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습니다... 박은빈의 한 마디 그 어떤 일침보다 아프다(‘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미친 상승세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5회 시청률이 9.1%(닐슨 코리아)를 기록했다. 첫 회 0.9%로 시작했던 드라마가 5회 만에 9%대라니. 이런 흐름이라면 10%도 돌파도 시간문제다. 현실과 판타지를 잘 엮어 장애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선과 희망 섞인 비전을 전하고 있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그래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는 건 고개가 끄덕여지는 일이지만, 이 정도면 신드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드라마의 무엇이 대중들의 정서를 건드린 걸까. 

 

그 단서는 5회에서 다뤄진 ‘법의 딜레마’라는 소재에서 찾아진다. 이화와 금강 두 ATM 회사가 저작권 문제로 소송을 벌이는 상황. 이화는 자신들의 ATM 기술을 독자 개발한 것으로 금강이 이를 무단으로 도용했다며 판매 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이화를 변호를 맡게 된 우영우(박은빈)는 이 사건을 함께 맡은 권민우(주종혁)의 도발로 점점 경쟁심을 갖게 되고 어떻게든 이겨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다. 급기야 이화가 그 기술을 독자 개발한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알아 차렸지만 승소를 위해 참고인을 연습까지 시켜 법정에 세운다. 

 

결국 가처분 소송에서 이화가 이기고 이로써 금강은 은행 거래처 계약이 대거 이화로 넘어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하지만 금강에서 가까스로 찾아낸 증거로 인해, 소송은 뒤집어진다. 이화의 기술이 독자적인 게 아니라, 미국에서 소개된 오픈 소스를 가져와 만든 거라는 진실이 밝혀진다. 결국 진실은 밝혀졌고 소송도 뒤집어졌지만 이화의 대표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오히려 득의만만한 표정이다. 그 사이 이미 계약을 다 했다는 것. 우영우는 자신이 한 짓이 승소를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한 회사를 나락에 빠뜨렸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결국 저는 이화 ATM이 법을 이용하도록 도와준 셈입니다. 실용신안권 출원도 가처분 신청도 모두 계약을 독접하기 위한 거짓된 행동이었는데 저는 그 행동을 말리지 못하고 오히려 도왔습니다. 게다가 저는 그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영우는 이화 ATM을 함께 방문했던 이준호(강태오)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그에게도 묻는다. “이화 ATM에 방문했을 때 이준호씨는 황두용 부장님과 배성철 팀장님이 진실을 말한다고 생각했습니까?” 

 

그 질문에 이준호도 선뜻 답을 못한다. 실제로 당시 팀장은 잔뜩 긴장해 있었고 손으로 허벅지를 쓸어내리면서 코끝을 긁는 등 드러나게 거짓말을 하는 모습이었다. 우영우는 아프지만 자신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꺼내놓는다. “결국 저는 진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저 자신을 속였던 겁니다. 이기고 싶어서요.” 그러면서 울먹이며 말한다. “부끄럽습니다.”

 

이 장면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그리고 있는 세계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즉 누구든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중요한 건 그 다음이라는 것. 이화 ATM이 한바다 로펌의 의뢰인이고 그래서 직업인으로서 의뢰인이 이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 치부하는 권민우는 자신이 한 행동들을 합리화한다. “사실이라고 생각했든 안 했든 의뢰인을 믿기로 했으면 끝까지 믿어요. 그게 변호사가 의뢰인한테 지켜야 되는 예의잖아요.”

 

이건 직업인의 딜레마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합리화로 모든 게 용서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이 로펌의 변호사들이 하는 일은 순간 ‘이상하게’ 느껴진다. 법은 정의와 진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믿고 있지만, 로펌이 의뢰인을 통해 하게 되는 법 활용은 저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되기도 한다. 우영우의 질문과 자성은 그래서 결코 작지 않은 울림을 만든다. 누가 이상한가? 저들이 이상한가 아니면 잘못한 일을 깨닫고 후회하고 반성하는 우영우가 이상한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가 주인공이고 그래서 자폐라는 장애에 대한 결코 얕지 않은 무게감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지목하고 있는 건 그래서 오히려 장애에 빠져버린 세상이다. 진실이 통하지 않고 권모술수가 통하기도 하며 진실이 밝혀져도 거짓을 말한 자들이 이익을 보는 우리 사회의 장애. 게다가 가장 큰 장애는 이런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럽게 조차’ 느끼지 않는 사회의 불감증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지금의 대중들의 정서를 건드린 부분은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 우리는 의식하지 않으면 그것이 무슨 잘못이 되는가도 모른 채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스스로를 돌아보고 그것이 잘못이었다면 그걸 최소한 부끄럽게 여기고 그래서 반성함으로써 바꿔나가려는 노력을 하는 것. 그것만이 이상한 사회를 되돌릴 수 있는 길이라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첫 회에 우영우가 한바다 로펌에 처음 왔을 때 상사인 정명석(강기영) 변호사가 툭 던져 놓은 대사에 이미 이 작품이 가진 이러한 시각이 담겨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 저기 그, 병원 가야 되지? 직원 붙여 줄 테니까 같이 갔다 와. 외부에서 피고인 피해자 만나는 거 어려워. 그냥 보통 변호사들한테도 어려운 일이야.” 그래도 우영우를 생각해준답시고 이렇게 별 생각 없이 툭 던진 말을 곰곰이 생각하던 정명석은 금세 그게 어딘가 잘못됐다는 걸 알고는 이렇게 말한다. “하, 미안해요. 그냥 보통 변호사라는 말은 좀 실례인 거 같다.” 누구나 저도 모르는 사이 잘못을 할 수 있다. 그걸 바꿔나갈 수 있는가가 중요할 뿐.(사진:ENA)

