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직후 글로벌 1위 찍은 ‘이쿠사가미’, 사무라이 버전 ‘오징어 게임’?

이쿠사가미

이건 <오징어 게임>과 <바람의 검심>을 합쳐 놓은 거 아닌가.

넷플릭스 새 시리즈 <이쿠사가미:전쟁의 신>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다.

시작은 사무라이 액션으로 문을 연다.

원테이크로 찍혀 박진감 넘치게 그려진 치열한 전쟁터에서 사무라이들이 맞붙는 장면이다.

사가 슈지로(오카다 준이치)는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만 곧 어디선가 날아온 무차별 포격에 함께 싸운 동료들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며 사무라이들이 이제는 설 자리가 없어진 상황을 이 전쟁 상황은 압축해서 보여준다. 

 

칼 쓰는 일 이외에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폐도령이 내려져 가난해진 데다,

마침 호열자(콜레라)까지 번져 죽어가는 가족을 안타깝게 바라봐야 하는 슈지로는

어느 날 교토의 텐류지에서 10만 엔 상금을 걸고 벌어지는 대회에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된다.

슈지로는 집을 떠나 그 대회에 참가하는데, 수백 명의 사무라이들이 모인 그 곳에서는 생존게임이 벌어진다.

살아남는 단 한 사람만이 10만 엔을 가져갈 수 있는. 

이쿠사가미

시작은 메이지 유신을 배경으로 칼잡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바람의 검심>을 떠올리게 하지만,

생존게임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오징어 게임>의 사무라이 버전으로 옮겨진다.

마지막 전쟁의 충격으로 칼을 뽑지 못하는 슈지로는 생계를 위해 참가한 소녀 카츠키와 생존하기 위해 칼을 빼들고,

죽고 죽이는 이 싸움에 뛰어든다.

<오징어 게임>이 그러하듯이 이 게임에도 주최자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숨겨진 음모가 존재한다.

슈지로는 과거 한 스승 밑에서 배웠던 사형제나,

필요에 의해 동맹을 맺는 이들과 힙을 합쳐 게임의 배후를 추적하려 한다. 

 

이 정도면 <오징어 게임>의 냄새가 짙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돈과 권력을 가진 게임의 주최자가 있고,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참가자들의 생존 게임이 펼쳐진다.

주최자들의 음모를 파헤치고 대적하기 위한 참가자들의 연합이 생겨나고, 이들의 전쟁이 그려진다.

<오징어 게임>의 이야기 구조 그대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쿠사가미>는 사무라이 버전 특유의 색깔을 입혀 눈을 뗄 수 없는 액션의 향연을 채워 넣는다.

<바람의 검심>에서 익숙했던 여러 특성을 가진 적들이 등장하고, 그들과 펼치는 다채로운 액션이 그것이다. 

 

<오징어 게임> 같은 데스 서바이벌 장르에 대한 글로벌 기대치가 생긴 것인지,

<이쿠사가미>는 공개와 동시에 OTT 순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에서 넷플릭스 TV 시리즈 글로벌 1위를 찍었다.

전 세계 분포를 보면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 대부분은 물론이고 북미와 남미, 유럽, 남태평양 국가들까지 고른 인기를 보였다.

어딘가 <오징어 게임> 신드롬의 향기가 솔솔 피어오른다. 

이쿠사가미

물론 <오징어 게임>이 갖는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들과는 달리,

<이쿠사가미>는 사무라이 액션 장르 특유의 비장미로 가득 채워져 있다.

생존 게임이라는 이야기 구조는 같아도 일본 특유의 로컬 색깔을 보다 부각시킨 것이고,

무엇보다 사무라이 장르를 좋아하는 이들의 취향을 극대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시즌1에 해당하는 6회가 공개됐을 뿐이고, 서사도 이제 도입 정도다.

향후 시즌이 계속 공개되며 생겨날 글로벌 시너지가 예견되는 대목이다.

