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닥터 김사부2’, 한석규가 왜곡된 세상에 맞서는 방식

 

‘왜곡의 시대. 정당한 신념조차 색깔 프레임에 가두고 보편적 가치조차 이해타산에 맞춰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이상한 세상. 권력을 권리라 착각하고 이권을 정의라 주장하는 사람들.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뒤로한 채 상대를 뭉개버려야 나의 옳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는 그런 사람들의 세상이 되었으니...’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에서 서우진(안효섭)의 목소리로 전하는 메시지는 이 드라마가 돌담병원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의학드라마 그 이상을 담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여운영(김홍파) 원장을 밀어내고 새로 돌담병원 원장으로 부임한 박민국(김주헌)은 도윤완(최진호) 이사장에게 어떻게 김사부(한석규)를 몰아낼 것인가에 대해 “진실을 보여주겠다”는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진실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현실일 뿐이다. 김사부의 신념이 “얼마나 독선적이고 위험한 헛짓인지 그 사람이 옳다고 믿는 그 가치가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비경제적인지” 보여주겠다는 것.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진실은 언제나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내가 맞고 그 사람이 틀리다는 걸 꼭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박민국이 도윤완에게 하는 그 말들은 서우진의 메시지와 교차되며 이제 이 드라마가 어떤 이야기를 다룰 것인가를 예고한다. 그건 일종의 화두인 셈이다. 사실을 왜곡하고 권력으로 상대방을 찍어 눌러 이권만을 추구하는 세상에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화두. 이 화두에 맞춰 등장한 사건은 상습적인 가정폭력을 당하던 다문화가정의 아내가 견디다 못해 커터칼을 남편에게 휘두르고 그걸 막기 위해 나섰다가 오히려 목에 상처를 입은 차은재(이성경)의 에피소드다.

 

그 남편이 아내에 대해 상습적인 폭력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없는 가운데 CCTV 영상에 포착된 차은재가 그 남편을 닦달하는 영상은 병원을 곤경에 빠뜨린다. 박민국은 경찰을 불러 조사하기보다는 차은재에게 사과하고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라고 전한다. 물론 그건 그가 이 사건을 통해 차은재를 쫓아내려는 간계가 숨어있다. 차은재는 김사부에게 병원 사람 모두가 불편을 겪게 하느니 차라리 자신이 사과를 하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김사부는 일갈한다.

 

“그런 식으로 니 맘 편하자고 했던 수많은 선택들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만들고 있다는 그런 생각 그런 생각 안해봤어?” 차은재가 불편한 마음을 토로하자 “차라리 불편하고 말어”라고 김사부는 말한다. “불편하다고 무릎 꿇고 문제 생길까봐 숙여주고 치사해서 모른 척해주고 더러워서 져주고.. 야 이런 저런 핑계로 그 모든 게 쉬워지고 당연해지면 너는 결국 어떤 취급을 당해도 싼 그런 싸구려 인생 살게 되는 거야. 알아들어?”

 

결국 차은재는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왜곡에 무릎 꿇는다. 그 다문화 가정 부부를 찾아가 고개를 숙인다. 그런 차은재에게 남편은 “어디서 재수 없는 게 싸가지 없이...”라고 말하고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외면한다. 하지만 이런 차은재의 대처는 옳았을까. 과연 그건 모두를 편하게 만드는 자기희생이었을까. 결국 이런 왜곡을 받아들이는 미완적 대처는 더 큰 사건을 만들어낸다. 아내가 결국 참다못해 남편의 목을 그어버린 것.

 

‘난 그냥 잘 하고 싶었어 나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게 싫었고 나 혼자 자존심 굽혀서 해결될 수만 있다면 백번 그러는 게 맞다고 믿었어. 그렇게 조용히 덥고 넘기는 게 멋진 거라고 그게 쿨한 거라고... 그런데 내 기분은 왜 이런 거지? 분명히 잘했다고 칭찬을 듣고 있는데, 성숙한 사회 일원으로 인정도 받고 있는 것 같은데 근데... 왜 이렇게 계속 마음이 불편한 거지? 그제야 깨달았다. 바로 그 순간 나는 그런 취급을 당해도 싼 인생이 돼버렸던 거다.’

