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 업고 튀어’로 연기 앙상블의 힘을 보여준 김혜윤

선재 업고 튀어

“별은 말이지.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거의 없어.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 이준익 감독의 영화 ‘라디오스타’에서 최곤(박중훈)의 매니저 박민수(안성기)가 하는 이 대사는 스타가 빛날 수 있는 게 무엇 때문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 스스로 빛나서 스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를 빛나게 하고 있기 때문에 빛난다는 것이다. ‘라디오스타’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게 스타를 빛나게 하는 존재로서 매니저 박민수를 말하지만,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에서 최애인 유명 아티스트 류선재(변우석)를 빛나게 하는 존재는 다름 아닌 임솔(김혜윤) 같은 열성 팬들이라고 말한다. 갑작스러운 선재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된 임솔이 선재를 되살리고싶은 그 간절한 마음이 더해져 15년 전 과거로 되돌아가고 그렇게 과거를 바꿔 현재의 비극을 막으려는 이야기가 바로 ‘선재 업고 튀어’이기 때문이다. 최근 타임리프 같은 판타지를 장치로 활용한 드라마들이 나오고 있는데, ‘선재 업고 튀어’는 여기에 ‘팬심’이라는 강력한 동인을 소재로 끌어왔다. 최애와 팬의 사이가 그것이다. 팬이라면 최애의 비극을 막기 위해 뭐든 못할까. 

 

‘선재 업고 튀어’는 이처럼 타임리프라는 비현실적인 판타지를 장르로 끌어왔지만, 그 비현실이 만드는 황당함 같은 것들을, 그걸 훌쩍 뛰어넘는 팬심으로 채우는 드라마다. 팬들이라면 심지어 가상 캐릭터를 내세우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진짜처럼 받아들일 정도로 마음을 다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선재 업고 튀어’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은 두 가지다. 임솔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선재에게 진심인가 하는 걸 믿게 해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재가 임솔이 그렇게 최애할 정도로 멋지게 느껴져야 한다는 것이다. 둘 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그걸 소화해내는 연기력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선재 업고 튀어’는 그걸 성공시킴으로써 최근 시청률 급상승과 더불어 화제성에서 압도하는 드라마로 떠올랐다. ‘눈물의 여왕’이 방영 내내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던 화제성을 그대로 이어받는 드라마가 됐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5월 1주차 TV-OTT 드라마 화제성 조사결과 1위의 드라마로 등극한 것. 또 주인공 역할인 변우석과 김혜윤에 대한 화제성도 급상승해 각각 출연자 화제성 1,2위를 차지했다. 

 

변우석이 출연자 화제성에서 1위로 떠오른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변우석은 2017년부터 다양한 작품들에 얼굴을 보였지만 두드러졌던 건 2020년 ‘청춘기록’을 통해서였다. 그 후로 ‘힘쎈여자 강남순’에서 악역을 선보였지만 생각만큼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비로소 ‘선재 업고 튀어’로 현재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는 신인배우로 떠오른 것이다. 하지만 변우석이 이러한 인기를 순식간에 얻게 된 데는 물론 그가 가진 매력과 노력이 우선되었기 때문이지만 김혜윤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고 보인다. 김혜윤은 임솔 역할로 변우석이 맡은 선재를 더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연기를 보여줬다. 가만 있어도 멋진 배우이긴 하지만 끝없이 애정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김혜윤의 몰입하게 만드는 연기를 통해 변우석이라는 배우에 입덕하게 되는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선재 업고 튀어’를 보는 시청자들은 그래서 처음 팬심을 공감시키는 김혜윤의 연기에 빠져들고, 그를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변우석에 스며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선재 역시 임솔을 처음부터 사랑해온 첫사랑 순애보의 주인공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선재에 대한 매력이 갈수록 커졌고 그건 고스란히 변우석에 대한 인기로 이어졌다.

