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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신>, 포장지만 바꾼 신변잡기 토크쇼의 한계

 

김희선이라는 예능의 새 얼굴은 신선하다. 신동엽의 콩트와 순발력은 여전히 발군이다. 윤종신의 주워 먹기 토크도 살아있다. 최강 솔직함을 보여준 강혜정, 의외의 애교만점 예능감을 선사한 정만식, 거침없는 19금 입담을 선보인 소이현 등등 매 회의 게스트진도 약하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족하다. 부제로 ‘마음을 지배하는 자’를 달고 있는 <화신>이지만 시청자들의 마음을 지배하지는 못하고 있다.

 

'화신'(사진출처:SBS)

화려한 포장지로 잘 포장되어 있어 뭔가 특별한 선물인 줄 알았는데 막상 뜯어보니 늘 봐왔던 흔한 선물이다. 게다가 이 선물은 받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선물 준 사람이 마치 자신을 뽐내기 위해 준비한 것처럼 보인다. <화신>은 그런 선물 같다. 선물이라고 받았으니 즐겁긴 한데 별로 남는 의미나 강렬한 인상은 없는.

 

<화신>의 ‘문제의 발견’은 신동엽의 <헤이헤이헤이>를 재연한 듯 하고, 설문을 가져다 연예인들의 자기 경험을 빗대 얘기하는 부분은 <야심만만>을 보는 듯하다. 물론 <헤이헤이헤이>나 <야심만만>은 훌륭한 형식이지만(그래서 그 조합 역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건 이 형식들이 지금의 대중들의 정서를 담고 있느냐는 것이다.

 

만일 <야심만만>이 연일 화제를 끌어 모으던 시절이었다면 지드래곤이 나와서 털어놓는 자신의 연애경험이나 김경호가 최초로 13살 연하의 일본인 여자 친구가 있다는 고백 자체가 화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중은 그 때와는 정서가 달라졌다. 당시 2003년에는 연예인의 신비주의가 벗겨지기 시작하던 시절로서 그들의 맨 얼굴이 담겨진 이야기 자체가 신선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3년 현재, 완연한 대중의 시대가 열린 지금 연예인의 일상은 그다지 큰 관심거리가 아니다.

 

‘더 이상 다가오지 않는 상대를 내 애인으로 만들 결정타, 남녀 1위는?’에 지드래곤이 과감한 스킨십을 얘기한다고 해도, 또 ‘당장 헤어지고 싶은데... 이별의 발목을 잡는 것, 남녀 1위는? ’에 대성이 아픈 여자 친구 때문에 여권을 잃어버린 척 하고 해외 공연에 가지 않은 사연을 털어놔도 그다지 흥미롭지가 않다. 왜 그럴까. 그것이 내 얘기가 아니라 저들의 이야기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과거 <야심만만>이 연예인 신변잡기에 머물러 있었어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신비주의가 벗겨져 나가는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 훌륭한 형식은 우리와 연예인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시켜 주었다. <화신>은 여전히 이 공감대를 내세우고 있지만, 요즘은 대중이 ‘왜 저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채워줄 수 있어야 공감대가 생기는 시대다. 이제 연예인의 이야기라고 해서 무조건 귀를 세우는 시절은 지나갔다는 얘기다.

 

심지어 예능에는 거의 출연하지 않던 설경구가 나와 자신의 깊은 속내를 드러낸다고 해도 그것이 내 이야기가 아니라 저들의 이야기라고 여겨질 때 대중들은 공감하지 못한다. 하물며 이렇게 강한 이야기도 먹히지 않는데 <화신>처럼 겉만 살짝 드러내는 이야기가 약하게 여겨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토크쇼에서 연예인 프리미엄은 이미 사라져버렸다. 한참 저들의 이야기에 웃기는 했는데 그게 우리에게 어떤 감흥이나 의미를 남기지 못했을 때 TV를 끄고 현실로 돌아온 우리는 무언가 허전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점점 더 저들과는 달리 힘겨워지는 현실은 그 괴리감을 더욱 높이기만 할 뿐이다. 그렇다고 의미에 빠져 침잠하는 것은 예능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 헛되지 않음을 느끼게 해주는 건 중요한 일이다.

