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의 무엇이 불편함을 만드나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도대체 왜 만들어진 걸까. 이 핵심적인 질문을 던져보면 이 영화의 정체가 명확해진다. 일단 영화 외적으로 자꾸만 제기되는 이념성은 떼어놓고 보자. 물론 이 영화의 제작사 대표인 정태원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대놓고 정신 무장을 하고 안보의식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며 이념을 앞세웠지만 그렇게 보면 영화는 그저 쉽게 선전물로 치부될 것이다. 하지만 만일 이념을 목적으로 만든 것이라면 <인천상륙작전>의 의도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도대체 21세기에 여전히 공산당은 악마 혹은 적이라는 단순구도가 과연 먹힐 것인가. 70년대 반공시대도 아니고.

 

사진출처:영화<인천상륙작전>

그러니 일단 의심해봐야 하는 건 이념을 앞세우는 것에도 또 다른 의도가 들어 있지는 않은가 하는 점이다. 그건 다름 아닌 상업적 의도다. 이제는 이념도 장사가 된다. 이미 <디워> 논쟁이나 <국제시장> 논쟁을 통해 확인된 바에 의하면 보수냐 진보냐의 진영 대결구도는 어쨌든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영화를 보게 만드는 동인이 되기도 한다. 이 관점을 보면 <인천상륙작전>은 누가 봐도 상업적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는 오락영화다.

 

혹자는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이 영화가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 같은 걸 담고 있지 않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물론 <인천상륙작전>은 이 한반도의 역사를 바꾼 전투가 맥아더 장군이라는 영웅만이 아니라 이를 위해 음지에서 기꺼이 목숨을 던진 켈로부대원들이 있었다는 걸 조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스토리상의 설정일 뿐 영화가 인물을 다루는 방식은 이런 역사적 관점과는 사뭇 상반된다.

 

맥아더 장군(리암 니슨)은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과장되게 그려져 있다. 그는 마치 우리를 위해 잃었던 딸을 되찾아주기 위해 집채만 한 파도가 쳐도 결코 물러남이 없이 앞으로 나가는 전설적인 존재이며, 일상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명언들만 던지는 그런 인물이다. 음지에서 인천상륙작전을 수행한 장학수(이정재)가 맥아더 장군과 만나는 장면을 보면 마치 신적인 존재가 인간을 가엽게 여기는 듯한 그런 모습이 연출된다.

 

반면 우리네 장학수를 비롯한 부대원들의 모습은 어떤가. 주인공인 장학수나 역시 감초 같은 역할에 눈물까지 만들어내는 남기성(박철민) 같은 인물을 빼놓고 보면 작전에 투입되어 무수히 죽어나간 이들의 이름이나 얼굴이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다지 기억되지 않는다. 즉 이 영화는 마치 그 이름도 없이 작전에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것처럼 제스처를 취하지만 사실 그들 개개인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이 영화를 갖고 역사를 보는 관점 같은 걸 얘기하는 건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건 하나의 제스처일 뿐이니까.

 

그래서 결국 남는 건 이 영화가 철저한 오락영화이고 상업영화라는 점이다. 그걸 확증하듯 보여주는 건 이름 없이 희생된 우리네 대원들보다 더 자세하고 잔학하게 묘사되어 있는 림계진(이범수)이라는 악역이다. “이념은 피보다 진하다며 이념이 다르다면 가족에게도 총을 쏘는 걸 영웅적 행위로 말하는 이 인물은 철저히 악마처럼 그려지기 때문에 상업영화로서의 동력을 만들어낸다. 그런 극단적 악역은 인간적인 고민도 필요 없이 그가 죽는 걸 바라보고픈 욕망을 자극한다. 그래서 영화는 시종일관 그를 적으로 내세워 싸우는 대원들의 액션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이념도 아니고 오로지 상업적인 선택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바로 그것 때문에 어떤 불편함을 만든다. 상업영화지만 그래도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우리네 역사의 이야기다. 거기에는 실제로 이름 없이 기꺼이 작전을 위해 몸을 던진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진정성이나 진면목을 거의 건드리지 않고 영화는 오로지 그걸 상업적으로만 활용하고 있다. 그러니 불편해질밖에.

