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이런 판을 만들어준 류승완 감독에게 박수를 

지난해 송혜교는 미쓰비시 자동차 회사의 중국 광고 모델을 거절했다. 미쓰비시는 다름 아닌 최근 개봉한 <군함도>의 실제 모델인 하시마섬(군함도라 불림)에서 탄광을 운영했던 ‘전범기업’이다. 최근에 송혜교의 공개 연인인 송중기는 <군함도>를 찍었다. 그는 기자 간감회에서 송혜교 광고 거절 사실을 언급하며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다고 했다. 

사진출처:영화<군함도>

아마도 <군함도>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의 마음이 마치 송중기가 송혜교에게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던 그 마음이지 않을까. 결코 제작환경이 녹록치 않은 작품이다. 군함도 실제 크기의 2/3에 해당하는 초대형 세트를 제작했고 적지 않은 배우들과 엑스트라들이 참여했다. 실제를 방불케 하는 탄광 내에서의 혹독한 환경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조명과 각도까지 세심하게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황정민, 소지섭, 이정현, 송중기 등 원톱을 해도 충분히 가능한 배우들이 이 영화 하나에 기꺼이 모이게 된 것도 그저 우연이라 보기 어렵다. 거기에는 물론 류승완 감독에 대한 신뢰가 그 기반이었을 테지만, 그것보다도 다름 아닌 군함도라는 실제 우리네 역사의 아픈 생채기를 다시금 복원한다는 그 뜻이 주는 무게감도 적지 않을 것이다. 

MBC <무한도전>이 대중들에게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이 군함도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을 때 우리를 공분하게 만든 건 그 곳이 근대화의 상징처럼 포장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관광객들의 관광 상품이 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유네스코측은 그 곳의 역사적 사안들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지금껏 이는 묵살되어오고 있다. 

어른은 물론이고 여자, 아이들까지 동원되어 탄광 속에서 사투를 벌였던 그 역사적 사실이 묻히고 있는 현실 속에서 <군함도>라는 영화 한 편이 주는 가치는 빛날 수밖에 없다. 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류스타들의 해외에서의 입장을 떠올려보며 선뜻 선택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었을 테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했던 건 ‘전쟁의 참혹함’이 그렇게 묻히고 사라지는 사안의 중대함이 아니었을까. 

<군함도>는 실제 현실이 아마도 더 참혹했을 영화다. 하지만 자극은 오히려 사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류승완 감독은 영화가 너무 자극적으로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렇게 희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참혹한 상황들을 바라보는 건 괴롭기 그지없다. 

그렇지만 그 괴로움을 털어내기 위해 괜한 판타지로 채색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군함도>는 있는 사실을 재현하는데 충실한 한편, 조선인들의 탈출기라는 가상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살아남기 위한 사투와 그 안에서 엮어지는 휴머니즘, 그리고 무엇보다 친일에 대한 엄중하고 날선 비판의식을 세웠다. 

현재의 촛불집회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을 집어넣어 당대의 군함도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그 때 그 곳의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한번쯤 반추해 봐야할 사안이라는 여운도 남겨뒀다. 괜한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영화라기보다는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지옥도를 끄집어냄으로써 ‘반전 영화’의 방향성을 확실히 드러냈다. 

영화는 결코 즐거울 수 없고 통쾌함을 느낄 수도 없으며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이것은 일종의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분들을 위한 진혼곡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며 우리는 묵직한 울림을 느낄 수 있다.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이역만리에 끌려 온 한 소년의 “고향으로 가고 싶어요”라는 외침 하나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송혜교는 광고를 거부했고 송중기는 그런 그녀에게 마음의 박수를 보내며 <군함도>에서 열연을 보였다. 그리고 이제 객석에서 그 고통의 역사를 공유하며 우리들도 그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판이 가능하게 해준 류승완 감독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역사와 힙합, <무한도전>이 현 시국을 꼬집는 방식

