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내전', 같은 이야기도 스토리텔링이 다르면 

 

전국구 연쇄 사기범 검거. 물론 액수가 수백억에 달하는 사기지만 그간 드라마에서 피가 튀고 시체가 넘쳐나던 사건들을 무수히 봐왔던 시청자들에게는 다소 평범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평범한 소재가 저 마다의 검사 캐릭터들의 미묘한 감정들이 더해지고, 이야기 구성이 달라지자 쫀쫀한 맛을 낸다. JTBC 월화드라마 <검사내전>이 그리는 독특한 세계의 특징이다.

 

사건은 단 하루에 벌어진 일을 다루고 있다. 한 아주머니가 입에 거품을 물고 진영지청에서 119 앰블런스에 실리고 그 곳에 모여든 형사2부 사람들의 면면들이 먼저 소개된다. 잔뜩 당황한 김정우(전성우)와 낭패한 얼굴이 역력한 차명주(정려원), 놀라서 달려오는 조민호(이성재)와 가슴을 부여안고 쓰러지는 홍종학(김광규) 그리고 이게 무슨 상황인가 의아해하는 이선웅(이선균).

 

그리고 이야기는 이들이 그날 하루 겪었던 저마다의 사연들로 풀어내진다. 가슴을 부여안고 쓰러진 홍종학은 보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이선웅과 차명주를 수석으로서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고 조민호에게 지적을 당하고는 그 스트레스로 위경련 증세를 일으킨다. 어떻게든 화해를 시키려 애쓰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한 아주머니가 쓰러지는 사건이 터지자 조민호 부장검사가 줄 스트레스에 결국 쓰러져버린다.

 

김정우는 마치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 같은 하루를 보냈다. 아침부터 스튜어디스와의 소개팅 약속이 잡혔고 맡은 사건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도 의외의 카리스마를 발휘해 팀 내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게다가 차명주가 자신을 자기 팀에서 함께 일했으면 하는 뜻을 전하며 “능력 있다”는 얘기를 연거푸 들은 김정우는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건 한 불쌍해 보이는 아주머니를 만나면서 뒤집어졌다. 아들이 해외여행을 보내준다고 비행기표를 끊어놨는데 명의를 준 게 문제가 되어 내려진 수배령 때문에 출국을 못한다고 울며 애원하는 아주머니. 결국 소개팅 약속 때문에 일시 수배령을 풀어주기로 했지만 덜컥 차명주에게 붙잡혀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게 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차명주의 그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태도는 의외로 이 아주머니가 전국구 연쇄 사기범이었다는 걸 밝혀내게 된다. 그는 이 연쇄사기범을 검거하게 되면 포상으로 다시 서울로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까지 상상했지만 거기서 의외의 일이 벌어진다. 연쇄 사기범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진 것. 혹여나 사망하기라도 하면 그건 검찰의 과잉 압박수사로 오히려 지탄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이선웅은 그 연쇄 사기범이 하이타이를 입에 물고 거품을 냈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된다.

 

소재로만 보면 이 이야기는 연쇄 사기범이 해외 출국을 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 하에 진영지청을 찾아와 연기로 수배를 풀려다 덜미를 잡힌 사건이다. 그런데 이 다소 평범해 보이는 사건을 형사2부 사람들이 그 날 가졌던 저마다의 사연을 덧붙이고 그 구성을 극적으로 꾸며내자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게다가 이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2부의 이야기가 던지는 메시지도 분명했다. 내부적으로는 이선웅이나 차명주처럼 서로 으르렁대기도 하고, 홍종학처럼 제대로 관리를 못해 위 경련을 일으키기도 하며, 김정우처럼 사건 그 자체보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사생활을 중요시해도 결국 모두의 협업으로 사건을 해결했다는 점이다. 저마다의 감정과 욕망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은 우리네 사회생활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

 

<검사내전>이 흥미로운 건 거대한 사건들이 아니라 우리네 가까이서 벌어질만한 사건들을 다루고 또 그걸 해결해가는 검사들 역시 드라마틱한 캐릭터가 아니라 마치 샐러리맨 같은 일상적 직업군으로 그려내고 있어서다. 어마어마한 사건을 해결하는 영웅들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그런 사건들 역시 보통의 평범한 검사들의 티격태격하면서도 이뤄지는 공조로 해결되는 이야기. 바로 이 지점이 시청자들이 몰입하는 부분이 아닐까.(사진:JTBC)

검사판 ‘삼시세끼’?, ‘검사내전’의 소소함이 더 끌리는 건

 

