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문래동을 열정과 휴식으로 정리해낸다는 건

 

문래동을 찾아간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퀸의 ‘Don’t stop me now’가 깔리며 그 곳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의 면면과 함께 시작되었다. 부제 역시 ‘Don’t stop me now‘로 찍혀 있어 오래된 철공소들이 많은 문래동의 풍경은 새삼스런 의미가 더해진다. 지금도 여전히 열정을 불태우며 일하고 싶은 그 곳 사장님들의 목소리가 그 노래와 제목에 그대로 담겨있는 듯 하다.

 

IMF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무수한 철공소들이 도산을 하기도 했던 그 곳이다. 살아남은 분들도 요즘 “경기가 안 좋다”며 힘든 현실을 애써 짓는 웃음과 함께 전하셨다. 한 편으로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점점 치솟는 임대료 때문에 밀려난 예술가들이 그 곳의 빈 철공소를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동네의 독특한 문화적 향기가 더해져 삭막해보였던 철공소들의 풍경은 문래동만의 새로운 색깔이 되었다. ‘Don’t stop me now‘라는 부제는 그래서 오래도록 그 곳을 지켜온 철공소 사장님들과 이곳으로 밀려오게 된 가난한 예술가들을 모두 끌어안는 제목처럼 보였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편집과 자막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람여행’을 지향하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그 곳에서 만난 분들은 문래동의 현재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처음 인터뷰한 철공소 사장님은 IMF가 터지면서 지금껏 어려운 현실을 담담히 토로했다. 아들이 대만에 있는데도 가보지를 못했다는 사장님은 퀴즈를 맞혀 획득한 100만원으로 아들을 만나러 가겠다고 했다. 두 번째 인터뷰는 작업실에서 일하는 작가였다. 예술가로서의 삶을 선택했지만 그 역시 현실적으로는 “돈 생각하지 않고 창작활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문래동을 채우고 있는 두 부류의 인물군들이 처한 현실을 이 두 인물을 통해 간단하지만 효과적으로 전해준 것.

 

그 곳에서 만난 이제 20대의 젊은 철공소 사장은 그래도 그 곳에 어떤 희망 같은 것을 발견하게 했다. 젊은 나이에 철공소 일을 선뜻 선택한다는 것이 쉽지 않아보였지만, 그는 아버지가 그 일을 땀 흘리며 밤늦게까지 집중해 하시는 모습을 보며 그 일을 선택했다고 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멋있게 느껴졌다는 것. 오래도록 그 일을 해온 아버지의 거래처 분들이 일을 주시면서 잘 한다고 칭찬도 해준다고 밝힌 그 청년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문래동 철공소에도 여전히 미래가 가능하다는 걸 잘 보여줬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그러면서 그 곳에서 만난 분들에게 일관된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지금 당장 ‘열정’과 ‘휴식’ 중에 선택하라고 하면 무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어떤 분은 아직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며 열정을 선택했고 어떤 분은 그만큼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좀 쉬엄쉬엄 하며 살아야 한다며 휴식을 선택했다. 별 거 아닌 질문처럼 보이지만 이 질문은 답변을 해주는 이들의 현재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어떤 답변을 하든 그 문래동에서 살아가는 분들이 모두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걸 바탕에 깔고 있었다. 열정을 말하는 분들이라면 앞으로도 더 열심히 살겠다는 뜻일 테고, 휴식을 말하는 분들이라면 그간 열심히 살아왔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흥미롭게도 이 열정과 휴식이라는 두 단어는 문래동을 잘 표징하는 말처럼 다가왔다. 한쪽에서는 기계가 돌아가며 땀과 불꽃이 튀는 열정이 묻어나고, 그렇기 때문에 가끔은 휴식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예술적 여유들이 묻어나는 곳. 문래동은 그런 풍경이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대단히 큰 시청률을 내고 있지는 않지만 시청자들의 호감을 사고 있는 데는 이 프로그램만이 가진 자막과 편집의 힘을 빼놓을 수 없다. 길거리에 무작정 나가 사람을 만나는 프로그램이다. 우연적인 만남이 이어지는 그 곳에서 어떤 의도나 계획적인 영상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법이다. 다만 찍기 전 그래도 일관적인 어떤 흐름을 가질 수 있는 ‘질문’을 준비할 뿐이고, 찍어온 후 편집과 자막을 통해 그 날의 이야기에 일관성을 집어넣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문래동을 찾아가며 열정과 휴식이라는 두 키워드를 들고 간 것이나, 그 곳에서 만난 분들의 이야기를 그 두 키워드로 묶어낼 수 있는 편집과 자막은 이 프로그램이 가진 저력의 원천으로 보인다. 메인 작가가 만만찮은 역량을 가진 이라는 게 프로그램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 아마도 관찰카메라 시대에 작가의 가장 큰 덕목이라면 그 우연적 영상들 속에서 의미망을 찾아내고 묶어내는 것이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보고 읽고 느끼는 맛이 분명한 프로그램이다.(사진:tvN)