 

<이쿠사가미>의 등장은 넷플릭스 시리즈가 갖는 시즌제 성격의 제작 방식이

이제는 성공 콘텐츠나 장르의 로컬 버전 재해석으로도 이어지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알다시피 IP를 소유한 넷플릭스로서는 <오징어 게임> 같은 성공을 또 다른 방식으로 재연하고픈 욕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무라이 버전이 가능하고 또 성과를 낼 수 있다면, 또 다른 로컬 색깔을 더한 작품들이 가능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장르화를 통해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은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기업이 늘 해왔던 방식이지만,

그 상업적인 성공만큼 반복되는 서사에 대한 피로도도 높아질 수 있다.

실제로 <오징어 게임>처럼 게임화된 서사는 디즈니+에서 최근 공개된 <조각도시> 같은 작품에서도 엿볼 수 있게 됐다.

물론 무고한 이를 범죄자로 만들어내는 빌런과 싸우는 이야기지만,

<조각도시>에는 갑자기 빌런이 판을 벌인 레이싱장에서의 생존 게임이 펼쳐진다.

부유한 관전자들이 내려 보는 가운데. 

이쿠사가미

성공을 바라는 건 모든 작품의 공통된 욕망이지만,

그렇다고 작품이 균일화된 틀에 들어가 상품처럼 찍혀지는 건(물론 외형은 다른 것처럼 보이려 변환되지만)

어딘가 퇴행적인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이제 사무라이 버전의 <오징어 게임>이 등장해 이미 성과를 내고 있다는 건 어쩌면

이 열풍처럼 번질 데스 서바이벌이라는 장르의 확산을 예감케 한다.

그것은 어쩌면 넷플릭스 같은 관전자가 전 세계를 두고 펼치는

콘텐츠 서바이벌 전쟁의 ‘라스트 맨 스탠딩’ 게임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달리는 속도에서 걷는 속도로

응답하라 1988

급한 일이 없는 날이면 약속장소에 늘 30분 정도 일찍 나간다. 서촌이나 북촌, 인사동, 종로에서 주로 약속을 잡는데 그곳 골목길들을 걷는 게 재미있어서다. 30분 정도 먼저 도착해 골목길들을 슬슬 걸어 다니며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은 카페와 음식점들로 가득 채워져 말 그대로 인파가 몰리는 익선동 골목도 7,8년 전만 해도 한옥의 처마를 그늘 삼아 슬슬 걷기 딱 좋은 길이었다. 비 오는 날 우산 하나 들고 그 길에 들어서면 고즈넉한 분위기에 순간 도시 한 복판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아늑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에는 그 골목길에 '거북슈퍼' 하나가 달랑 있었는데, 비 오는 날 그 가맥집에서 병맥주를 마시며 빗소리를 듣는 기분이 그만이었다. 물론 거북슈퍼가 있던 자리에 세련된 음식점들이 잔뜩 들어선 지금은 그곳을 잘 찾지 않는다. 그때의 정취가 잘 느껴지지 않아서다. 대신 요즘은경복궁역 뒤편 서촌 쪽에 약속을 하고 그 골목길들을 쏘다닌다. 그곳 골목길은미로처럼 뻗어있어 일단 들어서면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준다.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발길이 어디에 닿을지 못내 궁금해진다. 어쩌다 길을 따라 수성동계곡까지 올라가 겸재 정선이 그린 그림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걸 보다 보면 이곳이 서울 한복판에 숨겨진 별천지라는 생각이 든다. 구석구석 걸어 다녀야 비로소 보이고 발견되는 별천지.

 

그때는 가치를 미처 몰랐던 것들이 있다. 집에 놓여있던 유선전화기 앞에서 사랑하는 누군가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리던 시간과, 마음을 글 몇 줄에 담아 적어보던 편지들 그리고 한쪽 귀로 나누어 듣던 워크맨 노래들 같은 게 그것이다. 골목길도 그랬다.그저 좁기만 했던 골목은 더럽게만 느껴졌고, 그 골목 한편에 놓인 평상에서 골목으로 들어오는 아이들 하나하나에 인사를 하고 참견을 하던 이웃 아주머니들의 오지랖은 불편하게만 생각되었다. 하다못해 왁자하게 떠들며 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아이들은 시끄럽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 골목이 싹 밀어진 자리에 세워진 말끔한 아파트에 살다 보니 이제 알게 되었다. 그것이 꽤 그립고 따뜻한 시간들이었다는 것을.

