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패다’, 윤시윤이어서 가능했던 코믹 스릴러의 맛

 

후반에 이르러 시청률이 상승하면서 2.9%(닐슨 코리아)까지 올랐지만 끝내 3%대 시청률을 기록하지는 못한 채 tvN 수목드라마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는 종영했다. 시청률에 대한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이 작품의 성취는 결코 적지 않다. 지금껏 스릴러라고 하면 어느 정도 정해진 형식적 틀이라는 게 있었지만 이 작품은 그런 틀에서 과감하게 빠져나와 코미디와 스릴러를 오가는 독특한 맛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연쇄살인마의 다이어리를 주운 채 기억을 잃어버린 육동식(윤신윤)이 깨어나 자신을 연쇄살인마라고 여기며 벌어지던 해프닝은 진짜 살인범인 서인우(박성훈)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국면 전환을 만들어낸다. 육동식이 자신을 연쇄살인마라 여기는 초반부가 코미디로 그려진다면, 후반부로 오며 서인우가 육동식에게 자신이 저지른 죄를 모두 뒤집어씌우는 상황에서는 스릴러가 점점 강력해졌다.

 

결국 육동식은 자신이 진짜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하며 감옥에까지 들어가게 돼서야 비로소 그게 모두 서인우에 의해 만들어진 거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이어진 반격. 육동식과 심보경(정인선)이 공조해 서인우와 대결하는 과정은 쫄깃한 스릴러의 맛을 선사했다. 드라마 한 편에서 이렇게 웃음과 긴장감이 오갈 수 있는 경험을 하게 해줬다는 것만으로도 <싸이코패스 다이어리>의 성취는 분명히 있었다고 여겨진다.

 

<싸이코패스 다이어리>가 이 코믹스릴러라는 독특한 퓨전으로 전하려는 메시지는 ‘착하다’는 선이 가진 힘이다. 사실 우리네 현실에서 선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졌다 여겨지는 건 악이라고 느껴질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육동식은 늘 호구로 불리며 당하는 삶을 살아왔고 그 삶이 싫어 극단적 선택까지 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가 연쇄살인범이라 착각하면서 누군가를 살해하겠다는 마음은 끝내 벌어지지 않는다. 저들에게는 ‘호구’라 불렸지만 그가 갖고 있는 선한 마음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는 결국 그 선한 마음이 무가치로 폄하되곤 하는 우리네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았다. 다른 이도 아니고 육동식이 그 다이어리를 갖게 되어 다행이라고 말하는 심보경은 그의 ‘선한 마음’이 더 비극적인 상황들을 만들지 않았다는 걸 에둘러 표현한다. 누군가에게 당하며 심지어 호구로 불리는 이들이 있어 우리 사회가 어쩌면 살만해질 수 있다는 것.

 

이 작품의 성취에서 상찬할 수밖에 없는 건 연기자들의 호연이다. 특히 윤시윤은 싸이코패스의 살벌한 웃음과 함께 순간 허당으로 바뀌는 표정 연기로 이 작품이 가진 코믹 스릴러라는 장르를 가능하게 해줬다. 순간적으로 섬뜩한 얼굴에서 금세 천진무구한 얼굴로 바뀌는 그 연기가 더해져 드라마의 이질적인 장르가 따로 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와 항상 같이 붙어 다니던 장칠성 역할의 허성태가 보여준 연기변신도 한 몫을 차지했다. 물론 싸이코패스 악역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낸 서인우 역할의 박성훈도 빼놓을 수 없다.