 

<화신>이 부제와는 걸맞지 않게 대중의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는 것은 그 형식이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주제가 2003년 <야심만만>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마음을 지배하려면 먼저 대중의 지금 현재 관심사를 끌어와 대중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화신>은 심지어 19금 토크를 하는 연예인의 속내로 파고들기보다는 진솔하게 대중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 그 마음을 지배할 수 있을 테니까.

Posted by 더키앙

월요예능의 새 강자, '밤이면 밤마다'의 재미요소는?

'야심만만'이 시즌2를 시작하면서 SBS의 월요 예능은 줄곧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결국 '야심만만'이 폐지되고 '긴급출동 SOS24'가 편성됐고, 그 후로 월요 예능은 MBC '놀러와'의 독주 체제로 이어졌다. 이 독주를 막은 건 SBS에서 신설된 '밤이면 밤마다'. 청문회 형식을 들고 온 이 토크쇼는 이제 2회 만에 11.2%(AGB닐슨)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놀러와(11.5%)'와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다. '해피버스데이'가 폐지되고 신설된 KBS의 월요예능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가 4% 대의 시청률로 추락한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 '놀러와'의 대항마로 자리한 '밤이면 밤마다'의 재미 포인트는 무엇일까.

먼저 '놀러와'와 차별화되는 것은 청문회라는 형식이다. '놀러와'는 말 그대로 게스트 지상주의를 내세우는 토크쇼. 따라서 게스트들을 최대한 편안하게 만들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어내는 게 포인트다. 하지만 이 형식은 자칫 토크쇼 분위기 자체가 느슨하게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지나치게 게스트 띄워주기 논란이 종종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반면 '밤이면 밤마다'는 청문회라는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MC들과 게스트 사이에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게스트는 청문회에 출석해 답변을 해야 하는 입장이고, MC들은 '위원'으로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렇지만 만일 이런 구도만으로 이 토크쇼가 이어졌다면 지나친 사생활 캐내기 토크쇼로 전락했을 지도 모른다. '밤이면 밤마다'는 다행스럽게도 여기에 안전장치를 집어넣었다. 즉 게스트를 두 명 세우고 질문을 하는 위원들도 두 편으로 나누어 대결구도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렇게 되자 자기 편에 있는 게스트에 상대편이 민감한 질문을 던졌을 때 청문회 위원은 이를 방어해주는 역할이 가능해진다. 게스트로 출연한 조영남에게 탁재훈이 "얘기하기 곤란하신 게 있으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세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청문회 형식에 대결구도를 집어넣음으로써 토크쇼는 팽팽한 긴장감과 동시에 어떤 균형감각을 갖게 되었다. 게다가 여기서 질문을 던지는 MC들은 게스트에게 궁금한 것을 묻는 것만큼 자기 자신의 예능감을 선보이려 노력한다. 전성기 때의 토크감을 살려내고 있는 탁재훈은 그다지 중요하다싶지 않은 질문들을 엉뚱하게 던짐으로써 의외의 웃음을 선사하고, 박명수는 특유의 호통과 어눌함을 넘나드는 면모로 웃음을 준다. 대성과 정용화는 같은 아이돌이지만 서로 다른 이미지로 묘한 대결구도의 재미를 주고, 유이는 분위기를 젊고 부드럽게 만들어낸다. 김제동이 가진 어록 토크의 진수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즉 MC들의 목적 속에는 자신들의 기량을 뽐내는 것이 우선적으로 들어있기 때문에 자칫 게스트에게서만 사적인 이야기를 빼먹는 자극적인 접근을 피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자세히 뜯어보면 알아차릴 수 있듯이, '밤이면 밤마다'는 여러모로 원조 '야심만만'을 닮았다. 형식이 설문에서 청문회로 바뀐 것뿐이다. 즉 게스트와 MC간의 대결구도는 청문회 형식 속으로 들어가면서 상황극이 주는 편안함을 제공하고, 그 속에서 게스트의 개인사들이 줄줄이 뽑아져 나온다. 타인의 설문 속에 게스트가 자신의 경험담을 끄집어내던 방식처럼, 이 청문회 형식 역시 좀 더 자연스럽게 개인사를 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야심만만'을 연출했던 최영인PD의 성향으로 보인다. 게스트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한 뾰족한 면이 있지만 그것을 최대한 부드럽게 해주는 형식을 도입하는 것. 이것이 '밤이면 밤마다'가 독주하던 '놀러와'를 긴장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Posted by 더키앙