응답하라 1988

‘응답하라 1988’은 쌍문동 봉황당 골목 풍경으로 시작한다. 택이네 집에서 함께 ‘영웅본색’을 보던 친구들이 6시 괘종시계 소리와 함께 집집마다 “밥 먹어라” 하고 부르는 엄마들의 소리에 집으로 돌아간다. 변진섭의 ‘새들처럼’이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가운데, 카메라가 훑어 보여주는 골목길 정경은 당대를 살았던 이들의 기억을 되살려 놓는다.익숙한 철제문들과 현관 위에 놓인 화분들, 포스터들이 잔뜩 붙였다 떨어진 흔적이 가득한 담벼락, 위로 넣고 앞으로 빼내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옛날 쓰레기통과 그 옆에 놓인 연탄재들, 버려진 의자들, 대야들. 도둑이 넘어올 수 없게 깨진 사이다병과 맥주병을 거꾸로 꽂아 놓은 담장, ‘사글세 있습니다’, ‘잠잘 방 있습니다’ 같은 전단이 붙어 있는 전봇대, ‘양담배 있습니다’라 적힌 담뱃가게, ‘금은보석 고급시계’라 적힌 촌스럽기 이를 데 없이 화려한 봉황당이라는 간판... 그 풍경들 위로 훗날 이때를 회고하는 덕선의 내레이션이 들려온다.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봉황당 골목. 난 이 골목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지금 생각하면 그 많은 시간들을 우린 대체 뭘 하면서 보냈을까?”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건드린 정서적 뇌관은 지금은 찾기 힘든 그 골목길 풍경에 있었다. 지금은 사라져 버렸거나 혹은 사라져 가는 것들을 그 1988년의 쌍문동 골목길에 옮겨 놓은 것이다. 이제 보니 그 골목길은 사람과 사람을 얇디얇은 벽으로 막아놓은 아파트와는 달리, 사람과 사람이 길로 연결된 정이 넘치는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그 골목에서 함께 놀며 자랐고 부모들은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이웃인지 가족인지 알 수 없는 정이 있었다. '응답하라 1988'의 그 쌍문동 골목길은 지금의 차가운 디지털 세상의 풍경에 결핍된 어떤 것들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그 풍경을 보고 지금 도시에 하나둘 생겨나고 있는 골목길로 자꾸만 마음이 이끌리는사람들은 아마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게다.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

응답하라 1988

내게도 그런 골목길들이 있었다. 포장도 되지 않은 흙길들이 대부분이었던 70년대 나의 고향 경기도 안성의 골목길들에는 여지없이 아이들이 와하고 소리치며 달려가곤 했다.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금을 그어 놓고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십자 가이상’, ‘팔자 가이상’, ‘오징어 가이상’, ‘접시 가이상’ 같은 놀이들을 하곤 했다. '오징어게임'이라는 드라마가 바로 그때 했던 ‘오징어 가이상’을 소재로 한 것이다. 놀이터도 별로 없던 시절, 우리의 골목길은 땅만 있으면 뭐든 놀 수 있던 놀이 공간이었다. 방과 후 집에 돌아와 가방을 던져 놓고 그 골목길로 나가면 항상 같이 놀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보면 골목길 집집마다 밥 냄새가 피어올랐고, 엄마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밥 먹어라!”

 

