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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 무엇이 그녀를 '나는 가수다'라고 외치게 했나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인순이는 누가 봐도 전설이다. 그녀가 지금껏 해온 삶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녀는 희자매라는 당시로서는 흔치않은 걸 그룹으로 데뷔했고, 혼혈의 편견이 여전할 때 솔로로 홀로섰다. 오로지 실력으로 KBS 7대 가수상을 수상했고, 이제 잊혀지는가 싶을 정도로 10여년 간이나 활동을 접고 있다가 조PD와 함께 발표한 곡 '친구여'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또 '거위의 꿈'은 원더걸스의 '텔미'를 누르고 '뮤직뱅크'에서 1위를 차지했고, 2010년 발표한 '아버지'라는 곡은 당시 라디오 방송횟수에서 이효리나 비 같은 젊은 가수들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나는 가수다'의 무대에 섰다. 그녀가 이 무대에 선다고 했을 때 '나가수 자문위원회'에서는 심지어 이를 반대하기도 했다. '전설은 전설로 남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뒤집은 건 인순이의 '가수 선언'이었다. 자신은 늘 현역 가수로 남고 싶다는 것. 그래서 그녀는 '나는 가수다'에 올랐다. 어쩌면 그 제목이 자신의 존재증명이라도 된다는 듯이. 그렇게 전설은 다시 가수로 돌아왔다. 여전히 긴장되고 여전히 설레는 무대 위에서 온몸을 던져 노래 부르는 그녀는 진정한 가수였다.

전설. 혹은 레전드. 정말 달콤한 말이다. 하지만 달콤함만큼 씁쓸함도 있는 말이다. 전설이라는 말 속에는 어딘지 과거형의 뉘앙스가 살아있다. 그래서 전설로 추대되면 그 남긴 공적에 존경을 받을 수는 있지만(물론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현재형을 희생해야 한다. 전설은 누군가의 기억으로 되살아나는 존재이지, 지금 현재 자신의 힘으로 현재의 관객과 소통하는 존재는 되기가 어렵다. 인순이가 버린 것은 바로 그것이다. 그녀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선택했다.

이것은 그녀가 지금껏 살아온 삶의 행보 그대로다. 그녀는 늘 현재를 선택해왔다. 희자매가 꽤 인기를 끌었을 때도 자신의 가창력은 혼혈이라는 이질적인 외모에 가려 대중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홀로서기를 선택했다. '밤이면 밤마다'로 엄청난 인기를 얻고는 갑자기 달라진 가요계 환경 속에서도 밤무대에 서서 노래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다시 복귀한 무대가 '가요무대'나 '열린음악회'만이 아니라 '뮤직뱅크' 같은 현재형 무대였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그녀는 또 지금 현재를 선택했다. '나는 가수다'라는 현재형 무대를.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현재형 무대에 머물도록 만들었을까. 인순이라는 조금은 낯선 이름을 고집하면서 그녀는 왜 그토록 과거로 매몰되거나 한때 '노래 잘하는 혼혈 가수가 있었다'는 기억 속에 머물기를 거부했을까. 그것은 어쩌면 자신이라는 존재의 증명을 위한 안간힘이었을 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거부되는 존재처럼 치부된 세상을 향해, 그녀는 "나는 인순이다!"라고 외치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가 지금 무대 위에서 부르는 노래는 그 어떤 설명을 들려주지 않아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아버지'라는 심금을 울리는 노래나 심지어 댄스곡인 '난 괜찮아' 같은 노래마저도 특별하게 들리는 것은 그 노래를 다름 아닌 이미 전설이 되도 좋을 만큼 많은 삶의 질곡을 겪어온 현재형 가수 인순이가 부르기 때문이다.

전설이 되긴 쉬워도(물론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모두가 전설이라 부를 때 그것을 거부하고 "나는 가수다!"라고 선언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인순이는 그 어려운 일을 현재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하고 있다. 인순이 같은 거목과,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젊은 가수들이(상대적으로) 같은 무대에 서는 것이 가능한 건, 오로지 박제된 상찬을 버리고 스스로 무대로 내려온 가수 인순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녀는 가수다.

Posted by 더키앙


인순이의 '아버지', 상처가 눈물을 넘어 노래가 될 때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인순이 스스로 방송에서 밝힌 것처럼 그녀에게 '아버지'라는 말은 그 자체로 상처다. 그녀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떠났고 그렇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는 가끔 편지왕래를 했었다지만 그것이 이 땅의 혼혈로 태어나 아버지 없이 겪은 그 세월을 위로해줄 수는 없는 일이었을 테니까. 그녀의 '아버지'라는 곡은 바로 그 꺼내기만 해도 아픔이 되는 그녀의 트라우마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가수다'의 첫무대에서 꺼내든 이 곡은 가수로서의 그녀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곡이면서, 동시에 아마도 어쩌면 그녀가 불렀던 그 어떤 곡보다 어려운 곡이었을 것이다.

