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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성과 작품성, 그 어려운 두 마리 토끼 잡은 ‘도깨비’

드라마는 끝났지만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내지 않았다.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는 종영 후에도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서고 있다. 사드 배치 문제로 한류의 물길이 막혀 버린 중국에서조차 열풍을 만들고 있다는 소식이 타전되어 오고, 김은숙 작가의 회당 원고료가 최고 수준이라는 기사도 흘러나온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이 드라마의 출연자들에 대한 반응도 폭발적이다. 그 중심에 선 공유는 이미 대세 배우로 자리매김했고 이동욱은 이 작품 속 저승사자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해내면서 인생 캐릭터를 얻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은교>로 다소 파격적으로 데뷔한 김고은은 그 이미지를 이 작품을 통해 온전히 지워버렸고, 사드 배치의 여파로 중국 드라마에서 배제되는 아픔을 겪었던 유인나는 이 드라마로 만들어낸 확고한 존재감으로 한판 통쾌한 복수극을 보여줬다. 

놀라운 건 <도깨비>에 대한 열광이 사실상 모든 걸 허용하는 듯한 분위기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은숙 작가의 회당 원고료가 7,8천만 원에 달한다는 확실한 진위를 알 수 없는 기사 내용에도 그 반응이 “받을 만 하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드라마가 막바지에 이르러 완성도 높은 엔딩을 위해 한 회를 쉰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도깨비>라면 한 회 쉬어도 된다”는 반응이 나왔던 그 정서와 유사하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런 원고료 이야기나 한 회를 못 보는 상황에 대해 시청자들의 반응이 곱지만은 않았을 터다. 

작가와 배우들에 대한 반응을 넘어서 이제는 이 작품의 완성도 높은 영상을 만들어낸 이응복 PD에 대한 찬사도 쏟아지고 있다. 사실 <태양의 후예>를 통해 그 남다른 연출력이 주목을 받은 바 있지만, 이번 <도깨비>는 아름다운 미장센들이 영상미를 높여주었고, 판타지적인 이야기를 구현해낸 액션 신들도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나영석 PD, 김원석 PD에 이은 새로운 신세대 연출자로서 이응복 PD가 새롭게 대중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도깨비>가 사실상 모든 게 허용되는, 그래서 다른 작품이라면 논란이 될 수도 있는 부분마저 용인됐던 건 드라마 내적인 부분들도 적지 않다. 늘 제기된 PPL 문제만 봐도 그렇다. 이번 작품 역시 김은숙 작가는 곳곳에 PPL을 노출시켰다. 너무 과도한 면들까지 보였지만 그렇다고 이 문제가 도드라지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그만큼 작품의 완성도가 이러한 상업성들까지 덮을 만큼 출중했다는 뜻이다. 

드라마의 엔딩 역시 해피엔딩이냐 새드엔딩이냐에 따라 논란이 제기 되곤 하는 문제 중 하나다. <도깨비>는 해피엔딩이지만 그 안에 죽음과 환생이라는 코드를 넣음으로써 새드엔딩의 요소도 함께 집어넣었다. 그래서 해피엔딩이긴 하지만 어딘지 쓸쓸함이 담긴 끝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래서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을 두고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그 역시 큰 논란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사실상 ‘찬란한’ 해피엔딩과 ‘쓸쓸한’ 새드엔딩이 교차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는 통찰이 이 작품이 말하려는 것이고, 그것이 엔딩에도 잘 녹아들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도깨비>는 말 그대로 도깨비 같은 드라마가 되었다. 그 어렵다는 작품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껴안은 작품이 되었고, 그래서 자칫 논란이 될 수 있는 많은 소지들조차 오히려 시청자들이 ‘허용’하는 드라마가 되었다. “모든 것이 다 좋았다.” 드라마에 나온 이 대사의 표현대로, <도깨비>와 함께 모든 시간들이 다 좋았다고 시청자들은 말하고 있다.

Posted by 더키앙

tvN, 수목도 드라마 해주면 안돼요?

