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한지민의 잔상 오래도록 남은 까닭

있을 때는 잘 몰랐지만 없을 때 더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 바다목장편의 첫 게스트로 출연한 한지민이 그렇다. 생각해보면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꽤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생각해보라. 어딘지 예능이 어색한 듯 혀를 날름 빼고 득량도의 세끼 집을 처음 들어왔던 그녀의 모습을.

'삼시세끼(사진출처:tvN)'

한 이틀 간의 시간 속에서 한지민은 세끼 집 사람들의 식구라고 해도 될 만큼 편해졌다. 물론 이서진과 과거 드라마 <이산> 같은 작품을 통해 익숙한 관계였지만, 이 이틀 동안 두 사람은 툭툭 건드리며 장난을 칠 정도로 더 가까워졌다. 늘 조용조용한 에릭에게는 살뜰하게 주방보조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고 그와 함께 해신탕을 만들어먹으면서 더 돈독해졌다. 

윤균상과는 처음 만나 어색한 관계였지만 잭슨네 목장에 함께 다니면서 누나 동생으로서의 친밀함이 생겼다. 더운 날씨에 홀로 잭슨네 목장에 가서 청소하고 먹이를 주는 윤균상이 못내 안쓰러웠던 한지민은 에리카를 타고 가 윤균상에게 에어콘 시원한 차를 타고 가라고 하기도 했다. 자신은 윤균상이 끌고 온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겠다며.

사실 한지민은 수수함과 털털함 그 자체였다. 우리가 드라마 등을 통해 봐왔던 그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그리고 그녀가 특별한 걸 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세끼 집 남자들과 그들이 하는 일들을 같이 하면서 어우러진 것뿐이었다. 같이 요리를 하고 밥을 챙겨먹고 잭슨네 목장에 가서 산양들을 챙기고 너무 무더운 한낮에 바다로 나가 물놀이를 하는 그 일상의 시간들을 공유했던 것뿐.

하지만 다시 득량도를 찾은 이서진과 에릭 그리고 윤균상의 일상은 어딘지 허전함이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 무엇이든 해야 할 것 같아 설거지를 하며 웃던 그녀의 모습과, 함께 식사 자리에 앉아 중국풍의 가지된장덮밥을 먹으며 고량주 땡긴다던 그 모습, 그리고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하며 까르르 웃던 그 소리들이 마치 잔상처럼 득량도 곳곳에 묻어난다. 똑같은 일상이지만 이처럼 누군가의 난 자리는 도드라져 보인다. 

에릭은 다시 찾은 득량도의 세끼 집에서 먼저 냉장고를 열고 이전에 한지민과 함께 담가두었던 열무김치를 꺼내 먹어본다. 잘 익었다는 에릭은 그것으로 입맛 돋워줄 열무국수를 만든다. 이서진은 냉장고에서 한지민이 남기고 간 반찬을 꺼내 놓는다. 그녀는 없지만 한 끼 밥상 가득 그녀의 흔적들이 묻어난다. 

사실 이건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보이지 않는 힘이 아닐까 싶다. 어딘가로 떠도는 여행이 아니라 한 공간에 머무는 것이고 거기서 생활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 들고 나는 자리가 확실히 잔상을 남긴다. 똑같은 공간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득량도의 그 집에는 찾았던 이들의 손길과 체온이 묻어난다. 한지민이 떠난 자리에는 여전히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그 귀여운 얼굴이 눈에 선하다. 있을 때는 그저 즐거워 잘 몰랐지만 없을 때 더 느껴지는 빈자리. 그래서 그 어떤 여행 예능보다 <삼시세끼>가 주는 여운은 더 오래 지속된다.