'패떴2'가 가진 공감 없는 스토리의 문제

새로운 구성원으로 시작한 '패밀리가 떴다(이하 패떴)'. 그 추락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때는 주말 예능의 지존의 자리까지 있었던 '패떴'은 차츰 하향세의 길을 걸어오다 결국 구성원 전원을 교체하고 '패떴2'로 변화를 꾀했다. '패떴2'의 첫 방은 16% 남짓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기대감을 높였으나 현재는 반 토막에도 못 미치는 7.5%에 머물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걸까.

먼저 지목되는 것은 유재석, 이효리 같은 '패떴' 1기 멤버들의 공백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사실이다. 지금 '패떴2'에는 전체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굴러가게 할 수 있는 이들 같은 존재가 없다. 김원희가 나서서 상황을 이끌려는 노력이 보이나, 그것은 유재석이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지가 않아 마치 리얼 예능에서 토크쇼를 진행하는 듯한 어색함이 있다. 지상렬은 거의 목숨을 걸고(?) 궂은일을 도맡아하는 열성을 보이지만 그걸 효과적으로 받아주는 멤버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열심히 한다는 느낌만을 전할 뿐이다.

애초에 기대했던 조권, 윤아, 택연은 이미 프로그램밖에 있던 캐릭터를 프로그램 속으로 가져와 반복해서 보여줌으로써 그 이미지 소모가 너무 빨라지고 있다. 조권은 여기서도 여전히 깝춤을 추고, 윤아는 '분장실의 강선생님' 흉내를 내며, 택연은 초콜릿 복근을 과시한다. 매화아가씨-매실총각을 뽑는 장면에서 이들이 남장여자, 여장남자를 했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조권의 여장은 결국 깝춤으로 이어졌고, 윤아의 남장은 의외의 보이쉬함을 통한 털털함을 재확인해줬으며, 택연은 결국 근육 과시로 마무리되었다.

거의 전 멤버가 프로그램 속에서 캐릭터를 세우지 못하고, 대신 이미 갖고 있던 캐릭터를 반복하는 것은 '패떴2'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든다. '패떴'은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연예인들이 유사가족으로 뭉쳐졌을 때, 그 새로운 관계 속에서 의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재미를 주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외부의 캐릭터를 그저 내부로 가져올 때, 그것은 '패떴'의 정체성을 공고히 해주는 게 아니고, 그 캐릭터를 반복하는 출연자의 정체성만 소비하게 된다. 즉 '패떴2'에서 고유의 특징을 만들어내기 어려워지게 되는 셈이다. 유일하게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는 인물은 윤상현이지만 예능 초보로서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 문제를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연출의 문제다. 지금 '패떴2'에는 자연스러운 스토리가 부재하다. 어느 마을에 가는 것에 대한 설명도 없고, 그 곳에서 게임을 반복하는 것에도 어떤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이것은 단지 프로그램의 의미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게임 하나를 하더라도 그 과정을 통해 시청자가 그 게임에 빠져들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맥락 없는 게임은 시청자들의 맥빠지게 만든다. 아침에 기상시켜 갑자기 차에 타라고 한 후, 강변에서 씨름을 시키는 것은, 출연진을 고생시키는 것 이외의 공감을 찾기 어렵게 한다. 씨름부 아이들과의 아침 대결이 준비되었다면(어차피 이건 인위적인 것이다), 사전에 왜 그들이 대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 정도는 암시되었어야 한다.

