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회 분을 한 회로, <낭만닥터> 서현진의 감정연기

 

요즘처럼 드라마를 봐도 영 몰입이 안 되는 시기가 있었던가. 시국이 극도로 자극적인 한 편의 막장드라마니 웬만한 드라마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그래도 새로 시작한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 빠져들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서현진이라는 배우 덕분이 아니었을까. <또 오해영>에서 가능성을 확인시켜주었지만 이번 <낭만닥터 김사부>에서는 믿고 보는 배우로 다가온다. 그것도 단 1회 만에.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우리에게는 <제빵왕 김탁구>로 잘 알려진 강은경 작가의 작품은 몰아치기의 속도감 넘치는 사건 전개가 특징이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첫 회는 바로 그 힘을 제대로 보여줬다. 보통의 드라마였다면 한 몇 회 분량은 되었을 사건 전개가 단 한 회 속에 전개되었으니 말이다.

 

제 때 처치를 해주지 않아 응급실에서 죽어간 아버지 때문에 난장판을 벌이던 어린 강동주를 실력으로 상대하라는 말로 자극시키는 김사부(한석규). 그 강동주(유연석)는 어느새 자라 골통 인턴으로 병원에 들어와 선배들과 분란을 일으키고, 그 와중에 철근에 관통당한 채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를 가까스로 살려낸 윤서정(서현진)에게 빠져버린다. 보통의 의학드라마였다면 이런 만남과 응급실에서의 상황 하나만으로 충분히 한 회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먼저 응급실에 들어온 환자를 그녀가 무시했다는 보고에 선배의사는 윤서정을 질책하고 그런 그녀는 강동주에게 JS 환자들(진상환자)을 몰아주어 응급실의 현실을 알게 해준다. 사사건건 부딪치던 두 사람은 전문의가 자리를 비운 사이 들어온 응급환자를 힘을 모아 살리면서 가까워지고 급기야 강동주는 그녀에게 키스한 후 사랑을 고백한다. 첫 회에 만남부터 사랑고백까지 순식간에 이야기가 진행된 것.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사건에 사건으로 계속 이어진다. 윤서정이 이미 만나고 있던 문선생(태인호)과 같이 차를 타고 가던 중 사고를 당하고 결국 죽게 된 문선생이 그 때 차 안에서 자신이 강동주의 고백을 듣고 설렜었다는 말을 한 때문이 아닌가 자책하게 된다. 그리고 자학하듯 산을 오르다 삐끗해 낙상을 하게 된 그녀 앞에 김사부가 나타난다.

 

어마어마한 속도감의 사건 진행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이 사건들이 그저 휙휙 지나가며 스토리 전개만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인물들의 감정 선이 하나하나 녹아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 전체를 이끌어간 윤서정이라는 캐릭터의 감정 변화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변화한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살려냈을 때는 어떤 성취감과 압박감을 동시에 보여주고, 절차를 무시했다는 선배의사의 질책에는 억울함과 분노감을 드러내며, 강동주의 대시를 받을 때 당혹감과 설렘으로 이어지다가 문선생의 죽음 앞에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다.

 

우리가 보통 막장드라마라고 얘기할 때 가장 불편함을 호소하게 되는 이유는 엄청난 속도감의 이야기 전개로 흘러가지만 정작 인물들의 감정이 이입되지 않아 마치 작가가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이리저리 휘둘리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인물은 시청자들에게도 똑같은 불편함을 준다. 마치 작가에 의해 전횡되는 꼭두각시가 된 듯한 그런 느낌. 하지만 이런 속도 속에서도 <낭만닥터 김사부>가 그런 불편함을 주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그 폭풍전개 안에 작가가 인물의 감정선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연기로 몰입시켜 준 서현진이라는 배우의 공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제아무리 작가가 도처에 인물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해내 잡아넣었다고 해도, 그걸 연기자가 구현해내지 못하면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 아닌가. 드라마 몰입이 도무지 안 되는 요즘 같은 시기에 그래도 1시간 동안 <낭만닥터 김사부>에 빠져들 수 있었던 힘은 어느새 믿고 보는 배우로 돌아온 서현진 덕분이 아니었을까.

<위키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위로란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제주소년 오연준과 남다른 뮤지컬 감성을 가진 박예음이 함께 부르는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듣던 타이거 JK는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 가사가 그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먼저 간 아버지가 떠올랐고,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위키드(사진출처:Mnet)'

Mnet <위키드>가 보여준 한 장면. 어디서도 보기 힘든 타이거 JK의 모습이다. 힙합 전사로서의 이미지는 일찍이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아이들의 목소리에 푹 빠져버린 채 보기만 해도 미소를 짓는 아빠의 얼굴이다. 도대체 무엇이 타이거 JK를 이토록 해맑게 만들어버리는 걸까. <위키드>가 보여주는 그 근원적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아이들이 나와 노래만 부르면 눈물을 흘려 울보가 되어버린 유연석은 그 이유로 깨끗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노래가 그리 슬픈 것도 아닌데, 아무런 기교도 섞여있지 않고 그저 음정에 맞춰 갖고 있는 목소리 그대로 부르는 노래는 실제로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어루만진다.