맥주 한 캔 나눠 마시는 짜릿함, '거기가'가 발견한 소확행

KBS 예능 프로그램 <거기가 어딘데??>에는 자막에도 그림자를 만들어 넣는다. 사실 처음 이 그림자가 들어간 자막을 봤을 때는 그저 디자인적인 표현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사막 횡단이 본격화되면서 그것이 그저 디자인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제작진도 똑같이 경험했던 그 사막의 땡볕 속에서 한 자락의 그늘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시청자들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막을 걸어서 횡단하는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해 보이는 ‘탐험’이고,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으로서도 특별한 재미요소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가 어딘데??>는 그 단순함 속에 담겨진 의외의 관전 포인트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한낮이면 심지어 50도까지 올라가는 사막의 기후 때문이다. 사실상 그 온도에 사막을 걷는다는 건 생존이 위험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햇볕을 최대한 피해서 걸어야 하고, 작은 그늘이라도 찾아야만 비로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이건 단순해 보이는 사막 탐험의 명제지만, 그것을 실행해가는 탐험대에게는 매 순간의 작은 선택들 하나도 예사롭지 않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대장의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지진희는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무지를 해가 떠오르기 전에 주파해 가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강행군을 펼치지만, 언덕을 넘으면 나타날 거라 기대했던 나무가 하나도 보이지 않아 멘붕에 빠진다. 기대와 실망의 반복은 자칫 의지 자체를 꺾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그걸 버티게 해주는 건 다름 아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지진희 옆에는 계속해서 웃을 수 있게 농담을 던지는 조세호와, 어딘지 힘에 부쳐 보이지만 그래도 끝없이 허세를 부리는 배정남과 묵묵히 동생들을 챙기는 차태현이 있었다. 게다가 이들을 찍는 제작진도 어찌 보면 대장의 책임이기도 했다. 

그 책임감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힘든 길을 앞장서 나가 그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는 지진희의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 그리고 지진희가 이렇게 길을 개척해나가는 과정은 <거기가 어딘데??>가 가진 독특한 재미 포인트이기도 했다. 사막 탐험의 어려운 조건들을 하나씩 뛰어넘어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보여주는 흥미로움이다.

특히 사막은 작은 것들도 더 큰 울림으로 돌아오는 특유한 환경일 수 있었다. 도시에서라면 별로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나무 한 그루, 그늘 한 자락이 사막에서는 엄청난 의미로 다가왔다. 일종의 거점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그 나무 그늘이었기 때문이다. 제작진이 편집에서조차 자막에 그늘을 넣어준 건 그런 의미였다.

또 1등으로 들어온 멤버에게 특혜를 주겠다고 선언한 제작진에게 지진희와 차태현이 각각 요구한 시원한 맥주와 콜라는 사막에서 마시니 그 시원함이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한 모금씩을 나눠 마시면서도 도시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소중함이 느껴졌던 것. 이른바 ‘소확행’이라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멀리 있는 큰 행복이 아니라 작아도 가까이 있는 확실한 행복.