이것은 매화아가씨-매실총각 콘테스트나 벗굴 채취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이곳의 명물인 매화와 매실 그리고 벗굴을 홍보하기 위한 것은 알겠지만, 그 과정에서 이들이 왜 게임을 통해 이런 생고생을 해야 하는지는 잘 이해하기가 어렵다. 지금 '패떴2'는 이처럼 공감이 형성되기 이전에 인물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님으로써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효과는 나오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패떴1'에서는 저녁 먹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주었는데, 지금은 눈밭과 진창에 뒹굴고, 벗굴 채취를 위해 차가운 물 속에 들어가도 그다지 재미를 주지 못한다.

이것은 '패떴1'이 가졌었던 공감대를 '패떴2'가 가져오지 못한 결과다. '패떴1'은 그 따뜻한 가족적인 분위기가 가장 큰 공감대였다. 그 분위기 위에서 서로 툭탁대지만 그것이 장난 같은 즐거운 놀이처럼 아기자기한 맛을 주었던 것. 하지만 '패떴2'는 너무 비장하다. 윤아나 조권, 택연, 윤상현 같은 좋은 멤버들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마음에 저들과 함께 여행을 가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공감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 즈음에서 떠올려야할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야심만만'이다. '야심만만'은 설문이라는 형식을 통해 초대 손님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재미를 선사했다. 어찌 보면 폭로의 우회형 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설문을 통해 바탕에 깔린 공감대가 있었다. '아 나도 저랬었지'하는 공감을 통해 출연자의 이야기에 시청자가 고개를 끄떡일 수 있었던 것. 하지만 '야심만만2'로 오면서 그 공감이 사라지고, 대신 자극적인 설정만 남게 되었을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를 상기해봐야 할 것이다. '패떴2'는 왜 안타깝게도 '야심만만2'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일까.

Posted by 더키앙

토크쇼 전성시대, 토크쇼가 토크하고 있는 것은?

이른바 토크쇼 전성시대다. 월요일에는 MBC의 ‘놀러와’, SBS의 ‘야심만만2’, KBS의 ‘미녀들의 수다’가 경쟁을 벌이고 있고, 화요일에는 KBS의 ‘상상플러스’, 수요일에는 MBC의 ‘황금어장’, 목요일에는 KBS의 ‘해피투게더’, 금요일에는 SBS의 ‘자기야’, 토요일에는 MBC의 ‘세바퀴’ 같은 토크쇼들이 포진해 있다. 실로 거의 일주일 내내 토크쇼를 볼 수 있는 시대다.

이렇게 된 것은 물론 토크쇼라는 형식이 비용 대비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토크쇼는 다른 예능 프로그램의 형식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간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토크쇼가 갖추고 있는 형식, 즉 호스트가 게스트를 초청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답변을 듣는 과정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본능적인 욕망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 연예계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이른바 신비주의의 해체기에 들어서 있기 때문에 연예인들은 자신의 일상적인 모습들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있고, 대중들은 그 솔직 대담한 이야기에 더욱 빠져들고 있다. 이른바 리얼 토크쇼가 대세가 된 것이다.

리얼 토크쇼는 시청자들의 입김이 세지면서 그 시청자들을 등에 업은 호스트가 게스트를 압도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즉 게스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시청자를 대신하는 호스트가 원하는 이야기를 게스트가 하게 된 것이 리얼 토크쇼가 등장한 배경이다. 여기에 연예인들의 신비주의 콘셉트가 무너지면서 오히려 솔직한 모습이 인기를 끌게 되자, 게스트들의 솔직한 이야기는 자발적인 모습을 띄게 되었다.