 

차은재의 내레이션은 김사부의 일갈이 옳았다는 걸 말해준다. “불편하다고 무릎 꿇고 문제 생길까봐 숙여주고 치사해서 모른 척해주고 더러워서 져주고..” 하는 행동들이 바로 그 당사자를 그런 취급을 해도 되는 존재로 만들어버린다는 것. 결국 그런 불의와 왜곡에 굴복하지 않아야 진정한 문제 해결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낭만닥터 김사부2>는 이처럼 의학드라마를 빌어 우리네 사회의 문제들을 짚어낸다. 그래서 ‘닥터’ 앞에 ‘낭만’이 붙어 있는 것이고 부용주라는 이름대신 ‘김사부’로 불리는 것이다. 부정하고 왜곡이 만연한 낭만 없는 사회에서 닥터라는 직업을 통해 다소 낭만적이지만 그 이상을 추구하고 그러면서도 제대로 살아갈 길을 알려주는 진정한 사부라는 존재의 등장. <낭만닥터 김사부2>가 여타의 의학드라마와 확연히 차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사진:SBS)

‘황금빛 내 인생’, 재벌가의 갑질에 대처하는 아빠들의 각성

언제까지 당하고만 살 것인가.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을 보면 숨죽이며 상황들을 받아들이고만 살아오던 아빠들이 있다. 서민 출신이지만 노명희(나영희)와 결혼해 재벌가에 데릴사위로 들어와 살아온 최재성(전노민)과, 한 때는 중소기업을 운영해왔지만 사업이 망하고 건설현장 인부를 전전하며 살아온 서태수(천호진)가 그들이다. 

드라마가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세워놓은 구도 탓이겠지만, <황금빛 내 인생>에서 문제를 야기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엄마들이다. 사적인 욕심 때문에 재벌가 딸을 바꿔치기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 인물이 바로 양미정(김혜옥)이고, 최도경(박시후)과 서지안(신혜선)이 가까워지는 것도, 서지수(서은수)가 선우혁(이태환)과 사귀는 것도 자신들과는 격이 맞지 않는다며 갖가지 갑질로 방해하는 인물이 바로 노명희다. 

드라마의 전반부가 주로 양미정이 딸들의 운명을 뒤바꿔놓은 일로 인해 생겨난 파장들을 왜곡다뤘다면 후반부는 노명희가 자신의 자식들이 양미정의 집안과 얽히는 걸 막기 위해 벌이는 범죄에 가까운 갑질들로 인한 파장을 다뤘다. 그 결과는 양갓집 자식들이 모두 집을 떠나 각자의 삶을 찾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구도에서 빠져버렸거나 소외된 인물들이 바로 아빠들이다. 보통의 평범한 가정이라면 엄마의 목소리가 과거보다 훨씬 더 커졌다고 하더라도 아빠들이 집안 대소사에 의견을 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황금빛 내 인생>에서 아빠들은 자신의 의견을 내기보다는 상황을 받아들이거나 자신을 희생하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아빠들의 이런 수동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삶이 가정의 중심을 잡아주지 못해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구도를 세운 건 한 시대를 살아온 우리네 아빠들이 가진 양면적인 문제를 서태수와 최재성을 통해 담아내고, 어떤 면에서는 이들의 각성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드라마가 그려내기 위함인 것처럼 보인다. 그 각성을 먼저 보인 아빠는 서태수다. 그는 가족들만을 생각하며 자기희생적으로 살아온 삶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확인한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찾으려 집을 떠난다.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 아니라 오로지 서태수라는 개인의 삶을 찾아나가는 것. 

그가 변화했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극적인 장면은 서지안과 최도경이 사귀고 있다는 의심을 하고 집을 찾아와 딸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노양호(김병기) 회장 앞에서 눈을 부릅뜨고 맞서는 서태수의 모습이다. 그는 자신이 잘못한 건 인정하지만 딸에 대한 억측은 용납하지 않는다고 맞선다. 노양호에게 일방적으로 뺨을 맞으면서도 그를 노려보는 서태수는 더 이상 이 모든 상황들에 수동적으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그의 각성을 보여준다. 

한편 노명희의 폭주 앞에서 딸 서지수(서은수)마저 삶이 파탄날 지경에 이르게 되는 걸 보게 된 최재성 역시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에 마주한다. 분노하는 최재성은 노명희 앞에 나서 그저 눌러놓고만 있던 분노를 터트린다. 과거 서지수를 잃어버리게 된 이유가 외도를 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노명희 때문이 아니었냐고 토로하는 것.

그간 지독할 정도로 당하기만 하는 삶을 살아오고, 자기 목소리를 거의 내지 못하고 있던 아빠들이 이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가부장의 귀환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그것보다는 과거 아빠들의 삶(자기 삶이 아닌 가족들을 위한 삶 혹은 금력에 의해 억눌린 삶)이 왜곡시킨 것들을 이제 충분히 알게 된 그들이 자신의 삶이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후,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됐다는 걸 보여준다. 