 

김혜윤은 지금껏 해온 작품들 속에서, 배역에 대한 몰입도가 좋고 그걸 표현하는데 있어서 군더더기가 없는데다 명확한 딕션에 의한 대사 전달력 또한 좋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래서 이번 ‘선재 업고 튀어’에서도 그렇지만 시시각각 감정 변화가 많은 연기에 있어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곤 했다. 때론 소녀처럼 수줍어했다가 때론 명랑하고 때론 슬픔에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런 다양한 감정 표현들을 자유자재로 표현해내는 저력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김혜윤의 첫 주연작이었던 ‘어쩌다 마주친 하루’는 이러한 그의 역량이 온전히 돋보인 작품이었다. 그는 이 작품 속에서 만화 속 단역인 은단오와 자아를 가진 은단오 그리고 작가의 전작만화 속 은단오라는 1인3역을 연기했는데, 만화 속 세계를 그리고 있는 판타지의 난점까지 생각해본다면 이 작품이 김혜윤에게 얼마나 큰 도전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 때도 김혜윤은 특유의 다양한 감정연기를 선보이면서 극중 상대역할들을 돋보이게 했다. 이 작품에 상대역으로 출연했던 로운, 이재욱 같은 배우들이 그 후로 인기가 급상승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혜윤은 이제 27세의 나이지만 2012년부터 다양한 단역, 조연 등을 거치며 배우로서의 길을 넓혀왔다. 공식 데뷔작은 2013년 SBS에서 방영된 ‘TV소설 삼생이’로 그 후로 ‘야왕’, ‘너의 목소리가 들려’, ‘수상한 가정부’, ‘왕가네 식구들’, ‘나쁜 녀석들’, ‘오만과 편견’, ‘펀치’, ‘닥터스’, ‘푸른바다의 전설’, ‘쓸쓸하고 찬란하시니 도깨비’ 등 다양한 작품들을 거쳤다. 꽤 유명한 성공작들이지만 대부분 단역을 했기 때문에 그다지 주목되지 않았던 김혜윤은 2018년 ‘SKY 캐슬’을 통해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이 작품을 연출한 조현탁 감독이 “김혜윤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가장 정확한 방법으로 설득시킨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는 드디어 주연으로서의 김혜윤이라는 배우의 역량을 분명히 보여줬고, 영화 ‘불도저를 탄 소녀’로 청룡영화상, 한국영화제작협회상, 대종상, 들꽃영화상 등에서 신인여우상을 휩쓸었다. 아직도 교복을 입고 나오는 학생 역할에 어울릴 정도로 동안인데다 20대의 나이지만 연기 폭은 꽤 넓다. ‘SKY캐슬’과 ‘어쩌다 발견한 하루’ 그리고 ‘불도저를 탄 소녀’의 캐릭터가 모두 상이한데다 그 연기 색깔도 다르다는 점은 이 배우가 가진 잠재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김혜윤의 페르소나가 특히 우리에게 말해주는 건 ‘혼자 빛나는 별은 없다’는 ‘라디오스타’의 대사처럼 연기도 삶도 앙상블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현재 그가 반짝반짝 빛나는 별로 떠오른 건, 그 역시 함께 연기해온 배우들을 빛나게 해주는 그의 연기 덕분이었다. 타인을 빛나게 해줌으로써 자신 또한 빛날 수 있다는 앙상블의 힘을 김혜윤만큼 잘 보여주는 배우도 없다. (글:국방일보, 사진:tvN)

공식적 틀에 갇혀버린 tvN 드라마, 기획만 보인다

 

한때 잘 나가던 tvN 드라마가 어찌된 일인지 주춤하고 있다. tvN 월화드라마 <유령을 잡아라>는 애초 문근영의 주연작이라는 점과 지하철 경찰대라는 소재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지만 갈수록 기운이 빠져간다. 첫 회 4.1%(닐슨 코리아)의 높은 시청률로 시작했던 드라마는 매회 뚝뚝 떨어지더니 급기야 2.4%까지 추락했다.

