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쇼의 새 트렌드, 대결토크쇼의 문제점

SBS의 '절친노트'는 애초에 관계가 불편한 연예인들이 만나 오해를 풀고 화해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토크 버라이어티쇼였다. 이 프로그램이 전면에 내세운 인물은 김구라와 문희준이었다. 하지만 이 대화와 화해의 토크 버라이어티쇼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그만한 소재(불편한 관계의 연예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절친노트'는 '불편한 관계의 만남'에서 한 단계 수위를 낮춰, '어색한 관계의 만남'을 통해 그 리얼한 토크를 이끌어냈다. 토크의 강도는 약해졌지만 훈훈한 대화의 분위기를 강조했던 것. 하지만 이것은 또다시 변화를 거듭했다. 이경규가 투입되어 그 구심점이 김구라에서 이경규로 옮겨지면서 이른바 대결토크쇼를 구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절친노트'가 보여준 이 일련의 변화는 현재 급변하고 있는 토크쇼의 트렌드를 잘 짚어준다. 한때 고백이라기보다는 토로에 가깝고, 진술이라기보다는 폭로에 가까웠던 리얼 토크쇼가 대세였던 지점에서 김구라와 문희준이 있었다면, 그 후에 반작용으로 리얼 토크를 구사하면서도 훈훈함을 유지하던 진정성의 토크쇼의 지점에 '절친노트'는 '어색한 관계의 만남'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작금의 대결토크쇼는 이제 대결구도가 토크쇼의 대세가 되어버린 현재를 정확히 선점하고 있다. 지금의 토크쇼는 이제 자기고백과 폭로의 수위를 가지고 대결을 할 정도로 수위가 높아져 있다.

화요일 밤에 포진한 '강심장'은 성공한 형식인 '세바퀴'가 가진 집단 토크 버라이어티쇼를 끌어오면서도 그 위에 대결토크쇼라는 촉매제를 집어넣었다. 주제가 제시되고 그 주제에 대해 누가 더 강력한 토크를 해내는가에 따라서 우승자가 결정되는 이 형식은 '절친노트' 같은 토크의 목적, 즉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끄집어내어 그를 통해 친해진다'는 그 명목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세바퀴'가 그 제목 그대로 '세대를 넘어서는 이야기들을 담아냄으로써 세상을 바꾼다'는 명목을 갖는 것과 다른 점이다. 말 그대로 '강한 이야기를 해서 이긴다'는 것이 '강심장'이라는 토크 형식의 목적이다. 즉 명목이 사라진 지점에 존재하는 '강심장'의 대결구도는 하드코어적인 자극적 재미에 치중하는 경향이 생겨나게 된다.

이것은 주말 아침 시간대에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방영된 '토끼열전'에서도 마찬가지다. '토크와 끼의 열전'을 줄여 지칭하는 이 프로그램은, 그 제목처럼 토크와 끼의 대결을 보여줄 뿐, 그 외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결구도이기 때문에 물론 토크와 끼(대부분은 몸 개그에 가까운 것들이다)의 수위는 높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즉각적인 재미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들은 문제가 앞으로 지속될 때 나타나게 되는 보다 강한 자극에의 요구다. 즉 목적 자체가 자극을 통한 재미에 있기 때문에, 지속되면 될수록 더 강한 자극만이 목적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에는 비슷비슷한 자극의 반복으로 쉬 질리는 경향을 가진다.

물론 모든 토크쇼나 버라이어티쇼가 그럴싸한 명목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토크쇼가 갖는 본연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토크의 목적으로서의 대화는 사라지고, 그 수위를 넘나드는 자극적인 토크가 심지어 명목조차 없이 대결의 장에 올려지는 것이 어딘지 잘못된 느낌을 주는 것은 왜일까. 이것은 토크쇼가 토크라는 본연의 목적에 치중하기보다는 대결에 더 치중하는 경향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토크쇼가 먼저 중심에 세워야할 것은 대결이라기보다는 공감이다. 그것은 이른바 토크쇼의 새 트렌드라고 하는 대결토크쇼에서도 마찬가지다. '절친노트'가 그 공감의 틀 안에서의 대결을 벌이고 있다면, '강심장'이 지금 위치한 곳은 그 바깥이다. 이 부분은 앞으로 이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기 위해 반드시 먼저 고민해야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토크쇼 전성시대, 토크쇼가 토크하고 있는 것은?

이른바 토크쇼 전성시대다. 월요일에는 MBC의 ‘놀러와’, SBS의 ‘야심만만2’, KBS의 ‘미녀들의 수다’가 경쟁을 벌이고 있고, 화요일에는 KBS의 ‘상상플러스’, 수요일에는 MBC의 ‘황금어장’, 목요일에는 KBS의 ‘해피투게더’, 금요일에는 SBS의 ‘자기야’, 토요일에는 MBC의 ‘세바퀴’ 같은 토크쇼들이 포진해 있다. 실로 거의 일주일 내내 토크쇼를 볼 수 있는 시대다.