 

수목에도 드라마 해주면 안돼요? 최근 들어 인터넷 드라마 관련 게시판이나 댓글란에 들어가 보면 tvN에 이런 요청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tvN은 현재 월화와 금토에 드라마 편성을 하고 있지만 수목에는 편성이 되어 있지 않다.

 

'또 오해영(사진출처:tvN)'

tvN이 애초에 수목을 피해 월화 금토에 편성한 데는 지상파 드라마들과의 전면전을 피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그도 그럴 것이 수목은 지상파 드라마들의 자존심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지금은 월화에도 수목처럼 미니시리즈를 하는 지상파들도 많아졌지만 그래도 월화는 장편에 해당하는 대하사극이나 연속극들이 편성되기 일쑤였다. 장편이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16부작 전후로 되어 있는 미니시리즈가 완성도나 밀도가 높은 건 사실이다.

 

그러니 지상파 드라마의 어떤 성과를 이야기할 때 수목드라마에 대한 기대치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아무리 시청률과 화제성이 높아도 수목드라마의 성공이 주는 상징성이 훨씬 크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KBS가 그간 그토록 부진을 면치 못하다 <태양의 후예> 한 편으로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었던 데도 그 편성시간이 수목에 들어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최근 지상파 드라마들은 월화는 물론이고 수목까지 그다지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는 드라마들을 내보이지 못하고 있다. 월화의 SBS <대박>, MBC <몬스터> 같은 대작이 KBS <동네변호사 조들호>에 밀리는 상황은 덩치만 컸지 이렇다 할 완성도와 작품성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목도 마찬가지다. KBS <국수의 신><태양의 후예>로 기대감이 높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시청률 꼴찌에 화제성도 별로인데다, SBS <딴따라>는 따뜻한 드라마이긴 하지만 미지근한 느낌으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새로 시작한 MBC <운빨로맨스>는 기대는 컸지만 역시 그 기대를 충분히 채워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나오는 이야기다. tvN이 수목도 드라마를 해주면 안되냐고. 사실 월화에 편성된 <또 오해영>은 별반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이지만 의외로 대중들의 호평을 받으며 시청률 대박을 터트렸다. 최고 시청률 7.7%(닐슨 코리아). 케이블이라는 성격을 감안해 보면 이 정도의 성적은 지상파 드라마의 대박 성적에 버금가는 기록이다. 화제성 또한 높은 이 드라마는 연일 관련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정도면 tvN이 월화드라마 편성 시간대를 어느 정도는 확보했다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금토는 tvN 드라마의 황금시간대가 됐다. <시그널>에 이어 <기억>이 큰 호평을 받았고 이어지고 있는 <디어 마이 프렌즈> 역시 괜찮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tvN 금토드라마의 특징은 시청률에 집착하기보다는 일정한 완성도의 성취를 가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시간대의 tvN드라마는 지금 현재 전체 드라마 지형도를 바꾸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접한 시청자들은 이제 그저 감안하고 봐왔던 지상파 드라마에 대한 눈높이 또한 높이고 있다.

 

이런 요청이 말해주는 것처럼, 만일 실제로 tvN이 수목드라마 대결에 동참하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런 요청이 그저 목소리만 아니라 실제로 이뤄지길 기대하는 까닭은 그것이 지상파 드라마들까지를 포함해 드라마 전체의 완성도와 작품성을 높여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Posted by 더키앙

<왕가네>를 통해 보는 가족주의의 해체

 

저렇게 될 줄 알았지. 시작부터 나 미스코리아 나갔던 여자야를 외치며 온갖 민폐를 끼치던 왕수박(오현경)이 집을 나와 식당에 취직했다가 쫓겨나고 노숙자처럼 길거리를 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마도 많은 시청자들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왕가네 식구들>이 이제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왕가네 가족들에게 패악질 하던 캐릭터들이 이제 권선징악, 개과천선의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것 또한 시청자들이 예상 못했던 일은 아닐 것이다.