"어릴 적 내가 보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산이었습니다. 지금 제 앞에 계신 아버지의 모습은 어느새 야트막한 둔덕이 되었습니다." 이 낮은 읊조림으로 시작한 그녀의 '고백'은 노래가 그 어떤 기교나 과장 없이 담담하게 가사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힘을 가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과거 인순이의 존재감을 갑자기 우리 가 느낄 수 있었던 '거위의 꿈'을 그대로 재연했다. "꿈은 이루어진다. 노력하는 자한테만. 여러분, 꿈을 꾸십시오. 꿈을 이루십시오. 그리고 꿈을 지키십시오. 그리고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2006년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이 낮은 읊조림으로 시작해 온몸으로 세상에 부딪쳐왔던 자신을 노래 속에 담아냈던 것처럼.

조관우의 말처럼 "인생을 알면서 그 아픔을 딱 담을 수 있는 현존의 음악하시는 분의 최고"라는 찬사는 그저 듣기 좋은 수사가 아니다. '아버지'라는 곡이 가진 그 담담함을 이처럼 절절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인물로 인순이 만한 가수가 있을까. 곡에는 그녀의 '눈물' 속에 담겨진 아버지에 대한 미워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다른 것이 아닌 같은 것이라는 긍정이 담겨져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 진실. 인순이는 그것을 스스로의 삶을 담아 노래로 전해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미워했었다"고 고백하고, 또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마음을 전했다.

이 무대가 모든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바로 그녀의 곡을 통해 그간 우리가 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해왔던 존재, '아버지'를 각자 다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인순이의 '아버지'는 이제 그녀의 특별한 이야기에서 우리의 보편적인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녀가 노래 시작 전에 읊조렸던 그 말, '커다란 산'이 '야트막한 둔덕'이 되었다는 그 말은 아마도 모든 아버지를 가진 이들의 마음일 것이다. 물론 이 의미도 이중적이다. '커다란 산'은 든든함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아픔으로 가진 이들에게는 넘어설 수 없는 '막막함'을 뜻하기도 하니까.

그래서 '야트막한 둔덕'이 되었다는 인순이의 진술은 이제 그 고통을 넘어 트라우마마저 관조할 수 있는 자신을 얘기하는 것이다. '점점 멀어져 가버린' 아버지지만, 이제는 그 '쓸쓸했던 뒷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 흘렀고, 그래도 여전히 가슴이 다시 아파오게 하는 존재. 바로 누구나의 아버지일 것이다. 이제 꺼내는 것만으로도 상처인 '아버지'를 노래로 부르며 긍정하고 있는 인순이를 통해, 물론 그 감회의 크기나 정서는 다르겠지만 우리도 저마다의 아버지를 꺼내보게 된다.

그녀는 노래 첫머리에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겼다. "부디 사랑한다는 말을 과거형으로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노래는 이 '가슴 깊은 곳에 담아두기만 했던', 또 '긴 시간이 지나도 말하지 못했었던' 이 사랑한다는 말을 못내 후회한다. 인순이는 자신은 "사랑했었다"고 과거형으로밖에 못했던 그 말을 '지금' 우리에게 꺼내놓는다. 이것은 자식이 부모에게 하지 못한 그 말만을 뜻하는 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부모가 자식에게 하지 않은 그 말이기도 할 것이니까. 그러니 이제 사랑한다는 말은 모두에게 현재진행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카네기홀에서 두 번씩이나 공연을 가진 인순이는 그 두 번째 무대에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모셔놓고 "여러분은 모두 제 아버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상처는 아물면서 더 단단해졌고 그것은 '뮤지션'이나 '아티스트'로 불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여전히 가수임을 고집하는 '천상 가수'에 의해 고스란히 하나의 노래로 승화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 위에서 이 노래를 우리에게 선물했다. 상처가 눈물이 아닌 노래가 되었을 때 그것은 상처의 토로가 아닌 우리의 마음까지 다독이며 두드리는 소통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그녀의 눈물이 우리의 눈물이 된 이유다.

