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산지직송’, 여성 예능이 보여준 색다른 정경

언니네 산지직송

“분위기가 오늘... 갯장어 잡는가 보다.” tvN 예능 ‘언니네 산지직송’에 나온 차태현은 예능 고수답게 정확하게 그 날 그들이 해야할 일을 꿰뚫어본다. 사실 그건 시청자들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남해의 멸치와 단호박, 영덕의 복숭아와 물가자미에 이어 고성으로 이어진 ‘언니네 산지직송’을 통해 그들이 아침에 먹는 음식에 그 날 해야할 일이 들어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갯장어 음식점에 먼저 들어온 차태현이 금세 분위기를 파악해버린 이유다. 

 

하지만 차태현이 이토록 예능 눈치가 빨라진 건 그가 꽤 많은 프로그램들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박2일’ 시즌2와 시즌3를 함께 했고 ‘용띠클럽’, ‘거기가 어딘데?’, ‘서울촌놈’, ‘어쩌다 사장’까지 차태현은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쇼 시절의 예능 단골 출연자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언니네 산지직송’에 게스트로 출연하자 새삼스레 현재 변화된 예능의 풍경이 그려진다. 차태현이 맹활약해온 예능의 시대에 당연한 듯 보였던 남성 출연자들이 주축이 되던 풍경과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니네 산지직송’은 누가 뭐래도 염정아가 그 중심이고 그를 받쳐주는 박준면, 안은진과 더불어 막내 덱스가 청일점으로 고정 출연한다. 남성 출연자들로만 채워지던 ‘1박2일’이나 여성 출연자가 한두 명씩 들어가 있던 ‘패밀리가 떴다’, ‘런닝맨’ 같은 프로그램과 비교해보면 이 구도는 정반대다. 여성 출연자들이 주축이고 오히려 덱스 같은 남성 출연자가 한 명 더해진 구도이니 말이다. 

 

사실 제목부터 ‘언니네’를 붙인 것 자체가 이 프로그램이 애초 기획한 여성 예능의 면면을 드러낸다. ‘삼시세끼’ 산촌편에 윤세아, 박소담과 함께 출연하면서 보여줬던 염정아의 매력적인 면면이 ‘언니네 산지직송’에는 중요한 기획 포인트였다고 생각된다. 이른바 뭐든 많이 요리해내는 ‘손 큰 언니’로서의 매력이 그것이다. 이런 인물이 산지에서 바로 나온 식재료로 음식을 해먹는다면 장관(?)이 펼쳐지지 않겠는가. 제작진은 그렇게 생각했을 게다. 

 

실제로 염정아는 ‘언니네 산지직송’에서도 식욕을 자극하는 요리들을 크게 크게 선보였다. 생멸치를 튀기고 구워 내놨고, 물가자미를 통째로 전을 부쳤다. 또 없는 재료로도 뚝딱 한 끼 요리를 해내는데, 계란탕 하나를 끓여도 계란 한 판을 더 쓰고, 참치비빔밥을 만들어도 캔 몇 개를 따서 넣는 손 큰 면모들을 보여줬다. 

 

염정아가 중심을 잡으니 베짱이들이지만 열심히 언니를 돕고 또 감성 충만한 면모로 색다른 매력을 드러내는 박준면과 안은진 또한 프로그램에 점점 익숙해졌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이 처음인 안은진은 갈수록 발랄하고 당찬 모습이 두드러진다. 플러팅의 고수라는 덱스가 막내로 들어왔지만, 흔한 남성 예능들이 해왔던 멜로적 분위기 대신 티격태격하는 남매 케미를 보여준다. 비상금을 만들기 위해 민들조개를 캐러 가자는 안은진에게 덱스가 차라리 데이트가 하고 싶다고 말하라며 농담을 하자 순간 “인성 문제 있어?”라고 받아치는 안은진의 재치가 그것이다. 

 

염정아가 중심이 되어 세워진 여성 예능의 틀이어서인지 ‘언니네 산지직송’은 게스트들의 면모도 남다르다. 직접 일을 해서 식재료를 얻는 콘셉트를 갖고 있어서 그런 면도 하지만, 게스트들은 모두 일 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건 일터에서도 그렇지만 함께 지내는 숙소에서도 마찬가지다. 황정민도 박해진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깔끔하게 청소를 하거나 요리를 하는 모습으로 염정아가 엄지척을 하게 만든다. 집안 일도 잘하는 남성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는데 이것은 남성예능에서 출연자들이 베짱이 콘셉트로 주로 웃음을 주려 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양상이다. 

