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완벽한 비서’의 이준혁이 자극하는 판타지

나의 완벽한 비서

‘살림’이나 ‘비서’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우리는 저도 모르게 여성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가부장적 시대를 거치며 오래도록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우리도 모르게 갖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성 역할 고정관념은 깨지고 있다. 드라마만 봐도 그렇다. ‘소년심판’ 같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성 판사가 그렇고, ‘낭만닥터 김사부’에 등장하는 남성 간호사처럼 한때 판사하면 남성을 간호사 하면 여성을 떠올리던 고정관념을 깨는 인물들이 최근에는 일상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의 완벽한 비서’는 이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드라마다. 제목에 등장하는 ‘비서’는 다름 아닌 이준혁이 역할을 맡은 유은호라는 남성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 유은호가 강지윤(한지민)이라는 피플즈라는 헤드헌터 회사 대표의 비서로 스카웃되는 이유가 흥미롭다. 그건 싱글대디로 딸을 홀로 키우며 너무나 깔끔하게 육아와 가사를 하고 있는 그가 눈에 띠었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정리정돈되어 있는 집안 구석구석과 꼼꼼하게 그 날 해야할 일들이 적혀 붙여져 있는 스케줄표를 본 강지윤의 친구이자 피플즈의 이사인 서미애(이상희)가 유은호가 비서로서 적임자라 판단하는 것. ‘살림’이라는 집안일을 잘하는 그 능력이 ‘비서’라는 직장 내의 능력이 되는 판타지를 이 작품은 건드린다. 아마도 육아 때문에 경력단절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여성들이라면 유은호의 재취업(?)을 보며 어떤 통쾌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이 인물이 일과 가정을 모두 쟁취하고픈 여성들에게 판타지를 주는 이유다. 

 

그런데 이준혁을 보면 일에 있어서도 또 살림에 있어서도 뭐든 척척 잘 해내는 유은호를 닮았다. 어떤 역할도 잘 살려내는 배우라는 점에서다. ‘나의 완벽한 비서’에서만 봐도 그렇다. 유은호는 회사에서 잘 나가는 능력있는 직장인이었지만 홀로지내며 마음에 빈 자리가 늘어가는 딸을 위해 육아휴직을 선택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가사일도 척척해내는 살림꾼이 된다. 능력있는 직장인과 살림 잘하는 살림꾼의 역할이 마치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해온 고정관념의 틀에서는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는 게 어려울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준혁은 자상함과 배려심이 일터의 능력으로도 발휘될 수 있다는 걸 이 두 역할을 하나로 묶어냄으로써 보여준다. 게다가 이 인물은 이제 강지윤이라는 회사 대표와의 사적 멜로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회사에서 대표와 비서라는 위계 관계로 구분되지만, 그걸 뛰어넘는 사적 관계 또한 그려낼 거라는 것이다. ‘나의 완벽한 비서’에서 그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것처럼 이준혁이라는 배우는 어떤 위치에 어떤 역할로 던져 놓아도 마치 그것이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인 것처럼 연기해내는 인물이다. 이른바 ‘연기 살림꾼’이라고나 할까. 

 

이준혁의 이러한 다재다능한 면이 도드라졌던 작품은 다름 아닌 ‘비밀의 숲’이었다. 여기서 그가 맡은 서동재라는 검사는 돈 밝히는 ‘스폰 검사’로서 사실상 악역이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욕망에 이끌리며 왔다 갔다 하는 이 서동재라는 인물에 점점 애정을 갖게 됐다. 선과 악으로 단순히 나뉠 수 없는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처럼 악역조차 애정을 갖게 만든 것이 가능해진 건 역시 이 복합적인 인물을 설득력 있게 연기해낸 이준혁의 공이 컸다. 그래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서동재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스핀오프 ‘좋거나 나쁜 동재’라는 작품이 제작된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인물은 선과 악을 오가는 매력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그리지만,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그 모습 또한 끝까지 유지해 나간다. 어찌 쉬운 역할이라 할 수 있을까. 

