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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이지만 볼 게 없는 월화드라마, <백희>가 채웠다

 

땜방드라마의 반전. KBS 월화드라마 <백희가 돌아왔다>에 붙는 수식어다. <백희가 돌아왔다><동네변호사 조들호>의 후속작인 <뷰티풀 마인드>가 미뤄지면서 그 사이를 메우기 위해 편성된 드라마다. 4부작으로 작은 규모의 드라마지만 의외로 첫 방송부터 반응은 폭발적이다. <백희가 돌아왔다>는 첫 회에 9.4%(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냈다. ‘4부작 땜방드라마(?)’라고는 믿기지 않는 기록이다.

 

'백희가 돌아왔다(사진출처:KBS)'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그 첫 번째는 월화드라마들이 너무 소소해지며 볼 게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종영한 <동네변호사 조들호>를 빼고 24부작 SBS <대박>이나 50부작 MBC <몬스터>는 대작드라마이면서도 그다지 반응이 좋지 않았다. <대박>은 이야기가 너무 자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숙종 대의 역사를 재해석한 것이지만 허구가 너무 과하고 전개도 개연성을 의심받을 정도로 들쭉날쭉했다. 그나마 현재 10%대의 시청률을 유지하는 힘은 최민수, 전광렬, 장근석, 여진구 같은 연기자들의 호연 덕분이라고들 말한다.

 

<몬스터>는 아예 시청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드라마가 되고 있다. 무려 50부작이고, <기황후> 같은 쟁쟁한 작품을 해온 장영철 작가의 작품이지만 어쩐지 너무 만화적인 느낌을 주는 드라마다. 흔한 복수극의 틀에 적당한 멜로를 섞고 있지만 이런 어정쩡한 이 드라마의 위치는 그 색깔을 명확히 내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가 되고 있다. 이야기를 잘 만들기로 유명한 장영철 작가지만 현실성이 별로 없는 이야기들의 나열은 시청자들이 왜 이 드라마를 봐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24부작과 50부작. 그 틈바구니에서 고작 4부작 드라마 <백희가 돌아왔다>가 선전한 것은 어쩌면 그 ‘4부작이라는 한계가 오히려 작품을 더 신선하게 만들어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최근 솔솔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50부작 드라마의 무용론이다. 이런 장편들은 과거 연속극의 형태로 시청률을 끌어올리려는 목적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지금의 한층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느슨하고 질질 끌고 가는 드라마로 인식되고 있다. 16부작이면 충분히 압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드라마를 굳이 50부작으로 늘리다 보니 드라마도 늘어진다는 것.

 

그런 점에서 4부작이라는 틀은 거꾸로 한계가 아닌 기회가 되었을 수 있다. 덩치가 작기 때문에 군더더기 따위는 과감하게 쳐낼 수밖에 없고 전개도 빨라질 수밖에 없다. 괜스레 시청자들의 마음을 쥐고는 질질 끌고 다니는 방식도 불필요하다. 섬월도판 맘마미아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백희가 돌아왔다>에서 백희(강예원)의 딸 옥희(진지희)는 섬월도에서 만난 세 아저씨, 범룡(김성오), 종명(최대철), 두식(인교진)을 만나 누가 아빠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식으로 아빠 찾기를 보여준다. 굳이 출생의 비밀어쩌고 하는 지지부진한 전개 따위는 없다.

 

4부작의 틀은 또한 그 규모 때문에 편성되지 못했던 중소규모의 이야기들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기도 한다. <백희가 돌아왔다>는 동네 개들이 뭐했는지까지 다 아는 작은 섬마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것도 시골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적어도 16부작이나 심지어 20부작, 나아가 50부작 드라마들이 갖는 스케일과 비교해보면 너무나 작게 느껴지는 소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소박한 시골의 작은 이야기들은 의외로 신선하다. 그동안 큰 규모의 편성 속에 도시를 소재로 하거나 심지어 글로벌한 이야기들이 드라마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규모가 작을 뿐, 그렇다고 가치가 작다는 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4부작을 취하고 있는 <백희가 돌아왔다>24부작, 50부작 사이에서 더 빛날 수 있었던 것.

