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라의 무엇이 ‘비긴어게인’의 음악들을 달리 들리게 할까

이소라는 음악이 ‘생각’이라고 했다. 그저 목소리를 아름답게 내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가 되는 것이라는 것. 그래서 아무렇게나 함부로 노래를 불러버리는 것은 결코 그녀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는 이유나 존재가치가 노래 말고는 없기 때문에 노래를 대충 해버리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다.”는 말 속에 모든 게 들어 있었다. 왜 그녀의 음악이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가에 대한 이유가. 

'비긴어게인(사진출처:JTBC)'

JTBC <비긴어게인>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음악이 달리 들리는 건 마치 음악영화 속을 여행하듯 다른 스토리텔링을 갖고 있어서다. 하지만 여기에도 전제조건이 있다. 진심을 다해 노래 부르는 아티스트들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 제 아무리 좋은 스토리텔링을 갖고 있다고 해도 진성성이 없다면 그건 장식적인 것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소라의 존재감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녀가 없었다면 <비긴어게인>이 음악을 통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그 순간들이 가능했을까.

‘청혼’이라는 곡을 윤도현, 유희열과 함께 맞춰 부르며 그녀는 세심하게 모든 것들을 디렉팅했다. 특히 보사노바 리듬의 기타가 익숙지 않은 윤도현에게 끊임없는 지적이 이어졌다. 조용하게, 사뿐사뿐 그리고 조금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그 요구에 윤도현은 개인교습을 받으면서까지 그 보사노바 리듬 연주를 연습했다. 하지만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록 기타에만 익숙했던 윤도현에게는 커다란 도전으로 다가왔던 것. 

하지만 이 과정을 거쳐 이들이 함께 연주하고 부른 ‘청혼’은 이전에 우리가 그저 스쳐 듣던 그런 곡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토록 연주 연습을 했던 윤도현의 기타 소리가 낮고 느릿해도 온전히 들리기 시작했고, 유희열의 미끄러지는 듯한 건반 소리가 잔잔해도 화려하게 곡 전체에 스며들었으며 그 위에 나지막하지만 진심이 그대로 느껴지는 이소라의 목소리가 얹어졌다. 그저 이소라의 목소리로만 여겨졌던 ‘청혼’이 이런 하모니의 균형으로 들리게 된 건 모두가 한 음 한 음, 가사 하나를 허투루 넘기지 않고 정성을 다했기 때문이다. 이소라의 음악에 대한 남다른 진정성이 만들어낸 힘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이소라의 이 진정성이 현실화될 수 있었던 건 그녀와 함께 호흡해주는 유희열과 윤도현의 노력 덕분이다. 실로 ‘청혼’의 하모니가 만들어져가는 과정은 <비긴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처럼 보였다. 처음 이 곡을 맞춰보고는 연주자 한 명 정도는 같이 합류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할 정도로 그저 넘어가지 않고 제대로 하고 싶어한 이소라가 있었고, 힘겨워도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길 바란다며 팀워크를 강조한 유희열이 있었으며, 거기에 맞춰 최선을 다해 연습하고 노력하는 윤도현이 있었다. 그러니 이런 과정을 거친 노래가 달리 들릴 수밖에. 

그리고 이 모든 시발점에 이소라가 서 있다. 음악에 대한 남다른 열정 때문에 타인에 대한 지적을 하게 되는 자신이 못내 미안해지기도 하고, 자신이 만든 노래의 가사가 너무 내밀해서 그 겸연쩍음에 누군가와 함께 듣는 것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섬세한 이 영혼은 실로 음악이 전부인 사람이었다. 그녀의 음악이 알 수 없는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 안에 자신의 전부를 담아내려는 그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일 게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비긴어게인>을 보며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새로움으로 그 음악을 다시금 듣게 되는 이유일 지도.

