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여왕’, 김지원과 김수현을 응원하게 만드는 거짓과 진실의 대결

눈물의 여왕

“털어도 10원 한 장이 안 나온답니다. 로펌 자문비부터 소송 비용 집행 내역까지 샅샅이 뒤졌는데 전혀 오차가 없었답니다. 저도 카드랑 계좌 좀 살펴봤는데요. 놀랍도록 소비가 없으세요. 세차장을 좀 자주 가신다는 것 정도? 그런데 간헐적으로 수백만 원 단위의 현금을 인출하실 때가 있었어요. 또 하나 이상한 건 현금을 인출하시는 날엔 꼭 물랑루즈에서 30만원 상당의 카드 결제를 하셨다는 거예요.”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나비서(윤보미)는 홍해인(김지원)에게 회사 내 감사를 통해 회계자료부터 카드 내역까지 탈탈 털어낸 백현우(김수현)에 대해 보고한다. 백현우가 이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자신을 속여왔다고 생각한 홍해인은 그런 식으로 백현우를 궁지로 몰아세우는 중이다. 그런데 그렇게 탈탈 털어도 나오는 게 없다. 대신 홍해인은 그 과정을 통해 백현우의 자신을 향한 진심을 오히려 마주하게 된다. 

 

알고보니 물랑루즈는 술집이 아닌 꽃집이었고, 그가 인출해간 현금은 직원 장례식장의 조의금으로 쓰였다. 그것도 홍해인의 이름으로 된 꽃과 조의금이다. 사람을 붙여 백현우에 대해 알아본 홍해인의 아버지 홍범준(정진영)이 알게 된 것 역시 그가 얼마나 쓸쓸하게 지내왔는가 하는 것이었다. 혼자 코인 야구장에 가고, 혼자 저녁을 먹고, 혼자 괜스레 자신을 벌주듯 운동장을 돈단다. 코믹하게 그려졌지만 윤은성(박성훈)의 계략에 의해 오해를 사고 궁지에 몰린 백현우가 오히려 탈탈 털림으로써 그 진심이 드러나는 순간들에 이 인물에 대한 연민이 생겨난다. 

 

사실 백현우를 오인해 관계가 틀어져 버린 홍해인이 그려내는 이런 상황들은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만든다. 시청자들은 그래서 백현우와 홍해인이 그저 사랑하게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드라마는 본래 ‘갈등’이 있어야 동력을 얻는 것이라 두 사람의 관계는 한껏 좋았던 시점에서 틀어지는 걸 반복한다. 홍해인과 백현우의 ‘홍백전(그래서 이름을 이렇게 지었을 게다)’이 드라마가 긴장을 잃지 않고 흘러가게 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갈등 상황 속에서도 그 짠함을 코미디로 풀어내고 그려내는 건 박지은 작가가 가진 힘이 아닐 수 없다. 백현우를 탈탈 털어버리겠다는 홍해인의 엄포는 살벌하지만, 그 과정에서 맞닥뜨린 백현우의 진심은 보는 이들을 웃게 만들고 나아가 이 캐릭터가 가진 짠한 연민까지 느껴지게 만든다. 그래서 백현우가 어느 순간 감정을 드러내며 아이처럼 울게 될 때 시청자들은 한편으로 웃기면서 한편으로는 슬픈 느낌을 갖게 된다. 

 

여기에 ‘눈물의 여왕’은 홍해인은 물론이고 그 가족이 가진 모든 걸 가로채려는 이들의 실체가 드러남으로써 대결구도가 세워진다. 홍만대(김갑수) 회장의 옆에 자리했던 모슬희(이미숙)는 윤은성의 친모로 오래 전부터 퀸즈 그룹을 집어삼키려는 계획을 가진 인물이었다. 또 홍수철(곽동연)의 아내 천다혜(이주빈) 또한 이 계획에 가담하고 있는 그레이스 고(김주령)에 의해 정체를 속인 채 의도적으로 이 재벌가에 입성한 인물이다.

