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 병만족의 생고생, 재미는 없는 이유

 

<정글의 법칙> 히말라야편에서 병만족의 웃음을 찾는 것 쉽지 않다. 이들이 서 있는 공간이 웃음을 허락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말 그대로 고행의 연속이었다. 고산병으로 숨 쉬는 것조차 불편한 그 곳을 20킬로가 넘는 배낭을 짊어지고 올라가는 과정에서 극도로 예민해진 병만족이 말다툼을 하는 장면은 그들이 얼마나 힘겨운 고투를 벌이고 있는가를 말해주었다.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그 와중에도 김병만의 희생과 도전정신은 보는 이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오지은의 무거운 배낭까지 대신 짊어지고 오르는 모습은 마치 인간의 한계를 시험해보려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목적지인 폭순도 호수까지 가까스로 올라가 그 절경 앞에 감탄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산병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정준은 숨을 쉴 수가 없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날 것의 생고생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고, 그래서 그 땀이 보여주는 진정성이 분명해진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글의 법칙>이 그간 시청자들에게 전해주었던 즐거움과 재미는 상대적으로 사라져버렸다. <정글의 법칙> 히말라야편은 마치 등산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깨알 같은 재미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한 편 내내 산을 오르고 오르며 고통스러워하는 병만족의 모습을 확인했을 뿐이다.

 

이번 히말라야편은 현지 적응 훈련으로 들어간 바르디아 정글에서도 생각만큼의 재미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야생동물 관찰이라는 새로운 재미요소가 있었지만 그것이 너무 오랫동안 반복되면서 지루해진 것도 사실이다. 야생의 뱅갈호랑이를 보는 장면은 물론 흥미로운 일이지만 그 과정은 오로지 기다리는 것일 수밖에 없다. 먹거리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기가 어려운 척박한 환경이기 때문에 야생동물을 찍은 대가로 음식을 제공하는 방식이 반복됐는데 이것 역시 <정글의 법칙> 특유의 재미를 반감시키기도 했다.

 

그나마 이번 편에서 발견한 웃음은 안정환이었다. 그는 깨알 같은 농담으로 고생하는 병만족들의 웃음을 잃지 않게 만들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번 히말라야편은 <정글의 법칙> 특유의 다큐와 예능 사이에 놓여진 재미가 상당부분 사라져 버렸다. 사냥의 재미도 찾기가 어려웠고 힘겨운 와중에도 즉석에서 상황극을 할 정도로 여유 있는 웃음은 더더욱 찾기 어려웠다. 숨어서 야생동물을 내내 관찰하거나, 하루 종일 산을 오르는 장면만이 반복되서 나온 느낌이다.

 

이것은 히말라야라는 공간의 특징 때문일 수도 있다. 극에서 극으로 바뀌는 기후와 그냥 서 있는 것조차 힘든 고산지대의 특성이 웃음이 사라지게 된 원인이라는 점이다. 결국 히말라야라는 공간은 그림은 멋있지만 다양한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예능의 공간으로서는 너무 혹독했다는 점이다.

 

<정글의 법칙>이 다큐와 변별력을 가질 수 있는 건 거기에 여유와 웃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예능적인 포인트가 없다면 굳이 <정글의 법칙>을 볼 까닭이 없다는 얘기다. 물론 지난 뉴질랜드편에서 불거져 나온 진정성 논란에 대한 해답으로서 히말라야 같은 극한의 오지를 선택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글의 법칙>만이 갖고 있는 다큐와 예능 사이에서 벌어지는 재미는 담보할 수 있었어야 한다.

