해 이 두 캐릭터의 매력이 동반상승하게 되는 드라마다. 매번 죽을 위기를 넘겨가며 요리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지영 역할의 윤아만큼, 폭군 이헌 역할의 이채민이 시청자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이유다. 하나의 기막힌 퓨전요리 같은 드라마다. 물론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좋은 식재료가 되듯이, 이 작품에서는 윤아와 더불어 이채민이라는 참신한 배우가 제대로 작품의 맛을 내고 있다. (사진:tvN)

혼자 빛나는 별은 없죠.

종영한 '선재 업고 튀어'에서 김헤윤의 연기는

상대를 빛나게 해줌으로써 자신도 빛나는 연기였다고 생각합니다.

 

 

K-드라마 팬덤의 드라마틱한 변화

이른바 K-드라마를 만든 일등공신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건 당연히 열성적인 한국의 시청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게다. K-드라마라는 위상은 비판적이며 까다롭기 유명한 한국의 시청자들의 요구가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선재 업고 튀어

까다롭기 이를 데 없는 한국의 시청자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23년간 방영됐던 MBC ‘전원일기’가 종영하게 된 건 더 이상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농촌의 풍경이 현실이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도시화로 인해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가는 이들이 급증했고, 이미 농촌조차 90년대부터 서서히 전원도시로 변모했다. 당연히 라이프스타일도 바뀌었다. 시청자들은 어딘가 구닥다리 같은 시골의 삶보다는 도시의 세련된 삶을 보고 싶어했다. 이러한 요구는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등장했는데 이른바 ‘트렌디 드라마’ 붐이 생겨났다. 도시 남녀의 트렌디한 삶과 사랑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질투’부터 ‘사랑을 그대 품안에’, ‘별은 내 가슴에’ 같은 드라마들이 그 사례다. 이들 드라마들은 과거 신파적 스토리를 가진 멜로드라마와는 달리, 소비적인 도시의 삶에서의 가벼운 사랑 이야기로 채워졌다. 시골의 삶에서 도시의 삶으로 옮겨가고, 신파적 눈물의 서사에서 가벼운 웃음의 서사로 바뀌게 된 건 당대의 한국 시청자들의 달라진 욕망이 투영된 결과였다. 이들 드라마들은 중화권을 중심으로 한류드라마가 태동하게 되는 중요한 변곡점을 만들었다.

 

그런데 트렌디 드라마는 그 후로도 승승장구 했을까. 아니다. 한동안 트렌디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긴 했지만 생각만큼 한국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한국 시청자들은 이제 현실성이 결여된 적당한 배경을 채워놓고 그려나가는 가벼운 멜로가 식상해졌다. 그래서 병원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연애만 하는 드라마들을 ‘무늬만 의학드라마’라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즈음 안판석 감독이 일본 원작을 리메이크한 ‘하얀거탑’이 방영되면서 보다 전문적인 디테일에 대한 시청자들의 욕구를 채워주었다. 이후 이른바 전문직 드라마 시대가 열렸다. 의사와 변호사 같은 직업군은 물론이고 요리사, 호텔리어 등등 다양한 전문직업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들이 쏟아졌다. 물론 여전히 신데렐라 스토리를 담은 멜로드라마들이 강력한 힘을 발휘했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당시 멜로의 대가인 김은숙 작가도 변화를 시도했다. ‘온에어’와 ‘시티홀’ 같은 작품은 전문직의 세계가 더해진 멜로드라마였다. 그 후 ‘태양의 후예’,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을 통해 김은숙 작가는 멜로와 다양한 장르들을 엮어냈는데 이것 역시 이제 OTT 등의 글로벌 시대가 열리면서 보다 장르물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의 요구와 무관하지 않았다.

