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 <미생>, <피노키오>가 꺼낸 칼끝이 향하는 곳은

 

멀리서 보면 그럭저럭 살만해 보인다. 아니 심지어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그건 본질이 아니다. 한 걸음만 다가가면 온갖 뒤틀어진 욕망과 부조리들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직업의 세계. 이런 의미로 보면 지금껏 대충 직장을 하나의 배경으로 다루고 그 위에 멜로 같은 이야기를 덧붙인 드라마들은 실수의 차원을 넘어서 심각한 오류를 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누가 막연히 직장인의 로망을 말하는가.

 

'오만과 편견(사진출처:MBC)'

이제 전문직 드라마라는 표현은 구태의연해진 지 오래다. <오만과 편견>의 검찰, <미생>의 종합상사, <피노키오>의 언론사. 지금 현재 직업을 다루는 드라마들을 들여다보면 과거 전문직 드라마라고 불리던 드라마들의 호칭 자체가 무색해진다. 과거 이들 전문직 드라마들은 직업의 세계를 표방하기는 했으나 그 디테일을 담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보면 직업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만을 만들어냈던 것이 사실이니.

 

물론 의학드라마는 예외다. 무수히 반복되어오면서 디테일 역시 깊어진 게 의학드라마다. 하지만 검사나 기자 혹은 직장인을 다루던 전문직 드라마들의 디테일은 요즘 방영되고 있는 MBC <오만과 편견>이나 tvN <미생>, 혹은 SBS <피노키오>를 따라잡기는 어렵다. 이들 드라마들은 좀 더 심층적인 취재가 아니라면 도무지 나오기 어려운 직업의 디테일들을 다룬다.

 

과거라면 이런 디테일은 시청률을 가로막는 저해요소가 됐을 것이다. 적당한 디테일에 조미료처럼 처지는 멜로가 드라마의 흥행공식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적당한 디테일은 이제 대중들에게는 리얼리티의 부족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그러니 거꾸로 깊어진 디테일은 실감으로 공감을 만들어낸다. 디테일이 깊어진 이들 세 드라마가 시청률도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건 그래서다.

 

<오만과 편견>이 다루는 검찰은 막연히 떠오르는 그런 이미지를 깨는 디테일들이 들어가 있다. 문희만(최민수)같은 부장검사를 보다보면 전형적인 비리 검사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가도 검찰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대로의 안간힘을 쓰는 현실적인 검사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검찰의 일원이 될 것인지 개인으로 남을 것인지를 구동치(최진혁) 수석 검사에게 묻는 문희만의 모습에는 시스템과 개인으로서 검사의 소신이 어떻게 부딪치는가를 잘 보여준다.

 

<미생>은 지금껏 우리가 종합상사라고 하면 해외에서 물건 떼다 파는 정도로 생각했던 그 이미지를 여지없이 깨버린다. 또 직장인하면 떠오르는 막연한 샐러리맨의 애환 같은 통상적인 이야기를 던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일중독자들처럼 보이는 <미생> 상사맨들의 깊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네들의 삶이 가진 아픔과 기쁨을 모두 함께 느껴볼 수 있다. 공감의 폭은 바로 이 디테일로 인해 커질 수밖에 없다.

 

<피노키오>는 그저 기레기로 치부되던 드라마 속 기자들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한다. ‘진실을 두고 고민하는 기자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 보도경쟁이 만들어내는 폭력적인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단독을 잡기 위해 별의 별 짓을 다하는 현장 이야기가 들어간다. 기자가 나오면 으레 등장하는 클리쉐들은 디테일 속에서 무색해진다.

 

흥미롭게도 이렇게 디테일에 승부하는 이들 직업 드라마들 속에는 한 가지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이 드라마들이 모두 이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춘이 주인공이라는 점이고, 그 사회 초년생에게 어떤 지침을 알려주는 직장의 멘토가 또한 존재한다는 점이다. <오만과 편견>의 한열무(백진희)라는 초년생을 이끌어주는 수석 구동치가 그렇고, <미생>의 장그래(임시완)라는 계약직을 끌어주는 오차장(이성민)이 그렇다. <피노키오>의 신입 기자 최달포(이종석)에게는 YGN 사회부 시경캡인 황교동(이필모)이 있다.

 

사회 초년병들과, 현실을 알지만 그래도 초심을 잃지 않은 멘토들은 함께 힘을 합쳐 부조리한 현실과 맞선다. 그 현실은 다름 아닌 조직 시스템이다. 그래서 <오만과 편견>의 적은 검찰시스템이 되고, <미생>은 샐러리맨들의 직장 시스템이며, <피노키오>는 보도 경쟁에 내몰려진 방송 시스템이 된다.