새마을 운동의 물결이 그 시골 마을에도 일렁이기 시작하면서 땅에 금 긋고 놀던 놀이들은 학교 운동장으로 밀려났다. 비가 오면 푹푹 들어가던 흙길은 널찍한 신작로로 바뀌었고 그 위로는 시멘트가 덮여 트럭 같은 차들이 달리기 좋은 길로 바뀌었다. 우리들은 금 그을 수 있는 새로운 땅을 찾았고, 방과 후 집으로(사실은 골목길로) 가던 발길은 이제 학교 운동장으로 모여들었다. 가끔 소나기라도 내리면 시멘트로 포장된 신작로 위로 먼지들이 몽글몽글 떠오르곤 했는데 그때 풍기던 텁텁한 냄새는 지금도 갑자기 소나기를 맞아 처마 끝에 비를 피할 때면 속절없이 코끝을 스치는 기억이 됐다. 빼앗긴 자의 아련함이랄까. 마음껏 금을 그으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곤 했던 우리들의 골목길이 시멘트로 덮이고 그 위로 신난다는 듯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빨라진 세상의 변화 속에서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져갔다...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에세이의 ‘길의 원리 행함의 원리’라는 글을 통해 ‘길은 명사라기보다는 동사에 가깝다’고 했다. 길이란 사람의 ‘행함’에 맞게 나는 것이고 그래서 논두렁길의 구부러짐은 농사꾼의 몸의 조건에 따라 ‘이리저리 휘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길들이 어느 날 차들이 달리는 도로로 바뀌었다. 구불구불 넘어야 했던 산길 대신, 터널을 뚫어 낸 길로 차들이 쌩쌩 달려가면서 그 고갯길들의 ‘존엄’은 사라지게 됐다. 나의 기억 속에 구불구불 미로처럼 펼쳐져 있고 비가 오면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흙들을 오목하게 파이게 했던 그 골목길 대신, 일직선으로 뻗어있어 편리하긴 하지만 각진 길들 과 빗물이 스미지 못해 하수도를 향해 흘러내려가는 시멘트길로의 변화는 그래서 사람의 길에서 자동차의 길로 바뀌며 생겨난 삶과 생각의 변화처럼 다가온다.

 

골목길의 땅은 빈 공간이었다. 거기에는 아무 표식도 기능도 강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빈 도화지나 마찬가지였다. 그 위에 우리들은 매일 오징어도 그리고 접시도 그리고 팔자도 그려가며 놀았다. 동그랗게 원을 그려놓고는 돌을 세 번 튕겨 만들어지는 공간만큼을 내 땅으로 삼을 수도 있었다. 물론 우리들의 놀이가 끝나고 나면 슥슥 다른 친구들의 발길에 지워진 후 그들의 도화지가 되었다. 무한한 가능성과 상상의 공간. 하지만 그 공간 위로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덮이고 금이 그어졌다. 차도와 인도가 나뉘고 횡단보도가 생겼다. ‘사람은 왼쪽 자동차는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는 규칙도 생겼다.

 

그 규칙을 가진 길은 ‘생산성’이라는 척도로 채워졌다. 느긋이 걷곤 하던 길을 이제 사람들은 경쟁하듯 달리기 시작했다. 차들이 쌩쌩 달렸고, 때론 사람과 사람이, 때론 차와 차가, 때론 사람과 차가 부딪쳐 사고를 냈다. 경쟁사회의 시작이었다. 땅에 금을 몇 개 긋고 하던 놀이의 ‘오징어 게임’은 이제 선을 넘으면 진짜 죽는 살벌한 경쟁의 ‘오징어 게임’이 됐다. 저녁이 되면 풍겨오던 밥 냄새와 “밥 먹어라” 외치던 엄마들의 목소리가 있던 자리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오징어 게임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서울로 전학을 온 나는 한동안 차만 타면 멀미를 했다. 차의 속도로 쌩쌩 달려가던 그 변화 앞에 몸이 미처 적응하지 못했던 거였다. 하지만 내가 서울의 속도에 적응하며 더 이상 차멀미를 하지 않게 되던80년대를 거치며 도시는 급속도로 변했다. 땅은 포장되었고, 오래되고 낡은 집들은 밀어내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와 빌딩들이 세워졌다. 외국인들의 시선에 특히 민감한 한국인들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이런 변화를 가속화했다. 개발 위에 다시 개발을 얻는 재개발이 서울 전역에서 이뤄졌다. 그렇게 30여 년 간 자잘한 도시의 골목길들이 사라져 갔다.