 

역시 <무한도전>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현 시국을 이만큼 <무한도전>만의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역사와 힙합의 만남. 그 기획 자체가 그렇다. 이 날 방송에 나온 설민석 강사의 첫 마디로 E.H 카의 말을 빌어 얘기한 것처럼,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 그러니 하필 이 시국에 <무한도전>이 역사를 소재로 들고 나온 건 그 자체가 현재에 대한 문제제기이자 그 해법을 들여다보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그리고 이것을 힙합이라는 장르를 빌어 하겠다는 건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어 누구나 쉽게 사안을 이해할 수 있게 했듯이 누구나 지금의 역사적 문제를 힙합을 통해 익숙하게 하기 위함이다. 물론 힙합이라는 장르가 갖고 있는 사회 비판적 특징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그러니 역사와 힙합의 만남은 이 시국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무한도전>의 화답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요즘 뉴스 안 보시는 듯’, ‘상공을 수놓는 오방색 풍선같은 자막을 통해서 <무한도전>이 아예 이 시국에 대해 작정하고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 바 있다. 역사와 힙합을 소재로 한 위대한 유산특집에서도 이런 자막 센스는 여전히 돋보였다.

 

다이내믹 듀오의 개코가 출연하자 절친인 하하가 계속 칭찬을 해대자, 유재석이 나서서 친한 거 알겠는데 그만 띄워!”라고 일침을 하고 이어진 자막으로 지인 특혜의혹에 추방’, ‘이런 친구는 버리는 게 상책같은 자막도 이 시국에 보면 달리 보일 수밖에 없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서 우리가 무수히 봤던 그런 부적절한 관계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송민호가 출연해 을 부를 때 아버지!”라고 부르는 대목을 큰엄마’, ‘고모부’, ‘당숙모등으로 계속 요청해 부르자 이러다 사돈의 팔촌까지 다 나올 기세라고 붙여진 자막도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물론 그건 장난스럽게 노래 가사를 갖고 코믹하게 만든 한 대목일 뿐이지만, 최근 최순실 사태를 떠올리는 분들은 점점 그 사안 자체가 최씨 가족사 전체로 번져가는 상황을 떠올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역사 강의 도중 정조 이야기가 나올 때 하하와 양세형이 유재석의 완벽함을 찬양하는 목소리를 내자 자막으로 붙은 충성충성충성 MC유님 사랑합니다 충성이란 문구는 다름 아닌 이정현 대표가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보낸 문자를 패러디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위대한 유산특집이 보다 본격적으로 현 시국을 담고 있다고 여겨지게 된 건 설민석 강사가 우리네 역사를 짧게 시대별로 풀어낸 강의의 내용 덕분이다. 단군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그 역사를 설민석 강사는 기득권세력의 무능과 방만으로 인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 위기를 넘어선 장본인이 , 돼지 취급 받은 백성들이었다는 걸 그 밑바탕에 깔아두었다.

 

단군을 설명하며 인내와 끈기가 우리네 원천적 힘이라고 말하고, 몽골의 침략 속에서 왕은 강화도로 숨어들어갈 때 우리네 백성들이 그 환란을 이겨내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임진왜란 때 도성을 버리고 도망친 선조의 이야기가 그렇다. 또 자신의 시력을 버려가면서까지 한글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전파하려 한 그 애민사상은 거꾸로 지금의 시국을 그 어떤 목소리보다 강하게 개탄하게 만들었다.