 

사실 ‘언니네 산지직송’이 굉장히 색다른 소재나 시도를 하고 있는 에능이라고 보긴 어렵다. 우리가 늘상 봐왔던 여행 예능에 노동과 쿡방, 먹방이 더해져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평이해보이는 프로그램을 새롭게 하는 건 다름 아닌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풀어가는 여성예능의 풍경이다. 염정아라서 열리게 된 색다른 정경이 아닐 수 없다. (사진:tvN)

‘연인’, 존버 시대 안은진이라는 독보적 캐릭터의 탄생

연인

“내가 살고 싶다는데 부모님이 무슨 상관이야? 종종아 일전에 강화도 때 다 뛰어내리는데도 우린 살았어. 난 살아서 좋았어.” 노예 사냥꾼들에게 쫓기다 벼랑 끝에 몰린 조선인 여성들은 그 곳에서 치마로 얼굴을 감싼 채 뛰어내린다. 더럽혀진 몸으로 돌아가면 부모님께 죄를 짓는 거라며. 그러자 길채(안은진)는 그렇게 말한다. 살고 싶은데 부모님은 상관없다고. 사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MBC 금토드라마 <연인>은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사극이다. 병자호란이라는 극단적인 전쟁 상황을 가져와 그 곳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민초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담았다. 파트1이 병자호란 상황 속에서의 살아남기라면, 파트2는 전쟁은 끝났지만 그 배경을 중국 심양으로 옮겨 노예로 끌려간 조선인들의 살아남기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길채는 바로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저 행복하기만을 바라며 때론 철부지처럼 살아오던 이 인물은 위기 속에서 변화한다. 병자호란 속에서 자신은 물론이고 종종이(박정연)와 방두네(권소현)를 이끌고 심지어 그 사지에서 아이까지 받아내며 끝내 버텨 살아남는다. 전쟁이 끝나고 사랑하는 연인 이장현(남궁민)과 엇갈려 구원무(지승현)와 혼례를 치르고 평화롭게 살아갈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도망노예라는 누명을 쓰고 심양으로 끌려가게 된다. 

 

돈에 팔리고 노리개처럼 핍박받는 노예의 처지가 된 조선인들은 도망치다 발뒤축을 잘리거나 상전의 질투로 손목이 잘리거나 심지어 뜨거운 물을 부어 화상을 입는 참혹한 처지가 된다. 하지만 특히 여성들이 더 절망하게 되는 건, 절개를 지키지 못했다는 주홍글씨 같은 꼬리표다. 길채를 구하러 나선 남편 구원무 역시 그렇게 끌려갔다면 ‘볼 짱 다 본 몸’이라는 사람들의 말에 흔들린다. 

 

실제로 이렇게 노예로 끌려갔다 돌아온 여성들은 살아 돌아왔어도 손가락질을 받는 처지가 된다. 역시 노예로 끌려왔다가 이장현에게 구출된 양천(최무성)은 그 자신 또한 노예의 처지를 잘 알면서도 다른 조선인 여성이 아이의 젖을 주려 하자 ‘원수에게 물린 젖’을 물릴 수 없다며 밀쳐낸다. 심양으로 끌려간 조선인 노예들은 다 같이 참혹한 상황 앞에 놓여 있지만, 그 안에서도 여성들은 차별받고 핍박받는다. 

 

그래서 조선인 여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당연한 것처럼 벌어지는 그 지옥 같은 현실 속이지만, 길채는 다른 길을 보여준다. 그는 ‘살아남자’고 손을 내민다. 절개니 부모님이 하는 그런 유교적 사고관 따위는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밀쳐낸다. 죽으려 하는 종종이에게 내미는 손이, 자신이 끝까지 지켜주겠다 하는 그 말이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다.  

 

<연인>은 이른바 ‘존버’ 시대의 가치관이 투영된 사극이다. 현재 우리 시대의 청춘들은 대단한 꿈이나 이상보다 일단 ‘살아남기’가 더 중요해졌다. 쉽지 않은 취업현실과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무엇보다 ‘생존’하는 일이 우선이고, 그것은 결코 수동적인 선택이 아니다.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가져온 <연인>은 그 시대 그 어떤 손가락질에도 끝내 살아남았던 길채 같은 인물을 통해 지금의 ‘존버’하는 청춘들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중이다. 

 

이것은 길채를 잊지 못하고 심양에서도 줄곧 그리움의 나날을 보내는 이장현이 갖고 있는 생각이기도 하다. 그 곳에 끌려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치욕이라고 말하는 소현세자(김무준)에게 이장현은 이렇게 말한다. “소인은 포로시장의 조선 포로들인 치욕을 참고 있다 생각지 않습니다. 저들은 살기를 선택한 자들이옵니다. 배고픔과 매질, 추위를 이겨내며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삶을 소망하고 있나이다. 하루를 더 살아낸다면 그 하루만큼 싸우면서 승리한 당당한 전사들이 되는 것이옵니다.” 

