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785)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574)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Total13,244,223
Today134
Yesterday475

MBC와 임성한 작가, 그 밀월의 끝

 

임성한 작가는 은퇴한 걸까 퇴출된 걸까. 임성한 작가의 소속사인 명성당엔터테인먼트 이호열 대표는 23일 임성한 작가의 은퇴를 공식화했다. “은퇴가 맞으며, 복귀 가능성은 없다고 한 것. 그는 임 작가가 예전부터 10작품을 끝으로 은퇴를 계획하고 있었다고 했다.

 

'압구정 백야(사진출처:MBC)'

하지만 이러한 은퇴선언이 나오게 된 계기는 장근수 MBC 드라마본부장이 방송심의소위원회(방심위)에서 다시는 임성한 작가와 작품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서 비롯됐다. 그는 드라마 작가들은 현재작이 끝날 때 차기작 계약을 하는데 (임성한 작가와) 현재 계약을 하지 않았다약속한 주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당혹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얘기가 기사화되어 일파만파 퍼져가자 임성한 작가의 소속사측에서 은퇴를 공식화한 것. 물론 수순은 이렇게 됐지만 소속사 말대로 임성한 작가가 본래부터 <압구정백야>를 끝으로 은퇴를 계획하고 있었을 수 있다. MBC 장근수 본부장의 발언은 이런 임성한 작가의 행보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얘기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에게 있어서 은퇴선언이라는 말이 합당한 지, 또 굳이 이렇게까지 공식화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작가는 절필을 한다면 모를까 은퇴라는 개념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안 쓰면 은퇴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굳이 은퇴라는 표현을 쓰는 데는 그만한 내막이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MBC는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가 해온 파행이 이제는 시청률로 덮고 가기에는 그 임계치를 넘어섰다고 느끼는 상황이다. 막장드라마도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다 여겼지만 지난 <오로라 공주>처럼 이른바 데스노트가 나오는 정도의 파행을 겪고, 또 작가 퇴출 여론까지 생겨난 상황은 MBC로서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자칫 MBC 드라마국 전체의 이미지를 깎아먹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임성한 작가는 시청률을 위해 막장의 끝까지 밀고 나갔다가 결국은 제 살 깎기를 한 셈이 되었다. 즉 제아무리 막장이라도 드라마를 파괴하는 수준으로는 가지 않았어야 한다. 제왕적인 작가가 자기가 만든 인물들이라고 자극을 위해 제 멋대로 유린하는 파행에 이제는 그나마 있던 시청자들조차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지경에 이르렀다. 해도 너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극은 더 큰 자극으로만 유지될 수 있을 뿐이다. 결국 죽어가는 인물들의 문제는 부메랑처럼 임성한 작가에게도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임성한 작가가 스스로 은퇴를 한 것인지, 아니면 방송사에 의해 퇴출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최근 벌어졌던 임성한 작가를 둘러싼 그 많은 잡음들과 논란들을 떠올려 보면 이런 결과는 당연히 예상될 수 있는 것이었다. 상식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방송사라면 굳이 이런 논란까지 부담으로 가져가면서 드라마를 만들 이유가 있을까.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광고 수익과 연결되지도 못하는 그런 시청률도 이제는 그리 효용가치가 없다 여겨질 것이다.

 

하여간 MBC와 임성한 작가의 밀월은 이걸로 끝장이 났다. 그 많은 캐릭터들이 어느 날 갑자기 픽 쓰러져 죽어버렸던 것처럼, 임성한 작가의 은퇴선언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튀어나왔다. 물론 이것으로 국내에 막장드라마가 사라지거나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막장이라는 드라마의 결말이 어떻게 된다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알게 되지 않았나 싶다. 이것이 은퇴를 공식 선언해도 퇴출이 아닐까 대중들이 생각하는 이유일 것이다.

 

Posted by 더키앙

욕먹어도 보면 그만? 임성한 월드의 참상

 

이제 임성한 월드는 더 이상 욕하는 것도 지겹다는 대중들의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항간에는 아예 임성한 월드에 대한 기사가 나오는 것조차 불편해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비판 기사는 사실상 임성환 월드가 먹고 자라나는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압구정백야(사진출처:MBC)'

임성한 월드는 논란을 먹고 자란다. 도무지 나올 수 없는 칭찬은 당연히 논란으로 이어지고, 당연한 비판 역시 그 논란을 부추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이것이 임성한 월드에 일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이 생기는 건 그래서다. 무관심이 답일 수 있지만 그래도 최근 들어 조금 오른 시청률 때문에 자꾸만 임성한 월드에 대한 재조명 기사들까지 나오는 건 이해하기가 어렵다.