 

그런데 이건 웬일일까. 신사동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 마포구 연남동길, 망원동 망리단길... 최근 몇 년 간 도심을 중심으로 골목길들이 곳곳에서 생겨나 증식하고 있다. 거기에는 저 '응답하라 1988'이 상기시켰던 잃어버린 골목길에 대한 향수와 추억 그리고 나아가 어떤 보상심리 같은 것들이 어른거린다. 물론 개발과 재개발 속에서도 골목길들은 늘 존재했다. 70년대의 종로와 명동, 무교동거리가 상업화의 물결을 탄 도시의 활기였다면, 80년대 야타족과 오렌지족으로 대변되는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는 과시경제의 상징이었고, IMF의 그늘 속에서 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커져온 홍대거리는 젊은이들의 문화적 갈등과 고민의 흔적이었다. 그렇다면 최근 생겨난 가로수길부터 망리단길에 이르는 골목길들의 전성시대는 도대체 뭘까. 압축성장과 개발의 뒤안길에서 사라져 버린 길들에 대한 회한이자 그리움 같은 게 아닐까.

응답하라 1988

압축성장과 개발시대의 길이란 속도를 의미하는 차들이 장악한 공간이었다. 본래 마을이란 삶의 공간과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생겨난 상점들로 구성되어야 하지만, 그저 빨리 지나치게 만드는 차들의 길이 생겨나면서 공간은 사람이 머무는 곳이 될 수 없었다. 최근 들어서는 골목길들이 차들을 밀어내고 대신 ‘걷는 사람들’을 애써 채워 넣고 있는 건 그래서 반가우면서도 안쓰럽다.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하자 신사동 가로수길은 그 골목골목까지 도시에 걷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거리가 되었고, 부암동길은 도시적인 풍경 속에 자연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길이 됐으며, 삼청동길은 역사가 보이는 길, 이태원 경리단길은 이국적인 풍경을 걷는 길이 되었다. 하지만 거기 그냥 있는 것이 당연한 길이 아니라 굳이 무슨무슨 길이라고 지칭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우리에게 골목길 같은 사람들이 걷는 길이 낯선 공간이 되었는가를 말해주는 것만 같다.

 

서울 구석구석에 골목길이 생겨나는 건 도시에 인간적인 온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나를 설레게 한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 생겨나는 골목길을 보다 보면 그곳 역시 자본화의 고속도로가 깔림으로 해서 밀려나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피할 수 없다. 카페와 음식점들로 가득 채워지기 전, 고즈넉한 한옥의 처마를 내주던 익선동 골목길이 그립다. 그곳 거북슈퍼에서 잠시 다리를 쉬게 하고 병맥주 한 잔을 홀짝이던 그 한적한 온기가 자본의 열기로 채워져 있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래도 나는 약속시간 30분 전에 도착해 골목길을 찾는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걷다 보면 없던 길도 만들어질 거라고 믿으며.

2024.11.4

'스우파', 오징어 게임 판에서도 이들은 모두 우승자였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종영했다. 최종 우승은 홀리뱅 크루. 2위는 훅 크루에게 돌아갔다. Mnet 서바이벌 오디션으로서 오랜만에 마지막 회까지 집중하게 한 프로그램이었지만, 그건 누가 우승을 할 것인가가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들의 멋진 무대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픈 마음이 컸다. 그 무대에서는 멋진 춤이 있고, 춤을 통해 전해지는 메시지가 있고, 치열하지만 그 경쟁마저 무화시키는 애티튜드와 그 어떤 강연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인사이트 가득한 명언들이 쏟아졌으니 말이다. 최근 2년 넘게 고개를 숙였던 Mnet을 화제의 중심에 놓게 해준 <스트릿 우먼 파이터>. 하지만 그 공은 온전히 댄서들에 있었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도 그 시작은 여타의 Mnet 오디션 서바이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등장부터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며 이기려는 크루들의 노골적인 욕망들의 부딪침을 보기 불편할 정도로 각을 세웠다. 미션 자체가 그랬다. 첫 번째 미션이 ‘약자 지목 배틀’이었다. 걸 그룹 출신이라는 이유로 원트의 이채연은 다른 크루들이 물어뜯는 먹잇감으로 연출되었다. 같은 팀에서 활동하다 갈라져 골이 생긴 홀리뱅의 허니제이와 코카앤버터 리헤이의 대결을 세웠고, 라치카 가비와 훅 아이키의 대결은 환불원정대의 안무를 두고 이들이 벌였던 대결을 끌어들여 각을 세웠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정복과 굴욕 같은 자극적인 단어들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면서 제작진은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일종의 ‘오징어 게임’이라는 걸 강조했다. 이미 <언프리티 랩스타> 같은 서바이벌 오디션을 통해 보여주곤 했던 자극적인 경쟁구도를 내세웠고, 판정이 나는 순간에 여지없이 인터뷰 목소리로 들어간 양자에게서 자신들이 반드시 이긴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보기 불편한 지점까지 끌고 올라가는 대결구도는 Mnet이 과거 <슈퍼스타K> 시즌3에서 ‘악마의 편집’이라고까지 불리게 됐던 그 자극점을 재연해 보여줬다. 