이렇게 된 것은 물론 토크쇼라는 형식이 비용 대비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토크쇼는 다른 예능 프로그램의 형식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간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토크쇼가 갖추고 있는 형식, 즉 호스트가 게스트를 초청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답변을 듣는 과정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본능적인 욕망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 연예계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이른바 신비주의의 해체기에 들어서 있기 때문에 연예인들은 자신의 일상적인 모습들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있고, 대중들은 그 솔직 대담한 이야기에 더욱 빠져들고 있다. 이른바 리얼 토크쇼가 대세가 된 것이다.

리얼 토크쇼는 시청자들의 입김이 세지면서 그 시청자들을 등에 업은 호스트가 게스트를 압도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즉 게스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시청자를 대신하는 호스트가 원하는 이야기를 게스트가 하게 된 것이 리얼 토크쇼가 등장한 배경이다. 여기에 연예인들의 신비주의 콘셉트가 무너지면서 오히려 솔직한 모습이 인기를 끌게 되자, 게스트들의 솔직한 이야기는 자발적인 모습을 띄게 되었다.

하지만 이 리얼 토크쇼는 또한 문제점도 갖고 있다. 지나치게 과열된 경쟁 속에서 솔직한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폭로성의 이야기들이 난무한다는 것이다. 억지로 게스트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까지 들춰내기도 하고, 심지어 게스트를 윽박질러서 울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지나친 사생활 침해라고 할 수 있는 집요함을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리얼 토크쇼가 태생적으로 갖는 단점이다. 리얼 토크쇼의 토크 양상은 자극적으로 흐르게 마련인데, 바로 이 자극은 반복되면 둔감해지고 따라서 더 큰 자극을 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토크쇼에서 다루는 이야기가 거의 연예인들의 가십 수준에 머문다는 건, 현재 우리의 토크쇼가 가진 가장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토크쇼는 사람을 출연시켜 그 사람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진솔한 모습을 추구하는 리얼 토크쇼에서는 그 사생활적인 부분을 다룰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전 세계 어느 곳에 있는 토크쇼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것까지 끄집어내려 하거나, 또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억지로 말하게 하는 토크쇼의 태도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토크쇼가 그저 쇼가 아니라, 한 시대의 화법을 대변해 보여주고 어떤 면에서는 교육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아이들 같은 경우에 이런 형식에 반복 노출되면 대화의 방식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물론 토크쇼들도 연예인의 사생활이나 잡담이 아닌 다른 것들을 담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무릎팍 도사’는 지금 현재 가장 진취적인 토크쇼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대의 화법으로 자리 잡은 직설어법을 쓰면서, 게스트에 대해 시청자가 알고 싶은 점을 피하지 않고 질문하는 공격적인 화법을 구사하면서도, 그 게스트를 통해 어떤 시사점까지 찾아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실로 중요한 것이다. 사생활은 그저 가십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론 중요한 정보가 되기도 한다. 사생활로 제시된 개인적인 삶이, 대중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삶으로서 어떤 공감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가십이 아니다. 토크쇼는 이처럼 개인에 집중하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연예인으로 한정된 직업군에서 계속해서 어떤 보편적으로 공감을 주는 이야기를 끄집어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무릎팍 도사’가 시도한 게스트의 외연을 넓힌 작업은 토크쇼에 있어서 큰 가치를 갖고 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도 연예인이 아닌 비연예인이 출연했을 때, 시청률이 더 높은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런 점으로 보아 대중들은 좀 더 다양한 게스트들의 이야기를 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문제는 연예인에 편중된 게스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호스트들도 너무 몇몇 MC에 국한되어있다는 지적들이 있다. 실제로 현재는 강호동과 유재석 이 두 개그맨이 거의 토크쇼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만큼 토크쇼의 진행 자체가 녹록치 않게 된 상황도 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박중훈쇼’의 추락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실제로 토크쇼의 성공은 생각보다 어려운 점이 많다. 하지만 어떤 면으로 보면 이것은 시청률 보증수표인 이 개그맨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일 수도 있다. 새로운 형식을 개발하기 보다는 유명 개그맨을 기용해 쉽게 시청률을 가져가려는 것이다.

토크쇼는 문제와 해법을 계속 제시하면서 진화를 거듭해왔고 지금도 그 변화의 과정 속에 있다. 토크쇼는 과거 가장 기본적인 형식인 1인 토크쇼에서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자니윤쇼’다. 그 다음에 등장한 것이 집단으로 모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었다. 서세원이 진행했던 ‘토크박스’ 같은 것이다. 그러다가 점차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집중하는 경향이 생겼는데 ‘야심만만’이 대표적이다. 설문 형식을 가져와서 자연스럽게 연예인들의 속내를 끄집어냄으로써 새로운 토크쇼의 도래를 예고했다. 그리고 직설어법의 시대에 와서 토크는 좀 더 독해졌고 과감해졌다. 하지만 지금 이것도 저물어가고 있다.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정체된 느낌의 토크쇼는 이제 자극적인 웃음만이 아닌 어떤 공감을 찾고 있다. 진솔하면서도 사람의 스토리가 살아있는 토크쇼, 이런 게 그 돌파구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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