하지만 이 리얼 토크쇼는 또한 문제점도 갖고 있다. 지나치게 과열된 경쟁 속에서 솔직한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폭로성의 이야기들이 난무한다는 것이다. 억지로 게스트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까지 들춰내기도 하고, 심지어 게스트를 윽박질러서 울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지나친 사생활 침해라고 할 수 있는 집요함을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리얼 토크쇼가 태생적으로 갖는 단점이다. 리얼 토크쇼의 토크 양상은 자극적으로 흐르게 마련인데, 바로 이 자극은 반복되면 둔감해지고 따라서 더 큰 자극을 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토크쇼에서 다루는 이야기가 거의 연예인들의 가십 수준에 머문다는 건, 현재 우리의 토크쇼가 가진 가장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토크쇼는 사람을 출연시켜 그 사람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진솔한 모습을 추구하는 리얼 토크쇼에서는 그 사생활적인 부분을 다룰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전 세계 어느 곳에 있는 토크쇼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것까지 끄집어내려 하거나, 또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억지로 말하게 하는 토크쇼의 태도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토크쇼가 그저 쇼가 아니라, 한 시대의 화법을 대변해 보여주고 어떤 면에서는 교육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아이들 같은 경우에 이런 형식에 반복 노출되면 대화의 방식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물론 토크쇼들도 연예인의 사생활이나 잡담이 아닌 다른 것들을 담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무릎팍 도사’는 지금 현재 가장 진취적인 토크쇼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대의 화법으로 자리 잡은 직설어법을 쓰면서, 게스트에 대해 시청자가 알고 싶은 점을 피하지 않고 질문하는 공격적인 화법을 구사하면서도, 그 게스트를 통해 어떤 시사점까지 찾아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실로 중요한 것이다. 사생활은 그저 가십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론 중요한 정보가 되기도 한다. 사생활로 제시된 개인적인 삶이, 대중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삶으로서 어떤 공감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가십이 아니다. 토크쇼는 이처럼 개인에 집중하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연예인으로 한정된 직업군에서 계속해서 어떤 보편적으로 공감을 주는 이야기를 끄집어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무릎팍 도사’가 시도한 게스트의 외연을 넓힌 작업은 토크쇼에 있어서 큰 가치를 갖고 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도 연예인이 아닌 비연예인이 출연했을 때, 시청률이 더 높은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런 점으로 보아 대중들은 좀 더 다양한 게스트들의 이야기를 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문제는 연예인에 편중된 게스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호스트들도 너무 몇몇 MC에 국한되어있다는 지적들이 있다. 실제로 현재는 강호동과 유재석 이 두 개그맨이 거의 토크쇼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만큼 토크쇼의 진행 자체가 녹록치 않게 된 상황도 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박중훈쇼’의 추락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실제로 토크쇼의 성공은 생각보다 어려운 점이 많다. 하지만 어떤 면으로 보면 이것은 시청률 보증수표인 이 개그맨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일 수도 있다. 새로운 형식을 개발하기 보다는 유명 개그맨을 기용해 쉽게 시청률을 가져가려는 것이다.

토크쇼는 문제와 해법을 계속 제시하면서 진화를 거듭해왔고 지금도 그 변화의 과정 속에 있다. 토크쇼는 과거 가장 기본적인 형식인 1인 토크쇼에서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자니윤쇼’다. 그 다음에 등장한 것이 집단으로 모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었다. 서세원이 진행했던 ‘토크박스’ 같은 것이다. 그러다가 점차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집중하는 경향이 생겼는데 ‘야심만만’이 대표적이다. 설문 형식을 가져와서 자연스럽게 연예인들의 속내를 끄집어냄으로써 새로운 토크쇼의 도래를 예고했다. 그리고 직설어법의 시대에 와서 토크는 좀 더 독해졌고 과감해졌다. 하지만 지금 이것도 저물어가고 있다.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정체된 느낌의 토크쇼는 이제 자극적인 웃음만이 아닌 어떤 공감을 찾고 있다. 진솔하면서도 사람의 스토리가 살아있는 토크쇼, 이런 게 그 돌파구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Posted by 더키앙