 

'왕가네 식구들(사진출처:KBS)'

수박이 동생 호박(이태란)을 만나 오늘이 아부지 생신이라며 돈 봉투를 전하는 장면이나 호박아, 너하고 광박이한테 정말 고맙다. 집도 얻어주고. 난 맏이 노릇도 못하고 못난 짓만 하는데라는 대사를 던지는 것도 그래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사실 <왕가네 식구들>의 등장인물들이 수박과 호박이라는 이름으로 정해진 순간부터 예정된 일이다. 즉 수박이 엄마로부터 편애를 받고 비뚤어지는 인물이며 호박이 구박을 받으나 결국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인물이라는 것은 이름에 나타나 있다.

 

문영남 작가의 등장인물 작명 방식은 주말드라마의 공식과 패턴을 잘 드러낸다. 즉 아버지 왕봉(장용)은 가족의 봉이고, 이앙금(김해숙)은 마음 속 앙금으로 비뚤어진 엄마이며, 수박의 남편인 고민중(조성하)은 이혼을 고민하게 되는 캐릭터이고 호박의 남편 허세달(오만석)은 실속 없이 허세만 가득한 민폐형 캐릭터다. 마치 RPG 게임처럼 시청자들은 이들 앞으로의 전개를 예감케 하는 이름의 캐릭터들이 벌이는 마인드 게임에 들어가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름이 정해지는 순간부터 <왕가네 식구들>의 이야기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기치 못한 전개나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의미의 발견 같은 것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권선징악이나 가족이 최고같은 누구나 다 아는 가치의 반복이면서 비슷비슷한 가족드라마 전개의 반복이지만 그래도 시청률이 45%에 육박하는 놀라운 수치다.

 

물론 막장드라마를 통해서 흔히 봐왔듯이 시청률과 완성도 혹은 작품성에는 아무런 비례관계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재 드라마의 평균적인 시청률이 10%대이고 20%를 넘기면 성공작으로 치부되는 시대에 무려 50%를 넘보는 시청률을 내고 있다는 것은 작품성과 상관없이 이 시간대의 드라마가 보여주는 사회적인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도대체 무엇이 이 시간대의 가족드라마에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걸까.

 

<왕가네 식구들>만이 아닌 이 시간대의 KBS 주말극이 일정하게 높은 시청률을 내왔다는 것은 작품 그 자체보다 이 시간대가 가진 프리미엄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시청자들은 무슨 일인지 이 시간대에 KBS 주말극에 채널을 고정시키고 있다. 거기에는 편안한 기대감이 있고 그 기대감을 적절히 배반하다가도 채워주는 말 그대로 시청자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하는 드라마의 공식이 있다. 그 공식을 시청자들이 모르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알기 때문에 즐기는 면이 더 크다. 마치 한 시간 동안 벌어지는 게임처럼.

 

여기에는 이 시간대의 주말드라마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가족주의가 큰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즉 최근 주중 드라마들을 보면 가족주의보다는 해체되는 가족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등장한다.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불륜을 통해 결혼이라는 제도의 불완전함을 얘기하고, <미스코리아><별에서 온 그대> 같은 작품은 가족이 등장하긴 하지만 가족과는 상관없는 이야기 전개가 대부분이다. 최근 종편이나 케이블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들도 그렇다. 물론 시대극을 다루고 있는 <맏이>는 예외가 되겠지만(이 드라마 역시 과거 가족에 대한 향수를 다룬다는 점에서 현 가족의 해체를 역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로맨스가 필요해3><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같은 드라마들은 가족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더 추구한다.