이것은 웃음에 있어서도 똑같이 작용했다. 결코 웃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고, 심지어 ‘죽는다’는 얘기가 너무 많이 나오게 되는 그런 환경이 아닌가. 그래서인지 그 곳에서 조세호와 배정남이 나누는 작은 농담들도 더 큰 웃음으로 돌아왔다. 

왜 이 프로그램에 합류하게 됐냐는 지진희의 질문에 조세호는 자신이 가진 고민이 있는데 거기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사막은 어쩌면 그 답을 전해주고 있는지 모른다. 당장 생존하기 위해 그늘을 찾는 일에 열중하면서 도시에서 가졌던 그 많은 고민들은 조금씩 지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게 따로 있을까. <거기가 어딘데??>가 사막에서 찾아낸 행복은 이런 자막으로 정리된다. ‘행복은 결핍을 통해 선명해진다.’(사진:KBS)

‘거기가 어딘데??’, 황량한 사막? 가득 채워진 사색거리들

사막하면 떠오르는 건 아마도 ‘황량함’이 아닐까. 아무 것도 없고 버석버석한 모래만 밟히고 씹히는 그 곳을 횡단한다는 KBS 예능 <거기가 어딘데??>의 도전은 그래서 무모해 보인다. 제아무리 뭔가를 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것이 예능의 새 트렌드라고 하지만 사막이라는 황량한 곳을, 그것도 폭염 속에서 걸어 나가는 과정을 예능 프로그램으로 담는다는 게 무리하게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유호진 PD가 굳이 사막을 선택한 건 그 비워진 만큼 채워지는 것 또한 넉넉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나누는 대화라면 그다지 주목되지 않을 이야기도 사막에서 걸으며 나누니 남다른 의미가 더해진다. 물론 이 곳에서 나누는 농담은 툭하면 나오는 ‘죽음’이야기와 더해져 웃음 또한 커진다. 희비극은 마치 동전의 양면 같아서 서로 가까이 붙어 있을 때 그 이면을 더 도드라지게 하는 법이다. 사막은 그 희비극이 교차하는 공간이 되어준다. 

비워진 만큼 채워지는 것 역시 넉넉하다는 걸 가장 잘 보여주는 건 이 프로그램의 자막이다. 사막이 배경이기 때문에 유독 잘 보이는 자막들은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재치 있는 유머도 깔려 있지만, 사막이라는 환경 속에서 누구나 사색적일 수 있는 의미 있는 글귀들이 만들어내는 울림도 들어 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마치 사막이라는 빈 원고지에 하나하나 사색의 글을 적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스스로 번지점프 티켓을 샀어도 뛸 차례가 다가오는 건 달갑지 않다.’ 이런 공감 가는 문구로 시작한 3회 분은 ‘왜 굳이 황량한 땡볕을 걸으러 온 걸까’ 같은 질문을 더하고, ‘이제 도로를 벗어나 이름 없는 땅으로 들어갈 시간’을 적어 넣은 후, ‘이제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음’이란 글귀로 이들이 드디어 사막횡단의 시작점에 들어서 있다는 걸 알린다. 

해가 중천에 떠 있어 그림자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 시각. 여정의 시작에 월프레드 세시저가 쓴 아라비아 사막 횡단기 ‘절대를 찾아서’의 한 대목이 소개된다. ‘우리 주위로는 훤히 드러난 지구의 뼈가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모래에 씻겨지고 있었다’ 사막이 어떤 곳인가를 잘 드러내는 그 글귀를 통해 ‘모든 안락함’이 40킬로 저편에 있는 여정이 드디어 시작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는 것.

하지만 이러한 사막횡단이 갖는 진중한 무게감은 살짝만 뒤틀어내면 웃음으로 바뀌기도 한다. 걷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자신의 지병을 토로하는 조세호의 모습이 그렇다. 그는 자신이 ‘평발’이라고 털어놓고 이어 ‘햇볕 알레르기’가 있다는 두 번째 지병을 고백(?)한다. 걸어가야 할 길이 한참 남은 이제 시작점이기 때문에 그런 갑작스런 지병 고백은 웃음을 준다. 말하는 걸 좋아하고 힘들 때도 긍정적인 걸 먼저 떠올린다고 말하는 조세호가 잠시 후 급격히 말이 줄어든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깨알 같은 웃음을 만든다. 짐짓 비장하게 “탐험이라고 하는 것은 누가 정해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름대로 목표를(말을 못 맺음)..”이라며 무언가 명언을 할 것처럼 하다 결론을 못 맺는 조세호의 모습은 사막이 주는 진지함과 그럼에도 보여지는 현실 사이의 괴리를 드러냄으로써 사색과 웃음을 동시에 가능하게 한다.