홍보와 진정성 사이, 토크쇼의 딜레마

지금 토크쇼들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토크쇼는 MC가 게스트를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기본 포맷. 여기에는 쇼의 입장과 게스트의 입장이 적절히 반영되기 마련이다. 쇼의 입장은 게스트들에게서 재미있는 이야기나 그동안 몰랐던 사실들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연예인의 사생활은 그 중에서도 가장 시청자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요소다. 반면 게스트의 입장은 쇼를 통해 자신을 알리는 것이 주목적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시작한다면 토크쇼라는 자리는 자연스러운 홍보의 기회를 제공하는 자리가 된다. 하지만 현재 이 쇼의 입장과 게스트의 입장은 상충된다. 쇼의 입장만 내세우다가는 출연할 게스트를 찾기가 어렵게 되고, 게스트의 입장을 맞추다보면 쇼가 자칫 홍보의 장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야심만만’, ‘야심만만2’와 무엇이 달랐나
‘야심만만’이 훌륭했던 점은 바로 이런 게스트의 입장과 쇼의 입장을 설문조사라는 공적인 방식으로 적절히 절충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소재를 게스트의 입장에 맞추는 직설적인 방식을 피하고 설문이라는 우회의 방법을 통하자, 이야기에 대한 공감의 폭이 넓어졌다. 영화나 드라마 속 설정을 보통사람들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상황으로 일반화시키자 출연진들은 누구나 그 이야기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영화나 드라마 홍보를 하려는 당사자들, 즉 게스트의 입을 반드시 통할 필요도 없게되었다. 누구나 얘기하고 회자되는 이야기 속에서 홍보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새롭게 시작된 ‘야심만만2’에서 게스트의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채택한 방식은 ‘올킬’이라는 시스템이다. 그 누구도 해보지 못한 경험을 출연자가 얘기하고 다른 출연자들이 그 경험이 모두 없으면 ‘올킬’이 되고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노킬’이 되는 식이다. 올킬이 되면 그 경험을 얘기하는 출연자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며, 반면 노킬이 되더라도 그 노킬을 외친 이의 경험이 덧대질 수 있기에 이 시스템은 일견 유용한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는 다분히 최근 예능 프로그램이 연예기사의 산실이 되고 있는 점을 간파한 제작진들의 노림수가 들어있다. 연예인 ‘누구누구가 어떤 일을 한 적이 있다’는 건 예능 프로그램이 끝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기사로 뜨는 제목들이다. 강호동이 가끔씩 “이 얘기 내일 인터넷에 쫙 뜨겠다”고 말하는 건 그저 농담이 아니다. ‘올킬’시스템은 그 자체로 예능 프로그램의 연예 기사 양산 시스템을 지원(?)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올킬 시스템이 가진 문제점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현재 토크쇼의 추세인 집단 MC체제에 발맞춰 고정 MC들이 많아지면서 매번 새롭게 출연하는 두 명의 게스트에게만 ‘올킬 제안’이 이뤄지는 사이 이들 고정 MC들은 꿔다 논 보릿자루가 될 공산이 커지기 때문이다. 또한 게임이라는 형식에서 게스트에게만 집중되는 ‘올킬 제안’은 그 자체로 게스트 출연의 이유를 홍보 그 자체로 인식되게 만들 수 있다. 그렇다고 게스트를 출연시켜놓고 고정 MC들에게 계속 ‘올킬 제안’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야심만만2’의 문제는 매번 토크쇼에서 다루어질 이야깃거리가 공급되는 시스템이 없다는 점이다. ‘야심만만’은 그 의제를 설문을 통해 공급했지만(물론 그것이 홍보의 수단이 되기도 했지만), ‘야심만만2’에서는 게스트가 가져오는 ‘올킬이 될만한’ 경험이 이야기의 전부다. 따라서 전적으로 토크쇼의 이야깃거리가 게스트에 의존하게 되는 상황이 된다. 제작진들 또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지호의 수학경시대회에서 수상을 한 경험을 이야깃거리로 끌어내기 위해 전진을 앞세우는 것은 그것이 너무 의도적인 느낌을 지우기 위한 방편이다.