‘비긴 어게인’이 보여준 음악을 듣는 새로운 방법

<슈퍼스타K>의 성공 이후, 우리의 음악 프로그램들은 거의 대부분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스토리텔링을 반복해왔다. <프로듀스101>이나 <쇼미더머니> 같은 프로그램들은 그나마 아이돌, 힙합 같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함으로써 그 명맥을 잇고 있지만, 대부분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그 수명을 거의 다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음악이 무슨 죄가 있으랴. 음악 프로그램이 새로운 스토리텔링 방식을 찾지 않은 것이 죄라면 죄일 뿐. 

'비긴어게인(사진출처:JTBC)'

JTBC <비긴 어게인>은 그런 점에서 이러한 오디션 형식이 아닌 여행과 버스킹이라는 형식 속에 음악을 담아내려 한 시도가 돋보이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이런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과거 MBC <나는 가수다>가 성공을 거둔 후 임재범을 주인공으로 시도했던 <바람에 실려> 같은 음악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미국을 여행하며 즉석에서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도 하고, 또 간이 콘서트를 열기도 했던 그 프로그램은 당시 오디션 전성시대에 만들어진 새로운 스토리텔링 기법의 음악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비긴 어게인>은 제목에 담긴 것처럼 존 카니 감독의 음악 영화들의 스토리텔링을 음악 프로그램으로 가져왔다. 영화 <원스>의 배경이 됐던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이소라, 윤도현, 유희열 그리고 노홍철이 날아가 그 영화 속 버스킹이 등장했던 그 곳에서 버스킹을 한다는 것이 콘셉트다. 영화라는 원천적인 스토리의 밑그림이 있고, 그 영화 속에서 흘러나오던 명곡들을 유희열의 반주와 함께 이소라와 윤도현이 부른다는 그것만으로도 사실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의 마력 같은 힘이 집중되는 건 역시 이소라다. <나는 가수다>의 첫 방송 때 ‘바람이 분다’를 불러 단 몇 초만에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던 가수가 아닌가. <비긴 어게인>에서도 이소라가 노래를 부르는 그 대목에서는 알 수 없는 힘이 그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에 집중하게 만든다. 크게 부르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읊조리는 것처럼 조곤조곤 부르는 그 목소리는 마치 쉽게 깨질 것 같은 유리병 같아서 듣는 이들조차 긴장하며 조심스럽게 듣게 만든다. 

하지만 여기에 얹어지는 것이 어떤 스토리의 진정성이다. 이미 <원스>를 봤던 많은 관객들이 그 감동의 원천이 바로 거기 등장하는 이들의 진정성을 통해서였다는 걸 확인했듯이, <비긴 어게인> 역시 음악인들이 음악을 통해 사람들과 교감을 가지려는 그 진정성이 발견된다. 버스킹이라는 소재 자체가 그것을 그렇게 만든다. 길거리, 모르는 낯선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만들고 노래를 듣게 하며 그 노래에 심지어 감동을 하게 만드는 그 마법 같은 순간이 그 버스킹이라는 행위 속에는 자연스럽게 얹어진다. 

무엇보다 외국에서 우리네 가수들이 버스킹을 한다는 설정은 저 <윤식당>에서 윤여정이 만들어 내놓은 음식을 외국인들이 어떻게 먹는가를 바라보는 것만큼 흥미진진하다. 국적이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 음식처럼 음악도 사람과 사람을 공감시키는 그 힘을 발휘할 것인가. 윤도현의 긴장감 속에는 그래서 어떤 기대감이 뒤섞인다. 그걸 바라보는 시청자들 역시 똑같이 느껴질 정도로. 

<비긴 어게인>에서 이소라는 더블린의 숙소에서 연습 삼아 ‘바람이 분다’를 불렀다. 그녀는 완벽하지 못했다며 자신의 노래를 평가했지만 거기 함께 연주한 유희열이나 노래를 듣는 노홍철 그리고 시청자들 역시 그 노래에 깊게 빠져들었다. 더블린, <원스>, 버스킹 그리고 진심으로 마음을 얹어 부르는 노래. 이 새로운 스토리텔링 속에서 그녀의 노래가 어떤 힐링으로 다가온 이유다.