이건 검사판 <삼시세끼>를 보는 듯하다. 검사라고 하면 드라마에서 지나치게 극화된 면이 있다. ‘정의’와 ‘적폐청산’이 시대의 소명이 되어버린 요즘, 드라마에 등장하는 검사들은 양극단으로 나뉜다. 정치와 결탁해 비리를 저지르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적폐 검사거나, 세상의 부정과 범죄에 맞서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사이다 검사거나. 하지만 JTBC 월화드라마 <검사내전>에서 그런 검사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드라마는 시작부터 어깨에 힘을 쭉 빼놓는다. 어느 섬의 군사지역에 들어가 여유롭게 바다낚시를 즐기는 이선웅(이선균)과 김인주 지청장(정재성).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를 읊조리는 이선웅에게 김인주는 말한다. “낚싯대만 보고 있기에는 아까운 날이지요. 우리도 돌도 보고 물도 보고 또 달도 봅시다.” 검사가 등장하는 드라마의 첫 장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한가롭고 평화로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김인주 지청장의 말은 <검사내전>이 앞으로 어떤 검사들의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암시한다. 낚싯대가 상징하는 누굴 잡을 것인가 잡힐 것인가 같은 치고받는 권력과의 치열한 싸움이 아니라, 돌, 물, 달이 뜻하는 우리의 주변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들여다보겠다는 것. 이건 여기 등장하는 검사들이나 검찰총장조차 ‘깜박 잊고’ 찾는 걸 잊어버릴 정도로 남해안 구석에 자리한 진영지청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갑자기 등장한 경찰들에 의해 군사지역에서 낚시를 하던 사람들이 붙잡히게 될 위기에 처하자 지청장이 과감하게 물로 뛰어들어 몇 킬로나 되는 거리를 수영해 뭍으로 빠져나오는 장면은 이 드라마의 인물들이 무엇에 목숨을 거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건 출세도 아니고, 굉장한 정의감도 아니다. 그저 ‘쪽팔림’을 면하기 위한 사투일 뿐.

 

그리고 진영지청 형사2부의 검사들의 면면이 이선웅의 목소리로 소개된다. 돌싱남 조민호 부장검사(이성재)는 젊어지려 안간힘을 쓰고, 한 때 조폭도 때려잡던 오윤진 검사(이상희)는 이제 조폭보다 무서운 육아와 사투를 벌이는 열혈 워킹맘이다. 복권에 집착하는 홍종학(김광규) 수석검사나 SNS에 사진을 올리는 일에 집착하는 ‘요즘애들’ 막내 김정우(전성우). 어느 누구 하나 우리가 봐왔던 검사 드라마에 어울리는 인물들은 없다.

 

이들이 맡게 되는 사건도 너무나 일상적인 사건이다. 첫 케이스로 등장한 ‘200만 원 굿 값 사기사건’은 무속인이 굿값만 받고 굿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소된 사건이지만, 기가 막히게 맞추는 점 때문에 형사2부 사람들은 무속인을 점점 신뢰하게 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늘 힘을 빼고 있어 무슨 능력이 있을까 싶던 이선웅은 의외로 사건에서는 예리한 면을 보여준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재조사를 통해 무속인이 자신이 맞췄던 갖가지 사건사고들이 그의 자작극이었다는 걸 밝혀낸 것.

 

TV 뉴스에서는 2,000억 원이 오가는 비리를 캐는 검사들이 등장하지만, 이들이 처리하는 일들은 200만 원짜리 사기극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TV 속에 등장하는 2,000억 원짜리 사건보다 이들이 맞닥뜨리는 200만 원짜리 사건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건 왜일까. 일상을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2,000억 원이 저들의 이야기라면 200만 원은 우리들의 이야기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한 때 예능 프로그램들은 한껏 어깨에 힘이 들어가 출연자들을 가만 놔두지 않고 이런 저런 미션 속에 연달아 빠뜨리곤 했다. 그러다 갑자기 <삼시세끼> 같은 하는 것보다는 안 하는 예능이 등장했지만 대중들은 의외로 거기에 빠져들었다. 이유는 저 치열한 세계가 주는 피로감이 컸고 나아가 너무 남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비현실감 때문이었다. 차라리 소소해도 현실감이 느껴지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가 훨씬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검사내전>은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검사 소재의 장르물의 정반대로 방향을 잡고 있다. 한껏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을 빼고 거대한 악과 싸우는 검사가 아니라 작아도 서민들에게는 더 치열한 현실일 수 있는 생활밀착형 사건들과 싸우는 검사. 물론 대단한 정의감보다는 그들 역시 일상인으로서 때론 작은 범법 행위들을 저지르지만 그래도 하는 일에 있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검사들의 이야기. 이러니 그 소소한 이야기에 더더욱 끌릴 수밖에.(사진:JTBC)

 

질투가 사랑이다, <질투의 화신>의 사랑방정식

 