 

결국 작금의 현실에서 가족은 과거 같은 가족드라마 틀로는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는 변화를 겪고 있다. 늘 가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던 김수현 작가마저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는 결혼에 대한 회의적인 담론들을 담고 있다. 이 드라마가 시청률이 저조한 이유는 김수현 작가의 팬들이라면 기대하기 마련인 가족주의의 틀을 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족의 해체가 드라마에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보면 <왕가네 식구들> 같은 KBS 주말드라마의 성공은 거꾸로 가족주의에 대한 판타지를 이어가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영남 작가의 드라마가 과도한 민폐 캐릭터 때문에 막장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높은 시청률을 이어가는 것은 결국 이 민폐 캐릭터가 권선징악의 형태로 결말을 맞을 것이며 또한 가족이라는 오히려 더 공고해진 틀 속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시청자들은 안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가네 식구들>을 보다보면 해체되어가는 가족주의에 대한 지독한 향수와 반발을 느끼게 된다. 거기 등장하는 민폐 캐릭터들은 그것을 촉발시키는 촉매제인 셈이다. 그들을 미워하고 욕하고 결국은 용서하고 다시 끌어안는 동안 우리는 가족은 여전히 지켜져야 할 최후의 보루라고 느끼게 되는 것. 하지만 이러한 안간힘은 이 시간대가 마치 유일하게 남은 가족주의의 성전처럼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뻔하고 식상해도 자꾸만 되새기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Posted by 더키앙


대본, 연기, 연출 뭐하나 만족되지 않는 '해품달'

'해를 품은 달'(사진출처:MBC)

'해를 품은 달'의 뜬금없는 장면 하나. 자신의 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장본인이 바로 자신의 처인 민화공주(남보라)임을 알고 허탈해 하는 허염(송재희)에게 갑자기 자객들이 나타난다. 이 자객들은 윤대형(김응수)측이 보낸 것이라는 암시만 있을 뿐 누가 보낸 것도 분명하지 않을뿐더러, 보낸 이유조차 애매하다. 애초부터 이렇게 자객을 보내 죽일 거였다면 굳이 그에게 민화공주가 자신의 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사실을 편지로 보낸 이유는 뭔가. 이 스토리는 어딘지 매끄럽지가 못하고 억지스러운 구석이 많다.

즉 허염이 모든 사실을 알고 민화공주를 질책하는 장면이 필요한데, 그 사실을 알리는 방법으로서 윤대형을 활용한 것이라고밖에 보기가 어렵다. 그런데 뜬금없는 장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허염을 해치려는 자객들 앞으로 갑자기 설(윤승아)이 등장해 그들을 가로막는다. 결국 자객들과 싸우다 칼에 맞고 쓰러지는데, 또 여기서 느닷없이 운(송재림)이 나타나 나머지 자객들을 모두 물리친다. 물론 운의 갑작스런 등장은 후에 훤(김수현)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밝혀지지만 이것 역시 훤이 왜 그런 지시를 내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그럴 듯한 이유는 별로 없다.

즉 이 장면은 허염 앞에서 설이 죽는 장면이 필요하고 또 그러면서도 허염은 죽일 수 없기 때문에 운을 등장시킨 것이라고 밖에 설명이 안 된다. 이런 식의 스토리 전개는 결말 부분 이 모든 드라마의 사건들이 해결되는 방식이다. 물론 훤이 양명군(정일우)을 통해 윤대형의 역모를 뒤집으려 계획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서 윤대형이 죽고, 그 순간에 중전(김민서)도 스스로 목을 매고, 양명군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식의 해결은 너무나 급작스럽고도 쉬운 선택이 아닐까. 결국 문제의 해결을 작가가 나서서 했다는 인상이 짙다. 이것은 저 그리스 비극에서 좋지 않은 극으로 지목되던 '데우스 엑스 마키나(갑작스럽게 신이 나타나 모든 걸 해결하는 방식)'를 떠올리게 한다. 캐릭터들이 스토리 속에서 저 스스로 살아 움직여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마치 작가가 체스놀이를 하듯 이리 던지고 저리 움직여 스토리를 이어가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의 취약점으로 지목되는 것은 연기력 부족이다. 설을 연기한 윤승아는 죽는 순간에서조차 감정 이입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어설픈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연기도 연기지만, 이 순간에 지루하게 던져지는 긴 대사로 인해 더더욱 몰입이 어려워졌다. 죽기 전에 할 말을 다 하는 이런 대사처리는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대왕대비 윤씨(김영애)에서도, 또 양명군의 죽음에서도 비슷하게 등장했는데, 주로 과거 신파극에서나 많이 쓰던 방식이다. 가뜩이나 연기 몰입이 안 되는 상황에 대사까지 이러니 발연기라는 얘기가 안 나올 수가 없다. 이런 연기력에 대한 문제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중견연기자들을 빼고는 대부분 해당되는 얘기일 것이다. 물론 아역 여진구와 김유정 그리고 김수현은 예외다.