 

<백희가 돌아왔다>가 보여준 선전은 그래서 이 한 편의 드라마의 성공으로만 치부하기에는 그 의미가 깊다. 중소규모의 드라마들이 상업적인 잣대 때문에 편성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그 많은 작지만 가치 있는 이야기들과 소재들을 소외시키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단편드라마들의 효용성을 강조하는 그 어떤 말보다 <백희가 돌아왔다>가 보여준 한 편의 선전이 더 효과적인 건 그래서다

Posted by 더키앙

 ‘오션스’, 보는 맛만큼 듣는 맛도 일품이다

“야 이 빵꾸똥꾸야!” 어찌 들으면 욕 같기도 한 이 말. 그런데 이상하게 진지희라는 아이의 입을 통해 던져지는 이 말에는 막힌 속을 확 풀어주는 어떤 힘이 있는 것 같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연실 ‘빵꾸똥꾸’란 말로 현대사회의 부조리한 부분들을 거침없이 하이킥 하던 진지희. 그녀가 이번에는 극장용 다큐멘터리 영화 ‘오션스’로 돌아왔다. 어딘지 어눌하면서도 정이 가는 극중 그녀의 아버지였던 정보석과 함께.

여름방학 시즌에 맞춰 쏟아져 나오는 대작 영화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오션스’는 다큐멘터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개봉 4일만에 18만 관객을 돌파하는 꽤 괜찮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시선을 압도하는 바다 생물들의 경연장 같은 ‘오션스’의 세계가 대중들을 매료시키는 이유는 물론 그 스펙터클이 가진 힘 때문이다. 거대한 대왕고래의 위용에서부터 4억년 동안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투구게, 신기하게 생긴 담요문어는 물론이고, 전갱이떼의 군무나, 마치 그림 같은 해파리떼들, 시속 40킬로로 질주하는 돌고래와 수천 마리의 황다랑어떼 같은 장면들은 거대한 스크린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이미 ‘마이크로 코스모스’로 놀라운 곤충들의 세계를 조명했던 자크 페렝이 무려 7년 간 촬영한 끝에 잡아낸 ‘오션스’의 영상들은 저게 과연 우리 지구의 모습일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 자크 페렝은 프랑스의 국민배우로 우리에게는 ‘시네마 천국’의 주인공 살바토레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제 그는 생생히 살아 숨 쉬는 바다의 생물들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그 존재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들인지를 말한다. 물론 이 가치 있는 존재들을 마구 파헤치고 파괴하는 인간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가진 스펙터클의 힘은 그러나 아마도 진지희와 정보석의 톡톡 튀는 내레이션이 아니었다면 자칫 지루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 정보석의 어눌한 랩에 진지희의 다소 엉뚱한 멘트들은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아름다운 영상들은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만들어진 이 부녀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다큐멘터리에 유머를 부여했다. 진지희의 아이의 시점에서 쏟아내는 톡톡 튀는 멘트들에 어린 관객들이 빵 터지는 것은 그 시점이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다큐멘터리에 친숙함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감어린 아빠의 목소리로 딸에게 차근차근 바다생물들을 설명해주는 정보석의 내레이션은 자칫 가르치려는 고정된 다큐멘터리의 목소리가 가진 무게감을 덜어냄으로써 편안해졌다. 정보석의 내레이션은 어른의 목소리라기보다는 아이와 함께 이 바다 여행을 즐기는(어찌 보면 아이 만큼 들떠있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아빠의 목소리다.

흥미로운 것은 ‘빵꾸똥꾸’의 힘이 여기서도 여전히 발휘된다는 점이다. 후반부에 이르러 다소 잔인할 정도로 그려지는 인간들의 해양생물 도륙 장면들에 이르면 진지희가 감정을 실어 쏟아내는 “이 빵꾸똥꾸들아!”라는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해지는 아이의 외침이 ‘빵꾸똥꾸’라는 대사로 잘 표현된 셈이다. ‘오션스’의 흥행에는 분명 ‘빵꾸똥꾸’로 대변되는 톡톡 튀는 내레이션의 힘이 분명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오션스’는 그 장관을 보는 맛뿐만 아니라, 듣는 맛도 일품이다.