 

낮은 시청률은 아마도 이 작품이 가진 파격적인 시도가 낯설게 느껴져서였을 게다. 스릴러의 긴장감과 코미디의 이완이 오가는 이 작품이 우리가 늘상 봐오던 그런 드라마의 색깔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참신한 시도가 있어야 드라마가 장르적 문법에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지대를 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싸이코패스 다이어리>의 성취는 그런 의미에서 결코 적지 않다.(사진:tvN)

'싸이코패스 다이어리'가 끄집어낸 허성태의 더 큰 잠재력

 

“저는요. 저는 뭐 형님 배신 때릴 줄 알았습니까? 의형제인데.” 믿을 건 심보경 경장(정인선)밖에 없다는 육동식(윤시윤)의 말에 장칠성(허성태)은 살짝 토라지며 그렇게 말한다. 그 말에 육동식이 오열하자 장칠성도 함께 울며 “제발 울지 좀 마요”라고 말한다. 조폭이니 싸이코패스 포식자 살인마니 하는 호칭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쫄보에 눈물 많은 이 콤비는 그래서 만나기만 하면 빵빵 터지는 케미를 보여준다.

 

tvN 수목드라마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를 보다보면 이 인물이 과연 늘 봐왔던 그 허성태가 맞나 싶다. 물론 시작은 늘 허성태가 해왔던 살벌한(?) 이미지의 조폭 장칠성이었다. 하지만 그건 겉모습이었을 뿐, 실제로는 쫄보에 두들겨 맞기 일쑤인 인물. 그는 어느 날 우연히 만나게 된 육동식(윤시윤)을 “강자한테 강하고 약자를 위할 줄 아는” 진정한 협객으로 받아들이며 ‘형님’으로 모시는 인물이 된다.

 

그런데 이 캐릭터가 흥미로운 건 탈옥한 육동식이 자신이 진짜 포식자가 아니었고 기억을 잃은 채 싸이코패스의 다이어리를 갖게 되어 착각했던 거라는 걸 털어놨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형님”이라 부른다는 사실이다. “뭐 한 번 형님은 영원한 형님이지 뭐.”라며 그는 육동식을 따라다닌 이유를 말한다. 물 주먹으로 비웃음 받았던 그는 그 바닥을 뜨려고 할 때 육동식을 만났다는 것. 육동식이 그건 자신이 포식자인 줄 알고 착각해서 그런 것이라 말하자 장칠성은 말한다. “형님 진짜 힘은요. 여기(주목)서 나오는 게 아니고 여기(가슴)서 나오는 겁니다.”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는 육동식이라는 스스로 싸이코패스라 착각해 허세를 부리지만 실상은 파리 한 마리 못 죽이는 ‘착한 사람’이라는 캐릭터가 사실상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이나 마찬가지다. 싸이코패스에 연쇄살인범으로 누명까지 쓰고 감옥에 갔다 탈옥까지 하지만 그는 착한 사람이다. 번듯해 보이지만 모든 살인을 저지르고 그걸 숨기기 위해 뇌물을 쓰고 선량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는 서인우(박성훈) 같은 인물과 육동식은 그래서 대비를 이룬다.

 

이 대결구도에서 보면 허성태가 연기하는 장칠성 역시 조폭 캐릭터의 기막힌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살벌해보이지만 사실은 마음 약하고 의리를 지킬 줄 아는 인물. 그래서 육동식과 장칠성의 조합은 서인우와의 대결구도에서 더 끈끈해진다. 사실상 육동식의 처지와 장칠성의 처지는 비슷한 선량한 시민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장칠성이라는 반전 캐릭터를 허성태는 제대로 소화해내고 있다. 살벌함을 뒤집어 코믹함을 주고 그러다가도 때론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로 변모하는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라는 작품의 퓨전적인 성격을 허성태는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장칠성을 코믹하면서도 짠한 페이소스까지 담은 인물로 연기해내고 있는 것.

 

사실 보통은 평범한 인물의 역할을 연기하다가 연기 변신을 하기 위해 악역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허성태는 정반대의 연기변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주목하게 만든다. <터널>이나 <보이스>는 물론이고 영화 <밀정>, <범죄도시>, <신의 한수2> 같은 작품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허성태. 그는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를 통해 자신에게도 다양한 얼굴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는 그래서 35살의 나이에 늦깎이로 배우를 시작한 허성태에 더 많은 가능성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사진:tvN)

‘싸패다’, 다이어리 하나로 이런 다양한 상황 전개라니

 

애초에는 우스꽝스런 코미디인 줄 알았다. 물론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 등장하고 그를 추적하는 경찰이 나오는 범죄 수사물의 색깔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워낙 육동식(윤시윤)이라는 인물이 가진 코믹한 설정이 웃음을 먼저 자아내게 했기 때문이다.

