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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같은>, 심지어 원작과 정반대의 영화라니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는 현직 연예부 기자인 이혜린 기자의 동명의 자전적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본래 이 소설은 열정같은 소리를 해대며 사실은 갖가지 기레기짓으로 제 밥그릇을 챙기는 스포츠지 연예부 기자의 현실을 폭로하고 비판하며 작가 스스로는 반성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사진 출처 : 영화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런 원작의 메시지는 영화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정반대의 주제의식이 드러난다. 그 주제의식이란 다름 아닌 대중들이 흔히 기레기라고 부르는 이들도 나름대로의 애환과 직업의식은 있고, 그것 역시 밥줄이 달린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거론하고 있듯이 이 작품은 여러 모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이야기구조와 유사하다. 인턴기자로 입사한 도라희(박보영)<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드리아(앤 헤서웨이)처럼 보이고 그녀를 압박하는 하재관 부장(정재영)은 미란다(메릴 스트립) 편집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품은 뒤로 갈수록 <미생>의 인물들로 바뀌어간다. 즉 도라희는 장그래(임시완)처럼 보이고 하재관은 오과장(이성민)처럼 보이는 것.

 

하재관이란 인물에 대한 동정적 시선을 만들어 언론 현실의 문제를 밥줄의 문제로 슬쩍 덮어버리자 영화는 진지한 문제제기보다는 발랄한 코미디를 따라간다. 그리고 사실 악이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고는 해도 누군가의 사생활을 캐고 그것을 자극적으로 만들어내며 나아가 찌라시를 활용하기까지 하는 그 언론 자체와 그걸 만들어내는 자본의 경쟁논리에 있지만, 영화는 엉뚱하게도 한 기획사의 대표를 악의 축으로 세워놓는다.

 

이렇게 되자 내부의 문제는 가려지고 대신 외부의 강력한 적과 싸워나가는 기자정신(?) 이야기로 포장된다.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라는 제목이 가진 시니컬함은 사라지고 오히려 주인공이 마치 CSI처럼 밤새워 정황들을 모아 기사를 작성하는 열정이 부각된다. 그리고 그 열정은 원작과는 너무나 다른 정식 기자증이라는 훈훈한 결과로 이어진다. 내부 고발의 이야기가 힘겨워도 살만하고, 더러워도 그것이 먹고 살기 위함이라는 포장으로 채워지면서 원작의 메시지는 완벽하게 뒤집어진다.

 

이러한 훈훈한 성장담에 박보영 캐스팅은 아마도 최적이었을 것이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 순수한 이미지의 연기자가 바로 박보영이 아닌가. 그러니 여기 등장하는 기자들의 말 그대로 먹고 살자고 하는 일들이 그녀가 인턴 역할을 연기함으로써 상당부분 용인되게 만드는 힘이 생기는 게 사실이다. 기자라고 하면 막연히 떠오르는 그런 이미지도 박보영이 하고 있으니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이것은 정재영 캐스팅도 마찬가지다. 꽉 막힌 것처럼 버럭대는 캐릭터지만 어딘가 마음 한 구석에 정이 느껴지고 때로는 그 버럭 댐이 오히려 우스꽝스럽게까지 보이게 만드는 역할에 정재영 만한 연기자가 있을까. 부하직원을 끔찍이 챙기고, 기러기 아빠로서 살아가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하재관이 그래서 심지어 구악처럼 보이기보다는 한 명의 가장이자 피해자처럼 보이게 된 건 정재영이라는 연기자의 이미지도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도대체 어째서 이처럼 지옥 같은 경험을 담았던 원작이 훈훈한 직장생활 성공기로 변신하게 됐던 걸까. 물론 그것은 장르적으로 경쾌한 코미디가 훨씬 경쟁력이 있다 여겨졌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원작을 뒤집어 그저 웃고 넘기기엔 어딘지 아쉬움과 씁쓸함이 남는 리메이크가 아닐 수 없다. 그것 역시 자본의 논리에 의해 각색되고 포장된 것일 테니 말이다. 만일 연예부 기자들의 현실을 리얼하게 들여다보고 싶다면 영화보다는 차라리 원작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Posted by 더키앙

미국 영화 <인턴>이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방식

 

영화 <인턴>은 생각 외의 흥행을 거뒀다. 지난 7일 현재 <인턴>의 관객 수는 170만 명에 육박했다. 소소한 휴먼드라마, 게다가 우리네 정서도 아닌 미국식 정서가 담겨진 영화에 이처럼 우리네 관객들이 많이 찾은 건 이례적인 일이다.