Posted by 더키앙


'나가수', 음악 듣는 귀를 살려낸 비결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2006년 한 가수가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올랐다. 그녀는 노래를 하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꿈은 이루어진다. 노력하는 자한테만. 여러분, 꿈을 꾸십시오. 꿈을 이루십시오. 그리고 꿈을 지키십시오. 그리고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시작된 '거위의 꿈'. 바로 인순이가 재발견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음악 자체에 푹 빠진 채 노래를 열창했다. 그러다 "이 무거운 세상도-"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만 짧은 순간 음을 놓쳤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였을 것이다. 그 노래를 하는 그 때 그녀는 이 짧은 노래 속에서 수십 년 간 '자신을 묶어두었던 무거운 세상'을 느끼는 듯 했다. 차마 눈물을 보이지 못해 담담히 인사하고 불빛이 쏟아지는 무대 밖으로 나갈 때 언뜻 눈물을 훔치는 그녀의 모습이 실루엣으로 잡혔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게시판에 호평이 쏟아지고 그녀의 동영상은 인터넷에서 여기저기로 퍼 날라졌다. 인순이는 과거에도 그렇고 그 때도 그랬으며 지금도 그런 놀라운 가창력의 가수다. 하지만 그 무대 이전까지 인순이는 평가절하 되어 있었고, 그 무대에 선 이후부터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시작했으며 그 후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아이돌이나 힙합 가수들과 함께 무대에 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가수가 되었다.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걸까.

많은 사람들이 음악은 작곡가나 작사가 혹은 가수 그리고 프로듀서에 의해 성패가 갈린다고 생각한다. 즉 그들에 의해 음악은 완성되고 그것을 우리는 선택해 듣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모든 예술이 다 그러하듯이 음악 역시 그 완성은 대중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만들어지는 소리와 음과 비트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그걸 듣는 귀다. 인순이의 노래가 달리 들린 것은 노래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걸 듣는 대중들의 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인순이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래서 더 집중해서 그녀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그러자 늘 배경음악처럼 훅 지나가버리던 음악은 대중들의 귀에 꽂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라이브 무대에서 들으면 깊은 감동이 몰려오다가도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듣게 되면 그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물론 그 라이브가 주는 직접적인 음향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TV라는 공짜 미디어가 갖는 산만한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일단 돈 내고 음악을 들으러 극장에 가는 사람은 이미 그 귀가 준비되어 있지만, 그저 틀어놓으면 흘러나오는 TV 음악 프로그램에 귀는 좀체 준비하려 들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의 성공을 얘기하면서 우리는 흔히 중견 가수들의 놀라운 가창력을 말한다. 맞는 얘기다. 이 오디션 형식의 무대는 중견 가수들조차 잔뜩 긴장하게 만들어 그 집중력을 높여놓기 때문이다. 곡에 대한 해석이 과감해지고, 짧은 시간 동안 혼신을 다해 부르는 그 무대에서 가수들의 가창력은 더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가창력만큼 중요한 것은 이들의 노래를 집중해서 듣게 만드는 프로그램의 힘이다. 본 경연이 시작되기 전, 서로의 심경이나 그간의 이야기를 인터뷰하고, 당일에 차에서 내려 자신의 대기실에 대기하면서 갖는 긴장감을 포착하면서 서서히 집중력을 높여놓는 이 프로그램의 전반부는 그래서 경연 무대 그 자체만큼 중요하다. 또 경연 중간 중간에 삽입되는 가수들의 반응과 관객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들이 느슨해지고 흐트러질 수 있는 TV라는 매체의 긴장감을 끌어올려 끊임없이 대중들로 하여금 음악을 들을 준비를 하게 만들어준다.

사실 중견가수들의 무대는 늘 있어왔다. 즉 '콘서트 7080'이나, '열린 음악회',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은 프로그램은 늘 중견가수에 열려 있었다. 하지만 그 무대가 '나는 가수다'만큼 파괴력을 보이지 못한 것은 가수도 있고 노래도 있었지만 대중들의 귀를 준비시키는 프로그램의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듣는 음악을 지향하던 프로그램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라라라'나 '스페이스 공감' 같은 프로그램이 그랬다. 하지만 이들 프로그램은 자정에 편성됨으로써 대중들의 주목에서 멀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가수다'가 성공한 비결은 바로 이 프로그램 형식을 통해서나, 편성시간대를 통해서나 대중들의 TV를 통해 음악을 듣는 귀를 되살려놓은 것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더키앙

가수 인순이, 극중 박인순 그리고 모두의 인순이

편견을 넘어 날아간 거위, 인순이
그녀는 혼혈아다. 물론 자신이 선택한 일은 아니지만 사회는 그녀를 냉대했다. 피부색이 다르고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게다가 그녀는 제대로 공부를 하지도 못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것이 전부. 고등학교는 그녀의 꿈이었다. 노래를 한다는 것도 그 당시엔 딴따라라 불리는 또 하나의 비아냥이었다. 피부색, 인종, 학력, 직업. 그녀는 우리네 사회가 가진 모든 편견을 다 받아내야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포기하려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노래가 있었다. 때론 아픔을 달래주고 때론 그 아픈 마음을 타인에게 전해주는 노래. 그녀는 노래에 자신의 삶과 열정을 고스란히 담아 세상에 날려보냈다. 그런데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편견으로 가득한 이 사회가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기 시작한 것이다. 혼혈아가 아니고, 못 배운 중졸 혹은 딴따라가 아닌 인순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그녀의 마음이 담긴 노래는 세상의 편견을 녹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가 부른 ‘거위의 꿈’은 10년 전, 이적이 만들고 불렀던 곡이지만, 긴 시간을 돌아 노래 주인을 찾아왔고, 덕지덕지 편견의 족쇄에 묶인 채 날지 못했던 거위는 세상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 그녀가 날자 세상 저편에서 푸드득하고 변화의 날갯짓 소리가 메아리로 울려왔다.