 

진짜 살인마 서인우(박성훈)가 노숙자를 살해하려던 현장에서 그 살인마의 일기장을 얻어 도망치던 중 심보경(정인선) 경장이 몰던 경찰차에 부딪쳐 기억을 상실한 육동식이 깨어난 후 그 일기장 때문에 자신이 싸이코패스라 착각하는 그 상황이 어찌 웃기지 않을 수 있을까. 늘 호구로 불렸던 육동식은 자신이 싸이코패스라 착각하면서 그를 핍박했던 회사 상사들이나 길거리 깡패들 앞에서도 의외의 카리스마를 드러낸다.

 

하지만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는 그런 코미디로 끝날 드라마가 아니었다. 육동식의 행동에 흥미를 느낀 진짜 살인마이자 그의 회사 상사인 서인우 이사가 점점 그에게 접근하고, 심보경은 사건 수사 중 머리를 다쳐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된 아버지가 자신이 추적하는 ‘포식자 살인마’라는 사실에 조금씩 접근해간다.

 

육동식은 자신이 싸이코패스답지 않게 두려움에 떨고 연민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는 사실에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포식자 살인마’가 바로 자신이라고 착각한다. 다이어리에 적힌 피해자들의 신상이 심보경 경장이 수사를 통해 찾아낸 피해자들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포식자 살인마를 자처하는 모방범죄자가 등장하고 연쇄살인을 수사하던 전담팀은 그를 잡아 사건을 종결시킨다. 하지만 육동식도 심보경도 그게 진짜 연쇄살인마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이야기는 이제 연쇄살인범인 서인우가 육동식과 심보경의 아버지의 정체를 알아차림으로써 본격적인 스릴러로 흘러간다. 서인우는 육동식이 스스로를 연쇄살인범이라고 착각하는 걸 이용해 자신이 저지른 범죄들을 모두 그에게 뒤집어씌우는 작업에 들어간다. 자신의 정체를 알아채고 협박하는 전직 형사 박무석(한수현)을 마치 육동식이 제거한 것처럼 꾸미려 한다. 서인우가 계획한 대로, 육동식은 박무석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 착각하고 죽이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쉽지가 않다. 하지만 실랑이 끝에 박무석이 칼에 찔려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자 육동식은 패닉 상태가 되어버린다.

 

생각해보면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는 다이어리 하나로 인해 생겨난 코믹하면서도 심장 쫄깃한 스릴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 작은 사건을 통해 끝없이 새로운 상황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흥미롭다. 기억을 잃은 채 싸이코패스의 다이어리가 자신의 것이라 착각해 스스로 연쇄살인범이라고 생각하는 육동식의 이야기는, 진짜 연쇄살인범 서인우가 그의 정체를 알아채가는 과정을 담고 그에게 모든 살인을 뒤집어씌우려는 방향으로 커져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심보경의 수사에 육동식이 점점 마음을 졸이게 되고 결국 심보경도 그를 의심하게 되는 상황까지. 그 전개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코미디와 스릴러를 적절히 엮어 놓은 장점은 이런 웃기면서도 심장 쫄깃해지는 반전 스릴러를 가능하게 해준 지점이 아닐 수 없다. 너무 진지해지면 이 황당한 상황에 대한 몰입이 어려웠을 수 있지만, 적당히 코미디로 눌러줌으로써 황당한 상황을 오히려 더 긴장감 있게 끌고 갈 수 있게 된 것.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는 그런 점에서 보면 장르물과 코미디의 퓨전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사진:tvN)

‘싸패다’ 윤시윤, 싸이코패스 정도 돼야 버티는 현실이라니

 