 


사진출처: 영화 <인턴>

물론 로버트 드니로에 앤 헤서웨이의 조합이 주는 기대감은 분명히 있다. <인턴>의 홍보 포인트가 꽃할배 로버트 드니로를 인턴으로 둔 젊은 여사장 앤 헤서웨이라는 건 확실히 그림이 된다. 무수한 작품에서 놀라운 연기력으로 자신만의 매력을 드러냈던 로버트 드니로. 게다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그 신입이었던 앤 헤서웨이가 이제 젊은 CEO로 나온다니 어찌 기대가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것만으로 17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 동원을 한 <인턴>의 의문은 좀체 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가진 낸시 마이어스 특유의 따뜻한 휴먼드라마의 힘일까. 그런 점이 없지는 않다. 이 영화는 인턴으로 들어온 70세 벤(로버트 드니로)이 인터넷 쇼핑몰로 단 몇 년만에 큰 성공을 거둔 줄스(앤 헤서웨이)에게 일종의 인생 상담을 해주는 영화다. 즉 회사에서는 벤이 줄스의 인턴이지만, 인생에서는 줄스가 벤의 인턴이라고 말해주는 영화.

 

그 안에는 우리에게도 잘 통하는 아날로그 정서가 깔려 있다. 즉 줄스가 운영하는 회사의 대부분은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통해 굴러간다.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하는 지시도 이메일로 전달되고 고객들도 직접 대면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고 불만사항도 인터넷으로 통해 전해지고 수정된다. 이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온 벤은 다른 인턴이 컴퓨터 주변기기와 스마트폰을 꺼내놓는 장면에, 오래된 가방에서 노트와 펜, 계산기를 꺼내놓는다. 디지털로 어딘지 쿨해 보이지만 차갑게 느껴지는 회사에 벤은 따뜻한 아날로그적 인간관계를 풀어놓는다.

 

이러한 아날로그 정서를 바탕으로 사장을 보필하는 충직하고 경험 많은 벤 같은 비서(혹은 친구나 동료)에 대한 판타지도 있다. 워킹맘의 입장인 줄스는 그래서 일과 가정생활 모두를 잘 해내고 싶은 직장여성들과 공감하는 면이 있다. 벤은 정서는 아날로그지만 마인드는 혁신적인 사람이다. 능력 있는 여성이 가정사 때문에 집안에 주저앉는 것을 그는 안타깝게 바라본다.

 

<인턴>의 성공에는 연기자들에 대한 믿음과 그 내용이 담고 있는 아날로그적인 정서의 훈훈함이 분명 깔려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이만한 성공의 이유를 모두 말해주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 이유의 빈 구석을 채워주는 건 <인턴>이라는 제목에서 찾아지지 않을까.

 

이 영화는 미국의 기업들이 일종의 사회 기여 차원에서 하는 시니어 인턴제를 소재로 하고 있다. 즉 은퇴한 시니어들을 기업이 인턴으로 채용하는 일이다. 물론 이 영화에는 젊은 인턴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영화 속에서의 인턴이 우리나라에서의 인턴의 의미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에게 인턴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저 <미생>의 장그래(임시완) 같은 인물이거나 현재 방영중인 MBC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의 김혜진(황정음)일 것이다. 정규 채용이 되기 위해 시키는 일이면 뭐든 하는 존재. 그렇게 죽어라 일해도 정규채용은커녕 쫓겨나기 일쑤인 그런 존재.

 

즉 이 영화의 인턴이라는 제목은 기묘하게도 일종의 착시현상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인턴으로 들어갔지만 CEO와 거의 대등한 위상을 보여주고 심지어 그녀의 일은 물론이고 삶까지 인생 상담을 해주는 인턴. 우리네 인턴과는 너무나 달라서 하나의 판타지가 되는 그런 인턴이 이 영화에는 존재한다.