<나가수>, 가능성 있지만 보완해야할 것들

 

MBC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것은 정작 이 프로그램이 국내에서는 고개를 숙였지만 중국에서 그네들 버전으로 만들어져 계속 화제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 같은 외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나는 가수다>를 떠올리면 여전히 생각나는 무대와 가수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첫 무대에 올랐던 이소라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앉아 조용히 바람이 분다를 불렀을 때의 그 감동, 백지영의 마음을 건드리는 그 절절한 목소리, 김건모의 애절하면서도 엉뚱하고 그러면서도 파워풀 했던 무대. 돌아온 임재범이 마치 짐승처럼 불러댄 남진의 빈 잔은 물론이고 비주얼 가수로 자리매김한 김범수의 님과 함께’, <나는 가수다>의 요정으로 등극했던 박정현이 부른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등등. 우리는 여전히 한때 <나는 가수다>가 만들어냈던 그 무대들을 하나의 추억처럼 얘기한다.

 

추석특집 <나는 가수다>에서 시청자들이 기대한 것도 바로 그런 무대였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감도 큰 법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추석특집 <나는 가수다>는 별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무대도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다. 그나마 효린이 애절하게 불러낸 박선주의 귀로<나는 가수다> 무대에 최적화된 더 원이 부른 백지영의 잊지말아요가 약간의 감흥을 만들었을 뿐, 다른 무대들은 그다지 임팩트가 보이지 않았다.

 

혹자들은 이렇게 된 이유를 가수에서 찾는다. <나는 가수다>를 부활시키려면 임재범, 김범수, 박정현, 이소라 같은 가수들을 섭외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분명 이 프로그램의 당장의 가능성은 보여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임시처방이 될 것이다. <나는 가수다>가 특정 가수들의 전유물이 된다는 건 특정한 무대에 묶인다는 뜻이다. 이것은 좀 더 많은 가수들이 이 무대에 올라 자신들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시청자들의 바람과는 어긋나는 일이다.

 

추석특집 <나는 가수다>가 예전만큼의 감흥을 주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연출 구성이 너무 밋밋했던 탓이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갖는 가수들의 긴장감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고 그들의 이야기 또한 그다지 없었기 때문에 무대 역시 그만한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저 무대에 올라가 노래하고 내려오는 것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여타의 추석특집 음악방송과 다를 것이 없다.

 

이렇게 된 것은 편성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데다 보여주려는 무대는 너무 많았던 것에서 비롯된 일이다. 7명의 가수가 한 곡씩 부르는 시간도 빡빡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추석특집 <나는 가수다>는 먼저 자신들의 곡을 부르고 그 순위에 따라 메인 무대의 순서를 정하는 것으로 경연방식을 구성했다. 이렇게 되자 두 곡씩 그 짧은 시간에 담아내느라 보다 압축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즉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앞부분은 마치 사족처럼 보였고 오히려 긴장감을 흩트리는 시간이 되었던 것.

 

또한 야외무대에서 펼쳐진 경연은 노래에 대한 집중력을 그만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라이브 무대의 공연은 현장에서 봤을 때 훨씬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집에서 TV로 볼 때는 그 감흥이 그만큼 느껴지기가 어렵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내리는 야외에서 리액션이 중요한 <나는 가수다>의 무대가 살아날 리가 없었다. 오히려 실내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면 좀 더 음 하나하나의 묘미를 더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추석특집 <나는 가수다>는 정규 프로그램이 아니라 일회적인 이벤트다. 그러니 그저 추석에 하는 쇼의 하나거니 하면서 넘겨도 될 문제다. 하지만 아쉬움이 더 깊게 남게 되는 것은 이 프로그램은 분명히 다시 정규화해도 될 만한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번 MBC 추석특집 <나는 가수다>8.2%(닐슨 코리아)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동시간대 타 방송사 프로그램들을 압도하는 수치다. 그만큼 대중들에게는 그 기대감이 남아있다는 반증이다.