 

그런 점에서 보면 <인천상륙작전>은 이념을 담은 선전영화로서도 또 오락영화로서도 실패한 작품이다. 물론 5백만 관객이 이미 봤으니 오락영화로 성공한 게 아니냐고 말할 수는 있을 게다. 하지만 이념 대립이 때로는 상업적인 성공을 가져다주기도 하는 우리네 영화 시장에서 단순히 관객 수가 성공한 오락영화라는 걸 확증해주지는 않는다. <디워>가 굉장한 관객을 동원했지만 우리가 그걸 성공한 오락영화라 부르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디워>에 이어 <국제시장> 그리고 <인천상륙작전>까지 온전한 오락영화로서의 성공이 아니라 이른바 보수 진보의 이념 대결을 불쏘시개로 활용해 성공을 거두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는 건 우리네 영화계로서는 기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예술의 영역에서조차 상업성을 위해서는 이념도 역사도 모두 장사로 활용되는 걸 목도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암살>, 상업성과 역사 사이의 절묘한 줄타기

 

일제강점기를 오락물로 풀어내는 건 가능한가. 사실 영화는 어떤 시기든 소재로 담을 수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즉 이 시기를 다루는 방식은 대부분 민족주의적인 입장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반일감정을 자극하고 애국주의적인 시선을 담아내는 방식. 그러니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하는 콘텐츠는 비장한 분위기를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사진출처:영화<암살>

하지만 <암살>은 일제강점기라는 시기를 가져오지만 그것을 암울하고 비장하게만 다루지는 않는다. 나아가 이 영화는 케이퍼 무비(Caper movie. 범죄 영화의 하위 장르 중 하나로, 무언가를 강탈 또는 절도 행위를 하는 모습과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영화)의 장르적 성격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도둑들>을 통해 케이퍼 무비의 성공방정식을 보여준 최동훈 감독의 장기이기도 하다.

 

조선주둔군 사령관인 카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강인국(이경영)을 암살하려는 독립군의 이야기.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 마치 만주 웨스턴의 캐릭터들을 보는 듯한 저격수 안옥윤(전지현)이나 속사포(조진웅),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같은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들은 저마다의 욕망과 목표를 갖고 이 암살의 과정 속에 뛰어들어 이야기를 다채롭게 만들어낸다.

 

케이퍼 무비의 특성 중 하나인 배신 역시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배신은 사적 관계의 배신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에 대한 배신이라는 점에서 다시금 일제강점기가 갖는 비장함과 맞물린다. 그래서 이 케이퍼 무비가 갖는 유쾌함은 일제강점기의 비장함과 얽혀 기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암살>이라는 영화가 가진 가장 빛나는 지점이면서 동시에 가장 상업적인 지점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철저히 상업적인 지향을 보여준다. 그것은 일제강점기라는 사뭇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는 시기를 끌어오면서도 그 안에 오락적인 재미를 펼쳐놓는 최동훈 감독의 연출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밑바탕에는 당대의 독립군들이 가졌을 그 암담함과, 초개처럼 자신을 던지는 그 비장함이 주는 먹먹함 역시 느껴진다. 그것을 가장 짧게 인상적으로 그려낸 건 암살 미션을 받고 떠나기 전 안윤옥과 속사포 그리고 황덕삼(최덕문)이 함께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 장면이다. 그들은 마치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처럼 카메라 앞에서 비장하다. 하지만 카메라 셔터가 눌려지기 직전, 그들은 애써 웃음을 짓는다. 어딘지 어색하면서도 진심이 느껴지는 그 장면은 영화 전체가 케이퍼 무비의 오락 속으로 빠져 들어갈 때도 마음 한 구석에 이물감처럼 남는다.

 

배신과 처단은 물론 케이퍼 무비 특유의 장르적 재미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일제강점기가 끝나고도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우리네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물론 케이퍼 무비의 오락적 요소들을 극점까지 보여준 후, 이렇게 역사적인 문제로 마무리하는 것 역시 상업적 선택이다. 그것은 과거 민족주의적인 관점으로 일제강점기를 다루던 콘텐츠들이 대중들을 격동시키던 그 이야기방식을 닮아있다.