 

이렇게 보면 이 직업을 다루는 세 편의 드라마는 다른 것 같아도 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직업이 갖는 부조리한 시스템과 대항하는 청춘과 멘토의 공조체계가 그것이다. 어째서 서로 다른 직업을 다루면서도 이렇게 비슷한 이야기 구조가 나오게 된 걸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접하는 직업의 세계가 갖고 있는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취업도 어렵지만, 막상 들어가면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시스템의 현실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비극들이 어떤 직업 속에서도 상존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들 드라마들의 디테일들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이런 세상에서 젊은이들이 청운의 꿈을 꾼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지 궁금해진다. 주마간산으로 대충 덮어버리고 갔을 때는 좀체 정체가 드러나지 않던 막막하고 먹먹한 현실이다.

 

<개과천선>의 김명민, 우리들의 불편한 자화상

 

역시 김명민이다. 그가 연기하는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의 김석주라는 변호사는 특별한 구석이 있다. 첫 회부터 일제에 강제 징용당한 어르신들의 반대편에서 서서 일본기업을 변호하는 김석주는 피도 눈물도 없는 로펌 변호사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또 재벌 2세의 강간치상을 변호하면서 피해자 여자 연예인의 치부를 드러내 자살시도까지 하게하고 결국 그녀가 살인까지 저지르게 만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지독한 악마지만 그에게서 왠지 모를 연민이 느껴지는 건.

 

'개과천선(사진출처:MBC)'

<개과천선>의 로펌 변호사는 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변호인>의 변호사와는 너무나 다르다. 그것은 인권변호사냐 아니냐의 차이가 아니라 고용 변호사냐 아니냐의 차이다. <개과천선>에서 김석주가 다니는 차영우펌은 돈 되는 재벌 그룹들을 주 의뢰인으로 상대하는 로펌이다. 차영우펌의 직원이랄 수 있는 김석주는 따라서 이들 재벌 그룹들의 갖가지 귀찮고 더러운 일들을 처리해주며 살아가야 한다.

 

재벌들이 이러한 로펌에 변호사들을 자신들의 일에 대리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 일은 때로는 무고한 샐러리맨들의 생활터전을 빼앗는 일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재벌2세들의 여자 문제 같은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치졸한 일이 되기도 한다. 그 일들은 양심에 불편함을 준다. 따라서 로펌 변호사들이 그 불편함을 대리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다.

 

김석주라는 변호사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연민이 느껴지는 이유는 그가 결국은 차영우펌이라는 조직에 고용된 샐러리맨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인 욕망이 존재하겠지만 그도 그런 일들을 겪으며 불편함을 느낀다. 자신이 변호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어 조직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개인으로 돌아오면 죄책감이 없을 수 없다. 바로 그 죄책감이야말로 그가 돈을 버는 대가이기 때문이다.

 

김명민의 연기가 주목되는 지점은 김석주라는 인물에서 악마 같은 직업인의 모습과 언뜻 언뜻 숨겨진 인간적인 고충이 적절히 드러난다는 점일 게다. 김석주는 악명 높은 변호사로 극화되어 있지만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우리네 샐러리맨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조직의 생리는 결국 돈을 버는 것이다. 따라서 돈을 벌기 위해서 때로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을 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직업과 생계라는 이름으로 죄책감이 상쇄된다. 김석주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불편한 자화상이다.

 

과거 <하얀거탑>에서 장준혁이라는 끝없는 욕망을 가진 천재외과의사가 과오를 저지르고도 대중들이 그에게 연민을 보낸 까닭 역시 그 인물에게서 샐러리맨의 비애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끝없이 오르기 위해 뭐든 저지르지만 결국은 제 몸 하나 망가뜨리는 결과에 처하는 안타까운 삶. <개과천선>의 김석주라는 인물에게서는 그래서 그 장준혁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흥미로운 건 이 김석주가 사고를 통해 전혀 다른 인물로 말 그대로 개과천선을 한다는 설정이다. 이건 어쩌면 혹여나 조직원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을까 하루하루를 불편하게 살아가는 샐러리맨들에게는 하나의 판타지가 아닐까. ‘모든 걸 다 잊고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건 그 불편한 삶의 끝단에 서면 누구나 떠올리는 소망일 게다. 이 변신과정에서 김명민이라는 배우의 저력은 여지없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피도 눈물도 없는 데드마스크가 심지어 바보처럼 실실 웃는 얼굴로 바뀌는 그 과정이 주는 통쾌함이란.

 

<개과천선>은 그래서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샐러리맨들의 판타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던 젊은 날의 마음이 생계를 위한 밥벌이와 무한 경쟁 속에서 서서히 희석되어 어느 새 괴물이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할 때, 우리는 어쩌면 처음으로 돌아갈래하고 외치게 되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개과천선>의 김석주라는 인물에게서 우리는 삶에 희석되어 없는 것처럼 치부하던 일상인들의 불안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과연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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