 

이유는 첫 회에 끌어 모았던 주목을 드라마가 계속 이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메인 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 연쇄살인범 지하철 유령을 추적하는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다는 곁가지 스토리들로 매회 채워지고 있고 그 스토리들도 그다지 큰 몰입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 겨우겨우 유령(문근영)과 고지석(김선호)의 멜로 라인으로 이어가려 하고 있지만, 이 지하철 범죄 수사라는 공적 사안과 사적인 멜로의 결합은 어딘지 언발란스하게 느껴진다. 애초 기획과 소재는 그럴 듯했지만 빈약한 스토리가 만들어낸 결과다.

 

수목극으로 방영되고 있는 <청일전자 미쓰리>도 사정은 비슷하다. 사이다 풍자 코미디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퍽퍽한 고구마 현실로 가득 채워져 있는 드라마를 답답해하고 있다. 무엇보다 말단경리직원으로 있다 등 떠밀려 사장 자리에 앉게 된 이선심(이혜리)의 캐릭터는 누가 봐도 코미디 장르에 어울리는데, 스토리는 짠 내 나는 을의 위치에서 핍박받는 중소기업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어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큰 문제다. 이 작품 역시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는 미숙한 스토리 전개가 발목을 잡았다.

 

tvN이 <미스터 션샤인>이나 <아스달 연대기>, <호텔 델루나> 같은 작품들로 어느 정도 시청자들을 끌어 모았던 토일 시간대도 마찬가지다. <날 녹여주오>는 점점 관심에서 벌어져 이제는 1%대 시청률로 뚝 떨어져 버렸다. 지창욱이 주연으로 등장한 작품으로 이렇게 화제조차 안 되는 드라마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나마 최근 tvN에서 화제성을 이어가고 있는 건 금요일 드라마 <쌉니다 천리마마트> 정도다. 하지만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본래 웹툰 원작을 충실히 담아온 부분과 이를 과감하게 드라마화하겠다는 그 기획적 선택이 가장 주효했던 작품이다. 물론 연출이나 연기는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지만 그래도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성공이 tvN드라마의 기획 그 이상의 성취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이렇게 tvN 드라마가 주춤하고 있는 사이 지상파 드라마들이 약진하고 있다. 월화에 새로 들어온 SBS <VIP>는 6.8%로 시작했던 시청률이 9.1%까지 올랐다. 불륜이라는 소재를 가져왔지만 우리네 사회의 위계구조를 VIP 전담팀이라는 특정한 직업군의 이야기를 더해 들여다본다는 점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수목에는 KBS <동백꽃 필 무렵>이 신드롬을 만들고 있다. 6.3%로 시작했던 드라마는 입소문이 점점 퍼지더니 이미 18%를 넘겨서며 20% 시청률까지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많은 드라마들이 물량공세에 도회적인 이야기들의 틀에 갇혀 있을 때 정반대로 촌스러움의 가치를 끄집어낸 역발상이 주효했다.

 

수목에 포진된 MBC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시청률은 3%대에 머물러 있지만 화제성이 높은 드라마로 호평 받고 있다. 웹툰 속 캐릭터들에게 의식이 생겨나고 그래서 그 정해진 설정값(운명)을 넘어서려 노력하는 이야기는 판타지 설정이지만 현실적인 공감대까지 만들었다. 우리네 삶의 모습이 태생부터 정해진 설정값에 의해 움직이는 것과 그다지 다를 바 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tvN 드라마가 이렇게 주춤하며 위기에 몰리게 된 건 어딘가 공식적 틀에 갇혀버린 느낌 때문이다. 이미 <위대한 쇼> 같은 전작들을 통해서도 느껴진 것이지만 창대한 기획 그 이상의 스토리의 완성도를 최근 방영된 tvN 드라마들은 보여주지 못했다. 적당한 스릴러나 코미디에 멜로를 더하는 방식은 과거 지상파 드라마들이 위기에 처하게 됐던 이유가 아니었던가. 애초 지상파에 밀리던 시절 tvN 드라마의 과감했던 그 선택들을 다시금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그게 아니라면 잠시 주춤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게 만든 위치가 무너지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사진:tvN)

 

이제 웹툰의 문법에도 익숙해지고 있다는 건

 

tvN 드라마 <쌉니다 천리마 마트>는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드라마의 공식을 첫 회부터 깨버렸다. 물론 드라마의 공식이라는 것이 따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저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하고 놀라워할만한 과장된 이야기들은 파격적이었다.