 

시청률은 작정하면 나올 수밖에 없다. 가장 쉬운 것은 룰을 깨는 것이다. 드라마라는 창작의 공간에도 정해진 룰이라는 게 있다. 그러니 이걸 깨버리면 당연히 시끄러워진다. 그리고 그 시끄러움은 임성한 월드가 목적하는 것이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 여기서 함정은 방점이 욕하면서에 찍히는 게 아니라 보는에 찍힌다는 점이다.

 

이렇게 찍힌 방점은 본말을 전도시킨다. 보게 하기 위해 욕먹기를 자초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등장인물(그것도 주인공급)의 어이없는 죽음은 욕먹기가장 좋은 수단이다. 물론 거기에는 작가의 욕망이 들어 있다. 이 세계에는 작가가 신이다. 그는 인물과 인물을 이어붙이는 것에서 장애물이 있다면 거침없이 제거해낸다. 그 세계가 작가만의 것이 아니라 이미 시청자들의 것이기도 하지만, 그런데서 나오는 잡음들은 오히려 을 통한 시청률로 이어진다.

 

죽었던 인물이 다시 유령이나 환시로 재등장하는 건 그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인물에 대한 대중들의 뜨거운 논란의 불씨를 끄기 보다는 오히려 계속 끌고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여 섬뜩해진다. 마치 길거리에서 드잡이 싸움이 벌어지면 그 내용과 상관없이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처럼 임성한 월드는 무관심이나 비판조차도 가만두지 않고 오히려 키워버린다.

 

당연히 작품을 일관적으로 통과하는 메시지 같은 건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그 지극히 이상한 임성한 월드가 마치 보편적인 세계인 양 매일 같이 대중들에게 노출되는 끔찍한 악영향만이 거기에는 존재한다. 현실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놀라운 장면들이 주는 황당함과 어이없음은 그 강도가 너무 강해서 비판조차 허탈하게 만든다. 그러니 작품성 자체는 일찌감치 포기한 채 황당한 웃음을 지으며 자극만을 쳐다보는 지경에 이를 수밖에 없다. 자조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시청패턴이다.

 

이 황당한 세계가 매일처럼 대중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여진다는 건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죽어나가는 등장인물을 의심 없이 바라보다보면 마치 사람을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하는 것이 당연한 듯한 세계관을 내면화하게 될 수도 있다. 룰 자체는 아랑곳없이 제멋대로 방향을 틀어버리는 이야기에 익숙해지다 보면 마치 그런 임기웅변식의 삶이 우리가 지향해도 무방한 삶의 본질이라는 것에 승복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임성한 월드보다 더 큰 문제는 이 세계를 매일 매일 보여주는 방송사의 윤리 부재의 현실이다. 시청률만 되면 뭐든 받아들인다는 이런 식의 태도는 모든 가치들을 경제적인 논리 아래 굴복시킨다. 일부 기자들을 비판하는 기레기라는 말을 끌어와 작레기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을 방송사는 왜 좌시하고만 있는 걸까.

 

장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를 디즈니랜드에 비유해 설명하며, “디즈니랜드는 미국 자체가 거대한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함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임성한 월드가 갖는 정치적 위험성은 바로 이 점에 있다. 이 극단의 막장의 세계는 어떤 면에서는 지독한 현실의 막장을 은폐하는 힘을 발휘한다. 이것은 <펀치> 같은 작품들이 오히려 막장의 현실들을 환기시키는 것과는 정반대의 흐름이다.

 

임성한 월드는 그래서 세상의 모든 막장에 쏟아지는 욕들을 마치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성장하는 괴물처럼 보인다. 이 룰도 없고 삶과 죽음의 예의도 없는 세상을 들여다보면서 혀를 차고 있는 순간, 저 바깥세상에서 돌아가는 막장의 현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마비된다. 과연 욕먹어도 그만일까. 이런 세계를 방치하는 것은.

 

Posted by 더키앙

신처럼 군림하며 맘대로 써서 거액을 번다면...

 

흔히들 대중들은 잘 나가는 드라마 작가에 대한 부러움이 있다. 물론 창작의 고통이라는 것은 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필자가 아는 드라마 작가는 작품 하나를 할 때마다 10년씩은 늙는다고 한다. 그래서 고료가 많아 보이지만 사실은 제 피와 살을 깎는 비용이라고 토로하기도.

 

'오로라공주(사진출처:MBC)'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우리네 드라마 제작현실은 특히 작가들에게 더 취약하다.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라가지 않은 작가라면 대중들의 요구에 의해, 방송사의 요구에 의해 때로는 스타 배우의 요구에 의해 굴욕적이게도 대본을 고쳐야 하는 상황을 겪기도 한다. 피 말리는 쪽대본을 생각해보라. 지옥이 따로 없을 게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대로 작가가 작품에 대해 진지하고도 심각한 고민을 할 때의 이야기다. 만일 마치 작가가 신처럼 군림하고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인물을 뺄 수도 있고 새롭게 끼워 넣을 수도 있으며 심지어 분량도 마음껏 조절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심지어 방송사의 통제에서도 벗어나 요구사항 따위는 들어줄 필요도 없고, 원한다면 50부 정도는 연장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면?