 

박보영 역시 첫 무대에 제주소년 오연준의 노래를 듣는 순간 커다란 충격을 받은 듯 눈물을 쏟아냈다. 첫 무대, 솔로로 부르는 목소리가 이 정도니 팀이 되어 함께 부르는 하모니는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김창완의 안녕을 순수하고 맑은 하모니로 들려준 아이들 앞에서 심사위원으로 앉은 동요 작곡가 김방옥은 뭉클한 마음에 목이 메었다. 그녀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노래를 들려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심사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듀엣 미션에서는 아이들이 노래할 때마다 채워지는 기부점수로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했다. 아이들의 노래가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장치에서 볼 수 있다는 건 시청자들도 기분 좋게 만드는 일이다. 물론 그런 물질적인 기부가 아니라고 해도 아이들의 순수한 목소리 그 자체가 주는 건, 그 어떤 위로나 위안보다 더 큰 가치를 갖는 것일 게다.

 

송유진과 최명빈은 내 꿈이 몇 개야라는 동요를 통해 어른들도 어린이처럼 꿈을 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고, 문혜성과 조이현은 현실적인 이유로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분들에게 문혜성의 자작동요 여행 여행으로 마치 여행을 떠나는 듯한 그 설렘을 전해주었다. 곽이안과 홍순창은 마치 플라시도 도밍고와 존 덴버의 콜라보를 보는 듯, 애니메시션 <피블의 모험> OST‘Somewhere Out There’을 들려주었고, 이하랑과 우시연은 넌 할 수 있어 라고 말해주세요라는 곡을 미소 지을 수밖에 없는 귀여운 모습으로 불러주었다.

 

도대체 모든 어른들을 울보로 만드는 <위키드>의 실체는 무엇일까. 어른으로 성장해 살아오면서 조금씩 잃고 잊고 있던 그 순수함을 우리는 이 아이들의 투명한 목소리에서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무한경쟁의 현실 속에서 찌들어갈 수밖에 없던 어른들의 세계가 그 아이들의 목소리만으로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그것이 데드마스크가 되어가던 우리의 눈에 눈물을 맺게 한 것이 아닐까. <위키드>는 음악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순수함으로 우리의 마음을 울려준다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가 충분하다 여겨진다

<꽃청춘>, PD 납치극(?)에 시청자들이 기꺼이 동참하는 까닭

 

몰래카메라에 납치극(?). tvN <꽃보다 청춘>에서 나영석 PD의 눈이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이다. 사실상 섭외가 그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꽃보다 청춘><응답하라1988>로 스타덤에 오른 류준열, 안재홍, 고경표, 박보검 네 사람을 나미비아 여행길로 끌고 가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공을 들였다.

 


'꽃보다 청춘(사진출처:tvN)'

무려 두 달 전부터 마치 <응답하라1988> 스텝인 양 <꽃보다 청춘>VJ를 스파이로 투입해 그들이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게 만드는 한편, 사실상 푸켓 포상휴가 역시 <꽃보다 청춘> 나미비아 편을 위한 사전 포석으로 준비되었다. 푸켓에 몰래 따라간 나영석 PD는 납치 디데이까지 그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호텔에서 나오지 않은 채 몇 끼를 나시고랭으로 때우는 치밀함을 보여줬다.

 

나미비아에 가는 걸 전혀 모르고 국내 스케줄 때문에 귀국한 박보검을 빼고 나머지 세 사람은 나영석 PD가 연출한 대로 몰래 카메라의 주인공들이 되었다. 김성균부터 라미란까지 이미 한 사람씩 인터뷰를 통해 이 몰래 카메라에 동조한 <응답하라1988> 가족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류준열, 안재홍, 고경표를 깜짝 속이는데 성공했다. 나영석 PD가 나타나자 그들은 마치 환영을 보는 듯한 멍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어찌 보면 꽤 오래도록 반복되어온 몰래카메라, 납치극 설정이다. <꽃보다 청춘> 라오스편에서 유연석, 바로, 손호준이 만난 날 그대로 여행을 떠났던 건 그것이 대책 없어도 즐거울 수 있는 청춘의 여행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편에서도 사전 미팅처럼 만난 자리에서 조정석, 정우, 정상훈이 그 자리에서 공항으로 납치됐고(?), 후발대로 합류한 강하늘 역시 시상식장에서 턱시도 차림 그대로 납치되어 아이슬란드로 날아갔다. 그리고 이번은 푸켓 현지에서 납치되어 아프리카로 날아가는 상황이다.