 

이준혁의 다재다능함과 선과 악을 넘나드는 입체적인 이미지는 그가 걸어온 필모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를 본격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알린 건 가족드라마를 통해서였다. 문영남 작가의 ‘조강지처클럽’에서 한선수 역할을 연기했고, 또 ‘수상한 삼형제’에서는 김이상이라는 인물을 연기했다. 두 작품 모두 당대의 드라마 트렌드였던 가족드라마였다. 하지만 이준혁은 이러한 가족드라마 속 평범한 인물 연기에 머무르지 않고 ‘적도의 남자’의 이장일 같은 강렬한 악역에 도전하기도 했다. 또 ‘맨몸의 소방관’ 같은 전형적인 영웅 서사의 인물을 연기하기도 했고, ‘60일, 지정생존자’ 같은 작품에서는 선인지 악인지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위치에 서 있는 인물을 특유의 선악을 넘나드는 이미지로 소화해내기도 했다. 가족드라마 같은 생활연기로 시작했지만 ‘비밀의 숲’을 넘어 ‘비질란테’, ‘다크홀’ 같은 장르물의 다소 판타지를 자극하는 연기까지 자신의 영역을 넓혀왔다. 또 ‘범죄도시3’에서는 메인 빌런인 주성철 역할을 맡아 20킬로에 가까운 벌크업으로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그려낸 바 있다.  

 

대중들은 이준혁을 진중함과 비열함 그리고 다정함을 오가는 배우라고 일컫는다.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때는 특유의 그 진중함이 묻어나지만, 때론 경박하게까지 보이는 수다쟁이가 되기도 하고 때론 그 표정 뒤에 숨겨진 모습으로 비열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눈빛을 부드럽게 만들면 금세 한없이 다정한 연인의 얼굴로 변신한다. ‘나의 완벽한 비서’는 바로 그 다정함을 무기로 보는 이들을 무장해제하게 만드는 그의 얼굴을 드러낸다. 

 

‘살림’은 본래 불교용어에서 나온 말이지만 ‘집안의 경제나 생활 등을 맡아 운영, 관리하는 일’이라는 뜻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살린다’는 의미 또한 부가되어 있다. 사실 우리의 일상은 내버려두면 망가지거나 어지럽혀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너무 일상적이어서 잘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의 살림이야말로 우리의 일상을 살리는 일이 된다. 이건 연기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주 슬쩍 지나가는 역할이라도 이를 살려내기 위한 노력들이 뭉쳐질 때, 연기의 하모니가 힘을 발휘하고 이건 작품의 성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살림’은 이제 고정된 성 역할의 의미에서 벗어나 누구나 추구해야할 가치가 아닐까 싶다. 어떤 역할이든 살려내는 연기 살림꾼 이준혁처럼. (글:국방일보, 사진:SBS)

‘수미네 반찬’이 주부들의 시선 사로잡은 비결

도대체 이 묘한 카타르시스는 어디서 오는 걸까. tvN <수미네 반찬>을 보면 속이 다 시원하다는 주부들이 있다. 엄마가 했던 그 추억의 레시피를 떠올리며 거침없이 만들어내는 김수미의 요리 실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하는 요리의 방식과 더불어, 이 프로그램이 구도로 잡아놓은 셰프들과의 역전된 관계가 그간 일상에서 짓눌려온 주부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준다는 것이다. 

<수미네 반찬>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김수미라는 인물의 캐릭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에게는 일용이 엄마로 더 알려져 있고, 여러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욕 잘하는 센 캐릭터로 각인되어 있는 인물이다. 물론 그 센 캐릭터와 엄마의 이미지가 더해지면 그 어렵던 시절에 쉽지 않은 살림으로도 자식들 건사한 억척 엄마의 면모가 그려진다. 억척스럽고 세지만 자애로움을 동시에 가진 그런 엄마가 김수미에게서 떠오른다는 것.