그렇다면 연출력은 어떨까. 아역들이 연기하던 초반에는 판타지와 멜로가 뒤섞이는 괜찮은 장면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뒤쪽으로 갈수록 어딘지 어설퍼지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파업의 여파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모가 벌어지는 장면에서 고작 수십 명의 병사가 등장하는 건 좀 너무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나마 연출은 볼만한 구석들도 많았지만, 끝없이 옥의 티가 발견되는 등(시청자들은 그래도 이것조차 귀엽게 받아들이는 아량을 베풀었지만) 허점이 많이 드러났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해를 품은 달'의 미스테리는 바로 이런 부분에서 생겨난다. 대본이 앙상하고, 연기가 받쳐주지 않는데다가, 연출도 실수투성이였는데 어떻게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냈던 것일까. '해를 품은 달'은 작품의 완성도에 있어서 '뿌리 깊은 나무'에 훨씬 미치지 못했고, 퓨전사극의 참신함에 있어서 '바람의 화원'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청춘 멜로사극의 풋풋함에 있어서도 '성균관스캔들'을 넘어서지 못했다. 주제의식이 불분명한 이야기는 너무나 느슨했고, 좀 더 풋풋했어야 할 멜로의 정조는 신파조에 머물렀다. 그런데도 그 여타의 작품들이 도달하지 못한 40%라는 시청률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이것은 거꾸로 40%라는 시청률에 우리가 경도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만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40%의 시청률을 낸다고 해서 그만한 완성도의 작품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꽉 짜여진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뿌리 깊은 나무'의 시청률이 20% 언저리에 머물렀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해를 품은 달'의 40%라는 수치가 만들어낸 열광에는 다분히 착시현상이 있었다는 얘기다. 드라마 시청률이란 주지하다시피 중장년층의 시청률을 의미한 지 오래다. 따라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작품이라고 해서(그래서 시청률이 높다고 해서) 그 드라마의 질이 높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해를 품은 달'이 어떻게 중장년층의 입맛에 맞아떨어졌을까. 어쩌면 이 기묘한 사극의 성공은 바로 이 점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사극이라는 친숙한 장르가 갖는 착시현상이 그 한 가지였을 것이고, 사실은 중장년층에 익숙한 신파적인 멜로면서도 그 주인공들의 연령대가 낮았기 때문에 어딘지 세련되어있다는 착각을 주면서 동시에 '청춘'에 대한 향수를 불러왔다는 것이 또 한 가지 요인일 것이다. 기실 중장년층들이 요구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콘텐츠(신파, 느린 전개, 사극)이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구닥다리처럼 보이지 않는 포장(청춘멜로, 아역, 젊은 연기자)이 아닌가. 중장년층은 이제 그들 세대가 나와 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젊은 세대들이 전하는 그들이 젊었을 때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에 매료되곤 한다. 이것은 최근 복고를 내세우는 대부분의 트렌드들(예를 들면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복고풍 영화들 같은)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해를 품은 달'의 성공은 바로 이 기획의 성공이지 그것을 작품의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40%라는 시청률에 경도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양적인 것이 질적인 것을 담보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가지 않았는가. 물론 그렇다고 '해를 품은 달'에 반짝이는 순간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지루한 전개와 몰입을 방해하는 연기와 실수 연발의 연출은, 그 순간들마저 상쇄시켜버린다. 어쩌면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완성도는 떨어지는 '해를 품은 달'의 미스테리는 점점 신뢰하기 어려워지는 시청률 추산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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