 

이처럼 한국의 시청자들은 까다로운데다가 쉽게 질리고 그래서 새로운 걸 계속 요구한다. 이미 성공한 드라마의 방정식은 그래서 그 공식이 나온 이후에 따라하게 되면 이미 지나간 트렌드가 되기 일쑤였다. ‘전원일기’가 종영하고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은 ‘갯마을 차차차’, ‘동백꽃 필 무렵’, ‘나쁜 엄마’, ‘웰컴투 삼달리’ 같은 다시 시골의 삶으로 돌아가는 일련의 드라마들이 등장하고 있다. 도시의 삶에 지친 한국 시청자들이 이제는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드라마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K-드라마가 나오기까지 그 상당 지분은 한국의 까다로운 시청자들이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드라마 만든 K-팬덤, 그 탄생과 변화

한국 시청자들에게 드라마는 일상에 맞닿아 있는 장르다. 과거에는 집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 틀어 놓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래서 누구나 한 마디씩 얹기 좋은 장르고, 또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의 물꼬를 트는데도 이만한 게 없다. 드라마 이야기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 만만함은 시청자들이 개입할 수 있는 좋은 틈입을 만들어줬다. 

 

90년대 이후부터 서서히 진행된 디지털 혁명은 이렇게 저마다 수다로 휘발되던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들을 인터넷으로 결집시키는 힘을 발휘했다. 그 목소리들은 이제 하나의 여론이 되어 제작자들에게 압력을 미쳤다. 심지어는 방영도중 주인공이 바뀌거나 스토리 전개가 달라지게 될 정도였다. 특히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민주화 과정을 겪은 대중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했고, 인터넷은 그 목소리를 더욱 결집시키는 장이 되어주었다. 그러면서 디지털 공간은 저 너머의 미국드라마, 일본드라마 같은 당시 우리보다 앞서 있던 해외의 드라마들을 섭렵하게 했다. ‘프리즌 브레이크’ 같은 미드가 국내의 방송사에서 소개되기도 전에 인터넷을 통해 화제가 됐고, 심지어 미국드라마는 ‘미드’로 또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마이클 스코필드는 한국식 이름 ‘석호필’을 갖게 됐다. ‘일드’도 마찬가지였다. ‘노다메 칸타빌레’나 기무라 타쿠야 주연의 ‘롱 베케이션’ 같은 일드가 한국의 시청자들의 눈을 높였다. 당연히 한국드라마들과 비교하게 되고, 좀더 세련된 드라마에 대한 요구도 거세졌다. 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 단단해진 K-드라마는 충분한 자본력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OTT와 만나면서 드디어 저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오징어게임’이 글로벌 성공을 거뒀고, ‘킹덤’ 같은 독특한 좀비물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OTT를 만난 K-드라마의 팬덤은 이제 국내만이 아닌 전 세계로 넓혀졌다. 그래서 OTT에 세워지는 작품들에 대한 국내 팬덤과 해외 팬덤 사이의 갭도 생겨났다. 넷플릭스에서 대자본으로 만들어진 다소 자극적인 판타지 장르물의 경우 그 호불호가 특히 갈리는 경향이 생겼다. 국내 드라마 팬들은 ‘스위트홈’ 같은 판타지 장르가 처음에는 워낙 새로워 열광했지만 시즌을 거듭할수록 자극적인 흐름에 지쳐갔다. 제작진들도 국내 팬덤만이 아닌 글로벌을 겨냥하는 경향도 생겼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내놓은 모완일 감독의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같은 작품은 세련된 스릴러로 해외에서는 좋은 반응들이 나왔지만 국내 팬덤에서는 괜찮은 성과를 얻지 못했다. 국내 드라마 팬들은 그간 OTT의 등장으로 지나치게 판타지화하고 자극적으로 변한 K-드라마에 식상함을 느끼고 오히려 ‘순한 맛’ 드라마를 찾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최근 앞서 언급한 시골향 드라마들이 다시 등장하고 로맨틱 코미디류의 가볍게 볼 수 있는 드라마들이 새삼 주목되고 있는 건 그래서다. 

