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에 화자 아닌 청자 유희열이 필요했던 까닭

사실 누군가가 가르치는 이야기를 듣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때로는 그런 가르침의 분위기는 ‘꼰대’의 이미지로 연결될 수 있고, 때로는 권위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최근 인문학이 예능의 새로운 소재로 트렌드화되면서도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바로 이런 이미지와 느낌을 어떻게 상쇄시킬까 하는 점이다. 

'알쓸신잡(사진출처:tvN)'

나영석 사단의 새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역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느껴진다. 즉 작가 유시민,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소설가 김영하 그리고 물리학자 정재승 같은 쟁쟁한 전문가들을 섭외하고 그 안에 유희열이라는 ‘재담꾼’을 투입한 건 그래서다. 

<알쓸신잡>은 첫 회가 방영되고 대체로 반응이 괜찮았다. 나영석 PD표 예능에 대한 여전한 지지가 있었고, 유시민 작가처럼 최근 대중들의 호감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 주는 유쾌함이 있었다. 여기에 유시민과 각을 세우는 황교익 그리고 간간이 한 마디씩 던지지만 깊이가 느껴지는 김영하와 말 그대로 ‘쓸데없어 보이는’ 과학적 상상력을 통해 의외의 예능감을 보여주는 정재승의 합이 썩 괜찮았다. 

물론 통영이라는 지역이 가능케 하는 역사적 담론들(이순신 관련)이나, 문학 이야기(난중일기, 박경리 선생의 토지)와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어서 식사시간마다 자연스럽게 깔리는 먹방의 분위기 그리고 동피랑, 서피랑 마을을 갖고 있는 곳의 볼거리 등이 어우러진 것도 인문학적인 이야기가 갖는 지나친 무게감을 떨쳐낼 수 있는 요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쓸신잡> 역시 인문학 소재가 갖는 ‘먹물’의 느낌이나 ‘지식의 나열’에서 비롯되는 부담감 같은 건 피하기 어려웠다. 끊임없이 지식을 쏟아내는 유시민 작가의 달변은 먹거리에서부터 역사, 문학, 경제 등 다양한 분야들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것이었지만 그런 달변이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와 부딪치는 지점에서는 고집 같은 것도 느껴졌다. 물론 이런 고집은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도 마찬가지였다. 음식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나이대가 유시민과 황교익 그리고 김영하와 정재승 이렇게 두 세대로 나눠지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이야기를 유시민과 황교익이 끌고 가는 분위기도 감지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전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이들보다 더 주목되는 건 간간히 한 마디씩 터트리는 김영하와 정재승이었다. 김영하가 슬쩍 던진 “햇살이 바삭바삭하다”는 말 한마디가 이들의 여행의 공기를 전해주고, 정재승의 그 황당한 ‘이순신의 숨결’ 이야기가 <알쓸신잡>의 독특한 지적 유머코드를 담아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건 유시민과 황교익이 쏟아내는 전문지식들 속에서 예능으로서의 어떤 균형점을 잡아준 건 다름 아닌 유희열이었다. 유희열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간간히 한 마디씩 덧붙임으로써 가르치는 분위기를 누그러뜨린다. 즉 유희열이 던진 “이 분들 옆에 있으니까 바보가 된 기분”이라는 말은 시청자들이 느낄 그 기분이 당연하다는 걸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런 지식을 털어놓는 그들이 보통은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준다. 

물론 <알쓸신잡>은 그 주인공이 ‘말하는 이들’이다. 이들을 특정 여행지에 합류시킨 건 보통 사람들의 시각과는 완전히 다른 각자 전문분야를 가진 이들의 생각들을 그 공간을 통해 풀어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러한 ‘말하는 예능’에서 더 중요해지는 건 유희열 같은 ‘들어주는 인물’이다.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맞춰주고 이야기가 과할 때는 그 사실을 얘기해 공감대를 형성해주고, 놀라운 상상력에는 같이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때론 그들도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과 똑같다는 사실을 드러내주기도 하는 인물. <알쓸신잡>에서 유희열이 없었다면 자칫 지루해졌을 수도 있는 일이다.