요리하는 방식도 딱 그런 억척 엄마의 그것이다. 밥 달라 아우성치는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빨리 먹이려는 마음과 그러면서도 맛도 좋고 영양도 좋은 음식을 해주려는 그 마음이 더해져 김수미의 요리법은 독특한 지점을 만들어낸다. 손이 너무나 빨라서 셰프들조차 그걸 따라가기가 쉽지 않아 진땀을 흘리게 만들고, 하나하나 계량을 해서 정량의 레시피를 추구하기보다는 손에 익은 감각으로 척척 양을 맞춘다. 보기에는 대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게스트로 나온 요리연구가 이혜정이 말한 것처럼 ‘세월의 고수’의 내공이 느껴진다.

김수미가 ‘요만치’ 식의 ‘계량법’을 시전하면서도 딱딱 맞춰내는 간은 그래서 신기하게 보일 정도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이유는 그렇게 정량을 맞추진 않아도 넣어가며 맛을 봐가며 부족하면 채우고 넘치면 재료를 더 넣어 간을 맞추는 방식이 어쩌면 ‘가족의 입맛’에는 최적화될 수 있어서다. 가족은 저마다 입맛이 다르기 마련이다. 그러니 정량의 레시피는 가족마다 또 누가 먹느냐에 따라 달라져야 최적화된다. <식객>의 ‘세상의 모든 맛있는 음식의 가짓수는 세상의 엄마의 숫자와 동일하다’는 그 명대사가 그저 멋있는 표현이 아니라 실제인 이유다. 

물론 요즘은 가사노동 역시 부부가 분담하고, 요리를 하는 일에 남성들 역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엄마들의 몫이 더 큰 게 현실이다. 그래서일까. 그 엄마들의 입장에서 보면 <수미네 반찬>의 김수미가 하는 시원시원한 요리는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든다. 물론 정성이 담긴 요리지만, 척척 해내면서 “그냥 먹어”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면서 입에 넣어주는 그 모습은, 그 힘든 살림도 모르고 밥 투정 반찬 투정하기도 하는 가족들 앞에서 서운함 같은 걸 느꼈을 주부들에게는 기분 좋은 ‘한 방’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게다가 <수미네 반찬>은 일련의 사회적 통념이 만들어내고 있는 권력구도(?)를 김수미라는 엄마를 통해 모두 뒤집어놓았다. 이 프로그램 안에서는 그래서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구도가, 남성과 여성의 구도가 역전되어 있다. 김수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쩔쩔 매는 셰프들의 모습은 그래서 요리 프로그램 그 이상의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러면서 이혜정과는 같은 엄마로서, 여성으로서의 공감대를 이어가는 대화를 나눈다. 

퉁명스럽고, 불친절하기 이를 데 없는 레시피지만 이상하게도 <수미네 반찬>이 주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김수미라는 엄마가 하는 요리 속에 그 정서적 공감대가 들어 있어서다. 가끔 재료를 넣으며 너무 많이 넣으면 “죽는다”는 식의 얘기 속에 담겨진 두 가지 정서. 가사노동의 힘겨움이 살짝 감정적으로 얹어진 정서와, 그러면서도 가족들 건사하려는 그 따뜻한 정서가 김수미를 통해 드러날 때 주부들은 그것이 제 마음 같아 속이 다 시원해진다.(사진:tvN)

<집밥 백선생>, 흔한 식재료의 가치

 