시청자들은 어째서 ‘보이스’에 눈을 뗄 수 없었나

“모든 사이코패스들이 살인마가 되는 건 아닙니다.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가정과 환경 사회에 영향을 받는 후천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한 인물의 예를 들어보죠. 선천적으로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유년시절 자신의 아버지가 살해를 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한 이후에 그 증상이 더욱 악화되어서 아주 걷잡을 수 없는 끔찍한 살인마가 된 경우가 있습니다. 이 사회에 가장 감추고 싶었던 비밀들이 이 시대의 범죄자들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죠.”

'보이스(사진출처:OCN)'

OCN 주말드라마 <보이스>에서 강권주(이하나)는 도주한 모태구(김재욱)를 격동시키기 위해 방송을 통해 그를 자극하는 말을 남긴다. 그런데 이 대사 속에는 살인마의 탄생이 사이코패스로 태어난 선천적인 것보다 후천적인 요소에 더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즉 선천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어떤 후천적인 악영향이 촉발되지 않는다면 반드시 살인마가 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결국 태생 그 자체보다 그 부모나 사회 같은 주변적 상황들이 중요하다는 것. 

모태구라는 희대의 살인마가 탄생하게 된 건 결국 어린 시절 아버지 모태범(이도경)이 살인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되면서다. 모태범과 모태구의 잔학한 살인의 연대기는 그 이후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살인마가 되어버린 모태구가 저지르는 살인들이 자신 탓이라고 여기는 모태범은 아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른다. 그러면서 그는 끝까지 아들 모태구에게 그가 ‘살인마’가 아니라 ‘특별한 존재’라고 교육시킨다. 누군가를 죽여도 되는 특별한 존재로 교육받는 모태구는 이제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살인을 저지른다. 

결국 모태구라는 희대의 살인마는 강권주의 이 격동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고 무진혁(장혁)에 의해 검거된다. 하지만 모태구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 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어쩌면 자신은 피해자라고 여길 지도 모른다. 결국 자신이 그렇게 된 것이 부모와 사회 탓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타인의 고통을 공감 못하는 인물이 심지어 재계인물이나 고위 공무원 그리고 검찰이나 경찰총장까지 좌지우지하는 권력을 갖게 되는 일은 실로 끔찍한 결과를 만든다. 

심각한 연쇄 살인도 살인이지만, 이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성운 통운 버스 사건 같은 비인권적 고용문제와 더불어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형사고로도 이어진다. 사고가 나면 그 보험금을 사측이 가져가는 계약을 해놓고 사고 위험이 있는 버스를 방치한 채 버스기사로부터 운행하게 만드는 그 충격적인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안전불감증과 그 이면에 깔려 있는 사이코패스적 권력자들의 문제를 드러낸다. 칼 들고 사람을 찔러 죽이는 이들만이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누군가 사고를 당할 위험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아무런 경각심 없이 방치하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것. 

<보이스>는 어쩌다 사이코패스적인 사회가 되어버린 현실에 ‘골든타임팀’을 투입해 희생자들에게는 절박한 그 골든타임을 지켜내기 위한 안간힘을 보여준다. 강권주와 무진혁의 절절함에 시청자들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건, 물론 그 끔찍한 사건들이 주는 충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기저에 깔려 있는 우리 사회가 주는 불안감을 빼놓을 수 없다. 꽃다운 나이에 몇 백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인재로 인해 세상을 떠났지만 그 골든타임에 권력을 가진 자들은 무엇을 했던가. 그렇게 안타깝게 세상을 버려도 지켜주지 못하고 잘못을 시인하지 못하는 사회란 불안감을 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사이코패스는 끝까지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알지 못한다. 다만 희생자들의 목소리는 그 사이코패스의 귓가에서 울려 퍼지며 그를 죽을 때까지 괴롭힌다. <보이스>가 마지막에 보여준 최후장면은 그래서 정신병동에서 무수한 정신병자들의 손에 의해 난자되는 모습보다 어둠 속에서 끝없이 흘러나오는 희생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끔찍하게 다가온다. <보이스>는 잔혹한 장면들의 폭력성이 비판의 도마에 오르긴 했지만, 그래도 드라마가 하려던 메시지는 분명하게 전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에 굳이 자막으로 일일이 그간 드라마 속에서 희생됐던 이들을 적어 넣은 건 그래서다. 

‘허지혜씨도 강국환 경사도 복님이도 아람이도 은별이도 박복순(심춘옥) 할머니도 낙원 복지원 희생자 분들도 그리고 성운 통운 버스에서 희생되신 분들 모두 우리의 이웃이고 누군가의 사랑하는 가족들입니다. 우리 사회가 골든타임 안에 그분들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과 억울하고 안타깝게 희생되는 분들이 더는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이 드라마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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