‘알쓸신잡’, 쓸데없어 보여도 신기하게 재밌는 

왜 ‘인문학 어벤저스’라 불렀는지 그 이유를 알아차리는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버스에 올라타 목적지인 통영으로 가는 길, 무얼 먹을까 생각하던 중 무심히 나온 장어탕 이야기에 황교익은 장어의 종류들을 줄줄이 설명한다. 민물장어부터 바닷장어 나아가 사실은 장어과가 아니라는 꼼장어까지 우리가 그다지 자세히 알지 못했던 자잘한 지식들이 쏟아진다. 

'알쓸신잡(사진출처:tvN)'

여기에 유시민은 장어가 왜 양식이 되지 않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산란을 하기 위해 바다로 돌아가는 장어에게 추적기를 달아도 심해로 들어가면 신호가 잡히지 않아 그 이후의 과정들이 ‘신비’에 가려져 있다는 ‘신기한’ 장어의 생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유희열이 오늘은 꼭 장어를 먹어야겠다고 말하자, 김영하가 불쑥 끼어들어 그 고생을 해서 겨우겨우 살아 돌아온 애들을 꼭 먹어야겠냐는 감성적인 유머를 덧붙인다. 

한편 강연 일정이 있어 저녁 자리에 겨우 합류한 정재승 박사에게는 과학적인 궁금증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장어를 먹으면 정력에 좋다는 것이 과학적 근거가 있냐는 질문에 “근거 없다”고 선을 긋자, 황교익이 ‘플라세보 효과’는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자 “정력은 그렇게 함부로 올라가지 않는다”고 말해 빵 터지게 만들었다.

장어 하나만을 갖고도 이처럼 다채로운 이야기가 나올 줄이야. 각각 자기 분야가 확실한 인물들이기 때문에 취향도 제각각이다. 같은 소재를 갖고도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점심을 먹는데도 저마다 취향이 달라, 황교익은 자신이 자주 가던 단골집을 찾았고, 유시민과 유희열은 자신들의 촉을 따라서 걷다가 문득 걸린 집에서 맛난 한 상 차림을 즐겼다. 한편 김영하는 바닷가 마을에 가면 짬뽕을 먹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놀라운 해물 비주얼을 갖춘 특제 짬뽕을 챙겨먹었다. 

그들이 간 통영이라는 곳도 마찬가지다. 황교익은 충렬사를 찾아 거기 세워진 백석 시비를 읽으며 백석의 연정을 공감하고, 유시민은 역시 작가답게 거북선 안내문을 읽으면서도 잘못된 문장들을 하나하나 지적했다. 한편 박경리 선생의 묘소를 찾아간 김영하는 소설가 선배를 대하는 후배의 살뜰한 마음을 담았다. 

각각 자신들만의 세계가 확실하고, 여행을 해도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인다. 그렇게 낮 시간을 보내고 저녁이 되어 한 자리에 모인 그들은 그 짧은 여행을 통해 느낀 것이나 생각한 것들을 줄줄이 풀어내는 즐거운 수다 시간을 갖는다. 각자 다른 관심을 갖고 있지만 이렇게 저마다의 생각들이 저녁 시간에 한데 어우러지는 그 느낌이 주는 풍족함이라니.

사실 우리가 생활해 나가는 것에 초점을 두고 보면 이런 수다는 쓸데없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이라는 것이 본래 생활의 차원을 살짝 넘어서 있어 마치 쓸데없어 보이고 그래서 우리가 자주 접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들의 쓸데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신기한’ 느낌을 갖게 된다. 사고의 확장이랄까. 혹은 사고의 전환이랄까. 생활 속에 매몰되어서는 나오기 어려운 생각과 이야기들이 거기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역시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 가능해진 건 이처럼 각각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있는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은 일이다. 유시민 작가는 나영석 PD가 함께 하자고 했을 때 항상 모니터링을 해주는 아내에게 의향을 물었다고 했다. 그리고 돌아온 이야기가 나영석 PD라면 항상 좋은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이었다는 것.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 유희열. 이런 인문학 어벤저스의 조합은 나영석 PD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했을 일이 아니었을까.