 

<정글의 법칙>은 생존을 위협하는 극한의 정글 속으로 뛰어들면서도 그 안에서 또한 도시인들이 느끼기 어려운 자연이 주는 행복감을 전해주었던 프로그램이다.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곳은 불편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 때문에 누리게 되는 관계의 해방이나 자유 같은 즐거움이 병존하는 곳, 그곳이 바로 <정글의 법칙>이 아니었던가. 극한의 오지에서 생고생을 하는 병만족의 노력은 그래서 그 진심이 전해지지만, 안타깝게도 재미는 그다지 없는 편이다. 다큐가 아닌 예능 <정글의 법칙>이 살아나야 이 프로그램만의 독특한 매력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오지로 가는 TV, 무엇을 찾았나

'남극의 눈물'(사진출처:MBC)

'정글의 법칙'과 '남극의 눈물'. 금요일 밤 TV는 오지로 향한다. '정글의 법칙'은 쫄쫄 굶어 허기진 배를 이끌고 한 발 떼기도 힘들 정도의 진창을 걷고, 위험천만한 강을 건너서 파푸아 정글의 코로와이족을 찾아가는 김병만족의 여정을 보여주었다. 같은 시각, '남극의 눈물'에서는 무려 300일 동안 극한의 오지 남극에서 목숨을 걸고 찍어온 영상들의 프롤로그가 방영되었다. 다양한 종류의 펭귄들과 해표, 물개, 혹등고래 등의 극지에서의 생태는 물론이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걸 찍어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촬영팀의 전체적인 이야기가 기대감을 자아내게 했다. '정글'과 '남극'.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찾아서 그 먼 오지까지 달려간 것일까.

'정글의 법칙'은 김병만족의 생존기를 다루는 '생존 리얼리티쇼'. 험난한 정글 속에서 맨몸으로 먹을 것을 구하고 잠자리를 마련하며 생존하는 과정을 그린다. 다큐멘터리적인 리얼 영상이 심지어 두려움을 느끼게 할 정도의 생생한 정글의 느낌을 전해주지만, 또한 그 와중에도 예능적인 웃음을 포기하지 않는 퓨전적인 프로그램이다. 사실 리얼리티쇼가 전 세계적인 방송 트렌드로 자리하면서 이러한 '생존기'를 담은 프로그램은 그렇게 낯선 것만은 아니다. 디스커버리 채널의 '인간과 자연의 대결'은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글의 법칙'은 이러한 서구의 '생존 리얼리티쇼'와는 확연히 차별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혼자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김병만을 위시한 리키김, 노우진, 광희, 태미가 하나의 가족을 이뤄 이 극한 지대에서 살아남는 과정을 그린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생존능력이 뛰어난 김병만과 리키김은 그래서 때로는 이 나머지 가족들(?)을 위해 목숨을 건 강물 건너기를 시도하기도 한다. 물론 이들이 이렇게 생존능력을 발휘하는 그 원동력은 거기 다른 구성원들이 함께 한다는 것 때문이다. 이 가족적인 분위기는 '정글의 법칙'만이 가진 '생존 리얼리티쇼'의 특별함이다. 즉 정글 속에서도 그들이 보여주는 건 생존만이 아닌 점점 형제처럼 가까워지는 그들의 가족애다.

이것은 '남극의 눈물'에서도 그리 다르지 않다. '남극의 눈물'을 여느 생태 다큐멘터리와 차별화시키는 것은 그 안에서도 인간과 동물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끈끈한 가족애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황제펭귄이 혹한 속에서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발 위에 올려놓고 몸으로 덮어주는 장면이나, 새의 공격으로부터 자식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버리는 어미 펭귄, 종족 번식을 위해 온 몸이 찢겨지는 싸움을 벌이는 해표, 거대한 체구에서도 모성을 느끼게 하는 혹등고래의 생태는 그것이 동물이라는 하나의 테두리로 포괄하는 우리의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혹한 속의 생태 풍경들 속에 또한 한 풍경으로 자리한 남극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허물어낸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는 남극의 모습은 그 이야기를 지구촌의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정글의 법칙'과 '남극의 눈물'. 어찌 보면 달라 보이지만 또 달리 보면 비슷해 보이는 이 프로그램이 결국 오지에서 발견한 건 신기한 풍경이 아니라 다름 아닌 '인간'이다. 어쩌면 인간애나 가족애 같은 말은 이제 이 편안한 세상에서는 너무 흔해빠진 말이 되어 버렸는 지도 모르겠다. 굳이 오지로까지 달려가는 TV를 통해서 비로소 그 말이 가진 절절함을 발견하게 되니 말이다. 그 곳에서의 '법칙'과 '눈물'은 어쩌면 그간 무뎌진 우리의 인간애에 대한 감각을 벼려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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