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무도'는 평균 이하인 분야에 도전할 때가 제 맛이다

퀴즈 문제를 내고 얼토당토않은 답을 내놔 웃음을 주는 방식은 예능 프로그램의 고전적인 코드 중 하나다. 하지만 MBC 예능 <무한도전>이 가져온 ‘수학능력시험’은 이러한 퀴즈형 예능 코드와는 한 차원 다른 웃음의 격이 느껴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진짜 이번 수학능력시험의 시험지이고, 그것을 풀면서 멘붕에 빠져버리는 멤버들의 면면들이 주는 어떤 공감대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결과야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제 아무리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열심히 했던 사람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난 후 보는 시험이 낯설 수밖에 없고, 그 시험에 나오는 지문들이 기억에 남아있을 턱이 없다. 게다가 끊임없이 변화해온 시험의 경향이나 내용들은 더더욱 <무한도전> 멤버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을 게다. 

그나마 영어영역에서 괜찮은 점수가 나온 건 그것이 이후에도 계속 써먹는 분야여서다. 수학영역은 사실 따로 공부를 하지 않으면 풀기 어려운 건 당연한 사실 아닌가. 하지만 국어영역처럼 어찌 보면 우리가 일상영역에서 늘 들여다보는 분야가 그토록 어렵게 다가오는 건 이례적이다. 한번쯤 수학능력시험의 국어영역 문제를 시험 삼아서라도 들여다본 분들이라면 우리말이 언제부터 이렇게 어려웠나를 실감했을 것이다. 

응시자가 넘쳐나니 변별력을 갖기 위해 문제들이 어려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저런 문제들이 대학에 들어가서도 아니 사회에 나와서도 여전히 쓸모가 있을 지는 의문이다. 그래서일까. <무한도전> 수학능력시험에서 출연자들이 문제를 보며 황당해 하고 어떻게 하면 잘 찍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체념하는 모습을 보이는 장면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무한도전>은 물론 그 특유의 방식과 캐릭터로 수학능력시험에 처한 출연자들의 여러 면면들을 보여주며 빵빵 터트리는 웃음을 선사했다. 시험을 치르기 전 수능금지곡을 들려줘 혼란에 빠지는 출연자들의 모습이 그랬고, 시험을 보며 머리를 쥐어짜는 모습이나 나중에 답을 맞추며 하나도 맞은 게 없는 자기 시험지를 놓고 바보처럼 어색한 웃음을 짓는 모습들이 그랬다. 

그 시험을 직접 치렀을 수험생들이라면 이들이 보여주는 이 멘붕 상황들이 어떤 공감대와 함께 통쾌함마저 주었을 것이다. 그것은 어찌 보면 <무한도전>식의 수험생 위로법처럼 보인 건 그래서다. 예를 들어 조세호가 영어영역에서 53점의 높은(?) 점수를 맞자 유재석이 “너 무도랑 안 어울린다”고 말하는 대목이 그렇다. <무한도전>은 초창기 그토록 외쳤던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는 지향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물론 지금 <무한도전>이 가진 위상은 이미 최고라고 할 수밖에 없다. 여기 출연하고 있는 멤버들이 모두 저마다 프로그램 한두 개씩은 이끌어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능력시험’ 같은 ‘새로운 실제영역’은 이들이라고 해도 여전히 ‘평균 이하’임을 끄집어내면서 동시에 보통의 대중들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위로할 수 있는 방식이 남아있다는 걸 보여줬다. 