서태수와 최재성이라는 두 아빠의 각성은 그래서 <황금빛 내 인생>이 다루는 아빠 세대들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아빠들도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 혹은 그럭저럭 버텨내는 삶을 살기 위해 눌러두었던 자신만의 삶을 찾아내고 제 목소리를 낼 때라는 것. 이들 아빠들이 이 꼬일 대로 꼬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뜻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어떤 카타르시스를 주는 건 그래서다.(사진:KBS)

단순보도의 왜곡, <뉴스룸>이 심층으로 가는 까닭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는 스튜디오에 출연한 기자와 함께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기자가 출연해 취재한 내용을 갖고 심층적으로 이야기하는 이런 방식은 기존 지상파 뉴스에서는 보기 힘든 것들이었다. 최근 <SBS8시뉴스>가 이런 식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KBSMBC는 여전히 앵커의 멘트, 기자의 취재 보도 그리고 멘트로 이어지는 단순보도 방식을 취하고 있다. <뉴스룸>은 굳이 탐사 프로그램들이 하곤 했던 심층 보도를 매일 하는 뉴스에서도 취하고 있는 걸까.

 

'뉴스룸(사진출처:JTBC)'

이 효용가치가 최근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보도에서 확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를테면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3차 대국민 담화문의 경우, 단순보도로는 일반 국민들이 그 안에 숨겨진 의도와 다른 의미들을 쉽게 파악하기가 어렵다. 물론 이번 사태의 경우에는 워낙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 되어 있고 또 이미 박근혜 대통령의 1, 2차 담화문에서 그 신뢰가 떨어져 있어 국민들도 그 내용을 의심하게 되고 그 안에 다른 의도가 있다는 걸 찾아낸다. 하지만 만일 평상시의 경우라면 어땠을까. 이런 식의 고도의 술책이 숨겨져 있는 표현들의 실제 의미를 일반 서민들이 파악해낼 수 있을까.

 

대통령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 “여야 정치권이 논의하여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방안을 (국회에서) 만들어주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 언뜻 들으면 물러나겠다는 말에만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그 앞에 붙어 있는 가정문 하게 되면이라는 전제조건이나, ‘법 절차라는 애매모호한 표현 속에는 적어도 탄핵 소추안이 발의되는 걸 교란하려는 의도와 심지어 개헌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심까지 갖게 된다.

 

<뉴스룸>은 이 표현의 문제를 조목조목 짚어냈다. 이 날 스튜디오에 나온 박성태 정치부 기자는 조건부 퇴진이라는 것은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퇴진할 수 없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정치권이 논의하여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라는 이야기에서 특히 중요한 표현은 법 절차라며, “법절차 통해 조기에 물러나는 것은 개헌과 탄핵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결국 이번 담화문은 탄핵 시도를 막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개헌을 의미한다고도 말했다.

 

지난 28일 보도된 세월호 당일 간호장교 2명 청와대 상근왜 숨겼나?’라는 꼭지에서는 당시 간호장교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고, 그들은 출장이 아닌 상근을 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여기서도 교묘한 말 표현으로 국민들을 속이려 했던 청와대 측의 당시 발언 내용들을 조목조목 짚었다.

 

즉 지난 17일 세월호 참사 당일 국군수도병원 간호장교가 청와대로 출장을 갔다는 한 언론사의 보도에 대해 청와대가 당일에 출장 온 간호장교가 없다고 했고 국방부도 수도병원에 출입 기록을 확인해 보니 청와대 출장 간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이것이 사실을 숨기려는 교묘한 발언이었다는 걸 확인해준 것. 즉 상주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외부자가 아닌 내부자인 간호장교가 출장온 건 아니었고 또 출입기록이 있을 리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표현은 사실을 얘기한 것이 맞지만 거기에 감춰진 내용을 교묘히 숨김으로써 사실 자체를 왜곡했다는 점을 <뉴스룸>은 명확히 해주었다.

 

만일 이런 공식 발표 내용을 그 이면에 담겨진 숨은 의도나 사실상 숨겨진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단순보도한다면 어떻게 될까. 공식 발표에 대한 보도는 사실에 근거한 것일 수 있지만 그 발표 속에 은폐된 의도들을 해석하고 분석해내지 않는다면 그 보도는 사실을 왜곡하는 방향으로 틀어질 수밖에 없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라는 <뉴스룸>의 방식이 절실해지는 건 그래서다. 단순보도들은 이제 거꾸로 사실 은폐를 위한 고도의 술책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러니 뉴스들은 팩트에 근거하면서도 동시에 그 겉면이 아니라 이면까지도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부가되어야 제대로 된 뉴스가 될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사실만을 보도하면서도 나팔수가 될 수 있다는 것. <뉴스룸>의 한 걸음 더 들어간 뉴스가 언론의 제대로 된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건 그래서다.