 

이 얼마나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인가. 이장현의 말을 온몸으로 관통하며 보여주는 길채라는 인물을 우리가 새삼스럽게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노예 시장에 끌려 나와 몸값 흥정을 당하는 처지 속에서도 끝내 생존하겠다는 의지만은 꺾지 않는 이 인물 앞에 이장현이 드디어 나타나 “도대체 왜?”라고 분노와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뒤섞인 감정을 토해내는 장면은 그래서 마치 피투성이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우리 시대의 청춘들에게 건네는 공감과 위로처럼 느껴진다. 길채라는 사극 속 인물이 존버 시대 청춘들의 자화상처럼 느껴져서다. (사진:MBC)

‘연인’, 남궁민과 안은진의 파란만장한 사랑에 빠져드는 이유

연인

MBC 금토드라마 <연인>은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이 터지면서 드라마가 탄력을 받았다. 5%(닐슨 코리아)대에 머물던 시청률이 병자호란을 두고 펼쳐지는 이장현(남궁민)과 유길채(안은진)의 긴장감 넘치면서도 절절한 서사를 기점으로 급상승했고 7회에는 드디어 10%대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처럼 <연인>이 탄력을 받은 건 전쟁 상황이 각성하게 만든 이장현과 유길채의 진면목이 매력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고, 전쟁으로 떨어져 있게 된 두 사람 사이에 조금씩 애틋한 마음들이 생겨나게 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임금을 구하겠다 나서는 이들 가운데서, 임금보다는 사랑하는 이들과 백성을 구하려 애쓰는 이장현의 선택이 현재의 시청자들을 설득시켰고, 그 전쟁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람들을 지켜낸 유길채의 납득되는 성장이 시청자들을 공감하게 했다. 

 

이래서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는 서사가 계속 이어질 줄 알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인조가 청나라 황제 앞에 고개를 숙임으로써 전쟁은 끝이 났고 피난 가던 이들은 다시 고향을 찾았다. 헤어졌던 이장현과 유길채도 다시 만났고, 유길채가 짝사랑했던 남연준(이학주)도 전장에서 살아 돌아와 경은애(이다인)와 혼례를 치렀다. 청보리밭에서 이장현과 유길채가 전쟁 전처럼 아옹다옹하다 함께 쓰러져 입맞춤을 하는 장면은 이제 또다시 전쟁 전의 달달한 사랑의 밀당으로 돌아가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과 아쉬움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병자호란은 끝났지만 그 전쟁의 여파가 남긴 상흔은 여전했고, 그 속에서 이장현과 유길채의 또 다른 전쟁이 펼쳐지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에서 이장현이라는 인물의 본격적인 서사는 사실상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끌려가게 된 소현세자(김무준)를 따라 심양에 역관으로 따라가게 되면서 이장현의 파란만장한 삶이 펼쳐지고, 이렇게 또 다시 이역만리 떨어지게 된 이장현과 유길채의 운명적인 사랑도 깊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청나라 장군 용골대(최영우)의 신임을 받는 청나라 여관 정명수(강길우)가 황제에게 바치는 공물을 중간에서 착복했다는 고변을 한 이들이 오히려 대거 숙청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이장현 또한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그의 전쟁은 계속 이어진다. 이장현이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날 것인지가 궁금하고, 이 사건으로 그가 죽은 줄 알고 절망하는 유길채가 다시 그를 만나게 됐을 때 어떤 변화를 보여줄 지도 궁금해진다. 

 

또한 이장현이 이 사건을 계기로 시시각각 위기에 내몰리게 되는 소현세자를 어떻게 보필하고 성장시킬 지도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역사는 볼모로 심양에 가게 된 소현세자가 점점 성장해 그 곳 고관대작들과 친분을 쌓았고 또 이 곳에 끌려 온 조선인들을 위한 농장도 만들면서 자신의 세력과 영향력을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과정에 이장현이라는 인물의 역할을 드라마는 그려낼 모양이다. 