전과자도 스타도 아닌 자기 이름 박인순
같은 이름을 가진 KBS 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에서 인순이는 전과자다. 고등학교 때 실수로 친구를 죽였다는 죄로(물론 후에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지만) 교도소에도 갔다. 긴 수감생활 끝에 수갑을 벗고 사회에 나왔지만 사회는 그 수갑을 벗겨주지 않았다. 엄마도 없고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정붙일 곳 없는 처지에 직업마저도 가질 수 없는 절망감 속에서 자살을 선택하려 하지만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 그 누구도 불러주지 않을 것 같던 자신의 이름을 누군가 부른 것이다. 그는 다름 아닌 어린 시절 둘도 없는 친구 상우다.

상우를 통해 다시 살게된 인순이는 어린 시절 자신을 떠났던 엄마를 다시 만나 새 삶을 시작하지만 편견은 바깥 세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전과자라는 사실을 엄마조차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선택하려던 자살. 그 때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난다. 플랫폼 밑으로 떨어진 취객을 구하게된 인순이는 순식간에 ‘지하철녀’란 이름으로 스타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인순이가 불려지길 원하는 이름은 전과자도 아니고 스타도 아니다. 그저 자기 이름 박인순일 뿐이다.

두 인순이가 만나는 순간, ‘거위의 꿈’
‘인순이는 예쁘다’에서 이 두 인순이가 만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지하철녀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박인순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가수 인순이의 ‘거위의 꿈’을 부를 때이다. 노래는 형편없다 못해 방송사고 수준. 짤막하게 부르고 끝냈어야 할 그 노래를 그녀는 끝까지 불러버린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그만’ 끝까지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노래부르게 했을까.

이 ‘나도 모르게 그만’은 그러나 드라마 속 음치인 박인순에게만 일어났던 일이 아니다. 그것은 노래 잘하기로 소문난 그녀, 가수 인순이에게서도 벌어졌다. 지난해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의 일이다. 조금은 피곤한 듯한 얼굴과 목소리로 그녀는 말했다. “꿈은 이루어진다. 노력하는 자한테만. 여러분, 꿈을 꾸십시오. 꿈을 이루십시오. 그리고 꿈을 지키십시오. 그리고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리곤 시작된 ‘거위의 꿈’. 그녀는 음악 자체에 푹 빠진 채 노래를 열창했다. 그러다 “이 무거운 세상도-”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만 짧은 순간 음을 놓쳤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였을 것이다. 그 노래를 하는 그 때 그녀는 이 짧은 노래 속에서 수십 년 간 ‘자신을 묶어두었던 무거운 세상’을 느꼈을 것이다. 차마 눈물을 보이지 못해 담담히 인사하고 불빛이 쏟아지는 무대 밖으로 나갈 때 언뜻 눈물을 훔치는 그녀의 모습이 실루엣으로 잡혔다.

인순이는 정말 예쁘다
드라마 속 박인순을 엉망이지만 끝까지 노래하게 한 것도, 가수 인순이가 노래에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담아 노래를 하다 끝내 음정을 놓치고 눈물을 흘리게 한 것도 모두 그 ‘거위의 꿈’이 전하는 진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상의 편견에 찢겨지고 남루해도 보물처럼 간직했던 꿈, 누군가 뜻 모를 비웃음을 날리기도 했던 꿈, 이미 바꿀 수 없는 운명 같은 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헛된 것이라고, 독이 될 뿐이라고 말하던 꿈. 그 꿈 하나 부여잡고, 벽처럼 서 있는 편견 가득한 무거운 세상 앞에 서 있는 자신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순이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또한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꿈을 갖고 그것을 이루려 살아가던 자기 자신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져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꿈은 멀고 현실은 너무나 무겁기에 우리는 종종 자격지심과 우월감으로 ‘꿈을 가진 나’를 버리려 한다. 그 나를 폄하하거나 과장하려 한다. 그럴 때면 한번쯤 자신으로 돌아와 남루한 실력이나마 자신만의 ‘거위의 꿈’을 불러보는 건 어떨까.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인순이’는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인순이는 정말 예쁘다.
(위 글은 '한국원자력연구원 사보 '원우'에 실린 글입니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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