난 더 질투하는 엄마랑 살 거야. 더 질투한다는 건 사랑한다는 거니까.” 빨강이(문가영)는 치열(김정현)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녀를 좋아하는 치열과 대구(안우연) 사이에서 자신의 선택의 기준이 질투라는 걸, 자신을 두고 서로 같이 살자는 두 엄마들(친 엄마와 새 엄마) 이야기로 에둘러 말한 것. 이것은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의 독특한 사랑방정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이 드라마에서 빨강이가 중요한 것은 그녀가 흩어져 있는 가족과 친지들을 모두 엮어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절망한 그녀가 클럽에 갔다가 실랑이가 벌어져 경찰에 끌려가자 이 드라마의 거의 모든 인물들이 경찰서로 달려간다. 그녀가 삼촌이라 부르는 락 빌라의 주인인 김락(이성재)은 물론이고, 그녀의 친삼촌인 이화신(조정석), 그녀와 함께 있던 치열의 누나인 표나리(공효진)와 그녀와 같이 온 고정원(고경표), 그리고 그녀의 친엄마인 계성숙(이미숙)과 새엄마인 방자영(박지영)이 모두 모인다.

 

하지만 그렇게 모두가 모여 경찰서에서 나오며 그들은 세 팀(?)으로 나뉘어진다. 표나리와 고정원, 이화신이 한 팀이고, 빨강이와 치열, 대구가 또 한 팀, 그리고 김락과 계성숙, 방자영이 나머지 한 팀이다. 그들은 그렇게 각자 팀을 이뤄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표나리를 사이에 두고 고정원과 이화신이 밀고 당기며, 빨강이를 사이에 두고 치열과 대구가 또 친 엄마인 계성숙과 새 엄마인 방자영이 그리고 김락을 사이에 두고 계성숙과 방자영이 삼각관계를 이루는 것.

 

<질투의 화신>은 이처럼 고교생의 풋사랑, 성장한 남녀의 일과 사랑, 딸을 두고 벌어지는 모성애 그리고 중년의 사랑 같은 다양한 양태의 사랑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는다. 한 사람을 사이에 둔 두 사람의 관계는 때론 앙숙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친구 그 이상이다. 심지어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계성숙과 방자영이지만 그들은 빨강이의 엄마라는 공통분모 하나로 빨강이의 집에 들어와 같은 침대에 누워 빨강이가 돌아가기를 기다린다.

 

그러니 이 관계는 의외로 팽팽하다. 표나리와 고정원이 가깝게 지내는 걸 한 걸음 물러서 바라보는 이화신은 질투로 가슴이 뜨거워지지만 그렇다고 거의 형제처럼 친한 친구인 고정원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회식 2차 노래방에서 부르는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그저 유행가가 아닌 것처럼 다가오는 이유다.

 

두 사람만이 공유한 비밀이 있다는 건 남은 한 사람을 굉장히 질투하게 만드는 일이다. 표나리와 이화신은 유방수술 동기(?)로서의 절대적인 두 사람만의 비밀을 공유하고 있다. 형의 장례식장에서 이화신이 절망하게된 건 그렇게 허망하게 죽은 형에 대한 애도와 함께, 그의 눈앞에서 펼쳐지던 표나리와 고정원이 함께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며 웃는 장면 때문이었다. 자신과의 비밀인 유방암 수술을 한 사실을 고정원과 공유하는 줄 착각한 이화신은 그 비밀이 공개되는 것이 단지 창피해서 그렇게 화를 낸 것일까. 그것보다는 둘 만의 비밀이 공개됐고 그러면서 그들만의 비밀이 생긴 것에 대한 질투가 아니었을까.

 

이미 빨강이가 말한 것처럼 <질투의 화신>의 사랑방정식은 그래서 누가 누구에게 더 친절하고 더 잘해주느냐에 맞춰져 있는 게 아니다. 그걸 바라보는 누군가의 폭발하는 질투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것이 사랑인 줄 모르다가 차츰 질투하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 사랑임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질투의 화신>이 그려내는 사랑법이다.

 

하지만 과연 질투만 더 많이 한다고 진짜 사랑일까. 빨강이를 사이에 두고 계성숙과 방자영이 대립하는 구도는 마치 솔로몬의 선택에 나오는 엄마들처럼 치열하지만 결국 진짜 엄마를 가르는 건 아이를 위해 선택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과연 <질투의 화신>은 어떤 선택을 하는 인물들의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고 말하게 될까.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나 혼자 산다>, 잘 나가는 이유? 남자들에 있다

 

설 특집으로 방영된 <남자가 혼자 살 때>가 정규편성 되면서 굳이 몇 번의 제목을 고치더니 <나 혼자 산다>가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남자가 혼자 살 때>의 뉘앙스가 어딘지 소극적이고 궁상맞은 느낌을 주었던 반면, <나 혼자 산다>는 좀 더 당당하고 즐기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 모인 무지개 회원들은 구호를 굳이 이렇게 외친다. “나 혼자 산다! 자알-”