 

결국 ‘눈물의 여왕’은 거짓과 진실의 싸움으로 흘러간다. 탈탈 털어도 오히려 진심을 마주하게 만드는 백현우가 진실의 편에 서 있다면, 진심인 척 달콤한 말들을 꺼내놓지만 사실은 온통 거짓인 모슬희나 윤은성이 그 반대편에 서 있다. 돈이면 뭐든지 다 되는 것 같은 세상이고 그래서 때론 돈에 대한 엇나간 욕망들이 사건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시한부 판정을 받아 죽음 앞에 돈이 별 의미를 갖지 않게 된 홍해인이나, 재벌가에 입성했어도 홍해인이 백화점 옥상에 너구리가 산다는 말조차 믿을 정도로 진심인 백현우의 동화 같은 사랑을 자꾸만 더 응원하게 된다. (사진:tvN)

‘나저씨’ 신구 캐릭터는 어째서 갑질 재벌들 비판처럼 보일까

현실에도 이런 회장님이 있을까. 성폭력으로 시작됐던 미투 운동이 이제 기업 총수 일가의 갑질로 확산되고 있는 현실이어서일까.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장회장(신구)이 마치 이런 현실을 에둘러 비판하는 것처럼 보인다. 

삼안 E&C라는 이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회사는 마치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것만 같다. 건물을 설계하고 그 위험을 진단하는 일을 하는 회사라는 설정 자체가 그렇다. 우리네 불행한 현대사의 대부분이 이른바 ‘성장 지상주의’와 더불어 생겨난 ‘안전 불감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 그렇다. 실제로 이 회사에서 윤상무(정재성) 같은 인물은 실적을 위해 건물의 안전진단도 적당히 하라고 공공연히 말하곤 한다. 그것이 엄청난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건 생각하지도 않고.

이 회사에서 그래도 유일하게 제대로 일을 하는 인물이 주인공 박동훈(이선균)이다. 그는 건축구조기술사로서 경영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는 일은 건물에 대한 ‘구조적 판단’을 내리는 것뿐이라는 소신을 지켜나간다. 모두가 라인에 붙어 자리보전을 위한 암투에 몰두할 때 그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일을 해나간다. 

그런 그를 눈여겨보는 인물이 바로 장회장이다. 왕전무(전국환)가 쥐락펴락하며 자기 회사인 양 힘을 넓혀가자 그를 견제하기 위해 로얄패밀리의 아들인 도준영(김영민)을 대표로 세우긴 했지만 그는 그가 미덥지 못한 인물이라는 걸 알아본다. 실제로 도준영은 이 회사 내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사람의 뒷조사를 하거나 박동훈의 아내 강윤희(이지아)와 바람을 피우고, 장회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가 좋아하는 캠핑장에서의 ‘불 피우기’를 하는 게 그가 하는 일의 전부처럼 보인다.

장회장이라는 인물이 흥미로운 건 사실상 이 회사의 전권을 쥐고 있는 회장님이지만 우리가 신문지상에서 봐온 회장님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다. 자신의 손으로 일군 회사라서 그런지 애사심이 남다르고, 진짜 일을 하는 박동훈 같은 인물에게 선선히 다가가 “밥 한 번 같이 하자”고 손을 내민다. 

그가 남다른 회장님이라는 게 드러나는 대목은 회사의 비정규직이었던 이지안(이지은)이 그의 과거를 뒷조사하는 이들로부터 피하기 위해 회사를 떠나자 버럭 화를 내며 그를 찾아오라고 하는 부분에서다. 이지안은 박동훈의 상무 심사를 위한 부하직원의 인터뷰 자리에 나가 그가 얼마나 따뜻한 인물이었는가를 피력하며 이 회사에서의 몇 개월이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말한 바 있다. 그 자리에 있던 장회장은 그래서 이지안의 진심을 들여다보게 됐고, 그런 그가 회사를 떠나게 됐다는 소식에 “사과라도 해야겠다”며 찾아오라 했던 것.