 

<암살>은 또한 다분히 중국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전지현이라는 배우를 전면에 내세운 건 우연이 아니다. 이미 <별에서 온 그대>로 중국에서 열풍을 만들어낸 전지현이 아닌가. 게다가 영화는 일제와 싸우다 스러진 독립군의 이야기를 담는다. 상하이를 배경으로 일제와 싸우는 액션이란 중국의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어필될 수 있는 이야기다.

 

이처럼 <암살>은 잘 계산된 상업적인 영화의 모범답안 같은 면면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재미에만 치우쳐 일제강점기와 현재를 바라보는 의미를 놓치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찌 보면 <암살>은 그 상업성과 역사 사이의 절묘한 줄타기를 성공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처럼 보인다. 일제강점기를 오락물로 풀어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암살>은 그 가능성을 놀라운 균형감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신동엽의 게이 연예인 언급이 돌 맞을 일인가

 

저는 심지어 연예인 중에서 어떤 여자가 결혼을 해요. 그런데 이 남자 게이에요. 근데 이 여자는 자기가 결혼할 남자가 게이라는 걸 몰라요. 게이 중에서 결혼한 남자들 굉장히 많거든요. 애도 낳고... 근데 이거를 얘기를 해줘야 되는 건지...”

 

'마녀사냥(사진출처:JTBC)'

<마녀사냥>그린라이트를 꺼줘라는 코너에서 신동엽은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결혼한 연예인이야기를 꺼냈다. 이 내용은 한 매체에 의해 신동엽 게이 숨기고 결혼한 연예인 홍석천과 나만 안다”’는 제목으로 기사화 됐다. 기사 제목도 그렇고 이 기사의 내용만을 들여다보면 마치 신동엽이 게이 연예인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의도적으로 꺼내놓은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한편 기사의 말미에 쓰여진 신동엽은 해당 남자 연예인 성 정체성에 관해 홍석천과 나만 알고 있다고 말했다는 내용은 오보다. 방송에는 아예 그런 내용 자체가 들어 있지 않다. “홍석천과 나만 알고 있다는 멘트는 홍석천씨랑 저만 (그린라이트를) 안 껐네요.”라는 말을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오보를 적시하고 그걸 제목으로 뽑아내자 기사는 마치 신동엽이 자극적인 멘트를 하기 위해 영리한 방식으로 폭로를 한 듯한 인상을 만들었다.

 

예상대로 기사 밑에 달려진 댓글들은 온통 신동엽에 대한 비난과 욕으로 가득 채워졌다. 댓글 속에는 신동엽이 이 멘트를 한 후 (아버지가 게이임을 밝혔던) 샘 해밍턴의 얼굴 표정이 어두워졌다는 전혀 방송 내용과 다른 글들도 덧보태졌다. 비난이 전혀 다른 사실들을 더하면서 심지어는 신동엽 자신이 그 연예인이 아니냐는 비상식적인 말까지 덧붙여졌다.

 

늘상 인터넷 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그러려니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전형적인 마녀사냥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마녀사냥>에서 신동엽이 게이 연예인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것을 폭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이 날 선배가 밝힌 남자친구의 외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하는 내용의 사연 때문이다. 즉 후배의 남자친구가 외도를 한 사실을 알고 있는 중간입장에서 이걸 밝히는 게 옳은지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비슷한 고민을 했던 자신의 경험을 꺼내놓았던 것뿐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오로지 게이 연예인이야기 폭로에만 초점이 맞춰진 기사는 앞뒤의 맥락을 뚝 잘라버림으로써 전혀 다른 뉘앙스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게다가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게이 이야기가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기사에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즉 거기에 홍석천이 이른바 게이 대표로 버젓이 출연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걸 말해준다. 신동엽이 게이 연예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홍석천이 거기 앉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마녀사냥>이 다루는 성담론의 수위는 높다. 그래서 19금 딱지를 붙인 것이고 성인들을 위한 솔직한 남녀 간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기도 하다. 게이 이야기 또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이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개방적인 분위기를 반영한다. 이 날 게이 연예인 언급을 하면서 신동엽이 굳이 덧붙인 멘트 역시 성 소수자에 대한 그의 배려가 묻어난다. “그런데 그런 게 힘들죠. 진짜 그런 상황이 되면은... 게이분들의 장점이 굉장히 많거든요. 굉장히 따뜻하고 섬세하고 이렇게 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닌가.”