 

'나 혼자 산다'(사진출처:MBC)

사실 혼자 사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뭐 그리 재미있을까 한번쯤 의구심을 갖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지금껏 그런 이야기를 방송을 통해서(특히 예능에서)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방송이 조명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란 여행을 가거나(1박2일) 특별한 도전을 하거나(무한도전, 남자의 자격) 게임이나 스포츠를 하는(우리동네 예체능) 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방송은 이 남자들이 지금껏 보여주지 않았던 면들을 보여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빠 어디가>는 대표적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아빠들은 지금껏 바쁘다는 핑계로 좀체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했던 아이들과 1박2일의 추억 여행을 떠난다. 처음에는 아내 없는 아이와의 여행이 어색하기도 하고 영 적응이 안 될 정도로 낯설기도 했지만, 몇 주가 지난 지금 아빠들은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잠이 들고 스스로 척척 아이들의 아침밥을 차려낸다. 조금 투박하긴 해도 아빠와 함께 놀고 아빠가 차려주는 밥을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새롭다. <아빠 어디가>의 성공은 아이들이라는 순수의 지대가 일등공신임에 분명하지만 거기 새로운 남자들의 이야기가 주는 호기심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인 셈이다. <일밤>이 남자들의 군대이야기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같은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새로운 남자들의 이야기가 핵심적인 재미를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은 <나 혼자 산다>가 아닐까 싶다. 이 프로그램의 남자 이야기가 새로운 것은 지금껏 우리가 잘 보지 못했던 남자들의 수다와 놀이(그것도 남자들끼리 놀거나 혼자 노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실 노홍철과 김태원, 이성재, 서인국, 김광규, 데프콘 같은 너무나 다른 색깔을 가진 남자들이 카페 같은 공간에 둘러앉아서 신나게 수다를 떠는 모습은 그 자체로 우습다.

 

<우리 결혼했어요>에 나간다면 누구랑 나가고 싶냐는 노홍철의 질문에 김태원이 강수연을 얘기하고, 서인국이 김혜수를 떠올리며, 김광규가 김완선을 지목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건 이렇게 남자들끼리 둘러앉아서도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이야기꽃이 주는 새로움이다. 그 누가 수다를 여성들의 전유물이라고 했던가. 누군가와의 정이 그리울 수밖에 없는 이 혼자 사는 남자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였을 때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심지어 이성재처럼 프로그램이 끝나고도 자리를 뜨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재미는 이들의 놀이다. 서인국의 집을 방문한 노홍철이 그 구질구질한 방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그 방에 동화되는 즐거움을 느끼거나, 노홍철의 제안으로 한강변에서 야경을 즐기는 장면은 그것이 너무나 일상에 닿아있어 지금껏 여타의 예능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흥을 만들어낸다. 여행이나 도전 같은 특별한 계기가 아닌 다음에야,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서 남자와 남자가 함께 노는 장면은 그리 흔하지 않다. 기껏해야 남자들의 만남이란 술자리에서 시작해 술자리로 끝나기 일쑤가 아닌가. 그만큼 우리네 남자들은 일할 줄은 알아도 놀 줄은 잘 모른 채 살아왔던 게 사실이다.

 

김광규의 집을 방문한 김태원이 즉석에서 기타를 조율해 주고 레드 제플린의 곡을 연주하며 노는 모습이나, 데프콘의 집을 방문한 이성재가 힙합 리듬에 맞춰 어색하지만 즉석에서 랩을 하는 장면은 그래서 흥미롭다. 수다 떠는 남자들이나 저들끼리 노는 남자들의 모습은 어쩌면 과거와는 갑자기 달라진 시대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남자들에게는 하나의 판타지가 되기도 한다. 왜 남자들이라고 그렇게 한가롭게 수다를 떨거나 놀고 싶지 않겠는가. 다만 그렇게 사는 남자가 무능력하고 무책임하다 교육받아온 탓이 클 뿐이다.

 

<나 혼자 산다>는 그래서 독신자들(혹은 독거자들. 제목에서 남자를 뺏으니 여자도 출연이 가능해졌다)의 라이프스타일을 하나의 트렌드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지만, 그것은 또한 달라지고 있는 가족 관계 속에서 남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남편, 가장, 아빠, 회사원 같은 누군가의 관계 속에서만 늘 서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혼자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남자들이라면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보며 그 삶이 또한 유쾌하고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노홍철이 말한 것처럼 자신이 스스로를 아끼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때로는 그 어떤 즐거움보다 크다는 것을 판타지처럼 발견할 수도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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