<집밥 백선생>에서 백종원이 얘기한대로 사실 이맘때면 처치 곤란한 것이 작년쯤 부모가 담가 보내줘 이제는 시어빠진 묵은지다. 버리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그냥 먹기도 곤란하지만, 아마도 엄마가 해줬던 음식을 기억하는 이들은 묵은지를 이용한 김치찜이나 찌개가 그 어떤 음식보다 맛이 좋다는 걸 안다. 문제는 그 맛을 알아도 어떻게 요리해야 되는지 잘 모르고 또 엄두도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혼자 사는 이들에게 묵은지는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집밥 백선생>에서 백종원이 묵은지를 재료로 들고 나온 건 그래서다. 사실 요리 좀 한다는 사람들에게 묵은지 요리가 새로운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냉장고에서 풀풀 냄새를 풍겨가며 익어가는 묵은지가 주는 고충을 마치 너무나 잘 이해한다는 듯 들고 나온 그 마음이 어떤 면에서는 시청자들을 잡아끄는 진짜 요인일 수 있다. 그래서 일단 재료 하나만으로도 나를 생각해주는 백종원의 그 마음을 읽고 나면 거기 만들어지는 요리들에 대한 호감은 더 커진다. 따라 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건 그래서다.

 

이건 백종원이라는 인물의 진가일 것이다. 그의 요리는 새롭거나 특별한 것이 없다. 오히려 냉장고를 열면 어느 한 구석에 늘 있기 마련인 재료들이 그가 하는 요리의 주인공들이다. 계란을 가지고 만드는 계란 프라이가 과연 요리인가 하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백종원은 그것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리라는 걸 진지하게 보여준다. 그 흔하디흔한 무 한 덩어리를 갖고 무생채는 물론이고 생선 조림에 가까운 무 조림, 소고기 뭇국에 무밥까지 뚝딱 해낼 수 있다는 걸 그는 프로그램을 통해 굳이 설파하고 있다.

 

사실 재료가 없어서 요리를 못하는 건 아닐 것이다. 냉장고를 열면 누구나 계란 몇 개쯤은 있고 무 한 덩이 정도는 찾을 수 있다. 혼자 산다고 해도 엄마가 김장철이면 바리바리 싸서 보내준 김치 한 덩이쯤은 냉장고 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재료를 보는 우리의 눈이다. 늘 화려한 음식과 비싼 재료에만 눈이 가다보니 정작 흔하고 값싼 재료들이 저평가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먹을 게 없다는 불평은 알고 보면 흔한 재료들에 대한 무시에서 비롯될 때가 더 많다.

 

물론 백종원이 <집밥 백선생>을 통해 알려주는 일상적인 음식에 담겨진 꿀팁이 주는 효용성은 실제 매일 같이 저녁밥을 차려내는 주부들에게는 대단히 유용한 정보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백종원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은 단순히 그런 정보적인 유용성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요리를 통해 전해지는 타인에 대한 배려나 소통이 더 큰 것일 게다.

 

음식은 단지 육체적인 허기를 달래주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음식의 힘은 정신적인 허기를 달래주는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이른바 엔도르핀 디시(endorphin dish)’라는 신조어가 나오고, 요리에 셀프 힐링이라는 트렌드가 발견되는 건 그래서다. 고향을 떠나와 혼자 사는 세대들이 점점 늘면서 어쨌든 해먹어야 하는 한 끼의 밥은 그래서 육체적 허기보다는 정신적 허기를 채워주는 의미가 더 커졌다.

 

<집밥 백선생>에서 백종원은 이 엄마가 해주는 밥상의 부재를 상당 부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해내는 모습을 보인다. 어디 엄마들이 무슨 대단한 식재료로 맛을 냈던가. 그저 손에 잡히는 흔한 재료만을 갖고 어떻게 하면 맛있게 음식을 낼 수 있을까를 고심했던 것이 엄마의 밥상이 아니었던가. 흔한 식재료들에 굳이 가치를 부여하는 백종원의 음식에서는 그래서 그 서민적인 느낌과 더불어 소외된 삶들이 가진 허기를 채워주는 훈훈함이 묻어난다.