<삼시세끼>, 재미 요소 줄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즐거운

 

비가 추적추적 오는 득량도의 밤. tvN <삼시세끼>의 윤균상은 정말 술 마실 분위기가 나는 날이라고 했다. 빗소리에 장작 타는 소리가 들려온다. 에릭은 문득 이서진의 다음 시즌이 궁금하다. “형은 만일 다음 시즌에 삼시세끼를 또 가면 어촌이랑 농촌이란 계곡이 있어 어떤 걸 원해?” 이서진은 엉뚱하게도 축산이라고 말한다. 그 말에 윤균상은 재미있겠다고 맞장구를 쳐주고 에릭은 예전 꿈이 목장 하는 것이었다고 덧붙인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리고 이어지는 나이 이야기. 이제 서른을 맞은 윤균상이 스물다섯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하자 에릭은 나이는 지나면 지날수록 빨라진다고 얘기한다. 이서진은 나이 마흔 다섯을 지나면 산 날보다 살 날이 작다는 걸 느낀다고 다소 쓸쓸한 소회를 꺼내놓는다. 술 한 잔이 곁들여진데다 윤균상의 말처럼 빗소리 장작소리에 고즈넉해지는 밤. 그들의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한데 이상하게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번 득량도에서의 <삼시세끼> 어촌편은 지난 시즌들과 비교해 재미적 요소가 많이 사라진 게 사실이다. 과거 만재도에서의 유해진과 차승원이 했던 <삼시세끼> 어촌편을 떠올려보라. 낚시에 피시뱅크에 화려한 요리와 게스트들까지 한 마디로 재미요소들이 버라이어티했다. 하지만 이번 득량도의 <삼시세끼>는 다르다. 거의 전 편이 에릭의 요리와 그 요리 때문에 조금씩 변해가는 이서진과 윤균상에 집중되어 있다.

 

이런 사정을 가장 잘 보여준 건 그들 스스로도 재미요소가 적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뭍으로의 탈출을 시도하는 장면이다. 보통 이런 일탈이 벌어지면 더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만큼 재미요소도 많아지는 게 정상이다. <삼시세끼> 정선편은 시장으로 마실만 한 번 가도 이야기들이 쏟아지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들의 탈출은 돈을 챙겨오지 못한 사정 하나로 허무하게 끝이 나버렸다.

 

낚시도 재미의 중요한 요소지만 낚시는 그 특성상 물고기가 잡히는 장면까지의 기다림이 지루할 수밖에 없다. 유해진은 그 지루함을 특유의 정서와 너스레로 풀어내면서 채워넣어줬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서 낚시의 재능을 새롭게 알게 된 윤균상이 물고기를 척척 잡아주는 장면과 이서진이 한 마리를 잡아 명예회복을 하는 장면을 빼고 나면 그다지 분량이 많지 않다. 기대했던 강태공 에릭의 낚시도 심지어 감성돔을 잡았지만 워낙 작아 풀어줘야 했기 때문에 그리 큰 감흥은 없었다.

 

빗소리 들려오는 밤, 에릭이 슬쩍 그 아쉬움을 꺼내놓는다. “전체적인 거는 다 잘 맞고 다 좋은데 딱 하나 아쉬운 거는 웃음 포인트 하는 게 형밖에 없는 게 아쉬운 거지.” 에릭은 스스로 알고 있다. 자신이 그리 웃기는 캐릭터는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그런 에릭에게 이서진은 말한다.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야. 결국 사람은 그찮아 정혁아. 그냥 진심인거야. 내가 보기에는. 진심은 언젠가는 통하게 돼있어. 나는 결국 그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사실 이서진의 이 이야기는 <삼시세끼>가 왜 많은 예능의 MSG를 빼놓고도 그렇게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가를 잘 설명해준다. 예능이지만 웃음의 포인트에만 집착하지 않고 대신 그 상황과 그 속에서의 인물들이 말하는 진심을 전해준다는 것이 <삼시세끼>가 가진 놀라운 반전이라는 점이다. 기존의 예능적 의미로 보면 재미없는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는새로운 것들이 보이게 됐다는 것.

 

그 진심의 힘은 신뢰를 만들고 그래서 다소 심심할 수 있는 재미라고 해도 기꺼이 맛나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능하게 한다. 그건 이들이 이야기하는 요리와도 같다. “봐봐 아무리 맛있게 요리를 해도 먹는 사람이 그걸 즐겁지 않으면 맛있지가 않아.” 우리는 어느새 <삼시세끼>라는 요리를 그것이 어떤 것이든 기꺼이 즐겁게 맛보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요리의 즐거움에 괜스레 우리도 즐거워지게 됐다. “요리는 정혁이형이 다 했는데 괜히 맛있다고 하면 내가 기분이 좋아요.”라고 말하는 윤균상처럼.