 

12<무한도전>이 방영되는 시간, 광화문 광장은 넘실거리는 촛불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물론 그 광장에 직접 나가지는 않았지만 <무한도전><무한도전>의 방식으로 촛불을 들고 있었다고 보인다. 그건 아마도 광장을 나가지 않았어도 마음만은 광장에 함께 한 많은 분들의 마음과 같지 않았을까.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대종상의 몰아주기, 청룡의 나눠주기

 

아마도 이번 청룡영화상 대종상의 파행으로 인해 오히려 돋보인 시상식이 아니었나 싶다. 단 며칠 사이에 벌어진 두 영화상이지만 대종상 시상식장에 주조연 배우들이 대거 불참했던 것과는 상반되게 청룡영화상에는 상을 받든 못 받든 별들이 모여 들었다. 대종상에서 대리수상 불가를 공표함으로써 결국 대리수상이 남발하게 된 것과 대조적으로, 청룡영화상은 참석한 배우들이 상을 고루 가져가는 축제의 장으로 기억되게 됐다.

 


'청룔영화상(사진출처:SBS)'

청룡영화상이 참 상을 잘 주죠?” 김혜수가 던진 이 말은 물론 청룡영화상의 균형 잡힌 고른 시상에 대한 상찬이었지만 대중들에게는 대종상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번 대종상은 <국제시장>에 무려 10관왕을 몰아줬다. 이런 일이 이번 한 번이 아니다. 이미 2012년 대종상은 <광해>에 총 22개 부문에 15개의 상을 몰아준 바 있다. 어째서 같은 해에 상영됐던 같은 영화들에 대해 상을 주는 것인데도 이렇게 다를까.

 

이것이 이렇게 다른 것은 그 자체로 상의 성격이나 지향점이 다르다는 걸 말해준다. 대종상이 구태의연한 영화 시상식의 전형처럼 다가오게 된 건 이 같은 몰아주기가 과연 지금의 영화 환경과 관객 취향과 사뭇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에서부터 비롯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네 영화는 그만큼 다양해졌고, 관객들의 취향도 다양해졌다.

 

물론 1천만 대작 대박영화가 매해 나오기도 하지만 그보다 작은 중박 영화도 점점 많아지고 있고, 아예 독립영화들도 의외로 다양한 관객들의 취향을 받쳐주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그러니 몇몇 대작 영화에 상을 몰아준다는 건 자칫 잘못하면 관객들의 다양한 취향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일로 비춰질 수 있다. 나아가 이것은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적어도 문화에서는 바라보고 싶지 않은 일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청룡영화상이 블록버스터과 독립영화에 똑같은 상의 지분을 나눠주었다는 것은 의미가 깊다. 올해 작품 중 누구나 <베테랑><암살>, <국제시장>이 상을 가져가는 것에 대해 이견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사도> 같은 의미 있는 작품도 있고, 독립영화로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거인> 같은 작품도 있었다는 걸 청룡영화상은 놓치지 않았다. 결국 최우수작품상은 <암살>이 감독상은 <베테랑>이 가져가고 남녀주연상에 <사도>의 유아인과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이정현이 받은 건 균형잡힌 배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시상식에 몰아주기만큼 비판받는 것이 나눠주기다. 하지만 이것은 방송사들의 연말 시상식에서 과연 그 상이 적절한가 싶을 인물들에게 다음해를 위해 억지로 나눠 상을 시상할 때 나오는 비판이다. 이번 청룡영화상이 보여준 나눠주기는 이것과는 다르다. 그만큼 다양해진 영화들과 관객의 취향을 고루 끌어안는다는 의미에서의 나눠주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는 것.

 

시상의 공정성과 균형은 결국 그 영화상이 축제의 장이 되게 만드는 이유다. 이번 청룡영화상이 유독 훈훈한 영화인들의 축제의 장이 될 수 있었던 건 그 균형이 잘 이뤄졌기 때문이다. 상을 받고도 사과하는 상, 한쪽으로 몰아주기를 해서 다른 한쪽은 커다란 그림자와 병풍을 만들어버리는 상, 권위로 오라마라 강요하는 상. 이번 청룡영화상은 이런 시상식과는 너무나 다른 행보를 보여주었다.