 

시어서 이제는 그냥 먹기 불편한 묵은지에는 그러나 그걸 바리바리 싸주던 엄마의 정성이 고스란히 곰삭아 있다. 그래서 물에 슬슬 닦아서 어떤 요리에나 척척 넣어줘도 맛이 날 수밖에 없다. 백종원이 <집밥 백선생>을 통해 계속 재발견시키고 가치를 새롭게 부여하는 흔한 재료들도 그걸 키워낸 누군가의 정성이 들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자라났다. 비록 지금은 냉장고 속 구석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부려진 채로 놓여져 있을 지라도 언젠가 안목 있는 이들의 손에 멋진 음식으로 만들어질 재료들처럼. 마치 묵은지가 그러하듯이.



<진짜사나이> 전미라, 무엇보다 강한 모성애의 힘

 

내가 없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진짜사나이> 여군특집3 부사관 후보생 면접에서 전미라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결혼 전에는 테니스 선수 전미라로 살았는데 방송하는 신랑을 만나서 아이를 낳고 살다보니 내가 없어진 듯한 느낌이 들어서 한동안 힘든 시기가 있었다는 것. “남편은 도와줄 수 없는 바쁜 상황이었기 때문에 혼자서 이겨내야 했다고 말하며 그녀는 눈물을 삼켰다.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혹자는 전미라의 이런 이야기를 두고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이야기가 한 줄의 기사로 나갔을 때 비난의 목소리들이 생겨났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기 존재감의 문제는 잘 살고 못 살고와 상관없이 생겨난다. 제 아무리 잘 살아도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지 못한다면 마치 자신이 유령처럼 느껴질 수 있다. 아이를 여럿 둔 엄마들이 흔히 우울감을 호소하는 건 그래서다.

 

그래서일까. 전미라가 자청한 <진짜사나이>의 여군 체험은 남다른 진지함이 들어 있었다. 그녀에게서는 마치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라는 지칭으로서가 아니라 전미라라는 자신을 직시하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의지만이 아니었다. 그녀에게서는 타인이 갖지 못한 그녀만의 능력이 있다는 게 조금씩 드러났다. 그것은 그녀가 힘겨워했던 그 엄마로서의 삶이 그녀에게 부여한 능력이었다. 모성애라는 힘.

 

운동화에 신발 끈 묶는 거야 테니스 선수로 하며 늘 했던 그 경험치가 발현된 것이었을 게다. 하지만 그렇게 자기 신발 끈을 다 묶어 놓고 다른 동료들의 신발 끈을 묶어주는 건 마치 모성애가 부여한 타인에 대한 배려심에서 나오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이름표 두 개를 10분 만에 달라는 지시에 모두가 쩔쩔 매고 있을 때, 홀로 척척 바느질을 해내고는 동료들을 도와주는 모습도 그렇다.

 

언어 자체가 소통이 되지 않아 도저히 버티기 힘들 것 같다며 퇴소를 생각하는 제시에게 다가가 용기를 북돋워주고 하나하나 챙겨주는 모습은 그래서 마치 엄마가 힘겨워하는 딸을 다독이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녀는 지금 포기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그 선택을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게 될 거라고 다독였고, 금세라도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제시에게 안 울면 갈 수 있다. 눈물 흘리면 약해지는 것 같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동료들 챙기기에 바쁜 전미라에게 제작진이 마더 미라사라는 별칭을 붙여준 건 그래서 마음 한 구석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삶에 자신이 지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지만, 부지불식간에 그 엄마로서 아내로서 살아오며 몸에 밴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하나하나 실천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포기한 화생방 훈련에서 홀로 끝까지 참아내는 끈기와 인내 역시 그녀의 그간의 삶들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사실 많은 주부들이 전미라 같은 허탈함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삶이 무가치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삶에 의해 자기 자신만의 삶이 없다고 느껴지는 게 허탈한 것이다. 하지만 전미라의 경우처럼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삶이 자기 자신의 삶을 더욱 성숙하고 가치 있게 만들어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어떨까. <진짜사나이>가 보여준 전미라의 군대 체험은 그래서 주부들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군대에서조차 발휘되는 모성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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