 

최근 <비긴 어게인>이라는 영화는 다양성 영화로 100만 관객을 넘기는 기적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 기적이 가능했던 건 거기 음악이 있었고 그 음악의 묘미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는 그렇게 음악이 빛나는 순간들을 포착하는 방식으로 스토리텔링을 다변화할 수는 없는 일일까.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 프로그램은 정규화해도 충분히 <비긴 어게인>이 보여준 음악의 기적을 다시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나가수', 무엇이 잘못된 걸까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의 첫 무대에 오른 이소라는 긴장된 표정으로 심호흡을 하며 특유의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로 '바람이 분다'를 불렀다. 낮게 속삭이다가 차츰 고조되는 그 노래를 들은 관객들과 시청자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완전한 감정이입의 경험. 여기저기 쏟아져 나오는 음악들 속에서, 또 현란한 춤사위에 가려 정작 들리지 않았던 음률과 가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소라가 부르는 노래 속에 담겨진 감정이 대중들과 일치하는 그 순간, 그래서 누군가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륵 흘리게 된 그 순간, 바로 '나가수'라는 프로그램의 존재감이 대중들의 가슴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제 14기 1차 경연을 마친 '나가수'는 어떨까. 여전히 우리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노래 속에 담긴 가수들의 감정과 교감하는 경험을 선사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그다지 고음을 질러대지 않아도, 또 록커가 굳이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지 않아도, 마치 당신을 울리고야 말겠다는 듯 감정 과잉으로 노래하지 않아도, 또 노래로 모두를 꺾어버리겠다는 듯 가창력 자랑을 하지 않아도, 그저 차분하게 진심을 담아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중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던 그 '몰입의 경험'은 왜 사라진 걸까.

캐스팅에서부터 연출, 출연가수들의 문제 등등, 이유는 총체적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캐스팅일 것이다. 사실 무대에 가수를 세우고 경연을 벌이는 방식이기 때문에 거기 누가 서느냐는 '나가수'의 관건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가수에 대한 호불호는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답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석연찮은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캐스팅은 피해야 한다. 단 한 명의 어울리지 않는 가수의 캐스팅은 다른 호감 가는 가수들이 있다고 해도 전체 '나가수' 무대의 물을 흐릴 수 있다.

사실 '나가수' 1기와 2기가 가장 세간에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그 각각의 멤버들, 이소라, 김범수, 김건모, 백지영, 정엽, 윤도현, 박정현이나 임재범, 김연우 같은 이들이 가진 독특한 자신들만의 음악세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의구심을 갖게 하는 가수가 없었던 데 기인한다. 각각의 면면도 중요하지만 '나가수'는 모두의 팀워크로 서로 시너지를 올리는 구조로 운용된다. 누군가 강력한 가창력을 선보임으로써 그 무대의 권위가 올라가면 다른 가수가 그 높아진 권위의 무대에서 또 다른 매력을 덧붙이는 식이다.

