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리, 송지효와 만나니 펄펄 나네

 

“월요병이 생겼었어. 누군가를 꼭 만나야 될 것 같고. 누군가와 커플을 이뤄야 할 것 같고...” <런닝맨>에서 개리는 송지효에게 “데이트 하기 좋은 날씨”라며 이렇게 분위기를 만들었다. 미션에서 개리와 송지효가 커플이 되자 개리는 “너 부탁했니? 제작진한테. 너 요즘 자꾸 눈에 밟혀.”라고 밑밥(?)을 깔아놓은 상태였다. 송지효에게 실제 사귀는 남자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깨진 월요커플을 잠깐이나마 다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런닝맨'(사진출처:SBS)

월요커플이 돌아왔다. 헤어졌다가 우연한 기회로 다시 만난 콘셉트다. 약간 어색하지만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아서 척하면 착하는 그런 사이. 물론 이건 설정이다. 하지만 설정이라도 월요커플이 주는 알콩달콩한 분위기는 <런닝맨>의 긴장감 넘치는 대결 속에서 쉬어갈 수 있는 부드러운 여유를 제공하기도 했다. 일회적인 설정일 수 있겠지만 그 짧은 상황극은 보는 이들을 반색하게 만들었다.

 

갯벌에서 펼쳐진 사진 찍기 미션에서 커플끼리 손을 잡고 뻘에 입장하는 장면을 찍을 때 이것이 문근영과 김종국 커플을 위한 것이라며 투덜대는 런닝맨들에게 개리는 천연덕스럽게 “왜 오랜만에 손잡고 좋은데.”라며 송지효에 대한 마음을 드러냈다. 또 갯벌에 쓰러진 송지효를 일으켜 줄 듯 장난치며 “다시 만나자고 얘기해봐. 얘기해 보라구!”라고 소리쳐 다른 런닝맨들에게 ‘뻘사랑’이라는 얘길 듣기도 했다.

 

이런 상황극에 맞춰 송지효 역시 뻘 때문에 벗겨진 개리의 신발을 신겨주며 “아 정말 손 많이 간다 이 인간.”하고 투덜댔고, 그러자 개리는 “몰랐나. 마음까지 같이 해야 신을 수 있어.”라고 보채기도 했다. 송지효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진짜 손 많이 가는 스타일이네 진짜.”하고 투덜대자, 개리는 당연하다는 듯 “그래서 여자들이 못 떠나.”라고 말해 송지효를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결국 탈락자 커플이 되어 함께 차를 타고 가는 과정에서도 월요 커플의 상황극이 주는 재미는 이어졌다. 파리 한 마리가 날아다니자 잡아달라는 송지효의 얘기에 마치 이소룡처럼 소리를 지르며 비장한 얼굴로 파리를 잡는 개리의 모습은 그 자체로 웃음을 주었고, 송지효 역시 개리의 손에 맞고 떨어진 파리를 향해 “불쌍해”라고 얘기했다가 “어서 죽여 어서”라고 말함으로써 그 달콤 살벌한 캐릭터를 드러내기도 했다.

 

또 파리를 잡아달라는 송지효의 요청에 “내가 파리 잡는 사람이냐”고 말하는 개리와 송지효의 상황극은 월요커플 설정이 가진 힘을 잘 보여주었다. 별것도 아닐 수 있는 파리 한 마리를 잡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송지효가 “어제 숙소에서 파리 한 마리 때문에 잠을 못잤다니까”라고 말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가 보냈어.”라고 말하는 개리. 이 두 사람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서로를 살려주는 명콤비임에 틀림없다.

 

<슈퍼7> 콘서트로 마음고생을 했던 개리. 그의 월요병이 반가운 것은 그것이 마치 그의 <런닝맨>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담은 고백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월요일이면 촬영을 나가서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고픈 그 마음. 그리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게 바로 월요커플이다. 초창기 월요커플을 통해 개리가 주도해서 송지효라는 새로운 예능 캐릭터가 탄생했다면, 이제 송지효가 월요커플을 통해 개리가 <런닝맨>의 대체 불가 캐릭터라는 것을 인식시켜 주었다. 개리의 월요병이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가수가 연기하고, 배우가 웃기는 시대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가수들의 드라마 진출은 혹독한 신고식을 치러야 하는 일이었다. 물론 지금도 연기 못하는 가수들은 이른바 연기력 논란을 겪기도 하지만 적어도 이제 가수들이 주인공을 맡는다는 그 사실 하나로 비판을 받지는 않게 되었다. 그만큼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가수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고, 또 성공사례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고쇼'(사진출처:SBS)

이승기와 박유천은 드라마로 간 연기돌의 좋은 예다. '더킹 투하츠'에서 이승기는 깐족대면서도 때론 위엄을 보여주는 왕제 역할을 잘 소화해내고 있고, '옥탑방 왕세자'에서 박유천은 현대로 온 조선의 왕세자 역할을 코믹하게 보여주고 있다. '해를 품은 달'에서 주목받고 '적도의 남자'에서 매력이 확인된 임시완, '사랑비'와 '패션왕'에서 각각 활약하고 있는 소녀시대의 윤아와 유리 등등 지금 드라마의 중심에는 가수들이 있다.

