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의 비밀에 발목 잡힌 ‘신들의 만찬’

 

출생의 비밀은 때론 멜로의 장치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게 ‘알고 보니 남매’ 같은 설정. ‘신들의 만찬’에서는 ‘알고 보니 자매(?)’라는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이 들어있다. 물론 준영(성유리)과 인주(서현진)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지만, 엄마인 성도희(전인화) 입장에서 보면 수십 년을 딸로 살아온 가짜 인주(인주 행세하는 실제는 송연우)나 이제 그 세월을 뛰어넘어 돌아온 진짜 인주(준영)나 모두 딸인 것은 마찬가지. 그러니 가짜 인주를 죽 사랑해오다 진짜 인주에게 마음이 돌아서버린 재하(주상욱)는 이들의 숨겨진 출생의 비밀을 알고 나서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신들의 만찬'(사진출처:MBC)

물론 이건 그저 이 관계들을 굳이 인정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렇다는 얘기다. 스토리 자체가 억지스럽고 인물들의 내면 심리가 섬세하게 표현되지 않기 때문에 겉으로 보면 준영과 재하가 보여주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운운하는 장면들은 너무 오버하는 것 같고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잘 지내다가 왜 갑자기 저렇게 된 것인지에 대한 인물들의 감정 변화가 자연스럽게 드러나지 않다 보니 공감대 역시 없기 때문이다.

 

본래 출생의 비밀이라는 장치 자체가 작가가 일부러 끼워 넣은 억지스러운 면이 있는 것이지만, 그나마 드라마의 극성을 위해 설정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인물이 자연스럽게 스토리의 흐름을 타지 않고 작가에 의해 이리 저리 휘둘리는 건 자칫 막장으로 흐를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 20여 년 간을 인주와 교제를 해오다 준영을 만나고는 순식간에 마음을 바꿔버린 재하(분명한 이유가 제시되었어야 한다)는 이 드라마가 가진 작가의 억지스런 개입의 문제를 가장 잘 드러낸다.

 

이로써 재하라는 인물은 조강지처 버린 매력 없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재하가 준영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캐릭터고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의 멜로가 이 드라마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렇게 매력 없는 인물로 만들어버리자, 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올 도윤(이상우)이라는 인물과 상황이 역전되어 버린다. 도윤은 겉으로는 냉랭하게 대하면서도 오로지 준영만을 바라보는 인물로, 캐릭터 역시 재하와 비교해 더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결국 이 멜로구도는 자가당착의 상황에 빠져버렸다. 준영을 재하와 연결시키자니 매력이 떨어지고 또 도윤이 눈에 밟힌다. 그렇다고 도윤과 연결시키면 스토리 전개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버린다. 물론 멜로가 스토리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중요한 건 이 멜로 구도를 통해 볼 수 있는 작가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가진 문제다. 작가의 의도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인물들은 그래서 자연스럽지 못하고 고통스러워 보인다. 때론 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연기자들이 안쓰럽게 보일 지경이다.

 

‘신들의 만찬’의 출생의 비밀을 사이에 끼워 넣은 억지스런 멜로 구도는 이 드라마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드라마 속의 캐릭터는 작가에 의해 움직이는 인형이 아니다. 물론 캐릭터의 창조는 작가가 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창조된 캐릭터는 스토리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한다. 예를 들어 작가가 원한다고 어느 날 갑자기 죽여 버릴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출생의 비밀을 다루는 드라마들의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작가가 마음껏 캐릭터들을 유린해놓고는 그것이 ‘운명’이라고 치부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 운명을 만든 자는 바로 작가 자신이다. 따라서 작가는 이러한 드라마 스토리 속에서 신이나 다름없다. 작가는 분명 콘텐츠에 있어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신적인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세계를 마음껏 전횡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건 아니다. 거기에는 ‘공감’이라는 질서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질서가 무시 됐을 때 그 세계는 막장이 되어버린다. ‘신들의 만찬’이라는 이 기묘한 제목의 드라마가 자꾸만 ‘작가의 만찬’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이 공감의 질서를 해치는 운명이라 변명하는 신적인 손길이 자꾸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전횡되는 세계 속의 불쌍한 캐릭터들을 어찌할 것인가.