사막 횡단을 시작한 지 1시간 정도가 지나자 모두 그 혹독한 환경에 지쳐간다. 차태현은 일행을 살짝 벗어나 모래를 피해 걷기 시작하고 배정남은 동행하는 베두인에게 알아들을 수 있을지 모를 하소연을 하고 베두인은 노래를 부르며 그 지친 환경 속에서 버텨내려 한다. 그 때 붙은 ‘사막 횡단 1시간 저마다의 방식을 찾아간다’라는 자막은 그 풍경을 설명하는 것이면서 마치 우리가 사는 삶의 이야기를 은유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사는 모습도 저렇지 않을까.

베두인이 사막 한 가운데서 기도를 하는 장면에 더해지는 ‘베두인의 삶은 무척 고되다. 이방인은 물론 그 곳에서 자란 사람에게도 무시무시할 정도이다. 그것은 삶 속의 죽음과 같다.’ 같은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말이 들어간 자막 역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삶 속의 죽음’. 우리는 인정하지 않고 마치 없는 듯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가 껴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 그것이 죽음이 아니던가.

뱀이 새를 잡아먹는 기이한 장면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 장면을 덧붙이기 위해 유호진 PD가 요청해 즉석에서 보여주는 조세호의 과장된 연기는 사막 한 가운데서도 유쾌한 웃음을 만든다. 해가 살짝 저물어 온도가 38도로 떨어지자 “감기 들겠다”고 말하는 지진희의 한 마디가 만드는 웃음은 ‘삶 속의 죽음’이 있지만 ‘죽음 속에 삶’ 역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온도가 내려가면서 비로소 보이는 사막의 절경에 감탄하는 출연자들과 함께 ‘사막은 가혹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곳’이라 더해진 자막 역시 저 아이러니한 희비극의 공존을 잘 표현한다. 이런 곳이라면 어떤 이야기도 ‘사색적’이 될 수밖에 없다. 문득 지진희가 “우리가 탐험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을 때 차태현과 조세호가 내놓은 이야기가 너무나 철학적으로 다가온 건 그래서다.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잖아. 항상 사람은 생각한대로 하고 싶잖아. 계획대로 되고 싶고. 근데 계획대로 된 건 진짜 별로 없는 것 같아. 그렇게 했을 때(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좀 더 기분이 좋은?” 그러자 그 이야기에 조세호가 자신의 경험을 덧붙인다. “태현이 형 얘기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신인 개그맨 때는 욕심이 많았는데 일이 없으니까 자꾸 포기를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순간 욕심을 안내봤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기회들이 또 오더라고요. 희한하게.” 

사막은 ‘평범한 사람도 사색을 하게 하는 땅’이다. 또 ‘익숙한 것들로부터 멀리 떠나온 대신 신비로운 오후가 자리를 채우는’ 곳이다. “당연히 모래밭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물이 있고 풀이 있고 나무도 있었다”며 놀랍다는 지진희의 이야기는 고스란히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에서 느끼는 대목 그대로다. 사막은 황량하고 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그 곳은 더 많은 사색거리와 이야기들을 채워주고 있으니.(사진:KBS)