일상과 정치의 접점, 유시민 작가가 선 자리

바야흐로 유시민 작가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JTBC <썰전>으로 화제의 중심이 된 그는 최근 나영석 PD의 새 예능 프로그램 tvN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의 주요 출연자로 자리했고, MBC <마이리틀텔레비전> 100회 특집에도 출연해 ‘토론과 글쓰기’를 주제로 방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는 정치인에서 작가로 그리고 지금은 방송인으로서 웬만한 스타들보다 더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 됐다. 

'차이나는 클라스(사진출처:JTBC)'

사실 JTBC <썰전>에 출연하기 전까지만 해도 유시민이 이 정도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정치인 시절 호불호가 갈린 스타일이었고 예능을 주로 소비하는 젊은층에게는 과거 <100분 토론>을 이끌던 명 진행자이자 패널의 이미지보다는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의 이미지와 그 후 작가로서 활동하며 쌓은 식자로서의 이미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썰전>의 자리에 앉으면서부터 유시민은 한 마디로 날개를 달았다. 강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것 같지는 않은데 조곤조곤한 그 이야기에 시청자들은 조금씩 설득되었다. 상대적으로 강성으로 여겨졌던 전원책 변호사의 목소리는 갈수록 작아지는 느낌이었고 대신 그 조용히 할 말을 하는 유시민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유시민이 이렇게 갈수록 존재감이 높아진 건, 외교부터 군사 게다가 나아가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게 없는 해박한 지식이다. 자신만의 확고한 소신을 가진 지식인의 면모가 <썰전>에서는 느껴졌다. 하지만 해박한 지식만큼 중요했던 건 그가 가진 작가로서의 설득력이다. 그는 어렵게 느껴지는 시사 문제들을 특유의 비유를 들어 쉽게 시청자들에게 전해주었다. 물론 과거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내며 겪었던 정치인으로서의 경험은 이런 시사 문제의 겉모습이 아닌 진면목을 대중들에게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이것은 <썰전>이라는 그에게 최적화된 프로그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유시민이 이제 <썰전>의 틀에서 확장되어 <알쓸신잡> 같은 대중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사실은 그 행보가 어떨 지에 대한 기대감을 자아내게 만든다. <썰전>은 물론 예능의 속성들을 활용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틀은 토론 프로그램에 가깝다. 하지만 <알쓸신잡>은 다르다. 여행 같은 일상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 안에서 지식 같은 정보는 물론이고 재미를 줄 수 있는 유머 같은 것들 또한 도외시할 수는 없다. 

물론 나영석 PD는 그 특성상 웃음을 강요하는 법은 없다. 그저 일상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시민 작가가 <알쓸신잡>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는가에 대해 묻는 필자의 질문에, 나영석 PD는 “굉장히 유머가 있는 분”이라면서 “무엇보다 아는 게 너무 많은 분”이라고 짤막하게 답한 바 있다. 사실 그 안에 다 들어 있을 것이다. 박학다식한 그 지식의 부분을 유머를 섞어 전하는 모습. 그것이 유시민 작가가 가진 매력이니 말이다. 

유시민 작가의 전성시대가 말해주는 건, 한때는 우리와 유리된 어떤 것으로 여겨지던 정치나 시사 같은 사안들이 이제는 우리네 일상으로 성큼 들어오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가 보여주는 것은 정치나 시사문제와 일상의 접점 같은 것들이다. 지금까지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여겨져 왔으나 사실은 밀접하게 연결된 그 양자가 활짝 열려 연결되어지는 그 지점에 유시민 작가가 서 있다. 그러고 보면 유시민 작가의 전성시대는 시대가 요청한 면이 있다.