 

이처럼 국내 팬덤과 해외 팬덤 사이에 정서적 차이가 생겨나기도 하지만, OTT가 가진 글로벌 가능성을 밑바탕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선재 업고 튀어’가 바로 그것이다. 국내에서는 최고시청률이 겨우 5%에 머물렀지만, 이 작품은 OTT를 통해 전 세계에 동시 방영됨으로써 강력한 코어 팬덤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형성됐다.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K팝 아이돌인 선재(변우석)와 그의 열성팬인 임솔(김혜윤)이 만들어가는 판타지 로맨스를 통해 마치 K팝 팬덤이 만들어지는 흐름이 생겨났다는 점이다. 코어 팬덤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퍼져나가고 이것이 라이트 팬덤으로 이어지면서 ‘선재 업고 튀어’는 방영 후에도 변우석이 아시아 투어를 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처럼 이제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게 된 K-드라마는 국내 팬덤과의 관계만이 아닌 해외 팬덤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관계 속에서 진화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서적 차이로 인한 호불호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로컬 사회의 정서적 틀에 묶여 있던 국내 팬덤들도 글로벌 감수성을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내 팬덤이 가진 로컬의 정서 또한 글로벌 팬덤에 전파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K-팬덤은 로컬과 글로벌 정서가 부딪치고 화학작용을 내는 새로운 장이 되고 있다.  (글:N콘텐츠 매거진, 사진:tvN)

‘선재 업고 튀어’로 연기 앙상블의 힘을 보여준 김혜윤

선재 업고 튀어

“별은 말이지.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거의 없어.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 이준익 감독의 영화 ‘라디오스타’에서 최곤(박중훈)의 매니저 박민수(안성기)가 하는 이 대사는 스타가 빛날 수 있는 게 무엇 때문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 스스로 빛나서 스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를 빛나게 하고 있기 때문에 빛난다는 것이다. ‘라디오스타’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게 스타를 빛나게 하는 존재로서 매니저 박민수를 말하지만,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에서 최애인 유명 아티스트 류선재(변우석)를 빛나게 하는 존재는 다름 아닌 임솔(김혜윤) 같은 열성 팬들이라고 말한다. 갑작스러운 선재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된 임솔이 선재를 되살리고싶은 그 간절한 마음이 더해져 15년 전 과거로 되돌아가고 그렇게 과거를 바꿔 현재의 비극을 막으려는 이야기가 바로 ‘선재 업고 튀어’이기 때문이다. 최근 타임리프 같은 판타지를 장치로 활용한 드라마들이 나오고 있는데, ‘선재 업고 튀어’는 여기에 ‘팬심’이라는 강력한 동인을 소재로 끌어왔다. 최애와 팬의 사이가 그것이다. 팬이라면 최애의 비극을 막기 위해 뭐든 못할까. 

 

‘선재 업고 튀어’는 이처럼 타임리프라는 비현실적인 판타지를 장르로 끌어왔지만, 그 비현실이 만드는 황당함 같은 것들을, 그걸 훌쩍 뛰어넘는 팬심으로 채우는 드라마다. 팬들이라면 심지어 가상 캐릭터를 내세우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진짜처럼 받아들일 정도로 마음을 다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선재 업고 튀어’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은 두 가지다. 임솔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선재에게 진심인가 하는 걸 믿게 해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재가 임솔이 그렇게 최애할 정도로 멋지게 느껴져야 한다는 것이다. 둘 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그걸 소화해내는 연기력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선재 업고 튀어’는 그걸 성공시킴으로써 최근 시청률 급상승과 더불어 화제성에서 압도하는 드라마로 떠올랐다. ‘눈물의 여왕’이 방영 내내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던 화제성을 그대로 이어받는 드라마가 됐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5월 1주차 TV-OTT 드라마 화제성 조사결과 1위의 드라마로 등극한 것. 또 주인공 역할인 변우석과 김혜윤에 대한 화제성도 급상승해 각각 출연자 화제성 1,2위를 차지했다. 