역시 <무한도전>은 초창기 그들이 외치고 다녔던 ‘평균 이하’의 캐릭터였을 때 가장 빛난다는 걸 ‘수학능력시험’ 특집은 확인시켜줬다. 또 이미 최고의 위치에 오른 그들이지만, ‘수학능력시험’처럼 여전히 그들이 ‘평균 이하’임을 증명해주는 ‘도전 분야’는 아직도 많다는 것도. 웃으면서 공감하고 그리고 그 공감 안에서 어떤 위로까지 느껴지는 맛. 이것이 바로 <무한도전>이 지금껏 시청자들을 매료시킨 힘이 아닌가.(사진:MBC)

무모한 도전이 살려낸 ‘무한도전’의 초심과 저력

과거 <무모한 도전> 시절을 보는 것만 같았다. 영하의 날씨에 갑자기 뗏목을 타고 무동력으로 한강을 종주하겠다는 도전이라니. 잘 차려입고 나와 재밌게 방송 해주면 된다며 자신을 불렀다는 조세호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양복차림에 왜 갑자기 뗏목에 타야하고 노를 저어야 하는 생고생을 해야 하는 지 의아해했다. “근데 왜 우리 이걸 해야 하는 거죠?” 

MBC 예능 <무한도전>은 파업을 끝내고 돌아와 본격적으로 시도한 첫 번째 도전으로 왜 하필 이 뗏목 한강 종주라는 생고생을 선택했던 걸까. 그건 어쩌면 돌아온 <무한도전>이 보여주려는 초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고 그래서 실패할 것이 뻔히 보이는 것이라고 해도 무조건 도전을 했던 그 시절의 마음을 되새기는 것.

결국 절반 정도까지 가다 날도 저물고 추워진데다 더 이상의 체력도 바닥나 포기하고 말았지만, 그건 절반의 실패라기보다는 절반의 성공에 가까웠다. 적어도 <무한도전>이 가진 저력을 확인할 수 있어서다. 

사실 뗏목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웃음은 고사하고 방송 분량을 뽑아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한강 위에 떠 있는 뗏목 위에서의 모습들이 다소 단조롭게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주변 환경을 단조롭게 세워버리자 오히려 도드라진 건 그 위에 서 있는 출연자들의 캐릭터다. 

유재석은 역시 그 단조로울 수 있는 상황을 진두지휘해 웃음으로 바꿔놓았다. 감성적인 선장의 캐릭터가 되어 힘겹게 노를 젓는 동료들에게 주변 풍광을 보고 느껴보라는 말랑말랑한 멘트들을 늘어놓은 것. 그의 이런 이야기들은 동료들이 보이는 생고생과 대조를 이루며 웃음을 만들었다. 

박명수는 그 캐릭터 그대로 호통을 치고 짜증을 내다가 유재석의 면박을 듣는 상황으로 웃음의 합을 만들었고, 하하는 엉뚱하게도 자신의 집에서 뗏목이 보일 수 있다며 전화를 걸어 아내와 통화를 하고, 너무 힘들다며 주변에 사시는 분에게 “초콜릿 좀 갔다 달라”고 구걸을 해 웃음을 주었다. 양세형은 마치 VJ처럼 고생하는 동료들의 영상을 따는 모습을 보여줬고, 정준하는 뗏목의 균형을 맞춘다는 명목으로 한 구석에 붙박여 노만 저으면서 “내가 노예냐”고 억울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뗏목 위에서 가장 도드라져 보인 인물은 게스트로 왔지만 거의 반 고정이 되어버린 조세호였다. 양복 입고 노를 젓는 모습도 그랬지만, <무한도전>이니 그런 고생을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하면서도 너무 힘든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은 ‘프로불참러’에서 보여줬던 그 억울한 표정만으로도 웃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뭐든 물어보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는 모습으로 만들어진 ‘대답 자판기’라는 캐릭터도 흥미로웠지만.

사실 파업으로 결방되는 그 시간을 통해 <무한도전>은 적지 않은 위기상황들을 맞이한 바 있다. 지난 회에 <무한도전>이 스스로 내보였던 것처럼 박명수와 정준하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고 결방하는 동안 시청률도 빠져버렸다. 뗏목 하나에 의지해 한강 종주에 나선 출연자들의 도전이 마치 지금의 <무한도전>이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 건 그래서다. 