 

하지만 이 ‘오징어 게임’ 판을 명승부의 무대로 바꾼 건 다름 아닌 댄서들이었다. 허니제이와 리헤이의 살벌하기까지 했던 댄스 배틀은, 승부가 끝난 후 허니제이가 본인이 패배했으면서도 양팔을 벌려 리헤이를 안아주는 모습으로 한편의 드라마를 썼다. 그 순간 서로 자신들이 훨씬 낫다고 주장하고,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동원하겠다고 한 이들의 욕망은 절실함으로 바뀌었고, 승부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상대에 대한 예우라는 걸 보여줬다. 

 

그래서 이기기 위해 무대 위에서 바지를 벗기까지 했던 가비는 프로그램 시작점에서는 최고의 빌런이 될 것처럼 보였지만 갈수록 그 승부욕이 하나의 캐릭터가 되었고, 유튜브를 통해 가비의 다른 모습들을 발견한 시청자들은 승부의 세계에서 이기고픈 욕망을 끝까지 드러내지만, 그 바깥에서는 상대방을 리스펙트하는 그의 솔직함에 매료됐다. 

 

제작진이 첫 회에서부터 프라우드먼의 모니카나 립제이를 다른 크루들의 ‘선생님’ 격이라고 내세운 후, 마치 사제 간의 대결처럼 무대를 몰아간 부분도 전형적인 Mnet 서바이벌 오디션의 자극적인 선택 중 하나였다. 승부에서는 위아래도 없다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댄서들 특히 모니카 같은 선배들이 오히려 나이를 뛰어넘어 후배들을 예우하는 모습으로 명승부를 이끌어냈다. 오히려 승부에서 나이와 서열 따지는 기성세대의 치졸한 면모들을 여지없이 깨버리는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제작진들이 던진 미션들 중에는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취지와 맞지 않는 것들도 존재했다. 이를 테면 ‘메인 댄서 선발전’은 대놓고 이 댄서들이 가수들 뒤에 서서 잘 드러나지 않던 그 존재감을 대결의 화력으로 활용했고, 메가크루 미션에서는 이른바 ‘연예인 지인 찬스’가 발생하기도 했으며, ‘맨 오브 우먼’ 미션도 자칫 그 중심에 다시 남성을 세울 수도 있는 문제의 소지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 때마다 댄서들은 제작진이 내놓은 오징어 게임을 명승부로 되돌려 놓는 선택들을 보여줬다. ‘메인 댄서 선발전’에서는 선발 과정까지 치열했지만 함께 할 때는 척척 맞아 돌아가는 합을 보여줬고, 메가크루 미션에서의 ‘연예인 지인 찬스’에 대해서는 모니카가 “자존심도 없냐”는 일갈로 상황을 반전시켰다. 또 ‘맨 오브 우먼’ 미션에서 댄서들은 남녀의 성을 뒤바꿔 놓거나, 성을 무화시켜버리는 의상을 입고, 박재범 같은 연예인을 데려와서도 그저 크루의 한 부분처럼 활용하는 방식으로 그 한계를 뛰어넘었다. 