 

물론 여전히 연기가 어색한 가수들도 있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해 확실히 나아진 건 사실이다. 이것은 이제 가수들이 연기 영역에 진출하는 것을 쉽게 보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이돌들 같은 경우에는 자체적으로 연기를 배우는 것이 하나의 코스가 되어 있다. 가수들은 캐스팅이 문제가 아니라 그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내야 그만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오히려 소화를 못했을 때는 연기력 논란으로 자칫 가수 활동 자체에도 악영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가수들의 드라마행이 이제 보통의 일이 되어버린 반면, 작년부터 배우들의 예능러시가 주목된다. 엄태웅은 '1박2일'의 멤버가 되면서 그간 드라마나 영화에서 올리지 못했던 주가를 올렸다. 그는 영화 '특수본'에 이어 '건축학개론'에도 출연했고, 최근에는 드라마 '적도의 남자'에서 맹활약 중이다. 송지효 역시 예능을 통해 주가를 올린 대표적인 사례다. '런닝맨'은 '쌍화점'에서의 이미지를 털어내고 그 위에 송지효 특유의 편안한 매력을 부각시켰다. 그녀는 심지어 드라마 '계백'을 촬영하면서도 '런닝맨'에 출연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것은 사극에 있어서 전례가 거의 없는 일이다. 그만큼 송지효가 '런닝맨'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 지를 알 수 있었던 대목이다.

 

한혜진은 '힐링캠프'가 발견한 예능의 보석이 되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서도 자기가 할 이야기는 빼놓지 않고 콕콕 집어 말하는 직설어법은 '힐링캠프'에서 그녀만의 존재감을 세워주었다. 이러한 성공사례들 덕분일까. 배우들의 예능 러시는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고현정이 자신의 이름을 딴 '고쇼'로 예능 신고식을 치렀고, 이동욱은 이승기가 떠난 '강심장'에 MC를 맡아 첫 회부터 공동MC인 신동엽보다 더 확실한 존재감을 만들어냈다. 물론 시트콤은 예능으로 분류돼도 드라마에 가깝지만 아직까지 이 분야에 발을 딛지 않았던 차인표(선녀가 필요해)나 류진(스탠바이)이 최근 여기에 합류했다는 것도 배우들의 예능 러시와 같은 궤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배우들 중 특히 여배우들의 예능 활약은 두드러진다. 사실 여배우들의 예능 출연은 대부분 그들의 작품 홍보 시기와 맞물려 출연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여배우라는 존재 자체가 예능에서는 하나의 블루오션처럼 되어 있었던 것. 여배우라면 흔히 떠올리는 여신 같은 이미지들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걷어내는 것만으로도 예능에서는 확실한 반전 효과를 줄 수 있다. 송지효나 고현정 같은 경우를 보면 그녀들이 본래 갖고 있던 이미지들을 예능을 통해 상당히 부드럽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배우가 예능을 하고 가수가 연기를 하는 것처럼 연예인들이 점점 멀티 플레이어화되는 이유는 뭘까. 이것은 점점 퓨전화되고 섞이는 콘텐츠들의 시대적인 요구에서 비롯된다. 예능이 다큐나 드라마적인 요소와 섞이고, 드라마가 예능과 접목되는 등의 콘텐츠 퓨전화 경향은 그 종사자들인 연예인들의 자기 정체성 또한 하나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또한 경쟁이 그만큼 치열해지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자신을 어필하려는 것도 연예인들이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이유가 될 것이다.

 

또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들이 섞일 때 그 연예인 당사자에게 그것이 시너지를 만들 가능성도 훨씬 높다. 과거에는 배우가 예능에 출연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이미지의 충돌이 생기기 때문. 하지만 요즘은 확실히 달라졌다. 예능 출연의 이미지와 영화나 드라마 출연의 이미지를 별개로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기 때문이다. 엄태웅 같은 경우에 '적도의 남자'나 '건축학 개론'에서의 진지한 이미지와 예능에서의 편안한 이미지가 서로 부딪치지 않고 상생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스타들에게 멀티 플레이어를 요구하는 이러한 사회의 변화는 물론 그만큼 치열해진 경쟁을 얘기해주는 것이지만, 또 한 편으로 특정 영역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뒤섞이는 문화적 변화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콘텐츠의 퓨전화 경향처럼 이제 연예인들 역할도 퓨전화되고 있다. 가수가 연기하고 배우가 웃기는 시대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