하지만 그 무모해 보이는 도전 속에서 오히려 빛나는 건 <무한도전>의 초심과 저력이었다.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캐릭터들은 여전히 건재했고 무엇보다 초심의 의지를 다지는 모습들이 엿보였다. 물론 그 도전을 실패로 끝났지만 본래 <무한도전>은 항상 그 실패를 통해 지금의 위치에 도달했다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미 최고의 위치에 오른 그들이 오히려 이 리얼리티 시대에 더 빛나 보이는 건 어쩌면 그런 무모한 도전일 수도.(사진:MBC)

복귀, 논란해소, 조세호.. 돌아온 ‘무도’의 1타3피

역시 <무한도전>이다. 사실 MBC 파업으로 인해 <무한도전>이 결방되던 시기, 박명수와 정준하에 대한 논란이 계속 이어진 바 있다. 그래서 자칫 <무한도전>에도 그 논란의 여파가 미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팬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파업이 끝나고 재개된 첫 방송에서 이런 우려들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드러내놓고 웃음의 코드로 바꿔버린 것. 

‘무한뉴스’의 형식으로 꾸려진 방송은 유재석의 ‘길거리 토크쇼 잠깐만’을 그 형식으로 끌어왔다. 리얼리티쇼의 시대가 열리며 좀 더 리얼한 예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무한뉴스’에 ‘예능봇짐꾼’으로 참여한 조세호가 그 운을 뗐다. ‘자연스러운 웃음’이 이제 필요하다는 것. 

유재석의 ‘길거리 토크쇼 잠깐만’은 그래서 그간 멤버들의 근황을 알아보기 위해 불시에 그들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준비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돌발적인 질문에 당황한 멤버들의 모습이나 마침 비바람이 몰아쳐 토크쇼 진행 자체가 쉽지 않았던 정황 같은 것들이 그 안에 자연스럽게 묻어나 프로그램에 리얼함을 더했다.

흥미로웠던 건 유재석이 우리가 봐왔던 배려의 아이콘의 모습이 아닌 할 이야기는 하는 직설적인 질문을 쏟아 부었다는 점이다. 박명수에게 비판적인 기사가 나올 때마다 곧바로 미담이 기사로 뜨는 것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했고, 정준하에게는 논란이 됐던 ‘기대해’라는 말이 뭘 기대하라는 이야기냐며 직구를 날렸다. 

유재석의 돌발 질문에 박명수도 정준하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박명수의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웃음을 주었고, 마침 그런 이야기를 할 때 예능신이 도왔는지 비바람이 몰아치자 하늘도 가만있지 않는다며 박명수의 답변을 반박하는 모습 또한 큰 웃음을 줄 수 있었다. 다소 불편했던 논란 자체를 프로그램 안으로 끌어와 웃음의 코드로 바꿔놓은 것.

정준하의 ‘기대해’, ‘두고봐’, ‘숨지마’라는 논란의 문구들은 이 과정을 통해 하나의 유행어가 되었다. 물론 그 의미는 완전히 달라졌다. ‘기대해’나 ‘두고봐’라는 말은 앞으로의 <무한도전>을 기대하라는 뜻이 되었던 것. 논란이 생겼던 일들을 솔직히 꺼내놓고 사과하며 스스로를 희화화함으로써 한바탕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여유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역시 <무한도전>다운 논란 대처법이 아닐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또 하나의 수확은 ‘프로불참러’로 한참 주가를 올렸던 조세호가 ‘적재적소’ 예능인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며 <무한도전>에 힘을 실어줬다는 점이다. 물론 아직까지 고정 멤버가 아니라 손님의 역할이지만, 필요할 때 함께 해도 자기 역할이 분명하다는 걸 조세호는 보여줬다. 향후 다른 코너에서도 이런 역할을 자임할 수 있는 캐릭터라면 고정이 아니라도 언제든 웃음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의 발견.