뻔한 전개, 근데 왜 자꾸 보게 될까

'무신'(사진출처:MBC)

MBC 주말극이 칼을 빼들었다. 고전적인 영웅 서사, '무신'이 남성 시청자를 정조준한 것이라면, 전형적인 가족 서사, '신들의 만찬'은 여성 시청자를 겨냥했다. 그것도 전통적인 드라마 남녀 시청층인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한데다, 주말 밤에 연달아 편성함으로써 하나의 패키지로서의 시너지 효과도 노렸다. 이 정도면 주말의 이 두 작품에 깃든 MBC의 야심을 엿볼 수 있다.

작품은 새롭기보다는 익숙한 것을 가져왔고 대신 자극은 더 강해졌다. '무신'은 잔인한 고문 장면이 꽤 길게(이것은 의도적인 연출이다) 이어졌고, 노예가 된 여자들의 옷을 벗기고 하나의 성노리개처럼 그 몸에 대해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사실 이미 미드로 유명한 '스파르타쿠스' 같은 작품을 본 시청자라면 이 정도 연출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겨질 법하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네 지상파를 염두에 두고 본다면 꽤 수위는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자극은 '신들의 만찬'도 마찬가지다. 첫 회부터 유람선을 타고 가던 중 남편의 외도 사실에 아내가 자살을 기도하는 장면이 나왔고, 그걸 본 아이가 충격에 휩싸여 갑판에 오르다 미끄러져 바다로 떨어지는 장면, 또 자신이 불치병이라는 사실 때문에 아이를 버린 채 자살하려는 여자가 등장했다. 무엇보다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건 종종 이 폭력적인 상황에 아이가 그 대상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 강렬한 자극의 껍데기를 벗겨내면 그 내용은 익숙하기 이를 데 없는 것들이다. '무신'은 지극히 고전적인 영웅서사를 담았다. 고려 무신정권 시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최충헌가의 노비였으나 훗날 최고의 위치까지 오르는 인물, 김신을 다루었다. '벤허'에서부터 '글래디에이터', '스파르타쿠스' 같은 고전적인 영웅담은 물론이고, 그 전통을 그대로 밟아 만들어졌던 '태조 왕건', '해신', '대조영'과도 스토리구조에 있어서 궤를 같이 하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신들의 만찬'은 이미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에서부터 지금껏 반복되는 그 전형적인 '출생의 비밀' 코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출생의 비밀' 코드와 '요리 경합'이 붙어 있는 점은 '제빵왕 김탁구'를 떠올리게 하고, 바뀐 인물들이 훗날 제 자리를 찾아가면서 생겨날 파장들은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부터 '반짝반짝 빛나는'까지 무수히 반복된 우리네 드라마의 틀에 박힌 구조 그대로다.

이처럼 이 '무신'과 '신들의 만찬'은 뻔한 스토리 구조를 갖고 있으면서 대신 그 자극을 높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웬만큼 반복된 스토리라고 해도 한 번 보면 계속 보게 되는 힘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즉 이들 작품들은 기대를 뛰어넘는 반전의 드라마가 아니라 기대한대로 흘러가는 드라마다. 그것도 더 강한 자극으로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그런 드라마. 뻔한 얘기인데 왜 자꾸 보게 될까 하는 의구심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다.

물론 약점도 있다. 현재 드라마의 시청률은 남성만을 타깃으로 하거나, 여성만을 타깃으로 해서는 좀체 오르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이 두 드라마는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으로 인해 너무 타깃의 성별이 뚜렷한 점이 강점이자 약점이다. 과연 MBC의 조금은 야심이 지나쳐 보이는 이 전략적인 두 드라마는 과연 선정성과 자극성, 그리고 상투성의 시비를 넘어서 주말 밤의 영토를 빼앗아 올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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