 

물론 역사가 기록하고 있듯이 결국 생존하게 된 소현세자는 조선으로 돌아와 3달도 못되어 사망한다. 그건 드라마 속 인물인 이장현의 삶에도 또 그와 점점 애틋해질 유길채의 삶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아련한 비극으로 끝을 맺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 긴 삶의 여정을 통해 두 사람이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가는가는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들여다본다는 의미에서 뭉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쟁이니 운명이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천진하고 때론 장난치길 좋아하는 이장현과 유길채가 보여준 드라마 초반의 모습은 그래서, 이들이 긴 세월을 거쳐 완전히 달라질 모습과 마주하게 될 때 소회가 남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그건 이들의 삶이 병자호란만이 아니라 평생 전쟁 같은 치열함 속에 놓이게 됨으로써 가능해진 비장함이다. 두 사람의 삶과 사랑의 이야기가 갈수록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이유다.(사진:MBC)

 

‘연인’, 남궁민의 님과 이학주의 님 사이

연인

“이제라도 임금님 구하는 일은 그만두고 은애 낭자를 지키러 가는 게 어떻겠소?” MBC 금토드라마 <연인>에서 이장현(남궁민)은 남연준(이학주)에게 그렇게 말한다. 병자호란이 터지고 임금이 오랑캐들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들어가자, 연준은 임금을 구하겠다며 의병이 되어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참혹한 전쟁 속에서 무력한 자신을 느끼고, 수차례 이장현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남게 된 연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현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난 배운 것 따로 사는 것 따로 할 줄 모릅니다. 평생 나라에 화급한 일이 있으면 나가 싸우는 것이 선비의 도리라 배웠소. 여인이 사내를 따르고 자식이 부모를 섬기고 신하가 임금에 충성하는 질서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섬김을 받았으니 사내와 부모는 여인과 자식을 보호하고 임금과 사대부는 백성을 지킬 의무가 있어요. 나는 임금님을 구하다 죽을 것입니다. 내가 임금을 위해 죽으면 임금께선 백성들을 지켜주실 것이요. 내가 믿는 것은 그 뿐입니다.”

 

아마도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은 연준 같은 생각을 했을 게다. 그것이 당연한 도리라 여겼을 테고. 하지만 장현은 다르다. 그는 애초부터 백성을 버리고 먼저 도망친 임금을 구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오랑캐들에 의해 피난을 가다 위험에 처한 길채(안은진)나 은애(이다인), 종종이(박정연), 방두네(권소현) 같은 백성들을 구하는 일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그들을 구하기 위해 사지로 뛰어들어 오랑캐들과 싸우는 일도 마다치 않았다. 

 

<연인>이라는 드라마는 어찌 보면 병자호란이라는 거대한 비극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지만, 장현과 길채의 지극히 사적인 사랑이야기를 담는다는 점에서 어딘가 한가로운 서사가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긴박한 상황들이 펼쳐지지만, 그 속에서도 장현과 길채의 주고받는 ‘썸’에 가까운 설레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관계가 그려진다. 

 

그런데 이건 드라마가 한가로운 서사를 그리고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 사적인 사랑 이야기가 저 연준이 도리이자 대의로 이야기하는 비현실적인 임금을 향한 충성과 팽팽한 대결구도를 만들고 있어서다. 과연 전쟁이라는 위급한 상황에서 장현처럼 가까운 님을 구하는 일이 더 중요할까 아니면 연준처럼 임금을 구하는 일이 더 중요할까. 이 지점은 <연인>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다.  

 

물론 실제 조선시대였다면 연준의 선택이 선비의 도리라 여겨졌을 테지만, 현재의 관점이 투영되어 그려진 <연인>이라는 세계에서는 정반대로 장현의 선택이 더 당연하고 현실적이라고 여겨진다. 임금이 먼저가 아니라 백성이 먼저이고, 국가도 국민들이 있어야 존재한다는 것이 지금 현 시대에 대중들이 갖는 국가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백성을 버리고 먼저 도망친 임금이 아닌가. 

 

길채를 향한 장현의 사랑은 그래서 연준의 임금에 대한 충성과 대비되면서 더 의미를 갖는다. 병자호란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제목을 <연인>이라 붙인 것에서도, 저 조선의 사대부들이 그토록 ‘님’을 찾으며 임금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곤 하던 일들이 오히려 더 한가로운 거라는 걸 꼬집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도대체 사랑하는 사람 하나를 구하지 못하는데 무슨 나라를 구한단 말인가. 

 

“이제 그대가 어디에 있든 반드시 그대를 만나러 가리다.” 장현이 길채에게 하는 이 말은 그래서 더더욱 무게감을 갖는다. 그건 사랑하는 연인에게 하는 맹세지만, 모두가 임금을 바라보던 시절에 하는 말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연인>은 그래서 지극히 사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무게감을 갖는다. 전쟁이 깊어질수록 시청자들이 이들의 사랑에 더 몰입하게 되는 이유다.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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