‘우리들의 대통령’으로 남아있는 노무현에 대한 지지가 낳은 돌풍

다큐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개봉 첫 날 이례적인 성적을 거뒀다. 개봉 첫날 관객 수가 8만 명에 육박한 것. 이 첫날 관객 수는 역대 독립영화 최대 규모다. 개봉하는 스크린 수도 최대 규모다. 애초에는 200여 개의 스크린 수를 염두에 뒀지만 예매율이 치솟으면서 멀티플렉스의 개봉 스크린 수도 덩달아 많아진 것. <노무현입니다>는 역대 독립영화 중 480만 관객으로 최대 관객 수를 기록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넘보는 작품으로 떠올랐다. 

사진출처:영화<노무현입니다>

애초에 <노무현입니다>가 이처럼 많은 스크린 수를 확보할 것이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독립 다큐 영화이기에 멀티플렉스에 들어온다고 해도 구색처럼 세워질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예측을 뛰어넘게 만든 건 결국 관객이었다. 관객들이 ‘노무현’이라는 이름 석 자가 가진 그 시대의 아픔과 그리움 같은 것들로 관심이 집중되었고, 그것이 이런 결과로까지 이어진 것. 

이것은 마치 이 영화가 그려내고 있는 2002년 민주당 국민참여 경선에서 노무현 당시 후보가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대통령 후보로 당선되는 그 과정을 그대로 재연하는 듯 보인다. 이 영화의 포스터에 찍혀진 문구, ‘4번의 낙선, 지지율 2%의 만년 꼴찌 대선후보 1위가 되다’라는 그 문구는 그래서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지금 이 영화의 열풍이 당시의 노풍을 닮은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노무현입니다>는 연거푸 낙선 끝에 종로에서 당선된 노무현이 부산에 출마해 낙선하는 그 과정을 시작점으로 보여준다. 모두가 정치 일번지 종로에서 출마하면 쉽게 당선될 거라며 말렸던 부산 출마를 동서화합을 위해 굳이 실행에 옮긴 노무현은 하지만 그 낙선으로 인해 ‘바보 노무현’이라는 애칭을 얻었고, 그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폭제가 되었다. 노사모가 생겨났고 그들은 2002년 민주당 국민참여 경선에서 노무현을 대통령 후보로 만들기 위해 헌신했다. 

영화는 아무도 후보 경쟁자로 보지 않았던 당시 노무현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는 그 과정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담아내면서 당시 함께 일하고 그와 가까웠던 지인들의 감동적인 인터뷰들을 담았다. 그래서 그 경선 과정의 드라마틱함과 동시에 인간적인 면모의 노무현의 이야기들이 관객들의 가슴을 울린다. 

변호사 시절부터 노무현의 운전사로 일했던 노수현씨는 결혼식 날 자신과 아내를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차를 몰아 경주까지 데려다줬던 일화를 소개했고, 변호사 시절부터 국가안전기획부 요원으로서 노무현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던 이화춘씨의 눈물어린 인간 노무현에 대한 회고를 담아냈다. 또 안희정 충남지사와 문재인 대통령, 유시민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노무현의 인간적인 면모들을 들여다봤다. 그들은 한결같이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말문을 잇지 못할 만큼 그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드러냈다. 

영화는 당시 경선 과정에서 분 이른바 “노풍은 태풍이었다”고 증언했다. 그건 정치적 선택이라기보다는 다름 아닌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스스로 그 어려운 길들을 걸으며 만들어낸 국민들의 직접적인 지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노무현입니다>의 개봉에서 슬슬 일어나고 있는 열풍 역시 마찬가지처럼 보인다. 그것은 관객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우리들의 대통령’으로 남아있는 노무현에 대한 여전한 지지로부터 생겨난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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