 

젊은 관객들이 이 영화가 만들어내는 인턴이라는 착시효과의 판타지를 보게 된다면, 중년 이상의 관객들은 영화가 말해주는 아날로그 정서와 은퇴해도 여전히 강력한 능력으로 남아있는 경륜이 효용가치가 있다는 판타지를 보게 된다. 물론 워킹맘들은 줄스라는 인물을 통해 일과 가족을 모두 지켜내는 판타지를 들여다볼 것이다.

 

이러니 기묘하게도 <인턴>이라는 영화는 우리네 인턴제와는 너무나 다른 미국식 인턴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우리 정서와 판타지를 자극하는 요소들이 다 들어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젊은 세대의 인턴판타지와 실버 세대의 인정 욕구 그리고 워킹맘들의 판타지가 그것이다. 영화는 미국에서 만들어졌지만 우리네 관객은 이 영화를 우리식으로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Posted by 더키앙

'찬란한 유산'의 후속작, '스타일'이 갖지 못한 것

꿈의 시청률 47%를 기록하고 종영한 '찬란한 유산'의 후속으로 들어온 '스타일'은 첫 회부터 17%의 시청률을 냈다. 아무리 대단한 작품이라고 해도 이런 수치는 이례적이다. 그런 면에서 '찬란한 유산'은 후속 작품에도 찬란한 유산을 남긴 셈이다. 하지만 정작 '스타일'은 '찬란한 유산'의 뒤를 잇는 작품으로서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을 갖고 있다.

'스타일'은 먼저 외관이 화려하다. 칙릿을 추구하는 이 작품에는 무수한 명품의 이미지들이 꿈틀댄다. 명품 백과 옷들이 마치 광고로 도배된 패션잡지의 그것처럼 화면 전체를 도배하고 있고, 주인공들은 패션쇼를 하듯 연거푸 옷을 갈아입고는 마치 무대처럼 화려한 세트와, 화보의 배경처럼 판타지를 자극하는 장소에 서 있다. 어디 그것뿐인가. 그 화려한 패션쇼를 연출하는 당사자들의 조각 같은 몸들은 이 화보 같은 드라마 속에서 계속 전시된다.

그저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면 그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드는 '엣지'나는 상품들에 눈을 멀게된다. 박기자(김혜수)의 까칠함과 이서정(이지아)의 지질함이 주는 대비효과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런 구도는 이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본 분이라면 심지어 식상하다 여겨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마음을 빼앗기는 이유는 똑같은 설정에도 그 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이 다르고, 그 인물들이 서 있는 화보(?)의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그 영화의 내용보다도 시골출신 촌뜨기 주인공 앤드리아가 이것 저것 명품들을 입어보는 그 행위에 더 빠져드는 것과 같다. '스타일'은 확실히 이 칙릿의 대표격인 '악마가 프라다를 입는다'의 판타지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어떤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사회생활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고통과 판타지가 인물들을 통해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스토리텔링이 있었다.

'스타일'의 스토리텔링 역시 마찬가지로 이 사회생활 속의 여성의 욕망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스토리텔링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처럼 잘 드러나지가 않는다. 이것은 아마도 좀 더 압축적인 영화의 옷과 다를 수밖에 없는 드라마의 옷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감하기 어려운 캐릭터에서 비롯되는 바가 더 크다. 이 드라마에서 인물들은 지나치게 오버하고 있다. 박기자는 '엣지'를 남발하면서 확실히 어떤 카리스마를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 안에서 자신만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축하지는 못하고 있다. 박기자가 가진 긍정적인 면들, 예를 들면 실력 같은 것이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서정 캐릭터에서 발견된다. 명품에 빠져 있지만, 배신한 남자친구에 대해서는 신파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는, 명품이 주는 쿨한 이미지와 신파가 주는 지질한 이미지의 충돌을 겪고 있다. 시청자들은 명품에 혹하는 그녀의 캐릭터에 감정이입되다가도, 남자친구 앞에서 구질구질하게 구는 그녀에게서 몰입을 방해받는다. 무엇보다 이 캐릭터는 안정되어 있지가 않고, 허공에 붕 떠 있는 듯한 설정 속에 서 있다. 이서정 캐릭터가 이런 상태에 머물게 되면, '스타일'의 스토리텔링은 부각되기가 어렵다. 그 스토리텔링이 특별한 것도 아닌 이미 나와 있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현재 2회가 지난 '스타일'은 드라마 스토리텔링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의 문제(혹은 욕망)를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 이서정이 좌충우돌하는 그 장면들을 마음 속으로 공감하며 따라가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남게 되는 것은 말 그대로 드라마의 스타일뿐이다. 뭔지 몰라도 화려하고 감각적인 그 스타일.