스펙과 자기 측근만을 챙기고, 직원들을 거의 노예처럼 부렸다는 재벌가 회장님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요즘 이런 회장님은 아마도 판타지일 것이다. 그저 모닥불을 피우는 것이 가장 즐거운 낙으로 여기고, 저 비정규직 사원 하나의 일에까지 이토록 마음을 쓰는 회장님이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장회장의 면면이 갑질 재벌들의 비판처럼 보이는 건 그래서다.(사진:tvN)

<용팔이>, 한여진과 김태희의 반전은 가능할까

 

무릎 꿇어!” 한여진(김태희)의 이 한 마디는 <용팔이> 핏빛 복수극의 서막이 될까. VIP 병동에 따로 마련되어 있는 한여진의 개인병동은 병실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한 최첨단 시설들이 들어차 있다. 마치 SF 장르에 나오는 미래의 공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최첨단의 공간은 그간 한여진을 묶어 놓는 감옥이었다. 그녀는 그 곳에 눕혀진 채,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처지였다.

 


'용팔이(사진출처:SBS)'

그런데 이제 깨어나 다시 그 병실로 돌아온 한여진에게 그의 아버지는 그 곳이 바로 너의 왕좌라고 말했다. 눕혀져 있던 병상은 세워져 왕좌가 되어 있었고, 그 곳에 앉은 한여진은 아버지가 남겨놓은 한신그룹의 비자금 내역을 손에 쥐고 회사의 모든 중역들과 정재계 인물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병상을 용상으로. <용팔이>에서 이 한여진의 병실은 중요한 이중적인 의미를 띄고 있다. 한편으로는 일반 서민들의 병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최첨단 시설이 들어간 화려한 외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외관에도 불구하고 한여진은 그 시설에 갇히고 묶여진 존재로 그려졌다. 만일 이 화려한 병실이 부유한 삶이 가진 자본의 풍경을 표징하는 것이라면 한여진이라는 인물의 기구함은 재벌의 화려함이 아니라 자본에 포획된 기구한 운명을 말해주는 것일 게다.

 

한신그룹이라는 재벌가는 그래서 마치 자본 쟁탈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자본기계들의 정글이다. 고사장(장광)이 자본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 범죄자의 얼굴을 갖고 있고, 그와 모의하는 한도준(조현재) 회장과 나누는 이야기들이 마치 조폭의 세계를 보는 듯한 인상을 주는 건 자본의 세계가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에둘러 말해준다.

 

결국 <용팔이>에서 이 비정한 자본의 세계와 맞설 수 있는 인물은 한여진이다. 그녀는 오랜 동안 병상에 묶여진 사슬을 끊고 나와 이제 그 곳을 용상으로 바꾸려 한다. 물론 그녀의 옆에서 그녀가 싸울 수 있게 지지해주는 김태현(주원)이란 존재가 있지만, 그녀의 핏빛 복수극이 향후 어떤 방식으로 흘러갈 지가 <용팔이>의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되는 셈이다.

 

<용팔이>가 초반의 그 몰아치는 힘을 가질 수 있었던 원동력은 김태현이라는 캐릭터에서 비롯됐다. 스스로 속물의사라고 말하면서 사실은 돈 없으면 살 사람도 죽을 수밖에 없는 병동에서 어떻게든 환자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 이 숨은 휴머니스트의 안간힘에 시청자들은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김태현이라는 휴머니스트의 동분서주에만 머물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이 한신병원으로 표징되는 자본의 부조리한 세계와 그 폭력을 해결하는 방법은 이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그 열쇠를 쥔 인물은 결국 한여진이다. <용팔이>의 후반부 이야기가 한여진에 의해 주도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늘 누워 있고, 깨어나서도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며, 심지어 실어증을 가장한 채 한신병원에 숨어들어 있는 한여진이란 존재는 마치 연기자 김태희의 처지를 그대로 닮았다. 물론 그 누워 있는 연기가, 얼굴을 가린 채 실어증을 가장하는 연기가 쉬운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연기자로서 드라마에서 확실한 자기 존재를 드러낼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병상을 용상으로 바꾸려는 한여진이라는 인물의 변신과 누워만 있다가 이제 깨어나 핏빛 복수극을 시작하려는 김태희라는 연기자의 반전은 서로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과연 한여진은 병상을 용상으로 바꿀 수 있을까. 또한 김태희는 이 연기를 통해 자신의 연기자로서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을까. 한여진과 김태희의 반전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암살><베테랑>, 쌍 천만의 진의를 살리려면

 

영화 <암살><베테랑>의 천만 관객 돌파에 의해 쌍 천만이라는 새로운 수식어가 만들어졌다. 그 힘들다는 천만 관객을 같은 시기에 두 편의 한국영화가 달성한 것. 그래서 그 의미를 되새기는 기사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천만이라는 상업적 수치에만 너무 집중하다보면 거기 담겨져 있는 진짜 의미를 놓칠 수 있다.