 

물론 이 성에 있어 개방적인 프로그램에 대한 호불호와 취향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오보에 앞뒤 맥락을 끊고 자극적인 부분만을 끄집어내 이상한 뉘앙스를 덧붙인 기사는, 물론 그 기사 내용이 방송 내용을 그대로 붙인 것이라고 하더라고 그 편집 때문에 전혀 다르게 읽힐 수밖에 없다. 이제 사실왜곡만이 오보인 시대가 아니다. 사실을 달리 편집하면 오보가 되는 시대라는 얘기다.

 

물론 오보는 실수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의 인터넷에 뜨는 기사들을 보면 이것이 실수인지 의도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지난 올해의 영화상에서 이정재와 송강호의 인사를 이상한 방향으로 몰아 논란이 만들어지고 결국은 한국영화기자협회가 사과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진 것은 단적인 사례다.

 

의도인지 실수인지 알 수 없으나 그 결과와 파장은 적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마녀사냥이 대단한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소소해 보이는(사실은 소소하지 않은) 사안들에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흥미롭게도 이 프로그램의 제목이 <마녀사냥>이다. 물론 여기서 마녀란 마녀사냥의 마녀를 뒤집는 이야기다. 당당해진 마녀의 이야기랄까. 그러니 <마녀사냥>이 당하는 마녀사냥은 실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감격시대>, 때 되면 돌아오는 낭만주먹에 대한 향수

 

다시 낭만 주먹이다. 정치주먹 유지광과 이정재를 다뤘던 <무풍지대(1989)>, 거지 왕 김춘삼을 다뤘던 <왕초(1999)>, 김두한을 중심으로 당대의 주먹들을 다뤄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야인시대(2002)>에 이어 이번에는 시라소니를 모델로 한 <감격시대>.

 

'감격시대(사진출처:KBS)'

정치주먹이 등장하는 <무풍지대>는 시대적으로 후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지만, <왕초><야인시대>는 그래서 <감격시대>와 함께 같은 시대를 다루기 때문에 등장인물들도 겹칠 수밖에 없다. 이들 작품에는 서 모두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등장하며 그 외에도 이미 한 몫씩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는 반가운 주먹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왕초>의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주인공인 차인표가 연기한 김춘삼은 물론이고 최고의 캐릭터라 찬사를 받은 맨발 윤태영, 섬뜩한 악역을 선보인 발가락 허준호가 주목을 받았다. 거지왕 김춘삼을 주인공을 삼았기 때문에 김두한과 시라소니는 주변인물로 처리되었다. 김두한 역할은 이훈이 연기했고 시라소니는 액션영화에 많이 등장했지만 잘 알려지진 않은 배우 차룡이 연기했다. 시라소니는 그다지 주목되는 역할이 아니었다.

 

<야인시대>에서 시라소니는 <이장호의 외인구단>으로 독특한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조상구가 연기했다. <야인시대>에서는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만나는 흥미로운 장면이 들어 있는데, 이 두 사람이 마치 대결을 벌일 듯한 장면에서 시청률이 폭등했다고 한다. 그만큼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싸우면 누가 이길 것인가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물론 <야인시대>에서 두 사람은 대결하지 않는데 이것은 실제로도 그랬다고 한다. 이미 자리를 잡은 김두한이 화통하게 시라소니를 형님으로 모시면서 양자가 모두 사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조직을 갖고 있는 김두한이 늘 혼자 다니는 시라소니와 대결해서 얻을 게 없었다는 판단이다. 무리를 데리고 다니는 사자와 홀로 다니는 호랑이로 비교되던 이 두 사람의 대결은 그래서 후에도 두고두고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시라소니는 물론 영화에서 다뤄진 적이 있지만 김두한에 비해 그다지 재미를 보진 못했던 소재였다. 물론 1985년 신문에 연재됐던 방학기 원작의 동명의 만화는 큰 화제가 되었다. 이것은 방학기 특유의 흥미진진한 스토리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방학기는 최영의를 소재로 다룬 <바람의 파이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격투기 자체에 대한 세세한 묘사로 대결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다.