<삼시세끼>, 에릭의 정성과 신뢰에서 배워야할 것

 

에릭의 요리 속도가 늘었다? tvN <삼시세끼>의 에릭은 느림보 천재요리사라 불린다. 일단 만들어내는 음식은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 없다. “맛은 어때?”하고 묻는 나영석 PD에게 이서진은 뭘 물어봐라며 에릭의 요리에 대한 무한신뢰를 드러냈다. 무려 7시간이나 저녁을 준비한 끝에 새벽에야 저녁을 먹고도 이서진이 뭐라 할 수 없었던 건 그 요리가 너무 맛있어서였다. 결국 그 맛으로 인해 기다린 시간들은 온전히 에릭이 채워 넣은 정성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도 문제는 요리 속도였지만 이제는 그 속도도 빨라졌다.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걸까.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일단 에릭의 손 놀림이 달라졌다. 물론 미안할 일은 아니지만 에릭은 요리가 늦어져 식사도 늦고 또 그걸 찍기 위해 제작진도 고생하는 걸 보며 못내 미안했던 모양이다. 매 끼니마다 요리 하기 전이나 하면서도 고민하던 시간을 대폭 줄였고 회 뜨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노량진 수산시장에 직접 가서 아주머니에게 배우는 노력을 들였다.

 

씨알 좋은 농어를 여섯 마리나 잡아 온 저녁에 에릭은 회를 치고 매운탕을 끓이고 또 농어구이를 내놓으면서도 이를 일사천리로 해결했다. 그는 순서를 묻는 나영석 PD에게 먼저 회를 쳐서 숙성시키는 시간에 매운탕을 끓이고 그 국물을 내는 시간에 농어 구이를 하겠다고 했다. 이미 낚시에서 농어를 잡는 그 순간부터 에릭은 시간을 최적화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웠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렇게 효율적인 시간배분이 가능했을 게다.

 

흥미로운 건 이서진과 윤균상의 움직임이다. 요리를 해주기를 막연히 기다리거나 에릭이 시키면 하는 식이 아니라 아예 자발적으로 척척 준비를 해나가는 모습은 놀라울 지경이다. 에릭이 회를 치고 있을 때 이서진은 알아서 마늘을 까면서 그에게 생강도 필요하지 않냐고 묻는다. 윤균상은 그 얘기를 듣자마자 생강을 준비하고 매운탕에 들어갈 간장이며 야채들을 척척 준비해놓는다.

 

이러니 일이 일사천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내놓은 회를 느긋하게 애피타이저(?)로 먹고는 오래 끓여 잘 우러난 매운탕과 이태리식으로 기름에 잘 구워낸 살이 두툼하게 오른 농어를 그들은 맛나게도 먹었다. 옆을 서성거리며 호시탐탐 요리를 노리는, 누가 보면 거지(?)라고 해도 믿을 법한 행색의 나영석 PD에게 국물과 농어구이를 맛보게 해주는 여유까지.

 

<삼시세끼> 정선편에서 이서진이 투덜대며 적응했던 시골생활을 생각해보면 이번 득량도에서의 그의 모습은 낯설 정도로 고분고분하다. “이런 날이 내게도 오는구나라며 밥상을 받을 때마다 보조개가 피어난다. 낚시하러 가자면 낚시하러 가고, 밭에서 따온 유자로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유자청을 만들어놓는다. 물론 막내인 윤균상은 뭐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성실하게 하는 인물이지만, 맛나게 음식을 해주는 에릭은 멋있는 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따르게 되었다. 이게 다 에릭의 마법이다.

 

그런데 그 에릭이 부린 마법의 정체가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성실하게 정성을 다해 음식을 준비한 것뿐이니까. 물론 요리 속도가 느리다는 게 함정이었지만 자신도 노력하고 그런 에릭을 알아서 도우며 옆에서 보조해준 이서진과 윤균상이 있어 그런 문제는 문제가 전혀 되지 않았다.