Posted by 더키앙

'빵꾸똥꾸'에 깃든 사회, 그 의미

난데없는 '빵꾸똥꾸(?)'로 사회가 시끌시끌하다.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악동인 해리(진지희)가 입에 달고 다니는 이 '빵꾸똥꾸'는 올해의 유행어가 될 만큼 장안에 화제가 됐다. 그런데 지난 22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러한 용어가 폭력적이고, 필요이상 반복적으로 사용됐다며 해당 프로그램에 권고 조치를 했다. 도대체 왜 이 같은 용어에 대해 이처럼 상반된 반응이 나온 걸까.

먼저 사전에도 없는 '빵꾸똥꾸'가 무얼 의미하는 지부터 정확히 알아야 할 것 같다. 시트콤의 내용에 따르면 그 유래는 해리가 어렸을 때 말을 좀 늦게 하게 됐는데, 할아버지인 이순재가 방귀를 뀌는 소리를 듣고는 첫 마디를 '빵꾸똥꾸'라고 말했다는 데서 비롯된 것. 그 후로 뭔가 심사가 뒤틀리는 것(행위나 사람 모두 통틀어)을 대하면 해리는 이 말이 습관적으로 터져 나온다. '빵꾸똥꾸'는 적어도 해리에게는 자신만이 가진 욕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빵꾸똥꾸'를 외치는 해리의 모습은 그래서 거북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어쨌든 욕의 의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욕은 그 집에 새로 들어와 식모 생활을 어렵게 하며 살아가는 세경과 신애 자매에게 집중적으로 쏟아진다. '빵꾸똥꾸'는 해리가 처음 신애의 뺨을 올려 부쳤을 때 느껴지던 그 충격처럼 다가왔던 게 사실이다. 어린 아이가 어쩌면 저렇게 독할 수가 있을까.

하지만 그런 충격은 조만간 사라져갔다. 그리고 차츰 독하기만 한 아이라고 여겨졌던 해리는 역시 아이다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빵꾸똥꾸'를 외치면서도 하루만 신애가 보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하고, 신애가 쓰는 동화를 읽기 위해 신애가 하는 일을 도와주며 빨리 쓰라고 욕을 해대는 해리는 영락없는 아이의 모습이다. 그러니 이 아이가 이렇게 욕을 입에 달고 사는 모습에서 이제는 불쌍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바로 이 지점부터 해리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비호감에서 호감으로 바뀌었다. 해리를 이해하게 되는 지점에서 해리의 '빵꾸똥꾸'가 의미하는 것이 진짜 무엇인지도 드러났기 때문이다. 물론 어린 아이가 입에 담는 욕이 보기 좋을 수는 없다. 그런데 이 보기 좋지 않은 것, 그것은 사실 우리가 인정하기 싫은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아이가 무슨 죄가 있을까. 아이마저 욕을 하게 만드는 환경이 문제가 아닐까.

아이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빵꾸똥꾸'는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놓은 사회의 비뚤어진 부분을 거울처럼 비춰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해리가 '빵꾸똥꾸'를 외칠 때마다 이제는 심지어 묘한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게 되는 것은 욕이 가진 언어적인 기능과 거의 궤를 같이 한다. 욕과 배설의 즐거움이 같다는 것은 어떤 억압을 대리해 풀어주는 그 기능적 유사함 때문이다.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을 때, 그것을 지적하는 촌철살인의 욕은 심지어 문학적으로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빵꾸똥꾸'가 문학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용어는 풍자를 웃음의 재료로 삼는 시트콤으로서는 꽤 우회적인 괜찮은 표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빵꾸똥꾸'를 듣고 빵 터졌던 분들은 그 이유가 이 말이 가진 표피적인 의미 이상의 뉘앙스를 순간 느꼈고 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아이들이 무비판적으로 해리의 행동을 따라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아이들의 리얼한 모습이라는 것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지붕 뚫고 하이킥'은 정직하게 그런 변화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변화 혹은 아이들의 성장을 희망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Posted by 더키앙