<복면가왕>에 대한 고마움과 씁쓸함

 

MBC <복면가왕>은 스스로를 미스테리 음악쇼라고 부른다. 복면 뒤에 누가 있는가를 추리한다는 의미에서 미스테리라는 말을 붙였고 복면 쓴 그들이 한바탕 즐거운 쇼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음악쇼라 붙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계속 보다보면 도대체 이렇게 많은 실력자들이 왜 복면이 씌워진 채 대중들에게는 잘 보여지지 않았던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필자에게 <복면가왕>이 주는 미스테리는 바로 그런 의미다. 무엇이 이들을 가리고 있었던 것일까.

 

'복면가왕(사진출처:MBC)'

일반적으로 쉽게 편견이라고 지칭해서 말하지만 거기에는 그간 우리네 음악 산업이 갖고 있는 불균형과 불평등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또한 거기에는 음악 산업 종사자들이 늘 해왔던 안전한 선택들 역시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스스로가 스스로의 잠재력을 가려왔던 것 또한 보인다.

 

기획사들도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아이돌 그룹에 집착한다. 물론 그만한 파괴력을 가진 유닛 형태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연습생 과정을 거치는 기획사 시스템 때문에 20대를 넘어선 가수 지망생들은 아예 설 기회조차 사라지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이들 소외된 20대들을 끌어 모아 힘을 발휘했던 건 우연이 아니었다.

 

아이돌 그룹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 안에서 자신의 기량을 100% 발휘할 수 있는 아이돌은 드물다. 최근 <복면가왕>의 무대가 주로 아이돌의 재발견으로 이어진 것은 아이돌 그룹에 합류한다고 해도 여전히 그 틀 안에서 소외되는 아이돌들이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유닛 속에서는 자신의 역할이 규정되기 마련이다. 그 역할을 벗어나면 다른 멤버의 영역이 침해된다. 아이돌이란 틀은 파괴력이 있지만 동시에 어떤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음악 프로그램들은 한 때 순위를 내세우지 않는 등의 변화를 보여줬지만 최근 들어 다시 순위가 부활하고 있다. 그 순위에 들어간 음악들은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아이돌 일색으로 바뀌고 있는 것. 최근 벌어진 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빅뱅과 엑소의 1위를 둔 대결이 팬과 팬 사이의 심각한 갈등으로까지 이어진 건 순위 프로그램이 가진 한계를 드러낸다. 무엇보다 이렇게 트렌디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아이돌의 음악만 반복해서 들려주는 건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아이돌의 음악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더 많은 음색과 가창력 그리고 개성과 끼의 소유자들이 배출될 수 있는 무대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복면가왕>이 주목을 넘어 열광적인 반응까지 얻어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이 다양한 가수들의 무대를 이 음악쇼가 가능하게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이제 한 물 갔다고 여겨진 십여 년이 넘게 활동을 안 하던 가수가 올라오기도 하고, 여전히 전설이지만 설 무대가 없어 방송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던 권인하나 고유진 같은 가수가 등장하기도 하며, 때로는 가수 뺨치는 아마추어들의 기량에 놀라기도 한다.

 

<복면가왕>이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복면을 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기이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복면가왕>은 노래와 이미지가 엇박자를 이루는 프로그램이다. 노래는 기가 막힌데 그들이 쓴 복면은 우스꽝스럽기 이를 데 없고 간간히 진행되는 인터뷰에서도 변조된 목소리는 경박하게까지 느껴진다. 결국 복면은 가수가 가진 아우라의 이미지를 상당부분 깨는 역할을 해준다. 결국 가수들은 이미지를 포기함으로써 무대에 서서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복면가왕>은 편견을 지운 무대를 강조한다. 하지만 그 편견은 가수들이나 시청자들이 만든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몇몇 기획사 중심으로 굴러가는 권력적인 가요계의 흐름과 이들에게만 집중하는 음악 프로그램들의 반복적인 노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더 많다. 심지어는 <복면가왕>조차 아이돌의 재발견의 장이 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복면가왕>은 너무나 고마운 프로그램이지만, 동시에 만만찮은 가요계 기득권층의 힘을 보여주는 씁쓸함이 있다. 이제 전설들도 복면을 쓰고 나와야 무대에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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