진정성과 홍보사이, 토크쇼의 고민
“야심만만2”는 ‘야심만만’의 인기를 이어가기 위해 새로운 포맷으로 ‘예능선수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었다. 첫 회에서부터 타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들을 거침없이 얘기하고 출연진들 또한 방송3사 예능프로그램에 걸친 이들을 끼워 넣음으로써 그 캐치프레이즈는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마치 방송3사의 예능 프로그램 대표선수들이 모여서 대결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회가 지난 지금 이런 색채는 벌써부터 사라지는 듯 하다. 대신 고개를 드는 것은 홍보성 이야깃거리들로 채워지는 토크쇼의 고질적인 방향전환이다.

이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야심만만2’는 아마도 지금 안정되지 않은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는 중일 것이다. ‘예능선수촌’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 걸맞는 좀더 혁신적인 토크 시스템을 구상해볼 필요가 있다. 어차피 방송사의 경계를 허물고 예능이라는 이름으로 경쟁구도를 토크쇼 안에 넣었을 바에야 차라리 여러 예능 프로그램들의 각축장으로 토크쇼를 활용해보는 건 어떨까. 만일 올킬 시스템을 유지하겠다면 게스트에게만 집중되는 의제를 다양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야심만만2’가 가진 딜레마는 지금 진정성과 홍보 사이에 서있는 모든 토크쇼들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Posted by 더키앙

‘야심만만’은 가고, ‘무릎팍도사’는 사는 시대

국내 대표적인 연예 토크쇼 ‘야심만만’이 5년여의 긴 여정을 끝냈다. 한 때 20%에 육박하던 고공 시청률에 비해서는 쓸쓸한 퇴진이다. 시청률이 어느새 10%대 미만까지 추락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야심만만’의 추락을 불러왔을까.

재미와 정보의 균형이 깨지다
많은 이들은 프로그램 내적인 문제를 거론한다. ‘야심만만’은 설문 조사 결과 내용을 연예인들이 출연해 맞추는 형식의 토크쇼로 가장 특징적인 점은 그 맞추는 과정에서 연예인들의 사담이 자연스럽게 섞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첫 키스하기 좋은 장소는?’이란 질문이 나오면 MC는 연예인에게 ‘언제 첫 키스를 했습니까?’하고 묻는 식이다. 이런 진솔한 연예인들의 이야기는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미디어를 통해 회자되었다.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알아본다는 두 가지 기능이 만나면서 ‘야심만만’은 재미와 정보를 모두 껴안을 수 있는 획기적인 토크쇼로 자리매김했다. 문제는 그 균형이 깨지는 지점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홍보성 질문들이 설문으로 등장하고, 출연진 역시 홍보를 위한 인물로 맞춰지면서 심리에 대한 정보는 온데간데없고 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로 흐르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 ‘야심만만’이 추락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초창기 ‘야심만만’은 연예인들의 진솔한 이야기(사실은 사생활에 가까운)를 끄집어내면서 인기를 끌었으나, 지나친 홍보성 포맷으로 인해 그 신뢰성을 잃게 된 것이다. 2007년 들어 급부상한 리얼리티쇼들은 한편으로 ‘야심만만’의 진솔한 이야기마저 홍보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몸 개그가 자리한 세상, 말은 독해진다
한편으로 몸 개그가 자리를 잡으면서 말은 점점 자리를 잡기가 어려워졌다. 리얼리티쇼가 주창하는 리얼리티는 말보다는 몸에 손을 들어주었다. 몸은 가식 없이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줄 뿐 아니라, 점점 편집의 공포에서 짧아져만 가는 개그의 시간 속에서 순간적으로 웃음을 주기에 적합했다. 반면 말로만 진행되는 토크쇼는 점점 ‘연예인들이 출연해 저들끼리 노는 말장난’ 정도로 인식되어갔다.