 

그렇게 하면서도 회당 몇 천만 원씩을 원고료로 받아간다면 이만큼 편한 일도 없을 게다. 작품을 할 때는 모두가 두려워하기까지 하는 신적인 존재고, 작품이 끝나고 나면 손에 몇 십 억을 벌 수 있으니 이만큼 손쉽고 즐거운 일도 없겠다.

 

<오로라 공주>의 임성한 작가가 실제로 이렇게 즐거울 지는 알 수 없다. 물론 나름대로의 스트레스와 고충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작품을 통해 비춰지는 모습은 이렇게 편안한 작가도 없다는 느낌이다.

 

인물 하나가 죽는 일에는 거기에 합당한 개연성을 만들어줘야 하는 게 작가의 소임이다. 그런데 그녀의 드라마에서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별로 없다. 갑자기 웃다가 죽어버리거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경험하다가 죽는 데는 이유란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주요 캐릭터들이 중도에 하차하거나 새롭게 들어가는 것에도 상당한 고민이 필요한 게 드라마 작업이다. 완성도가 있는 작품이란 필요 없는 인물이 존재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끝까지 각자의 기능과 역할을 할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별다른 이유 없이 해외로 보내버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캐릭터를 하차시킨다면 어떨까.

 

작가로서는 완성도를 포기하는 대신 고민을 덜게 된다. 결국 피해는 그 캐릭터에 몰입해온 시청자들에게 돌아간다. 시청자들의 비난이나 원성이 생기겠지만 거기에 별 개의치도 않는다면 작가는 별다른 스트레스도 없을 게다. 이런 작가 생활만큼 편안한 일이 있을까.

 

이것이 드라마 작가라면 사실 아무나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충 캐릭터 몇 명을 세워놓고 이리저리 관계를 엮다가 뭔가 반응이 온다 싶으면 발전시켜나가고 그게 아니라면 중도에 캐릭터를 죽이던가 해외로 보내는 식으로 하차시키고 다른 인물을 세워 또 다른 관계를 엮어나가면 그만이다. 애초에 완성도 같은 건 염두에 두지 않았으니 그걸 두고 쏟아지는 논란이나 비난은 그다지 부담될 일도 아니다. 게다가 논란은 때로는 화제로 이어지기도 하니까.

 

일일드라마를 보는 서민들의 입장을 생각해보자. 어느 누구는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해도 돈 10만원 벌기가 힘든 이들도 있을 게다. 그러니 하루의 값싼 여가로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캐릭터들에 감정이입해 다른 삶을 경험하고 싶은 욕구는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언제든 목이 날아갈 수 있는 현실과 똑같은 일이 드라마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면 어떨까. 또 완성도는커녕 개연성마저 찾기 힘든 드라마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면?

 

그리고 누구는 그렇게 해서 시청률이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가고, 반대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욕하며 애써 드라마를 봄으로써 그 허수의 시청률을 만들어준 시청자들은 다시 생활전선으로 나가게 되는 상황. 어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임성한 작가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그래서 단지 작품의 무개념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대중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들어가 있다. 작품을 쓰는 창작자로서의 작가가 아니라 단지 작가라는 이름을 빌어 펜대의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그 대가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가는 것에 대한 박탈감. 이러한 박탈감과 거기서 비롯되는 분노는 자칫 이런 권력을 가능하게 해주는 방송국에게로 옮아갈 지도 모른다.

Posted by 더키앙

<오로라공주>가 던진 비난 떡밥들, 입질은 있었나

 

아예 작정을 한 걸까. 임성한 작가의 새 드라마 <오로라공주> 첫 회는 욕 먹기를 작정하기라도 한 듯한 장면과 대사와 상황이 쏟아졌다. 시작부터가 불륜이다. 오금성(손창민)이 내연녀에게 “한 달만 기다려. 정리하고 올께. 약속해.”라고 천연덕스럽게 던지는 말은 자못 도발적이다. 저녁 7시 대 일일드라마로서 첫 장면에 불륜 장면을, 그것도 너무나 버젓이 던지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색깔을 명확히 해준다.