코미디지만 이 코미디 어쩐지 슬프다. tvN 수목드라마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는 어쩌다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의 살인 기록이 담긴 다이어리를 가진 채 사고로 기억을 잃은 한 증권사 사원이 자신이 싸이코패스라 착각해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고 있다. 이 상황이 코미디가 되는 건 본래 모습은 소심하기 그지없던 인물이 자신이 싸이코패스라고 착각하게 되면서 보이는 일종의 허세와, 의외로 그 허세가 통하기도 하는 상황이 주는 웃음이다. 그런데 이 허세의 주인공 육동식(윤시윤)이 처한 현실을 보다보면 어딘지 슬퍼진다.

 

대한증권에서 알아주는 호구인 육동식은 팀장 공찬석(최대철)이 잘못된 투자로 입은 큰 손실의 책임을 홀로 떠맡게 된 채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다. 공찬석은 갑질하는 인물로 팀원들을 사사건건 괴롭히고, 핍박을 받던 육동식이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물론 그 순간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가 노숙자를 살해하려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거기서 그의 다이어리를 얻은 채 기억 상실이 되어버리지만.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는 실제로 싸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스릴러 장르를 더했고 또 그를 추적하는 심보경(정인선) 경장의 추리와 탐문이 이어지지만, 그렇다고 스릴러의 구도만을 따라가지는 않는다. 실제 싸이코패스가 육동식이 다니는 회사의 서인우(박성훈) 이사라는 걸 일찌감치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누가 범인인가를 두고 만들어지는 스릴러 특유의 긴장감을 이 드라마는 애초에 추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째서 회사, 그것도 증권사라는 구체적인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에 ‘싸이코패스’라는 설정까지 집어넣은 걸까. 그건 우리네 현실을 하나의 블랙코미디처럼 뒤집어보려는 설정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더해진다. 하나는 도대체 누가 진짜 싸이코패스인가 하는 점이다. 누가 봐도 번듯한 회사의 이사로 앉아있는 서인우가 그럴 듯해 보여도 사실은 잔인한 싸이코패스라는 설정은 그래서 회사 맨 꼭대기에 앉아 직원의 목을 사인 하나로 날려버리는 직장 상사를 떠올리게 하는 은유처럼 보인다.

 

육동식을 사사건건 무시하고 괴롭히고 심지어 자신의 과오를 덮어씌워 내보내려 하는 공찬석 같은 팀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심지어 직원 오미주(이민지)까지 시켜 그 뒷모습을 육동식 카메라로 찍어 그에게 성추행 누명을 씌우려 하는 인간이다. 그러니 여기서 기막힌 블랙코미디가 만들어진다. 기억을 잃고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를 주운 육동식은 자신을 스스로 연쇄살인마라 여기지만 알고 보면 회사에서 늘 당하는 을이고, 실상 그런 을 위에 군림하는 이들이 진짜 싸이코패스이거나 싸이코패스 같은 인물들이니 말이다.

 

또 하나의 싸이코패스 설정이 말해주는 건, 이 살벌한 현실 속에서 평범한 을들이 버텨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싸이코패스라 여기는 정도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육동식은 자신이 싸이코패스일 거라고 여기는 순간부터 회사가 그에게 가하는 핍박을 웃으며 넘겨버린다. 대신 그는 어떻게 그 상사들을 살해할 것인가를 계획하며 즐거워한다.

 

<싸이코패스 다이어리>가 보여주는 건 그래서 싸이코패스 정도는 되어야 버텨낼 수 있는 현실이다. 실제 피가 튀고 누군가 살해당하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어쩌면 그 현실에서 누가 누구의 목을 자르고 누군가를 모함해 내치려하는 그런 일들은 사회적 삶의 살해와 뭐가 다를까. 핍박해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으며 버텨내는 을들은 차라리 감정 없는 싸이코패스의 상황이 더 낫다고 여겨질 정도다. 웃음 가득한 코미디지만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는 그 이면에 이처럼 살풍경한 현실의 비애를 담고 있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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