 


사진출처: 영화 <암살>,<베테랑>

사실 요즘처럼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유통, 제작, 홍보마케팅이 하나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상황에 천 만 관객은 이제 그리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닐 수 있다. 상업적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일원화된 유통 배급의 힘으로 천 만 관객에 도달하는 일이 과거보다는 훨씬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이라는 특수성은 이를 가능케 하는 시즌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그래서 쌍 천만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이처럼 공고히 구축된 제작 배급 시스템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 수치에 대해서만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한다는 것은 자칫 이 독점적인 상업적 시스템에 대한 암묵적 지지에 그칠 수 있다. 그것은 <암살><베테랑>이 영화를 통해 얘기하려고 한 사회적 메시지들을 그저 상업적 성공으로만 결말짓는 일일 수 있다.

 

물론 <암살><베테랑>이 모두 천만 관객을 넘어서는 대박 흥행을 가능하게 했던 건 그것이 상업적으로 잘 만들어진 장르물이라는 외형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의 독립투사들을 다루면서도 마치 액션물의 영웅담을 보는 듯한 경쾌함을 유지한 <암살>이나, 재벌과 서민 사이의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갑을 시스템을 갖고 왔지만 통쾌한 액션으로 영화를 풀어낸 <베테랑> 모두 상업영화로서 잘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에 뇌관처럼 박혀 있던 현실적인 문제제기가 없었다면 이처럼 대중들이 호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암살>이 결국 얘기하려는 건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일제의 잔재다. 민족을 배반하고 독립투사들을 향해 총구를 겨눴던 인물이 반민특위의 재판에서 오히려 큰 소리를 치고 법정을 빠져나오는 장면은 그래서 이 영화에 깊은 여운을 만들었다. 어찌 보면 <암살>은 상업적인 영화의 끝에 현실적인 무게감의 숙제를 남겨놓았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친일파의 문제는 현재의 거대 자본의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베테랑>이 제기하는 재벌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베테랑>은 자본의 힘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구가하는 재벌의 문제를 액션 장르로 잘 그려낸 영화다.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자본이 어떻게 서민들의 살 터전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밀어내버리는가를 잘 보여준다. 법 정의조차 재벌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이 현실 속에서 <베테랑>은 일종의 서민 판타지를 그려냈다. 그것은 물론 영화적 판타지지만 그 판타지 속에는 서민들이 가진 울분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구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그저 허구로만 치부될 수 없는 것들이다.

 

<암살><베테랑>이 모두 천만 관객을 넘기게 된 데는 거기에 현실에 부재한 것을 희구하는 대중 정서가 깔려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천만 관객을 상찬하면서 상업적 성공에 대해서만 얘기하다보면 정작 이 영화들이 깔고 있는 상업적이고 자본적인 세계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놓치는 부조리를 갖게 된다. 영화를 보며 그토록 대중들이 열광했던 건 그 안에 자본 현실에서는 도무지 이뤄지지 않을 해결책들이 영화적 판타지로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이 영화들이 던지고 있는 메시지들이 현실적인 울림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자본의 놀라운 힘은 자본을 비판하는 것조차 상업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두 시간여의 판타지를 보고 그저 통쾌함을 느낀다고 해도 영화관 밖을 나오면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아니 오히려 이런 정서들조차 상업적으로 만들어져 또 다른 자본이 되는 아이러니를 겪게 되는 지도 모른다.

 

물론 <암살><베테랑>은 지극히 상업적인 영화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진 메시지에는 분명 진정성이 있다. ‘천만이라는 수치가 얘기해주는 건 그 상업적 성공만이 아니라 지금의 대중들의 마음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분노와 갈증이다. 이제 현실이 그 마음들에 응답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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