 

'오로라공주(사진출처:MBC)'

다음 시퀀스는 임성한 월드의 특징을 정확히 보여준다. 여주인공 오로라(전소민)가 검사인 남자친구의 어머니와 대면하는 장면. 위 아래로 훑어보며 “다 해봐야 십만 원 밖에 안되겠네”라고 대놓고 말하는 속물근성 덩어리 어머니의 안하무인격 태도에 발끈하게 될 즈음, 갑자기 극 흐름과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남자친구 어머니의 코털이 인서트된다. 임성한 작가의 전작들이 가끔씩 상상 신을 활용해 인물들의 꿈틀대는 속내를 꺼내보였던 것처럼, 이 장면에서 오로라는 남자친구 어머니의 턱을 잡고 코털을 자르는 상상을 한다.

 

아마도 드라마에서 이런 코털 장면은 흔한 일이 아닐 것이다. 뾰족한 가위를 코 속에 넣어 자른다는 점에서 그 장면은 특이하면서 자극적이다. 하지만 그 뿐이다. 이 시퀀스는 이 드라마의 이야기 흐름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저 시청자의 이목을 끌거나 화제가 될 만한 장면을 집어넣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이것은 임성한 월드가 늘 추구해오던 것이기도 하다. 언제 주제의식이나 스토리의 일관성을 따졌던가. 그저 자극적이거나 눈요기 거리거나 화제(아니 나아가 논란)가 될 만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끼워 넣는 것이 임성한 월드의 특징이다.

 

품격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막가파식의 설정과 대사 역시 빠질 수 없다. 오금성과 아내 이강숙(이아현)이 함께 안마를 받는 자리에서 오금성이 이혼을 선언하자 이강숙이 알몸을 가린 가운을 열어 보여주며 하는 대사는 리얼하다기보다는 자극을 위한 자극처럼 보인다. “뭐가 부족해 내가! 호강에 겨워서 뭐에 빠진다고... 마흔 셋에 이 정도 유지하는 여자 봤어? 누구는 주물러 터트려서 귀찮아 죽겠대. 뭐가 그리 잘났는데? 나니까 살아줬어. 토끼 주제에...” 그러자 남편 오금성도 못지않은 막말을 쏟아낸다. “식어 빠진 사발면을 그럼 1,2분이면 해치우지 2,30분에 먹냐.” 실로 19금딱지 붙은 드라마에서도 듣기 힘든 대사들이 아닌가.

 

비상식적인 가족의 대화는 오왕성(박영규), 오금성, 오수성(오대규)이 저녁을 먹으며 불륜에 빠진 오금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동생 오수성은 바람난 형에게 연실 장난치듯 비아냥대고, 형인 오왕성은 책망을 하지는 못할망정 내연녀의 나이를 궁금해 하고 부러워한다. 오금성이 내연녀가 서른다섯 처녀라고 말하자 이 두 형제는 심지어 “대박!”이라고 감격하기까지 한다. 형제들이 바람피는 것을 부러워하고 은근히 자랑질 하는 이 장면을 정상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런 장면이 야기하는 짜증은 임성한 월드가 굴러가는 연료이기도 하다. 분노하고 욕하기 위해 본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아마도 임성한 월드는 이 잘나가는 가족들의 속물근성을 끄집어내 보여주고 싶은 것일 게다. 이 가족 속에 등장하는 계급들의 모습, 이를테면 오로라를 시중드는 하녀들이 여전히 존재한다거나, 평범한 옷을 입고 명품백을 사러 온 오로라를 불친절하게 대하는 종업원의 모습 역시 속물 자본주의가 가진 여전히 봉건적인 요소들을 보여주고는 있다. 또 임성한 월드에 꼭 등장하는 무속이나 종교적인 행태들(이번 드라마에도 잠자는 황마마(오창석) 옆에서 불경을 외우는 누나들이 등장한다) 역시 21세기에도 존재하는 전근대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속물 자본주의나 전근대적인 행동들을 끄집어내 보여주는 목적은 전혀 다르다. 그것은 풍자나 비판의식을 담재하고 있다기보다는 그저 그 비상식적인 장면들이 만들어내는 짜증을 증폭시키기 위함으로 보인다. 즉 임성한 월드가 움직이는 동력은 바로 이러한 시청자의 감정을 낚는 이른바 ‘비난 떡밥들’이 도처에 던져져 있기 때문이다. 첫 회만 봐도 이런 논란이 될 만한 떡밥들은 거의 매 시퀀스마다 등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 그토록 욕을 하면서도 챙겨봤던 것처럼(어쩌면 욕하기 위해) 지금의 시청자들도 이 떡밥들을 덥석 물것인가. 첫 회에 시청률 11%를 기록할 정도로 임성한 월드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 끝없이 던져지는 짜증나는 시퀀스들에 이제 진력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번 <오로라 공주>의 성패는 시청자들의 성향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비난을 먹고 자라는 이상한 임성한 월드는 여전히 그 기능을 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 지나가버린 퇴행적인 세계로 기록될 것인가. 그 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Posted by 더키앙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