 

“잘 모르겠고 우리가 제일 잘했고 제일 멋있었어. 그럼 된 거야!” 파이널 무대에서 아쉽게 3등에 그친 라치카의 가비는 그렇게 외쳤다. 최종 우승자에서 멀어졌지만 그들은 이미 우승자였다. 최종 우승자가 된 홀리뱅의 허니제이는 우승소감으로 한국의 댄서들 전부를 상찬했다. “대한민국 댄서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다”며 “이미 멋있기 때문에 자부심 가져도 된다”고 한 것. 2등에 그친 훅의 아이키는 “스우파 댄서들 XX 멋있다!”고 모든 댄서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들은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의 성취가 자신들이 아닌 한국의 댄서 전체의 성취라고 강변하고 있었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열풍을 불러온 것은 어찌 보면 그 살벌한 생존경쟁의 무대는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오징어 게임>과 같았지만 그와는 정반대의 드라마를 써낸 댄서들이 있어서다. 이 과정이 감동적이었던 건 우리 모두 어쩌면 비슷한 저마다의 오징어 게임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고, 그 속에서 그 현실을 비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승부에 뛰어들고 욕망을 드러내고 그것을 실현시키려 노력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또 그렇게 승패가 갈린 후 그러한 경쟁의 판 자체를 무화시키는 상대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것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세상은 생존경쟁의 경쟁을 부추기고 있고 그래서 생존과 동시에 이기고픈 욕망이 만들어지지만, 그럼에도 다 함께 이기는 경쟁을 향해 나간 댄서들이 있어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빛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모두 우승자였다.(사진:Mnet)

‘오징어 게임’과 ‘오십억 게임’ 그리고 아빠 찬스

오징어 게임

“저는 너무나 치밀하게 설계 된 <오징어 게임> 속 말일뿐.” 곽상도 국민의 힘 의원의 아들 곽병채씨가 퇴직금 명목으로 50억 원을 수령했다는 사실에 대한 해명에 갑작스레 <오징어 게임>이 등장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현재 넷플릭스가 서비스되는 전 세계 83개국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글로벌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드라마. 아마도 곽상도 의원의 아들 역시 이 드라마를 봤던 모양이다. 

 

그가 ‘오징어 게임 속 말’이라고 했던 건 이 드라마에서 기훈(이정재)은 노모의 카드를 빼내 현금 서비스를 받은 돈으로 경마를 한다. 드라마 첫 회에 등장하는 이 시퀀스는 <오징어 게임>이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예고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제 456억을 두고 이른바 VIP들의 재미를 위해 경주마가 되어 죽고 죽이는 데스 서바이벌 게임이 펼쳐질 거라는 예고. ‘오징어 게임 속 말’은 그래서 기득권자들이 만들어놓은 경쟁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절박하게 목숨을 걸고 달릴 수밖에 없는 보통 서민들을 은유한다. 물론 저 경쟁 시스템을 만든 기득권자들에 대한 환멸에 가까운 냉소를 포함해.

 

하필이면 <오징어 게임>의 비유를 들었지만, 대중들은 그것이 결코 적확한 비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6년 근무하고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받는 일이 상식적일 수 없어서다. 게다가 이런 그가 진정으로 ‘오징어 게임 속 말’처럼 절박한 청년이라 보기도 어렵다. 곽씨는 “제가 입사한 시점에는 화천대유는 모든 세팅이 끝나 있었다”며 “돌이켜 보면 설계자 입장에서 저는 참 충실한 말이었다”고 했다. 또 “한 번은 운전 중에, 또 한 번은 회사에서 쓰러져 회사 동료가 병원으로 이송하기도 했다”며 “일 열심히 하고, 인정받고, 몸 상해서 돈 많이 번 것”이라고 했다. 그가 <오징어 게임> 운운한 건, 설계자는 따로 있고 자신은 그 안에서 열심히 달린 것뿐이라는 걸 피력하기 위함이다. 

 

그는 마치 자신이 <오징어 게임> 속 기훈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한다. 드라마를 본 분들은 알 수 있듯이 기훈이 그런 결과를 얻게 되는 건 보이지 않는 설계자의 손길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운’이다. 하지만 곽씨가 하필이면 그 회사에 입사해 6년 가량 일하고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받은 걸 어떻게 운으로 볼까. 본인 스스로도 ‘설계자’가 있음을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대중들이 이 사안을 ‘아빠 찬스’로 보는 이유다. 