이순재에서 해리까지, 망가질수록 빛나는 그들

연기자가 가장 빛나는 지점은 언제일까. 그것은 연기자 자신이 아닌 캐릭터에 몰두할 때이다. 그래서일까. 연기자들이 여지없이 망가지는 바로 그 순간, 그들이 가장 빛나게 되는 것은. ‘지붕 뚫고 하이킥’은 시트콤이 가진 특성상 연기자들의 망가짐이 빈번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시트콤 같은 코믹 장르가 가진 웃음은 기존 이미지의 전복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혀 그러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 정반대의 행동을 했을 때, 시트콤은 드디어 큰 웃음을 주게 된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이 ‘망가짐의 미학’을 솔선수범해 보여주는 인물은 이순재다. 칠순의 나이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멜로 연기에 어찌 창피함이 없었을까. 하지만 그는 김자옥을 위한 이벤트를 하기 위해 ‘네버 엔딩 스토리’를 열창하다 쓰러지기도 하고, 연실 북북 나오는 방귀를 그녀 앞에서 참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기도 한다. 그의 연인 김자옥과 원어민 강사인 줄리엔이 가깝게 지내는 것에 대해 질투를 할 때는 심지어 귀여워 보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망가짐의 끝에 그러나 이순재가 얻은 것은 역시 진정한 연기자라는 호평이다.

이순재의 아낌없는 망가짐의 솔선수범, 그 결과일까. ‘지붕 뚫고 하이킥’의 다른 연기자들도 자연스럽게 그 미학(?) 속으로 들어간다. 황정음은 술에 떡이 돼 해변에 쓰러져 잠든 ‘떡실신녀’로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준혁에게 누나 소리를 듣기 위해 남장을 하고 연기를 하는 ‘황정남’에서 뻥 터졌으며, 술에 취해 세경과 함께 웃음과 눈물의 이중주를 보여줌으로써 연기자로서의 확고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한없이 망가지지만 여전히 귀엽고 발랄해 보이는 건 그녀만의 매력. ‘지붕 뚫고 하이킥’을 통해 황정음은 연기자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굴욕 연기에도 명품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 정보석의 것이다. 김병욱 PD가 늘 시트콤을 통해 그려왔던 굴욕당하는 가장의 모습은 ‘순풍산부인과’와 ‘똑바로 살아라’의 박영규에서부터 ‘거침없이 하이킥’의 정준하를 거쳐 ‘지붕 뚫고 하이킥’의 정보석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늘 구박을 받는 존재로서 가부장제의 해체가 주는 통쾌한 웃음은 물론이고, 현 시대가 그려내는 가장들의 쓸쓸함까지 잡아내는 존재들이었다. 정보석은 완벽해 보이는 외관(외모는 물론 지위까지)과는 상반되게 덜떨어진 모습을 진지하게 보여줌으로써 명품 굴욕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꼬마 악역 정해리를 연기하는 진지희다. 지금껏 이처럼 독한 아역을 본 적이 있을까. 하지만 ‘아내의 유혹’을 패러디한 ‘해리의 유혹’편에서 민소희로 변신한 모습은 그 독한 설정을 과장되게 볼 수 있으면서도, 역시 아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늘 신애의 물건을 “내거야”하면서 빼앗던 해리가 신애가 쓴 동화를 끝까지 읽기 위해 갖은 일을 해내는 장면은 독함과 귀여움이 교차하는 해리만의 아우라를 만들어냈다.

이밖에도 ‘지붕 뚫고 하이킥’에는 호감 가는 캐릭터들이 즐비하다. 이현경 역할로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는 오현경이 그렇고, 이순재와 멜로 연기를 보여주는 김자옥이 그러하며, 한없이 불쌍한 신파적 존재로서 보여지다가도 꽤 엉뚱하고 예쁜 면모를 드러내는 신세경이 그렇다. 신세경을 중심으로 다층적인 멜로를 이루는 이지훈(최다니엘)과 정준혁(윤시윤)도 까칠함과 세심함을 왔다 갔다 하며 매력을 드러내고 있고, 원어민 강사로 나오는 줄리엔의 따뜻함과 거꾸로 말하는 반어법 교장선생님도 짧지만 큰 웃음을 주는 존재다.

이처럼 ‘지붕 뚫고 하이킥’에 포진한 연기자들은 저마다 자신을 망가뜨려 큰 웃음을 주는 연기자들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지점에서 이들 연기자들은 지금 이른바 ‘재발견’되는 기회를 얻고 있다. 이 작품 전과 이 작품 후의 이들 연기자들이 가지게 될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지금 이 작품이 주는 기회의 크기를 새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망가질수록 빛나는 그들. ‘지붕 뚫고 하이킥’이 보여주는 망가짐의 미학의 실체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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