그런데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가수가 끼면 상황은 거꾸로 흐른다. 즉 무대의 아우라가 점점 희석되는 것이다. 그렇게 아무나 오를 수 있는 무대가 되어버리면 그것은 제 아무리 좋은 가수가 한두 명 끼어 있다고 해도 효과를 내기가 어려워진다. 이것은 다양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른바 '급'의 문제다. 적우가 다운타운에서 제아무리 주목을 받았다고 해도 '나가수'에 어울리는 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이것은 테이나 이현우에게도 똑같이 던져질 수 있는 질문이다. 헤비급 선수들이 뛰는 무대에 경량급 선수가 올라오면 무대의 아우라는 희석된다(이것은 헤비급이 경량급보다 낫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나가수'는 그런 무거운 무대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시너지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물론 캐스팅의 문제는 현실적인 문제일 수 있다. 그만큼 적당한 가수를 찾기도 어렵고, 있다고 해도 캐스팅을 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게다가 이건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나가수'의 무대가 아닌가. 그러니 캐스팅 문제는 어쩔 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캐스팅이 되었다면 그 새로운 가수에 맞는 재평가나 스토리텔링 등을 통해 일정 부분 '급'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이것은 연출적인 부분이다. 떨리는 모습으로 방송사를 찾아 들어오고 인터뷰를 하는 식의 천편일률적인 스토리텔링은 그게 임재범이라면 효과가 있을 지 몰라도 적우나 테이에게는 그다지 효과가 없다.

또한 '나가수'의 스토리텔링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스토리의 대부분이 1위 가수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가 1위를 했네 하는 이야기는 이제 그래서 식상해졌다. 왜 제작진들은 1위 가수밖에 보지 않는 것일까. 2위 가수의 이야기도 재미있을 수 있고, 꼴찌 가수의 이야기가 더 신선할 수도 있다. 모두가 잘 했는데 운이 안 좋아서 꼴찌가 됐다는 식의 스토리는 이제 더 이상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한다. 대신 꼴찌가 절치부심해서 노력하는 모습과 무대에 오르는 그 과정을 집중해준다면 더 진한 감흥을 선사할 수 있지 않을까.

'나가수'의 무대 위에 사라진 아우라를 되찾으려면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무대 바깥에서 스토리를 찾아야 한다.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한 후에라야 무대에서의 모습에 더 몰입될 수 있다. 즉 이러한 기대감은 제작진들이 연출을 통해 만들어줘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 정해진 패턴으로 꾸며지는 영상 속에서 기대감은 전적으로 가수들 스스로에게 맡겨져 있다. 그들은 인터뷰를 통해 서로를 추켜세우거나 때로는 자화자찬하면서 "우리를 기대해달라"고 강변한다. 이것으로 어떻게 대중들이 기대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개그맨들을 기용하고도 웃음의 포인트가 없다는 지적은 일견 맞지만, 그렇다고 지금 같은 무대의 아우라가 휘발된 '나가수'에서 웃음의 포인트를 찾는 건 위험한 일이다. 먼저 중요한 건 가수들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서 더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하나마나한 '중간평가'는 각각의 가수들의 기대감을 높여줄 수 있는 연출로 바뀌는 편이 나을 것이다. 또한 선곡에 있어서도 지금처럼 가수들이 거의 원하는 곡을 부르게 하는 식으로는 '도전정신'이 희석될 수밖에 없다. 이 '도전정신'의 부재는 결국 '나가수' 무대의 긴장감을 사라지게 만드는 요인이다.

또 하나 지적되어야 될 것은 자문위원들의 역할이다. 자문위원들의 멘트는 권위를 잃은 지 오래다. 가수를 추천하는 역할을 하는 자문위원들이 있는 마당에, 캐스팅 논란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러니 자문위원들이 하는 중간 멘트들 역시 오히려 무대에 대한 몰입에 방해를 줄뿐이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캐스팅에 있어서 대중들을 참여시키는 방식이 나을 지도 모른다. 인터넷 추천 등을 통해 '나가수'에 나갈 가수를 대중들이 스스로 뽑게 하는 방식은 많은 잡음을 없애 줄 수 있지 않을까.

'나가수'는 분명 훌륭한 프로그램이다. 음악을 새롭게 들을 수 있고, 가수를 재발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중요한 건 그 음악이 제대로 들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나가수'의 진짜 공적은 그간 프라임 타임대의 음악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었던 '노래하는 가수들'을 발굴해낸 것이 아니라, 그들이 부르는 음악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 점이다. 바로 이 몰입을 되살려내야 한다. 거기에 '나가수'의 생존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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