 

곽상도 의원은 공석에서 취준생들의 박탈감을 대변한 일이 있다. “수십 수백 대 1 경쟁 뚫고 어렵게 입사한 직원과 채용에서 탈락한 취업준비생과 그 부모들은 가슴을 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 그는 평등, 공정, 정의를 물었다. 놀랍게도 <오징어 게임>에서 456억을 두고 벌이는 게임에 룰로서 제시되는 가치들이 바로 평등, 공정 같은 것들이다. 그것을 어기면 즉결심판에 처해진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을 끝까지 보다 보면 평등, 공정 같은 가치들이 일종의 ‘선언’일 뿐, 결코 실현되는 가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경쟁사회라는 시스템 자체가 이런 가치를 실현하지 못하게 한다. 특히 시스템 꼭대기에서 오징어 게임의 말들을 내려다보는 기득권자들의 선언과는 다른 ‘내로남불’이 존재하는 한 더더욱.

 

며칠 전 벌어진 장제원 의원의 아들 노엘 사건 역시 청년들에게 <오징어 게임>을 떠올리게 했을 게다. 무면허 운전, 음주측정 불응, 경찰관 폭행 게다가 그는 이미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내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상황이었다. 2017년 래퍼로 데뷔한 후 지금껏 그만큼 많은 범죄행위들이 논란을 불러일으킨 연예인도 드물다. 하지만 그는 그 때마다 버젓이 활동을 이어갔다. 이것이 어떻게 노엘이라는 한 연예인의 힘만으로 가능할까. 보통의 연예인이라면 수년을 자숙해도 복귀가 가능할까 싶은 수준이 아닌가. 여기서도 청년들은 두 단어를 떠올린다. ‘내로남불’과 ‘아빠 찬스’. 한때 조국과 그 딸을 ‘부모찬스’를 언급하며 맹공했던 장제원 의원에게 이제 고스란히 그 화살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 

 

<오징어 게임>은 ‘오십억 게임’이 되었다. 누군가 시작한 패러디는 지금의 청년들이 느끼는 분노와 허탈감을 가득 담은 일종의 놀이처럼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 뉴스 속 댓글들도 “미안해 아빠가 곽상도가 아니라서...”, “곽상도 아들로 못 태어난 죄”라는 글이 유행처럼 번져간다. “곽씨와 화천대유는 깐부 사이냐”, “오징어게임 참가자들은 목숨을 걸었는데, 곽씨는 무엇을 걸었나” 같은 <오징어 게임> 속 이야기를 꺼내와 분노를 표한다. 

 

지금 <오징어 게임>이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건, 그 세계에서 어떤 희망을 보고 있어서가 아니다. 대신 현실을 똑 빼닮은 그 세계를 냉소하고 있어서다. 어쩌면 우리는 저 세계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라고 결코 믿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또한 어떤 공정이나 평등을 부르짖는 힘 있는 자들의 목소리를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치 기훈이 설계자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듯이, 태생적으로 계급이 나뉘어져 ‘아빠 찬스’가 그 사람의 ‘운’처럼 치부되는 경쟁사회 속에서 <오징어 게임>은 불쾌하지만 적어도 폭로의 쾌감을 선사한다. 

 

청년들이 <오징어 게임>에 열광하는 그 정서 속에는 분노와 허탈감, 조롱, 냉소 같은 감정들이 깔려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오징어 게임>은 지금 현재 현실 버전으로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러니 그 누가 이 냉소에 공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건 어쩌면 우리만의 이야기는 아닐 게다. 전 세계의 청년들이 <오징어 게임>의 냉소에 열광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진짜 말처럼 뛰고 또 뛰는 서민들은, 게임 바깥으로 튀어나오지 않고서는 결코 끝나지 않을 현실 버전의 경쟁 게임 속에서 몇몇 기득권자들의 즐거움(행복)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으니.(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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