이제 방송이 겨우 재개되어 본격적인 시작 전에 몸 풀기의 형태로 나간 ‘무한뉴스’지만 그 방송만으로도 <무한도전>이 가진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있었던 논란들을 웃음으로 전화시키고, 리얼리티에 대한 요구도 받아들이며 향후 <무한도전>의 진화가 계속 이어질 거라는 기대감을 주었으며, 유재석의 변화 또한 살짝 감지되었다. 게다가 조세호 같은 예능 봇짐러의 발견까지. 이 정도면 1타3피 아니 그 이상의 성과가 아닐까.(사진:MBC)

'해투', 무려 15년간 살아남은 장수 예능의 아이러니

KBS 예능 프로그램 <해피투게더>가 15주년을 맞았다. 그래서 이를 기념한 특집으로 과거 <해피투게더>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코너들을 다시금 재연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전현무와 조세호가 출연한 지난 방송에서는 학창시절의 친구들을 찾는 콘셉트였던 ‘프렌즈’를 내보냄으로써 시청자들에게 괜찮은 반응을 얻었다. 조세호의 경우 과거 힘들었던 시절 자신을 보살펴준 은사님을 만나 눈물을 보이는 장면이 시청자들에게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해피투게더(사진출처:KBS)'

‘프렌즈’라는 과거 코너의 콘셉트가 그러했던 것처럼, 연예인들이 과거 동창들과 만나 그 때의 이야기를 나누는 그 훈훈한 광경은 지금 현재 다시 봐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추억과 회고가 있고, 따뜻한 학창시절의 풋풋했던 이야기 그리고 간간이 터져 나오는 친구들의 웃음 빵 터지는 폭로까지 역시 이 코너가 가진 힘이 여실히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면 15년을 계속 방송하면서 <해피투게더>가 내놓았던 코너들에는 지금도 시청자들의 기억에 강렬한 잔상으로 남아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쟁반노래방’은 사실상 <해피투게더>의 간판 프로그램이나 다름없었고, ‘도레미 콩콩콩’ 같은 음악과 게임과 토크가 어우러진 코너들도 잊혀지지 않는다. 또 일종의 상황극 콘셉트로 콩트 코미디를 선보였던 ‘쟁반극장’도 또 ‘사우나 토크쇼’나 ‘도전 암기송’ 같은 코너들도 레전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유재석이 그 중심에 서 있는 힘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지만 사실 <해피투게더>가 15년이나 계속 방영될 수 있었던 진짜 힘은 시즌을 3번이나 거듭하면서 그 때 그 때마다 새로운 레전드 코너들을 내세워 변주를 해왔기 때문이다. 조금 패턴이 반복되면서 식상해지기 시작하면 다른 코너를 시도하는 것으로 그것을 극복해왔던 것. 

하지만 최근 들어서 <해피투게더>는 예전만큼의 주목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시청률이 뚝 떨어져 4%에서 5% 사이를 오가는 것은 물론이고, 화제성도 별로 없다. 시청자들은 15주년 특집을 한다는 소식에 반색하면서도 “아직도 하고 있었어?”라는 반응 또한 나온다. 그만큼 최근의 <해피투게더>의 존재감이 별로 없었다는 걸 방증하는 대목이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15주년을 맞아 ‘프렌즈’ 특집에 시청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시청률도 6%대로 소폭 상승하는 이런 변화가 말해주는 건 거꾸로 지금의 <해피투게더3>가 처한 소소한 상황이다. 최근에 만들어진 코너들, 이를테면 ‘야간매점’ 같은 코너들은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느낌으로 자리하지 못했다.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기보다는 그 때 그 때의 트렌드에 살짝 편승해 여전히 늘 그래왔던 토크쇼를 반복하는 듯한 느낌은 이 프로그램이 과거와 달리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다. 

한 프로그램이 15주년을 이어왔다는 건 대단한 일이지만, 그것이 여전히 현재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옛 추억들만 소비하고 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15주년 특집으로 마련된 코너들을 보며 어째 옛날 더 좋았다고 느끼게 되는 건 그래서다. 이래서는 프로그램이 앞으로 나가기 쉽지 않게 된다. 15주년을 맞은 <해피투게더>가 오히려 떠안게 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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