 

변우석이 출연자 화제성에서 1위로 떠오른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변우석은 2017년부터 다양한 작품들에 얼굴을 보였지만 두드러졌던 건 2020년 ‘청춘기록’을 통해서였다. 그 후로 ‘힘쎈여자 강남순’에서 악역을 선보였지만 생각만큼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비로소 ‘선재 업고 튀어’로 현재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는 신인배우로 떠오른 것이다. 하지만 변우석이 이러한 인기를 순식간에 얻게 된 데는 물론 그가 가진 매력과 노력이 우선되었기 때문이지만 김혜윤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고 보인다. 김혜윤은 임솔 역할로 변우석이 맡은 선재를 더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연기를 보여줬다. 가만 있어도 멋진 배우이긴 하지만 끝없이 애정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김혜윤의 몰입하게 만드는 연기를 통해 변우석이라는 배우에 입덕하게 되는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선재 업고 튀어’를 보는 시청자들은 그래서 처음 팬심을 공감시키는 김혜윤의 연기에 빠져들고, 그를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변우석에 스며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선재 역시 임솔을 처음부터 사랑해온 첫사랑 순애보의 주인공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선재에 대한 매력이 갈수록 커졌고 그건 고스란히 변우석에 대한 인기로 이어졌다.

 

김혜윤은 지금껏 해온 작품들 속에서, 배역에 대한 몰입도가 좋고 그걸 표현하는데 있어서 군더더기가 없는데다 명확한 딕션에 의한 대사 전달력 또한 좋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래서 이번 ‘선재 업고 튀어’에서도 그렇지만 시시각각 감정 변화가 많은 연기에 있어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곤 했다. 때론 소녀처럼 수줍어했다가 때론 명랑하고 때론 슬픔에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런 다양한 감정 표현들을 자유자재로 표현해내는 저력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김혜윤의 첫 주연작이었던 ‘어쩌다 마주친 하루’는 이러한 그의 역량이 온전히 돋보인 작품이었다. 그는 이 작품 속에서 만화 속 단역인 은단오와 자아를 가진 은단오 그리고 작가의 전작만화 속 은단오라는 1인3역을 연기했는데, 만화 속 세계를 그리고 있는 판타지의 난점까지 생각해본다면 이 작품이 김혜윤에게 얼마나 큰 도전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 때도 김혜윤은 특유의 다양한 감정연기를 선보이면서 극중 상대역할들을 돋보이게 했다. 이 작품에 상대역으로 출연했던 로운, 이재욱 같은 배우들이 그 후로 인기가 급상승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혜윤은 이제 27세의 나이지만 2012년부터 다양한 단역, 조연 등을 거치며 배우로서의 길을 넓혀왔다. 공식 데뷔작은 2013년 SBS에서 방영된 ‘TV소설 삼생이’로 그 후로 ‘야왕’, ‘너의 목소리가 들려’, ‘수상한 가정부’, ‘왕가네 식구들’, ‘나쁜 녀석들’, ‘오만과 편견’, ‘펀치’, ‘닥터스’, ‘푸른바다의 전설’, ‘쓸쓸하고 찬란하시니 도깨비’ 등 다양한 작품들을 거쳤다. 꽤 유명한 성공작들이지만 대부분 단역을 했기 때문에 그다지 주목되지 않았던 김혜윤은 2018년 ‘SKY 캐슬’을 통해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이 작품을 연출한 조현탁 감독이 “김혜윤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가장 정확한 방법으로 설득시킨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는 드디어 주연으로서의 김혜윤이라는 배우의 역량을 분명히 보여줬고, 영화 ‘불도저를 탄 소녀’로 청룡영화상, 한국영화제작협회상, 대종상, 들꽃영화상 등에서 신인여우상을 휩쓸었다. 아직도 교복을 입고 나오는 학생 역할에 어울릴 정도로 동안인데다 20대의 나이지만 연기 폭은 꽤 넓다. ‘SKY캐슬’과 ‘어쩌다 발견한 하루’ 그리고 ‘불도저를 탄 소녀’의 캐릭터가 모두 상이한데다 그 연기 색깔도 다르다는 점은 이 배우가 가진 잠재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김혜윤의 페르소나가 특히 우리에게 말해주는 건 ‘혼자 빛나는 별은 없다’는 ‘라디오스타’의 대사처럼 연기도 삶도 앙상블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현재 그가 반짝반짝 빛나는 별로 떠오른 건, 그 역시 함께 연기해온 배우들을 빛나게 해주는 그의 연기 덕분이었다. 타인을 빛나게 해줌으로써 자신 또한 빛날 수 있다는 앙상블의 힘을 김혜윤만큼 잘 보여주는 배우도 없다. (글:국방일보,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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