 

이제 망하기 일보직전의 천리마 마트에 좌천되듯 정복동 이사(김병철)가 대표로 부임해와 하는 일련의 조치들은 황당하기 그지없는 것들이다. 전혀 스펙이 되지 않는 이들을(심지어 빠야족까지) 정직원으로 떡 하니 채용하고 고객만족센터에 곤룡포를 입은 전직 조폭을 떡하니 단상 위에 앉혀놓질 않나, 심지어 출입구가 손님들이 들어오기 너무 쉽게 되어 있다면 손으로 한참을 밀어 돌려야 열리는 회전문까지 설치한다.

 

이런 정도의 황당한 조치는 당연히 현실적 개연성이라면 마트가 망하는 게 상식이지만 드라마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준다. 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손님들이 더 북적이게 되는 것. 이렇게 망할 위기에 처한 회사의 현실적인 모습은 아마도 tvN 수목드라마 <청일전자 미쓰리>의 풍경이 아닐까 싶다. 물론 거기도 일개 말단경리가 사장이 된다는 설정이 들어 있지만 짠내 가득한 중소기업의 현실이 무겁게 드리워져 있다.

 

드라마의 개연성과 현실성의 관점으로 보면 <청일전자 미쓰리>가 훨씬 그럴 듯한 작품처럼 보이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오히려 이 황당하기 그지없는 <쌉니다 천리마마트>에 대한 대중들의 호응이 훨씬 크다는 것. 드라마의 문법을 과감히 깨고 저 세상 텐션을 보여주는 풍자가 들어가자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황당함에 시청자들은 점점 빠져들었다.

 

알다시피 이런 스토리 전개가 가능했던 건 원작이 웹툰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웹툰 특유의 과장과 특히 B급 감성 가득한 웃기는 설정들은 그 장르적 특성 때문에 훨씬 개연성에 대한 부담 없이 그려지는 면이 있다.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웹툰으로서도 놀라운 성공을 거둔 작품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드라마화된 작품에서도 이런 웹툰의 감성들이 먹히고 있다. 한때 이런 황당한 전개는 만화에서나 통용되는 것이라고 치부되던 것이 아니었던가.

 

MBC 수목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 역시 원작 웹툰인 <어쩌다 발견한 7월>의 그 독특한 세계를 드라마적으로 잘 구현해냈다. 흔한 학원 로맨스물처럼 여겨지는 소재가 웹툰이 가진 무한한 상상력과 엮어지면서 기막힌 세계관을 만들었다. 웹툰 속 주인공들이 의식을 갖게 되고 그래서 본래 정해져 있던 설정값을 바꾸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야기.

 

중요한 건 이런 웹툰의 설정들이 드라마화 되면서도 시청자들이 이제 받아들일 정도로 익숙해졌다는 점이다. 물론 이 두 작품의 드라마화가 성공적이었던 건, 그 황당하기까지한 웹툰 설정에 담겨진 뒤집어보는 현실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즉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상술로 돌아가는 세상을 뒤집는 통쾌함이 있고,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작가의 뻔한 이야기 전개를 캐릭터들이 뒤집는다는 흥미로움이 존재한다.

 

어쨌든 <쌉니다 천리마마트>나 <어쩌다 발견한 하루> 같은 웹툰 설정을 가져온 드라마들이 점점 시청자들을 공감시키고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웹툰의 힘이 드라마 문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만큼 웹툰이 이제 우리네 문화 콘텐츠에서 점점 그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사진:tvN)

‘어하루’, 뻔하고 자기 복제하는 작가와 대결하는 캐릭터들

 

MBC 수목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순정만화 속 세계가 그 배경이다. 그런데 이렇게 칸칸으로 나뉘어져 있는 만화 속에서 작가가 부여한 설정값대로 움직이던 은단오(김혜윤)는 어느 날 갑자기 ‘사각’하는 소리와 함께 엉뚱한 장소와 시간에 들어와 있는 자신을 자각한다. 그는 알게 된다. 자신이 작가가 만들어낸 만화 속 캐릭터지만 의식이 생겨났다는 걸.