극중에서 서우진(류시원)은 '광고로 도배한 패션잡지'라는 이유로 박기자의 인터뷰를 거절한다. 그는 어떤 요리로서의 진정성에 도달하려고 하는 인물이지만, 드라마는 그 캐릭터의 진정성을 잘 포착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저 준비된 듯한 인터뷰 멘트와 역시 화보 같은 배경 속에 서 있는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스타일'이 서우진의 목소리로 비판했던 그 '광고로 도배한 패션잡지' 같은 상품 전시장의 드라마가 되지 않으려면, 우선 드라마가 전하려는 스토리텔링의 중심을 먼저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의 키는 이서정이 쥐고 있다. 드라마에 있어서 스타일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스타일만으로 드라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찬란한 유산'은 '스타일'과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스타일이 아닌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말해주었던 드라마다.

Posted by 더키앙

악마와 프라다 사이에 선 현대여성들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은 뉴욕 자체도 하나의 볼거리가 된다. 그것은 뉴욕이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세계 경제의 중심이면서, 또한 뉴요커로 대변되는 패션과 문화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중심이 주는 화려함과 귀족적인 분위기의 기저에는 그것에 대한 욕망이 자리한다. 우리는 그런 삶을 욕망한다. 엄청난 고가에 사치일 뿐이라고 욕을 한다 해도 누구나 프라다를 입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사실 프라다를 입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걸 얻기 위해서는 치러야할 대가가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소중한 다른 가치들을 버려야 한다. 그것은 악마와의 거래다. 이것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주인공 앤드리아가 처한 입장이자 커리어 우먼으로서 살아가는 우리네 현대여성들은 물론이고,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이들이 처한 입장이다. 그녀는 악마와 거래를 한 후 프라다를 입게 되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걸맞지 않은 옷이라는 걸 알게된다. 그리고는 결국 본래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 영화 속 미란다가 습관적으로 하는 말대로 이 영화는 ‘그것이 다(That's all!)’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이야기도 아닌 뉴욕의 이야기에, 단순해 보이는 스토리의 이 영화가 국내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한다는 사실은 영화 밖에서 그 흥행의 이유를 찾게 만든다. 그리고 그 이역만리 떨어진 이 곳과 뉴욕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그 지점에서 영화는 다시 보인다. 도대체 무엇이 관객들을 이 영화에 열광하게 하고 있는 걸까.

아바타 놀이 재미있으셨나요
앤드리아는 저널리스트의 꿈을 갖고 있지만, 패션으로 보면 전형적인 시골출신의 촌닭이다. 그러니 그런 촌닭이 세계 최고의 패션지, ‘런웨이’에 입성하는 것 자체에 관객들은 욕망에 마음을 내주게 된다. 그녀가 주인공인 까닭에 관객들은 그녀에게 자신을 감정이입시키고 앞으로 온갖 명품으로 변신할 그녀를(자신을) 욕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욕망이라는 것이 간교하여, 처음에는 자신과 너무 다른 세상에 있는 욕망을 거부한다. 자신을 내면적인 아름다움이란 굳건한 성으로 방어하면서 오히려 그 닿을 수 없는 욕망을 폄하한다. 영화는 이러한 관객들의 심리적 반응까지 고려해가며 극을 진행시킨다. 그러면서 그 욕망을 정당화해줄 계기를 기다린다. 그 계기를 주는 사람은 바로 나이젤이다. 그는 패션계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의 직장생활에서도 통용되는 단어를 끄집어낸다. 바로 ‘프로의식’이란 단어다. ‘당신은 프로가 아니야. 그러니 그런 걸 비판할 자격도 없어.’

이러한 질책은 기다렸다는 듯이 억압해온 욕망을 풀어내는 구실로 작용한다. 또한 이 곳은 패션잡지사이기에 이것은 단지 구실이 아닌 진짜 프로가 되려면 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녀의 변신은 폭발적이다. 화면은 몇 초 간격으로 그녀의 옷을 바꿔 입혀준다. 구찌, 돌체&가바나, 로베르토 카발리, 마이클 코어스, 마크 제이콥스, 칼 라거펠트, 제이 멘델, 베르사체... 여성들이라면 꿈꿔왔을 명품들로 말이다. 앤드리아로 분신한 관객들은 이 장면들이 주는 아바타 놀이에 푹 빠져버린다.