물길이 막히면 물은 돌아가기 마련. 몸 개그가 자리한 세상에서 말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은 더 커지고 독해지는 것이었다. 막말과 호통이 2007년도 예능의 키워드가 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말이 독해졌다는 것은 단지 막말개그와 호통개그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말이 담고 있는 내용 또한 그렇다는 것이다.

‘야심만만’의 밤이었던 월요일밤을 처음 잠식하기 시작한 것은 편성이 바뀌기 전 죄민수의 몸 개그가 작렬하던 ‘개그야’였다. 그러나 ‘개그야’의 편성이 바뀌면서 월요일 밤 토크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야심만만’은 물론이고 ‘지피지기’가 아나운서들을 내세워 토크를 시작했고 ‘미녀들의 수다’는 그 속에서 최강자로 군림했다.

‘야심만만’과 ‘지피지기’가 고만고만한 10% 미만대의 시청률을 기록한 반면 ‘미녀들의 수다’는 15% 정도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유는 논란을 몰고 다니는 몸과 말의 자극적인 배합 때문이다. 프로그램 명에서부터 익히 짐작할 수 있듯이 이 프로그램은 굳이 미녀들을 모아놓고 서로 다른 다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성희롱에 가까운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끄집어낸다는 데 있다. ‘지피지기’는 아나운서라는 베일에 싸인 직업의 속살을 끄집어내면서까지 분투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몸이 부상하고 말이 가라앉은 세상, 자막이 뜨다
왜 하는 지 의미를 알 수 없는 도전에 기꺼이 몸 하나를 던져 웃음만을 끄집어내는 몸 개그가 급부상하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말이 독해지고 거칠어지고 커지면서 토크쇼가 하던 말의 본래기능은 자막으로 흡수됐다. 오로지 웃음을 만들기 위해 몸을 괴롭히는 행위에 대해 자막은 스스로 비하하거나 꼬집으면서, 오히려 그 몸 개그가 웃음만을 위한 것이란 점을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같은 자막들이 몸 개그와 함께 등장하는 식이다.

시선을 확 잡아끄는 몸 개그의 힘 앞에서 거칠어진 말은 과거처럼 편집되지 않는다. 이유는 이 프로그램들이 리얼리티쇼를 주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본에 의한 대사가 아닌, 즉흥적인 애드립에 의존하는 말을 수위가 높다해서 편집을 해버리면 결과적으로 그것은 리얼리티의 손실로서 드러난다. 따라서 말 수위는 높게 하면서 그 균형점을 찾아내는 것은 자막이 맡았다. 출연진이 우연히 만난 청소부에게 실수로 비하에 가까운 말을 한다 해도, 자막은 이런 식으로 붙는다. ‘그래도 당신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이런 자막이 붙는 순간 그 출연진의 막말은 프로그램 자체가 매도시키는 셈이 된다.

알 수 없는 행동들과 순서가 없어 서로 뒤엉키는 거친 말들이 오고갈 때, 촌철살인의 자막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그러니 몸 개그의 시대에 말이 선 자리는 두 지점이 된다. 하나는 독해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막으로 남는 것이다. ‘야심만만’의 종방이 말해주는 것은 어느 정도 진정성을 갖추면 성공하던 토크쇼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점이다. 이 리얼리티 시대에 강호동이 처한 입장은 토크쇼의 변화를 또한 말해준다. ‘야심만만’의 강호동은 가고, ‘무릎팍도사’의 강호동은 살아남는 시대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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