 

의식이 생겨난 은단오는 그래서 만화의 칸에서 칸으로 이동하는 그 쉐도우의 지점에서의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기억한다. 그리고 칸 속의 ‘스테이지’와 칸 바깥의 ‘쉐도우’의 세계를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도서관에서 발견한 ‘비밀’이라는 만화책의 내용과 똑같이 자신이 사는 세상이 작가가 정해놓은 설정값대로 움직이지만 의식이 생겨난 은단오는 그 정해진 설정값이 맘에 들지 않는다.

 

백경(이재욱)이라는 인물의 약혼자라는 설정값에 늘 호통치고 상처 주는 그를 일편단심 바라보는 그 인물 캐릭터가 싫어진 것이다. 은단오는 그래서 이 만화 속 세계의 뻔한 순정만화 설정들을 스테이지 위에서는 어쩔 수 없이 따라가 주지만 그 때마다 속으로는 “토 나와”라고 투덜댄다.

 

그러다 이름도 없는 한 남자애가 눈에 들어오고 그에게 하루(로운)라는 이름을 붙여주면서 은단오는 설정값과 상관없는 자신만의 의지에 의한 삶을 조금씩 추구해간다. 하루를 좋아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면서 은단오의 의지 또한 커지자 설정값에 변화가 일어난다. 그저 이름 조차 없던 엑스트라였던 하루가 드디어 이름을 갖게 되고 ‘비밀’이란 만화책 등장인물 소개란에도 얼굴을 내밀게 된 것.

 

하지만 수영장에 빠진 은단오를 구해낸 후 하루는 사라져버리고, 다시 나타난 하루는 은단오와의 기억이 지워져버린다. 대신 이 만화 속 세상에서 엑스트라가 아닌 존재감 있는 인물로 거듭 서게 된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한 걸 깨달은 하루가 도서관에서 블랙홀 같은 곳에 손을 넣었다 드디어 기억을 되찾게 되고, 그는 자꾸만 은단오와 얽히게 되는 것이 사극 배경의 ‘능소화’라는 만화에서의 인연 때문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물론 아직까지 확신할 순 없지만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 그 배경이 되는 만화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일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하나가 ‘비밀’이라면 또 하나는 사극 배경의 ‘능소화’다. ‘비밀’에서 은단오와 하루는 주인공이 아니지만, ‘능소화’에서는 주인공급이었던 건 아닐까. 두 사람이 사랑을 하는 설정값을 가졌기에 의식을 갖게 된 그들이 막연히 연결된 과거 ‘능소화’ 스테이지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는 건 아닐까.

 

만일 이런 이야기라면 이 ‘비밀’이나 ‘능소화’ 같은 만화 속 세계의 설정값을 만든 작가는 은단오가 투덜대듯 뻔한 순정만화를 쓰는데다 자기복제까지 하는 작가다. 그래서 은단오나 의식이 생겨난 만화 속 인물들이 설정값을 바꾸려는 대결의식은 흥미진진해진다.

 

사실 만화 속 세상이라는 판타지 설정으로 되어 있지만, 우리네 사는 현실 특히 그 중에서도 학생들의 현실만큼 뻔하고 자기복제하는 세상도 없을 게다. 부유한 집 아이들은 이미 정해진 길대로 승승장구하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어떻게 해도 변하지 않는 현실의 설정값 속에서 자포자기한 채 살아간다. 그러니 은단호가 설정값을 바꾸려고 그토록 애쓰는 모습에 어찌 빠져들지 않을까. <어쩌다 발견한 하루>라는 판타지가 기묘하게 현실을 툭툭 건드리는 지점이다.(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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