여자사람친구 특집, 이게 바로 <1>만의 묘미

 

KBS <프로듀사>편집의 이해’, ‘러브라인의 이해’, ‘예고의 이해같은 부제가 달린 것처럼, 이번 <12> ‘여자사람 특집에 부제를 붙인다면 캐스팅의 이해정도가 되지 않을까. 설명이 필요 없는 귀여움의 끝을 보여주는 박보영과 문근영, 그리고 걸스데이 민아. 웃음과 경륜(?)을 책임지는 신지와 김숙, 게다가 테크노 여전사 이정현까지. 본래 캐스팅이란 이처럼 섭외되는 순간 모든 이야기들이 준비될 때 완벽해지는 법이다.

 

'1박2일(사진출처:KBS)'

이들의 등장은 <12>로 보면 별 것도 아닌 상황들을 특별하게 만들어버렸다. 오프닝에서 그녀들이 등장할 때마다 빵빵 터지는 웃음이 그랬고, 첫 등장부터 삶은 계란과 날계란 중 하나를 골라 상대방의 얼굴에 깨는 익숙한 복불복마저 그녀들과 함께 하자 신선하게 다가왔다. 마치 금남의 지대처럼 여겨져 온 <12>에 들어온 여자 사람캐스팅의 파괴력은 이처럼 컸다.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게스트들의 출연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관계의 재미 또한 살려 놓았다. 오빠들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드는 박보영은 계란을 아메리카노로 바꾸는 협상을 하면서 유호진 PD와 묘한 설렘을 만들어냈다. 마치 <프로듀사>에서 PD와 아이돌 사이에 벌어지는 미묘한 관계를 보는 듯, 유호진 PD가 오히려 살짝 웃으며 박보영에게 양해를 부탁하자, 그걸 보던 신지는 PD끼 부린다고 꼬집었다.

 

한 번도 예능에 제대로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는 문근영은 의외의 승부욕을 드러내며 점점 문대장의 면모를 보여줬다. 복불복 게임에서 상황을 분석하고 승패에 속내가 숨겨지지 않는 표정을 드러내는 그녀의 모습은 역시 예능 경험이 없어 오히려 더 리얼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헤어롤을 말고 함께 차 안에 앉아 천상 여자인 모습을 보여준 민아와 박보영은 마치 친자매 같은 훈훈함이 묻어났고, 테크노 여전사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극강 동안 이정현과 정준영의 오누이 같은 관계나 신지와 김종민, 김준호와 김숙의 끈끈한 관계는 웃음과 함께 <12>만이 가진 그 정스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놀이공원에서 펼쳐진 복불복에서도 이런 <12>만의 훈훈한 정서들은 별 거 아닐 수 있는 장면들마저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했다. 어찌 보면 이제는 누가 복불복으로 밥을 먹고 누구는 굶게 되는가가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12>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여자 게스트들의 등장은 이 익숙함을 흥미롭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12>은 예전부터 외부인물들이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더 시너지가 만들어지곤 했다. 이를 테면 일반인들이 100여명씩 출연하곤 했던 시청자와 함께 하는 <12>’이나 외국인 근로자 특집, 박찬호 같은 특급 게스트 특집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게스트의 투입은 새로운 리액션들을 보여준다. 결국 <12>의 웃음은 복불복 그 자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복불복에 이은 리액션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소금물을 마시게 되는 복불복도 늘 하던 기존 멤버들이 하는 것보다 박보영이 마시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복불복의 과정을 통해 게스트가 점점 고정 MC들과 마찬가지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그래서 호스트와 경계가 사라져버리는 그 지점은 <12>만의 가족적인 재미를 가능하게 해준다. 박보영과 문근영, 민아, 신지, 김숙 그리고 이정현이 출연한 여자사람 친구 특집은 <12>만이 가진 묘미를 제대로 살려냈다. 그리고 그것은 게스트를 손님이 아닌 주역으로 만들어내는 <12>만의 리액션 웃음으로 가능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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