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재료로 그럴싸하게... <집밥 백선생>이 바꿔놓은 것들

 

콩나물 100원 어치 주세요.” 30년 전만 해도 이렇게 어머니가 사온 100원 어치 콩나물로 반은 콩나물국 끓이고 반은 무쳐서 반찬을 내놓으면 그만한 밥상이 없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콩나물은 싸다. 천 원 어치만 사도 한 끼 음식으로 충분한 양이다. 5천 원이면 한 박스를 살 수 있다. 흔하고 싼 식재료라서 그런지 먹을 것 없는 가난한 밥상에 구색정도로 치부되기 일쑤인 게 콩나물이었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그런데 그 콩나물이 달리 보인다. <집밥 백선생>의 백종원 덕분이다. 백종원은 콩나물을 갖고 할 수 있는 남다른 음식들을 선보였다. 어린 시절 별식 중에 별식이었던 콩나물 밥, 술안주로도 좋고 해장으로도 좋은 얼큰 콩나물 찌개, 이게 콩나물로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그럴싸한 닭갈비 소스를 이용한 콩나물 불고기... 값싼 재료라 늘 밥상 위에 올라와도 주연급(?)이 되지는 못했던 콩나물이 주인공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값 비싼 재료로 고급 요리를 만든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건 그만한 여유가 있어야 하고, 그런 고급 요리를 만들 수 있을만한 환경 또한 필요하다. 그러니 그런 요리를 방송으로 본다고 해서 일반 서민들에게 그만한 감흥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콩나물 같은 흔하디흔한 재료를 그럴싸하게 보이는 고급진(?) 음식으로 내보일 수 있는 꿀팁이라면 다르다. 가뜩이나 장바구니 물가가 들썩이는 요즘, 몇 천 원 어치 콩나물로 일과 술에 지친 남편의 해장국을 끓여주고, 아이 입맛에 딱 맞는 콩나물 불고기를 해줄 수 있다면 주부들로서는 반색할 일이 아닌가.

 

백종원의 음식은 딱 콩나물을 닮았다. 그리 특별하다거나 각별하지 않다. 그래서 굳이 요리라는 표현을 쓰기에도 애매하다. 백종원 스스로도 요리가 아닌 음식이라고 말하고, 자신을 요리사가 아니라 사업가라 얘기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는 <집밥 백선생>에서 자신이 내보이는 음식이 전문 셰프들에게는 너무나 소소한 것이라는 걸 자인하곤 했다.

 

심지어 그는 음식을 선보이다가 실수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콩나물밥을 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게 물을 맞추는 일인데, 미리 콩나물을 끓여 그 물로 밥을 한 후 거기에 끓인 콩나물을 얹는다는 건 발상의 전환이다. 그런데 끓인 물을 식히지 않고 밥을 하다 보니 밥이 질어진 것. 백종원은 어색하게 웃으며 자신이 신도 아닌데 실수할 수 있지 않느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걸 보며 아마도 백전노장의 주부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천 원어치 콩나물, 콩나물 밥 같은 흔한 음식, 그리고 때로는 예상외의 실수까지. 이것은 아마도 보통의 주부들이 늘 부엌에서 보이는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그러니 백종원을 특별한 요리사라고 바라볼 필요는 없다. 그는 그냥 주부들이 매일 같이 하는 그 한 끼 식사를 좀 더 간단하지만 그럴싸하게 만들어내는 법을 그저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백종원 덕분에 이제 콩나물도 달리 보이게 생겼다. 어딘지 밥상 한 구석에서 구색으로 치부되며 억울해했을 콩나물을 밥상 중간으로 떡 하니 세워놓는 일. 늘 주방에서 음식을 해 내놓기는 하지만 그래서 그 흔적도 별로 안 남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폄하되던 주부들의 식사 준비가 사실 매일 벌어지는 가족사의 중심이라는 걸 되새겨주는 일. 무엇보다 먹을 게 없어 콩나물국만 주야장천 끓여내며 자조해온 가난한 주부들에게 그 콩나물국이 얼마나 좋은 음식이냐고 알려주는 일. 그것만으로도 <집밥 백선생>에게 충분히 고마울 일이 아닐까



‘엄마가 뿔났다’, 역전된 가족 드라마를 보여주다

가족 드라마의 전형적인 구조 하나. 서로 다른 계층의 두 가족이 자식들 결혼 때문에 얽히고 설킨다. 서로 다른 생활습관과 빈부격차로 맘에 안 들지만 자식들이 사랑한다니 어쩌겠나.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승낙해주고 사돈지간이 되면서 서로 부딪치게 되지만 결과적으로는 양가가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이야기.

‘엄마가 뿔났다’가 초반부에 보여준 구조도 이와 다르지 않다. 김한자(김혜자)의 자식들은 하나 같이 엄마의 바람을 무너뜨리고 어울리지 않는 상대방과 결혼한다. 첫째 딸은 애까지 딸린 이혼남과 결혼하고, 둘째 딸은 격차가 너무 많이 나는 상류층 자제와 결혼하며, 장남은 어느 날 불쑥 임신해 들어온 연상의 여자와 등 떠밀리듯 결혼한다.

이 정도면 제목에 걸맞게 엄마가 뿔이 날만도 하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자식들 때문에 뿔이 나는 그 엄마의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드라마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어쩌면 그 뿔난 엄마의 다음 반응이었는지도 모른다. 뒤늦게 차려준 생일상을 받아놓고 김한자는 시아버지에게 폭탄선언을 한다. “아버지 저 집에서 나가고 싶어요.”

사실 이 폭탄선언이 있기 한참 전부터 이 드라마가 가족드라마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줄 것이라는 전조가 있기는 했다. 그것은 김한자의 시아버지 나충복(이순재)의 로맨스 그레이가 시작되면서부터다. 팔순의 나이에 사랑에 빠진 나충복은 안 여사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도 심장병에 걸린 듯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한다.

자식 때문에 부모가 힘겨워하고 결국에는 희생하고 마는 전형적인 가족드라마의 구조 속에서 이 드라마는 그 상황을 뒤집어놓는다. “나이 들어 주책”이라 스스로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자신의 변화에 놀랍고 행복해하는 나충복과, 좀 과하다 싶은 ‘1년 간의 휴가’를 얻어내고 새로 얻은 원룸으로 가는 길에 “너무 좋아!”하고 소리치는 이 부모들 앞에서 이제는 거꾸로 자식들이 머리가 아파진다.

그렇다고 굳이 집까지 나갈 건 뭐가 있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김한자의 이 선택은 사실 이 땅에 사는 모든 주부들의 로망이 아닐까. 진짜 주부들의 로망은 불륜 같은 탈선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기 삶을 찾는 것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혹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정작 자신의 이름, 김한자와 나충복이라는 이름은 점점 잊혀져왔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들은 인생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엄마가 뿔났다’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드라마 속에서라도 한 평생을 이름 없이 살아온 주부들의 자기 이름을 찾아주겠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 앞에 희생하던 기존의 가족드라마를 뒤집어 이제는 부모의 자기 삶 찾기에 자식들이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드라마는 강변하고 있는 듯 하다. “나이 들어 주책이라고? 우리에게도 인생은 있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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