뉴욕에서 우리나라까지의 거리만큼 큰 환타지
이 아바타 놀이에 중요한 것은 그 배경이 뉴욕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보는 뉴요커의 입장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장은 다를 것이다. 미국 개봉시 이 영화에 내려진 호평들은 주로 메릴 스트립의 명연기와 패션업계를 제대로 조명한 그 리얼함에 이유를 두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리얼함을 느낄 수 있는 우리 관객들이 몇이나 될까. 물론 패션업계에 정통한 사람들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따라서 우리가 본 이 영화는 ‘리얼함’보다는 ‘환타지’쪽에 더 무게를 두는데, 거기에 가장 큰 일조를 하는 것이 바로 뉴욕이라는 공간이다. 잘 생기고 부유하며 매너 있고 지성적인 남자들과 성공한 커리어 우먼들의 로맨스가 이루어지는 곳. 그 환타지의 실체를 우리는 이미 저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목격한 바 있다.

그 뉴욕이 가진 환타지의 기저에 또 한 가지를 포함시키자면 그건 우리가 사는 이 공간과의 거리가 될 것이다. 만일 이 공간이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욕망의 잔치였다면 그것이 ‘섹스 앤 더 시티’의 자유로운 성 담론이든, 이 영화의 명품에 대한 욕망이든 어느 것이나 현실이 개입했을 것이다. 그런 무거운 현실 속에서 환타지는 잘 생기지 않는다. 대신 뉴욕은 어떤가. 그 먼 거리에 있는 곳에서의 환타지는 마치 해외여행에서 보다 대담해지는 사람들의 편안한 공기가 있다. 남의 나라 얘기면서 잠깐 내 얘기로 차용하는 것. 여기에 뉴욕이라는 공간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주는 환타지의 힘이 있다.

보편적 정서로의 회귀
그런데 이러한 명품을 갖고 하는 아바타 놀이와 뉴욕이라는 공간이 주는 환타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속에는 보편적 정서를 자극하는 요소가 들어있다. 그것은 환타지의 진원지인 패션이라는 코드를 이 영화에서 뚝 떼어놓고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우리에게 리얼한 것은 패션이 아니라 직장이라면 어디에나 있는 미란다 같은 악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은 메릴 스트립이라는 대배우의 열연에 있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그다지 많은 대사를 하지 않는다. 대신 습관적으로 하는 몇몇 동작들과 시시때때 바뀌는 의상들을 소화하는 것만으로 영화의 한 축을 만들어버린다. 악마 같지만, 성공한 상사, 자신을 온통 구렁텅이로 빠뜨릴 것 같지만, 때론 그것을 통해 사회생활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게 만드는 상사, 어떤 때는 약한 모습을 드러내다가도, 금세 다시 악마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그런 상사의 모습을 굳이 뉴욕이 아닌 곳의 사람이라도 공감하게 만들 정도로 리얼하게 연기해낸다.

이로 인해 우리는 환타지의 한 축에서 공감이라는 다른 축을 얻게 된다. 이러자 그저 환타지를 즐긴 후 극장을 빠져나가면 됐을 관객들은 공감의 틀 속에서 앤드리아의 선택(환타지와 현실, 여기서 환타지는 미란다며 현실은 미란다의 화려한 삶의 정반대축에 있는 앤드리아의 애인 요리사 네이트가 된다)에 함께 동참하게 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이 삶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이로써 앤드리아의 한바탕 환타지는 면죄부를 받게 되고, 거기에 동참한 관객들 역시 극장을 벗어나면서 느끼게 될 현실의 허탈함에서 벗어나게 된다. 영화는 경쾌해진다!

악마가 프라다를 입는 건 그만큼 욕망을 취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소중한 것을 버려야한다는 걸 말한다. 성공하려면 악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네 이 독한 현실 속에서 매일 악마와 직면해야 하는 현대여성들, 그들이 한 두 시간쯤 편안하게 환타지에 빠져 달콤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이 귀여운 악마와 만나는 게 뭐가 대수일까. 오랜만에 스트레스를 날려 버릴 그 유쾌함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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