변화 없는 주말예능, ‘두니아’가 가져온 신박한 낯설음

적어도 새로움 하나만으로 보면 MBC 새 주말예능 <두니아>의 실험은 독보적이다. 그건 그 시간대의 지상파 주말예능들과 비교해보면 단박에 드러난다. KBS <1박2일>, SBS <런닝맨>은 한 마디로 장수예능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한 시대를 지나왔고,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MBC <복면가왕> 역시 이제는 오래된 트렌드인 육아예능과 음악예능이다. 새로 시작한 SBS <집사부일체>가 그나마 이 시대의 스승을 찾아가 이런 저런 체험과 이야기를 나누는 새 프로그램이지만, 그 형식이 새롭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두니아>는 다르다. ‘언리얼’을 주창한 것처럼, 이 예능 프로그램은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새롭다. 물론 그 낯설음은 “도대체 저게 뭐지?”하고 물을 정도로 적응이 쉽지 않은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처음 만난 세계’라는 부제는 이 프로그램이 스스로 그 낯설음을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건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으로서는 실로 처음 만난 세계처럼 익숙하지 않다. 

그 이유는 단지 도시에서 지내던 이들이 문득 두니아라는 곳으로 워프하게 되고 그 곳에서 생존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유노윤호는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정혜성은 광화문 광장에서, 우주소녀 루다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권현빈은 PC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두니아라는 곳으로 소환된다. 그것은 실제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설정일 수밖에 없다. 그들이 두니아라는 공간에 떨어져서 겪는 일정 부분의 일들은 실제가 아닌 연기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연기가 미묘하게 실제와 연관되어 있다. 두니아라는 공간에 떨어지게 되고 저 나름대로 거기서 살아나가야 하며 어느 공간으로 이동해 다른 이들과 합류해야 한다는 것이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인위적인 설정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나면 나머지 부분은 그들 스스로 채워나가야 한다. 바로 이 채워야 되는 경험적 부분들은 연기가 아닌 실제 리액션이 담겨지게 된다. 

프로그램이 미적 형식으로 차용하고 있는 게임의 틀은 바로 이런 가상과 현실이 더해진 두니아라는 공간이 바로 게임 속이라는 걸 드러내준다. 아마도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대단히 낯설게 다가왔을 두니아라는 공간은, 게임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을 게다. 결국 게임이라는 것이 가상공간을 스스로 인정함으로써 몰입이 가능한 것이고, 그 안에서 하는 자신의 행위는 일정한 목표는 정해져 있지만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에 따라 달라지는 리얼한 일들이 아닌가. 

<두니아>는 그 낯설음을 상쇄시키기 위해 첫 회부터 마치 게임을 연상시키는 자막과 편집을 연출의 틀로 제시했다. 마치 AI 모드가 작동되고 있는 것처럼 출연자가 어떤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자막이 다소 ‘병맛 코드’의 유머 섞인 멘트들을 덧붙인다. 자신을 보호할 나무 하나를 구하는 것도 아이템을 얻는 게임 속 방식으로 편집되어 보여지고, 심지어 멘트 없이 탐험에만 열중하는 권현빈에게는 ‘방송분량’을 걱정하는 자막이 더해진다.

<두니아>의 세계가 낯설면서도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이런 게임 속 세상을 경험하면서 느끼던 감정들을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게임을 하면서 우리는 가상과 현실을 오고간다. 가상의 세계에 몰입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몰입하는 자신을 현실적으로 바라보며 다른 유저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를테면 유노윤호가 보여주는 과한 몰입에 연기와 실제가 섞여있다는 걸 보여주는 자막이 그렇다. 리얼한 상황 속에서 언리얼한 개입이 들어갔을 때 웃음이 터지고, 또 언리얼한 상황이지만 과하게 리얼한 몰입을 하는 출연자에게서 웃음이 터지는 이유다.

물론 이 ‘처음 만난 세계’는 지상파 예능들의 현 주소라고 할 수 있는 주말예능 시간대에서 더더욱 이질적인 존재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런 점은 첫 방 시청률 3.5%라는 수치를 통해 드러난다. 하지만 적어도 이 새로운 세계가 변화 없는 주말예능에 ‘돌연변이’ 같은 신박한 자극을 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연 시청자들은 이 실험에 손을 들어줄까. 처음엔 낯설어도 기꺼이 적응기를 가지며 즐거움을 찾아내줄까. 대부분의 게임 적응기가 초반엔 어색하지만 차츰 몰입을 통해 더 큰 즐거움을 찾아주듯이.(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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