 

일이란 이렇게 하는 게 아닐까. 먼저 신뢰를 보여주고 그리고 그 신뢰 속에 정성이 담겨 있었다는 그 마음을 확인시키자 저절로 다른 사람들은 그를 중심으로 척척 움직인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일에 동참하게 하는 것. 그래서 결국 모든 사람들이 풍족한 시간을 갖게 해주는 것.

 

정성은커녕 거짓으로 가득 차 결국 신뢰를 잃어버린 정부와 그래서 마비된 국정운영. 그 실망감과 상실감이 너무나 커서인지 에릭이 보여주는 놀라운 요리의 세계에서조차 거꾸로 왜 정부는 저렇게 일하지 못할까 하는 자괴감이 든다. 풍요롭게 해주지는 못해도 적어도 이러려고...” 하는 유행어처럼 되어버린 말들이 회자되게 하지는 말았어야 하지 않을까.

<삼시세끼>, 답답한 현실 속 힐링 타임이 된 까닭

 

나라 안팎을 시끌시끌하게 만든 현실이 못내 답답했던 걸까. tvN <삼시세끼> 어촌편3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높아진다. 첫 회부터 11%대의 높은 시청률을 찍은 후 순항하고 있고 방송이 끝나고 나면 그 대단할 것 없는 이서진, 에릭, 윤균상의 득량도에서 먹은 몇 끼가 화제가 된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이런 행보는 이례적이다. 전체적으로 시사와 뉴스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은 치솟은데 반해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졌기 때문이다. 하긴 요즘 같은 시국에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허허롭게 웃기도 쉽지 않게 되었다. 물론 시사 풍자가 들어간 예능 프로그램들은 예외지만.

 

하지만 알다시피 <삼시세끼>에는 시사 풍자 같은 요소가 들어 있지 않고 또 들어갈 여지도 별로 없다. 사실 하는 일도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득량도에 들어간 이서진, 에릭, 윤균상이 세 끼 밥을 해먹는 것이 고작이니까.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요즘 같은 시국에 특히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끌고 있다. 세상이 복잡하고 갑갑하고 화가 나니 이들과는 동 떨어진 곳에서 잠시 멈춰서 삼시세끼를 챙겨먹는 일이 그 자체로 힐링과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느리지만 정성에 정성을 들여 음식을 만들어내는 에릭, 투덜대면서도 뒤에서 그를 도우며 무엇보다 그가 만들어낸 음식을 맛나게 먹는 이서진 그리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안 시켜도 알아서 척척 움직이는 자발적인 노예윤균상. 이들이 득량도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너무나 단순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삶의 본질 같은 걸 드러낸다.

 

결국 하루 세 끼 챙겨먹으며 사는 건 누구나 다 같다는 것. TV 뉴스에서는 입만 열면 수십 억 수 백 억이 옆집 개 이름처럼 나오고, 그걸 좀 더 갖겠다고 갖가지 부정과 청탁과 갑질을 한 정황들이 서민들의 마음을 스산하게 만들지만, <삼시세끼>는 정반대로 그런 사람들의 행태가 삶의 본질에서는 한참 벗어난 것이라는 걸 에둘러 보여준다.

 

이순신 장군이 양식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을 가진 득량도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넉넉한 가슴을 내어준다. 에릭이나 윤균상처럼 바다가 낯선 그들에게도 때 되면 갯벌을 열어 누구나 쉽게 채취해갈 수 있는 양식을 내놓는다. ‘키조개의 법칙따위는 없을 정도로 어디서나 쉽게 키조개를 채취할 수 있고, 운 좋은 날에는 갯벌 여기저기서 그저 주우면 될 정도로 많은 백합을 얻을 수도 있다.

 

그걸 주워다가 뚝딱 뚝딱 관자삼합을 만들어 먹는 이 섬의 세 사람을 보다보면 그 단순하고 소박한 한 끼가 그토록 넉넉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단순하고 소박하면서도 넉넉한 <삼시세끼>는 전혀 의도하지 않고 있지만 그 자체로 현실에 대한 만만찮은 이야기를 건넨다. 그래봐야 다 똑같은 삼시세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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