 

이미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진 <꽃보다 청춘>의 몰래카메라 납치극이기 때문에 좀 더 새로운 방식들이 동원되고 그 방식은 갈수록 치밀해진다. 그런데 어찌 보면 늘 비슷한 패턴의 몰래카메라 납치극인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시청자들은 늘 그 나영석 PD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에 똑같이 동화되는 것일까.

 

그것은 나영석 PD의 섭외 방식에 해답이 있다. 나영석 PD<꽃보다> 시리즈의 배낭여행에 동참하는 출연자들을 대중들이 기꺼이 환영할 수 있는 인물들로 채워 넣는다. <응답하라1988>이 끝나고 류준열이나 박보검 같은 출연자들에 대한 대중들의 호응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었다. 그러니 이들의 여행을 들여다보고 싶은 건 누구나의 인지상정이다. 그들은 어찌 보면 대중들이 납치를 해서라도함께 하고픈 인물들이 아닌가.

 

나영석 PD는 여기서 정확히 시청자들의 입장을 대신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래서 나영석 PD의 시선을 따라서 치밀한 계획을 하고 결국 출연자를 속이고 납치해 떠나는 그 일련의 과정에 시청자들은 기꺼이 동참할 수밖에 없다. 기분 좋은 몰래카메라고 기분 좋은 납치극이다. 속이는 과정도 기분 좋지만 그렇게 속은 출연자들이 그것을 기분 나빠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영광스러운 납치로까지 받아들이는 그 결과도 기분이 좋다.

 

나영석 PD는 방송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찍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또 그걸 보는 시청자도 모두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좋은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다는 것. 나영석 PD의 몰래카메라 납치극이 늘 옳게 여겨지는 건 이런 그의 방송 철학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신원호 PD가 발굴하면, 나영석 PD는 날개를 달아준다

 

류준열, 고경표, 안재홍, 박보검. tvN <응답하라1988>에서 시청자들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4인방을 이제 <꽃보다 청춘>에서 보게 됐다.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편에 이어질 아프리카편에 이들이 출연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꽃보다 청춘(사진출처:tvN)'

이들이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편에 합류하는 그 과정은 역시 나영석 PD 다웠다. 드라마 종영 후 포상휴가로 떠난 푸켓에서 류준열, 고경표, 안재홍을 납치(?)한 것. <꽃보다 청춘>의 콘셉트로 자리잡은 준비 없이 떠나는 여행이 이번에는 푸켓에서의 납치 동행(?)이라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치러진 것.

 

전후 사정을 전혀 몰랐던 박보검은 일찍 귀국했다가 다시 아프리카행 비행기를 탄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스럽게 후발대가 되어 아프리카에서 펼쳐질 <꽃보다 청춘>의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응답하라1988>이 팬들이라면 이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편에 대한 기대감이 남다를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말미에 이르러 누가 남편인가를 두고 그토록 뜨거웠다는 건 결국 이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애착이 그만큼 강했다는 증거다. 그들이 드라마에서 이제 나와 여행을 통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또 서로에 대한 우정을 확인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건 그 캐스팅만으로도 대박을 예감케 만든다.

 

그러고 보면 이미 <응답하라1994>가 화제를 남기며 종영한 후 거기 출연했던 유연석, 바로, 손호준의 <꽃보다 청춘> 라오스편이 신원호 PD와 나영석 PD의 성공적인 콜라보레이션이었던 걸 기억해낼 수 있다. 결국 그 연장선에서 보면 드라마를 통해 신원호 PD가 키워낸 인물들은 고스란히 나영석 PD의 예능 프로그램에 투입되어 확실한 시너지를 만들어왔다.

 

<응답하라1994>의 손호준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꽃보다 청춘>에 이어 <삼시세끼> 정선편에 게스트로 출연했고 <삼시세끼> 어촌편에는 아예 고정으로 자리 잡았다. 드라마에서의 인기는 예능을 통해 훨씬 더 확장되었다. 출연자들로서 이만한 성과가 있을까.

 

드라마와 예능의 경계가 이미 허물어진 건 오래다. <응답하라> 시리즈로서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예능 드라마가 아닌가. 예능적인 방식과 드라마가 절묘하게 연결되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신원호 PD는 지금까지의 행보를 통해 증명해왔다. 그러니 이러한 독특한 드라마에서 탄생한 스타들이 나영석 PD의 예능에 안착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원호 PD와 나영석 PD가 만들어낸 드라마와 예능의 최강 콜라보레이션은 그래서 웬만하면 그 무엇도 당해내기 어려운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 이 강력한 시너지는 이들의 프로그램에 누구나 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만들어낸다. <응답하라1997>을 할 때는 캐스팅이 어려워 굴욕을 겪기도 했다는 신원호 PD. 하지만 이 신원호 PD가 발굴하고 나영석 PD가 날개를 달아주는 최강 콜라보 시스템을 거절할 수 있는 인물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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