 

이번 <감격시대>에서 시라소니를 모델로 한 신정태(김현중)가 도비패에 들어가 하는 첫 번째 미션으로 달리는 열차에 올라타고 뛰어내리는 장면은 방학기 원작의 만화에서도 대단히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열차에서 뛰어내리면서 그 관성을 이겨내기 위해 거의 바닥에 몸이 닿을 정도로 몸을 뒤로 젖히고 발로 바닥을 두드리면서 차츰 몸이 세워지면 달리는 동작은 물론 만화적인 각색이 들어간 것이겠지만 시라소니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단박에 만들어낸 장면이기도 하다. 물론 드라마 <감격시대>에서 이런 세세한 연출을 보여줄 지는 미지수다.

 

이처럼 1930년대 이북 지역을 평정하고 상하이까지 이름을 날렸다는 전설적인 주먹 시라소니의 이야기는 이미 여러 차례 드라마에 등장한 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조연의 역할이었지 이번처럼 주연인 경우는 <감격시대>가 거의 유일하다. 이렇게 된 데는 낭만 주먹에서부터 정치로까지 이어지는 김두한의 이야기에 비해 시라소니의 이야기가 다소 단순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홀로 다니는 시라소니의 이야기는 김두한처럼 무수한 매력적인 주변 인물들이 없기 마련이다.

 

<감격시대>가 시라소니를 다루면서도 신정태라는 새로운 인물을 재창조한 데는 이런 한계점들을 상상력을 통해 보완하기 위함일 것이다. 낭만 주먹을 다루는 것이니 주먹들의 일 대 일 대결은 가장 남성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요소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 아무리 남성 드라마를 주창한다고 해도 드라마에서 여성 시청자를 도외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감격시대>가 주먹 이야기 이외에도 멜로를 동시에 집어넣고, 액션에도 잘 어울리지만 멜로 또한 괜찮은 그림을 만들어내는 김현중을 세운 데는 그런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김두한의 이야기가 훨씬 드라마틱하지만 시라소니의 이야기를 선택한 것은 그만큼 희소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두한 이야기는 너무 많이 다뤄졌다. <감격시대><야인시대>의 리메이크 정도로 인식하는 시청자들이 있을 정도다. 그러니 김두한만큼 주목을 끄는 인물인 시라소니를 소재로 가져오면서 그 인물에 상상력을 덧댄 팩션으로 승부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라 여겼을 게다.

 

여담이지만 김두한의 이야기는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부분이 있다. 김두한은 훗날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국회 분뇨 투척 사건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일을 촉발시킨 사카린 밀수사건에는 당시 정부와 기업 사이의 유착관계가 들어 있었다. 당시 관련 기사들을 보면 김두한은 국회에 분뇨를 뿌리며 신랄하게 재벌과 정권을 비판했다고 한다. 이 부분은 과거 <야인시대>에서도 다뤄졌던 장면이기도 하다.

 

어쨌든 요즘처럼 남성들이 위축되는 시기에 낭만 주먹에 대한 향수는 더 깊어진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TV 드라마에서도 거의가 여성 시청자들에 맞춰진 콘텐츠들이 대부분이다. 남자들은 드라마에서 뒷방 늙은이 취급 받거나 아니면 예능에서 여성들의 역할을 체험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은 마치 주도적인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가 여성들의 판타지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이런 시기에 <감격시대> 같은 남자 냄새 물씬 나는 드라마에 대한 남성들의 판타지가 없을 수 없다. 물론 <별에서 온 그대> 같은 여성 시청자들을 넉 다운 시키는 판타지가 더 클 수밖에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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